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상시
1. 개요
봉상시는 고려 시대부터 대한제국 시대까지 존재했던 국가 기구로, 국가 제례, 시호, 묘호 등을 관장했다. 고려 시대에는 태상시, 태상부, 봉상시, 전의시 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원나라 간섭기에 봉상시로 개칭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고려의 관제를 따라 봉상시로 설치되어 제사, 시호, 적전, 둔전, 기공, 교악 등을 관장했다. 1895년 봉상사로 개칭되었으며, 1907년에 폐지되었다. 봉상시는 정3품 당상관인 정(正)을 최고 책임자로, 다양한 품계의 관원들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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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행정기관 -
사헌부
사헌부는 고려 공민왕 때 명칭이 정해져 조선 시대에 관리 감찰, 규찰, 정치 참여 등을 수행했으며, 홍문관, 사간원과 함께 대간 또는 삼사로 불리며 국가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
고려의 행정기관 -
한림원
한림원은 중국 역사 속 저명한 인사들이 모여 학문 연구, 인재 양성, 과거 시험 관리, 외국어 번역 및 외교 지원 등의 역할을 수행한 황실 학술 기관이었으나, 의화단 운동으로 자료가 소실되고 신해혁명으로 폐지되었다. -
조선의 행정기관 -
포도청
포도청은 조선시대에 도적을 잡고 치안을 유지하던 관청으로, 성종 때 임시직으로 시작하여 좌·우 포도청으로 나뉘어 운영되다가 갑오경장 때 경무청으로 개편되며 폐지되었으며, 천주교 박해에도 관여하였다. -
조선의 행정기관 -
승정원
승정원은 조선시대에 왕명 출납을 담당한 국왕 직속 비서 기관으로, 중추원에서 시작하여 승추부로 확대 후 다시 승정원으로 개편되어 육조 업무 분담, 국정 자문, 정보 기관 역할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다 갑오개혁 이후 승선원을 거쳐 궁내부 시종원으로 업무가 이관되었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2. 연혁
고려시대에 국가제례와 시호와 묘호를 관장하던 태상시(太常寺)가 목종대 이전부터 있었으며, 문종대에 병과권무관서(丙科權務官署)로 격하되어 태상부(太常府)라 하였다.
원나라 간섭기에 원나라의 관청인 태상례의원(太常禮儀院)을 피하여 충선왕대에 봉상시로 개칭되었다. 직제는 1298년에 경(卿) 2명, 소경(少卿) 1명, 승(丞) 1명, 박사(博士) 1명, 대축(大祝) 1명, 봉례랑(奉禮郞) 1명과 이속(吏屬)으로 기사(記事)와 서자(書者)가 있었다. 그 후 1308년(충렬왕 34) 다시 전의시(典儀寺)로 개칭되었다.
1356년(공민왕 5) 문종관제가 복구되면서 대상시(大常寺)로 고쳐지면서 폐지되었으나, 1362년에 곧 봉상시가 복치되었다. 1369년에 또 한번 대상시로 바뀌었다가 1372년에 다시 전의시가 두어졌다.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년)에 고려의 관제를 따라 봉상시로 개편·설치하였다. 관원으로 판사(判事) 2명, 경(卿) 2명, 소경(少卿) 1명, 승(丞) 1명, 박사(博士) 2명, 협률랑(協律郞) 2명, 대축(大祝) 2명, 녹사(錄事) 2명을 두었다. 1409년(태종 9년)에 전농시(典農寺)(혹은 전사시)로 개칭되었다가 1420년~1421년(세종 2년~3년)에 다시 봉상시로 복칭하면서 판사 이하의 모든 관원들은 모두 문관을 임명하도록하였다. 1466년(세조 12년)에 관제개편을 하였으며 그대로 《경국대전》에 기록되었다. 1895년(고종 32년)에 봉상사(奉常司)로 개칭하였으며 1907년(융희 1년)에 폐지되었다.
2.1. 고려 시대
고려 시대에는 국가 제례와 시호, 묘호를 관장하던 태상시(太常寺)가 목종 대 이전부터 있었다. 문종 대에는 병과권무관서(丙科權務官署)로 격하되어 태상부(太常府)라 불렸다.
