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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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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여주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매사냥의 유래와 관련된 설화에 등장한다. 닌토쿠 천황 시대에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매를 바치고 매사냥 기술을 전파한 인물로 묘사된다. 일본서기에는 기노 스미노에에게 예를 표하지 않아 쇠사슬에 묶여 일본으로 압송된 기록과 함께, 닌토쿠 천황에게 '구치'라는 새(매)를 바치고 매사냥 기술을 전파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찬성씨록에는 술군의 후손들이 오사카베씨, 백제공씨, 무토베씨 등 다양한 성씨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백제 왕족과의 관련성에 대한 기록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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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주

2. 기록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부여주(부여술)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주로 일본서기신찬성씨록에 등장한다. 신찬성씨록에 의하면 부여주는 구이신왕의 아들이라 한다. 일본서기에선 주군으로 기록하고 있다.[1] 오사카만에는 주군의 무덤인 주군총이 있는데, 바로 옆에는 사냥을 함께 다녔을 정도로 가까웠던 닌토쿠왕의 능이 있다. 또, 그 옆에는 닌토쿠왕의 아버지로 알려진 오진왕의 무덤인 곤다야마 고분도 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닌토쿠 천황 41년(추정 353년) 3월 기노 스미노에가 백제에 파견되었을 때, 백제 왕족이었던 술군은 그에게 예를 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기노 스미노에가 백제 왕을 책망하자, 왕은 쇠사슬로 술군을 묶어 가쓰라기노 소쓰히코에게 넘겼다. 술군은 이시카와노 니시고리노 오비토코로시의 집에 숨었으나, 얼마 후 천황은 술군의 죄를 용서했다.[1]

닌토쿠 천황 43년(추정 355년), 요사미노 미야케의 아비코가 진귀한 새를 천황에게 바치자, 술군은 "이 새는 백제에 많으며, '구치'라고 부릅니다. 길들여 사람을 따르게 하고, 민첩하게 날아 여러 새를 잡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천황은 술군에게 새를 기르게 했고, 얼마 후 술군은 새를 길들여 천황에게 헌상했다. 천황은 모즈노노로 행차하여 사냥을 즐겼으며, 이때 매감부가 설치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를 기르는 장소를 매사육 마을이라고 불렀다.[2][3]

2. 1. 일본서기

일본서기 닌토쿠 천황 41년(353년, 백제 근초고왕 8년으로 추정)조에는 술군이 백제에 파견된 기노 스미노에에게 예를 표하지 않아 쇠사슬에 묶여 일본으로 압송되었다는 기록이 있다.[1] 닌토쿠 천황 43년(355년, 근초고왕 10년으로 추정)조에는 술군이 닌토쿠 천황에게 '구치'라는 새()를 바치고, 매사냥 기술을 전파했다는 기록이 있다.[2]

쓰다 소키치일본서기의 술군 관련 기사가 다이카 개신(645년) 당시 백제가 임나의 조(調)를 대신 바친 사건을 바탕으로 윤색된 이야기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2. 2. 신찬성씨록

신찬성씨록에 따르면 술군은 구이신왕의 아들이며, 그의 후손들은 백제공(百済公), 육인부련(六人部連) 등의 성씨를 받았다고 한다. 오사카베씨, 백제공씨, 무토베노 무라지씨 등이 술군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다.[1]

3. 백제 왕족과의 관계

신찬성씨록에는 술군이 구이신왕의 아들이라 기록되어 있으나,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등장하지 않아 정확한 혈연관계는 알 수 없다.[1] 일본서기 기록을 바탕으로, 술군은 백제 왕족 또는 유력 귀족 가문 출신으로 추정된다. 술군은 문주왕과 가까운 인물로 추정되나 정확한 촌수 확인은 어렵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술군의 후손은 백제공(百済公) 및 육인부련(六人部連)이라는 성씨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1] 한편 백제공(百済公)은 본래 귀실(鬼室)씨이고 문주왕의 후손이었다는 기록도 있다.[1]

신찬성씨록 "우쿄 제번"에 따르면, 오사카베씨는 "백제국 술왕에서 나왔다(出自百済国酒王也)"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즈미국 제번"에는 백제공씨는 "백제국 술왕에서 나왔다", 무토베노 무라지씨는 "백제공과 같은 조상이며, 술왕의 후손이다(百済公同祖、酒王之後也)"라고 기록되어 있다.[3]

4. 묘소

오사카만에 술군의 무덤으로 알려진 주군총이 있다.[1] 주군총 주변에는 닌토쿠 천황의 능과 곤다야마 고분(오진 천황의 능으로 추정)이 있다.[1]

5. 평가

술군은 4세기 후반 ~ 5세기 초반 백제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일본서기에 따르면, 술군은 일본에 매사냥 문화를 전파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1][2][3]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진보 진영에서는 술군을 고대 한일 문화 교류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하며, 백제의 선진 문물이 일본에 전파된 사례 중 하나로 강조한다. 반면, 일본 극우 세력은 백제로부터 선진 문물을 전수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참조

[1] 서적 日本書紀 0041-03
[2] 서적 日本書紀 0043-09-01
[3] 서적 日本書紀 00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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