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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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봉화시는 6세기부터 사용된 일본의 화살에서 발전한 무기로, 화약과 불을 이용하여 적에게 피해를 입히는 소이 무기이다. 16세기 포르투갈로부터 조총 기술을 전래받은 후, 한국의 총통과 유사한 로켓 형태의 봉화시가 개발되었다. 봉화시는 나무 자루에 금속 촉과 방수 소이 로프 심지를 감아 점화하여 사용했으며, 해전에서 적 함선에 화재를 일으키는 데 사용되었다. 호로쿠비야는 질그릇에 화약을 넣어 던지는 수류탄과 같은 병기이며, 보히야는 호로쿠비야를 로켓 형태로 발전시킨 것이다. 봉화시는 이쓰쿠시마 전투, 제1차 키즈가와구치 전투 등 일본 군사사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비거리가 3km에 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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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시 | |
---|---|
봉화시 (펑화 시) | |
기본 정보 | |
중국어 간체자 | 奉化市 |
병음 | Fènghuà Shì |
행정 구역 정보 | |
구분 | 현급시 |
소속 성 | 저장 성 |
관할 | 진해 구 |
면적 | 1253 제곱킬로미터 |
인구 통계 | |
인구 | 47만 8천 명 (2001년) |
기타 정보 | |
우편 번호 | 315500 |
지역 번호 | 0574 |
2. 역사
6세기부터 일본에서는 여러 종류의 화살이 사용되었으며, 한반도에서 벌어진 군사 작전에도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초기 화살은 활(유미)을 통해 발사되었다.[1]
10세기 중국에서는 화약을 화살에 부착하여 발사하는 방식이 사용되었으며, 13세기 몽골 함선에 의해 일본에 대항하여 사용되었다.[2]
1543년, 일본은 포르투갈로부터 조총(종자도총) 기술을 전래받아[3] 독자적인 총기류를 개발했으며, 이는 한국의 총통과 유사한 로켓 형태의 보히야 개발로 이어졌다.[3]
2. 1. 초기 형태 (화살)
6세기부터 일본에서는 여러 종류의 화살이 사용되었으며, 한반도에서 벌어진 군사 작전에도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활(유미)은 이러한 초기 화살을 발사하는 데 사용되었다.[1]10세기 중국에서는 화약을 화살에 부착하여 발사하는 방식이 사용되었고, 이러한 유형의 화살은 13세기 몽골 함선에 의해 일본에 대항하여 사용되었다.[2]
2. 2. 종자도총 전래와 보히야의 발전 (로켓 형태)
1543년, 일본은 포르투갈로부터 조총(종자도총) 기술을 전래받았다.[3] 이를 통해 일본은 독자적인 총기류를 개발했으며, 이는 화살을 발사하는 새로운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한국의 총통과 유사한 로켓 형태의 보히야가 개발되었다.[3] 보히야는 나무 자루에 금속 촉을 가진 두꺼운 화살 형태였으며, 자루 주위에 화약 심지를 감아 점화하는 방식이었다. 넓은 구경의 '히야즈츠'나 박격포 형태의 히야타이호에서 발사되었다.[3] 16세기에는 왜구가 보히야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해전에서 "비처럼 쏟아졌다"고 묘사될 정도로 널리 사용되었다.[4] 보히야는 일본 군함의 표준 장비였으며, 적 함선에 화재를 일으키는 데 사용되었다.[5]
2. 3. 호로쿠비야 (焙烙火矢)
'''호로쿠비야'''(焙烙火矢)는 호로쿠라는 요리 도구나 이와 비슷한 도자기에 화약을 넣고 도화선에 불을 붙여 적에게 던지는 수류탄과 같은 무기이다. 손으로 직접 던지거나 밧줄을 사용하여 원심력으로 던졌다. 폭발의 힘과 도자기 파편으로 적군을 죽이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당시의 흑색 화약은 근대 이후의 뇌관에 비해 연소 속도가 느리고 불순물이 많아 불완전 연소가 잦아 폭발력은 떨어졌지만, 주변에 많은 불꽃을 흩뿌려 화재를 유발하는, 현대의 소이탄과 같은 효과도 있었다. 무라카미 수군, 모리 수군, 노미 수군(우라 수군), 고다마 수군 등 세토 내해 수군이 주로 사용했다. 화살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둥근 폭탄 모양이 많아 '''호로쿠다마'''라고도 불렸다. 오다 노부나가는 이러한 무기에 대항하기 위해 구키 요시타카에게 철갑선을 만들게 했다고 전해진다.서양 제국처럼 대형 대포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주조 기술이 뛰어나지 않았던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투척탄과 같은 무기가 공성전이나 해전에서 비교적 많이 쓰였다. 건축물이나 군함 대부분이 목재였기 때문에, 충돌을 주된 공격력으로 하는 대포보다 연소와 폭발을 이용한 공격이 효과적이었다 (한편 서양에서도 해상 전투에서는 당시 위력이 부족했던 대포는 결정적인 무기가 아니었고, 결국 배를 맞대고 직접 싸우는 백병전으로 결판을 내던 시대였다). 특히 유럽의 범선은 먼바다 항해를 염두에 둔 설계였던 반면, 일본 전국 시대의 군함은 내해나 근해 항해에 특화되어 선체 위에 큰 방벽을 갖춘 구조였으므로, 그 틈새에 폭발물을 던지는 전술이 비교적 효과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공성전이나 해전에서 방어 시설이나 배를 불태울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전력이 되었다.