원나라 간섭기에는 원나라의 관청인 태상례의원(太常禮儀院)을 피하여 충선왕 대에 봉상시로 개칭되었다. 1298년(충렬왕 24) 직제는 경(卿) 2명, 소경(少卿) 1명, 승(丞) 1명, 박사(博士) 1명, 대축(大祝) 1명, 봉례랑(奉禮郞) 1명과 이속(吏屬)으로 기사(記事)와 서자(書者)가 있었다. 1308년(충렬왕 34) 다시 전의시(典儀寺)로 개칭되었다.
1356년(공민왕 5) 문종 관제가 복구되면서 대상시(大常寺)로 고쳐졌으나, 1362년(공민왕 11)에 봉상시가 복치되었다. 1369년(공민왕 18)에 다시 대상시로 바뀌었다가 1372년(공민왕 21)에 전의시가 설치되었다.
2.2. 조선 시대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년)에 고려의 관제를 따라 봉상시로 개편·설치되었다. 관원으로는 판사(判事) 2명, 경(卿) 2명, 소경(少卿) 1명, 승(丞) 1명, 박사(博士) 2명, 협률랑(協律郞) 2명, 대축(大祝) 2명, 녹사(錄事) 2명을 두었다. 1409년(태종 9년)에 전농시(典農寺)(혹은 전사시)로 개칭되었다가 1420년~1421년(세종 2년~3년)에 다시 봉상시로 복칭하면서 판사 이하의 모든 관원들은 모두 문관을 임명하도록하였다. 1466년(세조 12년)에 관제개편을 하였으며 그대로 《경국대전》에 기록되었다. 1895년(고종 32년)에 봉상사(奉常司)로 개칭하였으며 1907년(융희 1년)에 폐지되었다.
3. 기능
봉상시는 국가의 중요한 의례와 관련된 다양한 기능을 수행했다. 제사(祭祀), 시호(諡號), 적전(籍田), 둔전(屯田), 기공(記功), 교악(敎樂)을 관장하였다. 국가의 중요한 제사를 주관하고, 왕이나 공신 등의 사후에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시호를 의논하고 결정했다. 왕이 직접 농사를 시범 보이는 의례인 적전을 관장하고, 군량미 조달을 위해 설치된 둔전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공을 세운 인물의 업적을 기록하고, 교육과 음악에 관한 일도 담당했다.
4. 구성
봉상시는 다양한 직급의 관원들로 구성되었다. 최고 책임자인 정(正)은 정3품 당상관이었다. 정1품 도제조(都提調) 1명, 종1품 제조(提調) 1명도 있었다. 종4품 첨정(僉正)부터 종6품 주부(主簿)까지는 구임관(久任官)이었다.
| 품계 | 관직 | 정원 |
|---|---|---|
| 정1품 | 도제조(都提調) | 1명 |
| 종1품 | 제조(提調) | 1명 |
| 정3품(당상) | 정(正) | 1명 |
| 종3품 | 부정(副正) | 1명 |
| 종4품 | 첨정(僉正) | 2명 |
| 종5품 | 판관(判官) | 2명 |
| 종6품 | 주부(主簿) | 2명 |
| 종7품 | 직장(直長) | 1명 |
| 종8품 | 봉사(奉事) | 1명 |
| 정9품 | 부봉사(副奉事) | 1명 |
| 종9품 | 참봉(參奉) | 1명 |
4.1. 관원 구성
봉상시의 최고 책임자인 정(正)은 정3품 당상관이었다. 정1품 도제조(都提調) 1명, 종1품 제조(提調) 1명도 있었다. 종4품 첨정(僉正)부터 종6품 주부(主簿)까지는 구임관(久任官)이었다.
| 품계 | 관직 | 정원 |
|---|---|---|
| 정3품(당상) | 정(正) | 1명 |
| 종3품 | 부정(副正) | 1명 |
| 종4품 | 첨정(僉正) | 2명 |
| 종5품 | 판관(判官) | 2명 |
| 종6품 | 주부(主簿) | 2명 |
| 종7품 | 직장(直長) | 1명 |
| 종8품 | 봉사(奉事) | 1명 |
| 종9품 | 부봉사(副奉事) | 1명 |
| 종9품 | 참봉(參奉) | 1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