변장 (삼국지)
1. 개요
변장은 후한 시대의 인물로, 신안 현령과 독군종사를 지냈으며 양주에서 명성이 있었다. 184년 선령강과 의종호 등의 세력이 북궁백옥과 이문후를 장군으로 추대하여 한나라에 대항할 때, 변장과 한수는 위협을 받아 군정을 맡게 되었다. 이후 반군으로 알려져 현상금이 걸리자 이름을 바꾸었으며, 185년에는 환관 주살을 명분으로 삼보까지 침범했다. 황보숭이 진압에 나섰으나 장양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면직되었고, 장온이 대신 부임했다. 미양 전투에서 한군과 싸웠지만 패배하여 유중으로 퇴각했다. 186년 겨울, 한수에게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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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년 사망 -
장연 (태위)
장연은 후한 영제 시기 태복과 태위를 지낸 인물로, 환관 세력의 횡포 속에서 청렴한 관료로 이름 높았으나 환관의 모함으로 옥사하여 후한 왕조 멸망을 재촉했다. -
186년 사망 -
진식 (후한)
진식은 후한 시대의 청렴하고 강직한 정치가이자 학자로, 환관 세력에 맞서 싸웠으며, 현령을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었으나 당고의 금으로 인해 은거 후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고, 사후 문범선생이라 불리며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
후한 사람 -
손정
손정은 손견을 따라 거병하고 손책의 회계 평정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손권에 의해 소의중랑장에 임명되었으나 사임 후 고향에서 사망,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이 손권 휘하에서 활약하며 가문의 명성을 이은 인물이다. -
후한 사람 -
외효
외효는 후한 초기의 인물로, 한실 부흥을 내세워 독립 세력을 구축하고 광무제와 협력했으나, 결국 광무제에게 반기를 들고 패배하여 사망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변장은 후한 말기의 인물로, 처음에는 신안현령(新安―)과 독군종사(督軍從事)를 지내며 양주에서 명망이 있었다. 184년 겨울, 양주의 난이 발발하자 선령강(先零羌) 등 여러 세력에 의해 한수와 함께 위협받아 반란군의 군정을 맡게 되었다. 이 일로 반란의 주모자로 잘못 알려져 현상금이 걸리자, 원래 이름인 변윤(邊允)에서 변장으로 개명하였다.
이후 변장은 환관 세력을 처단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185년 봄 삼보(三輔) 지역까지 진출하며 한나라 조정에 반기를 들었다. 황보숭, 장온, 동탁 등이 이끄는 조정군과 여러 차례 교전하였으나, 185년 11월 미양(美陽) 전투에서 동탁 등에게 크게 패배하고 유중(楡中)으로 물러났다.
변장의 최후에 대해서는 기록이 엇갈린다. 186년 겨울, 한수에게 살해당했다는 기록과 (『후한서』「동탁전」) 병으로 사망했다는 기록이 함께 전해진다. (『삼국지』 위지 「무제기」 인용 『전략』)
2.1. 초기 활동
신안현령(新安―)과 독군종사(督軍從事)를 지냈으며, 양주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184년(중평 원년) 겨울, 북지군(北地郡)과 농서군(隴西郡) 부한현(枹罕縣)·하관현(河關縣)의 선령강(先零羌) 및 의종호(義從胡) 등 여러 세력이 봉기하여 북궁백옥(北宮伯玉)과 이문후(李文侯)를 장군으로 추대하고 한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이 과정에서 호강교위(護羌校尉) 영징(泠徵)과 금성태수 진의(陳懿)가 살해되었고, 변장과 한수는 반란군의 위협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그 군정을 책임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변장과 한수는 반란군의 수괴로 잘못 알려져 식읍 1,000호의 제후 자리가 현상금으로 걸리게 되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둘은 이를 피하고자 각각 변장과 한수로 개명하였다.
영제(靈帝) 시대에 변장(당시 이름 변윤)은 한수(당시 이름 한약)와 함께 서쪽 지방에서 높이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삼국지』 위서 「무제기」에 인용된 『전략』에 따르면, 송건·왕국 등이 반란을 일으켜 북궁백옥·이문후를 장군으로 옹립했다고도 한다. 『후한서』「동탁전」 및 여기에 인용된 『헌제춘추』에 따르면, 반란군이 금성군에 이르렀을 때 항복하는 척하며 변윤·한약 등 수십 명을 인질로 잡았다가, 호강교위 영징과 금성태수 진의를 살해한 뒤 변윤과 한약을 석방하고 오히려 그들을 옹립하여 군정을 맡겼다고 한다. 이 때문에 농서군에서는 변윤·한약이 반란 주모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양주 전체에서 두 사람에게 현상 수배가 내려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때 변윤은 변장으로, 한약은 한수로 개명했다고 전해진다.
2.2. 반란 주도
185년 봄 환관을 주살(誅殺)한다는 명분으로 원릉이 있는 삼보(三輔)까지 침범하였다. 조정에서는 좌거기장군 황보숭을 보내 진압하려 했으나, 황보숭이 환관 장양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7월(음력)에 면직되고 장온이 대신 부임하였다.
미양(美陽)에서 한나라 군대와 맞붙어 변장과 한수는 잘 싸웠으나, 11월 별똥별이 진영을 비추면서 병사들이 불안해하였다. 파로장군 동탁과 우부풍 포홍(鮑鴻)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습해와서 변장과 한수는 수천 명이 죽는 등 크게 패하고 유중(楡中)으로 퇴각하였다. 탕구장군 주신(周愼)이 3만 명으로 쫓아왔으나, 변장과 한수가 따로 군사를 내어 그 보급로를 끊자 주신은 치중을 버리고 도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