3. 구조 및 원리
봉화시는 화약 연소로 발생하는 불꽃을 이용한 초기 소이 무기 중 하나였다. 신기전, 화차 등과 함께 사용되었으며, 주로 적에게 불을 붙이는 데 활용되었다.
3. 1. 보히야 (로켓 형태)
보히야는 나무 화살에 화약을 채워 넣어 만든 소이탄이다. 화살 앞부분 3분의 1에 질산염, 유황, 숯, 장뇌 등을 섞은 화약을 채우고 도화선을 달아 발사했다. 조견표를 통해 거리와 도달 시간을 계산하여 도화선의 길이를 조절했다. 대통의 앞부분에 화살을 꽂아 발사하는 모습은 현대의 유탄발사기와 유사하지만, 보히야는 탄두 부분의 도화선에 불을 붙여 발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3]3. 2. 호로쿠비야
'''호로쿠비야(焙烙火矢)'''는 호로쿠라고 하는 질그릇이나 이와 비슷한 도자기에 화약을 넣어 도화선에 불을 붙여 사용하는 무기이다. 손으로 직접 던지거나 밧줄을 사용하여 원심력으로 던져서 사용했다. 폭발의 힘과 그릇 파편으로 적군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또한, 당시의 흑색 화약은 연소 속도가 느리고 불순물이 많아 폭발력이 약했지만, 주변에 불꽃을 퍼뜨려 불을 지르는 효과가 있어, 현대의 소이탄과 비슷한 효과를 냈다. 무라카미 수군, 모리 수군 등 세토 내해의 수군이 주로 사용했다. '화살'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둥근 폭탄 모양이 많아 '''호로쿠다마(焙烙玉)'''라고도 불렸다. 오다 노부나가는 이러한 무기에 대항하기 위해 구키 요시타카에게 철갑선을 개발하게 했다고 전해진다.서양처럼 대형 대포를 만들 만큼 주조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투척탄과 비슷한 무기가 공성전이나 해전에서 비교적 많이 사용되었다. 당시 건축물이나 군함은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충돌보다는 불을 지르거나 폭발시키는 공격이 효과적이었다. (한편, 서양에서도 해상 전투에서 당시 위력이 부족했던 대포는 결정적인 무기가 아니었고, 결국 배를 가까이 대고 싸우는 백병전으로 결판을 내던 시대였다.) 특히 유럽의 범선이 먼바다 항해를 고려한 설계였던 반면, 일본 전국 시대의 군함은 내해나 근해 항해에 특화되어 배 위에 큰 방벽을 갖춘 구조였기 때문에, 그 틈새에 폭발물을 던지는 전술이 효과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공성전이나 해상전에서 방어 시설이나 배를 불태울 수 있어 중요한 전력이 되었다.
더 발전된 형태로, 호로쿠비야를 구형이 아닌 로켓 형태로 만들어 대통으로 발사하거나, 흑색 화약의 화력을 추진력으로 이용한 원시적인 로켓탄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이 발전된 형태의 호로쿠비야는 '''보히야(棒火矢)'''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무기는 중국의 신화비아와 같은 로켓형 무기 ('''화전''')를 참고하여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보히야가 만들어진 것은 게이초 연간(또는 간에이 연간)이며, 실전에 사용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제작자에 대해서는 『화한삼재도회』에 야마구치현의 아카이시 구라노스케가 고안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보히야는 나무 화살에 화약을 채워 소이탄으로 사용했다. 화살 앞부분 3분의 1에 질산염, 유황, 숯, 장뇌를 섞은 화약을 채우고 도화선을 붙여 발사했다. (조견표의 "정견반"에서 거리와 도달 시점을 계산하여 도화선의 길이를 결정했다.) 대통 앞부분에 화살을 꽂은 모습은 현대의 소총 유탄 발사기와 비슷해 보이지만, 보히야는 발사하는 탄두 부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구조라는 점이 다르다.
4. 비거리 (보히야)
이소다 미치후미의 조사에 따르면, 고카 닌자의 고문서 『독약지방』(1681년)에는 봉화시(보히야)에 독을 묻혀 성곽을 향해 쏘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사정거리가 3km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화약량 조절 및 순풍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히로시마 성 아래에서도 1,000m 사방 범위는 성 밖에서 공격이 가능했다.
5. 사용된 전투
- 이쓰쿠시마 전투 - 낫창으로 적선의 닻 밧줄과 닻 그물을 끊고 혼란에 빠진 곳에 화살을 쏘고, 이어서 포격선으로 호로쿠(포탄)를 던지는 전법을 사용했다고 한다.[6]
- 제1차 키즈가와구치 전투[7]
- 제2차 키즈가와구치 전투
- 오시오 헤이하치로의 난
6. 관련 유물
쓰치우라번주였던 쓰치야 가문에 전해지는 '사자 물어뜯는 대화살통'이 현존한다. 이것은 막대 화살을 발사하기 위한 것으로, 철제이며 총신은 10cm, 구경은 4cm이다.[8]
7. 유사 무기
4식 도제 수류탄은 도자기로 만들어 던져서 폭발시키는 근대 병기이다.[8] 비격진천뢰는 조선시대에 사용된 시한폭탄의 일종이다.
8. 기타
焙烙火矢|호로쿠비야일본어는 요리 도구인 호로쿠나 그와 비슷한 도자기에 화약을 넣고 도화선에 불을 붙여 적에게 던지는 수류탄과 같은 병기이다. 손으로 직접 던지거나 밧줄을 사용하여 원심력을 이용해 던졌으며, 폭발력과 용기 파편으로 적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했다.[4] 당시의 흑색 화약은 연소 속도가 느리고 불완전 연소가 많아 폭발력이 떨어졌지만, 주변에 많은 불꽃을 흩뿌려 화재를 유발하는, 현대의 소이탄과 같은 효과도 있었다.[4] 무라카미 수군, 모리 수군 등 세토 내해의 수군이 주로 사용했다. '화살'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둥근 폭탄 모양이 많아 焙烙玉|호로쿠다마일본어라고도 불렸다.[4]
서양처럼 대형 대포를 제조할 만큼 주조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투척탄과 같은 병기가 공성전이나 해전에서 비교적 많이 사용되었다. 목조 건축물이나 군함이 많았기 때문에 충돌력을 주된 공격력으로 하는 대포보다 연소력, 폭발력을 이용한 공격이 효과적이었다.[4] 특히 전국 시대 일본의 군함은 내해나 근해 항해에 특화되어 선체 위에 크게 방벽을 갖춘 구조였으므로, 그 틈새에 폭발물을 던지는 전술이 효과적이었다.[4]
더욱 발전된 형태로, 焙烙火矢|호로쿠비야일본어를 구형이 아닌 로켓 형태로 만들어 대통을 사용하여 발사하고, 흑색 화약의 화력을 추진력으로 이용한 원시적인 로켓탄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이 발전형의 焙烙火矢|호로쿠비야일본어는 棒火矢|보히야일본어라고도 불린다.[4] 이러한 병기는 중국의 신기전과 유사한 로켓형 병기 (火煎|화전중국어)를 참고하여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棒火矢|보히야일본어가 탄생한 것은 게이초 연간(또는 간에이 연간)이며, 실전용 병기로 사용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는지는 미지수이다. 棒火矢|보히야일본어는 목제 화살에 화약을 채워 소이탄으로 사용했다.[3]
참조
[1]
서적
Japan: its history, arts, and literature
https://archive.org/[...]
J.B. Millet Co.
[2]
서적
The Rocket: The History and Development of Rocket & Missile Technology
https://books.google[...]
Crown
[3]
서적
Fighting Ships of the Far East (2): Japan and Korea AD 612-1639
https://books.google[...]
Bloomsbury USA
[4]
서적
Pirate of the Far East: 811-1639
https://books.google[...]
Bloomsbury USA
[5]
서적
Transactions of the Asiatic Society of Japan
https://archive.org/[...]
Asiatic Society of Japan.
[6]
서적
戦国最強の水軍 村上一族のすべて
新人物往来社
[7]
서적
戦国最強の水軍 村上一族のすべて
[8]
서적
テーマ展 武装 -大阪城天守閣収蔵武具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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