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훈해
1. 개요
부여훈해는 백제의 왕족으로, 형 아신왕 사후 섭정하며 일본에 볼모로 간 조카 부여 영을 기다렸다. 왕이 되고 싶었던 막내동생 부여설례에게 살해당했다. 훈해의 후손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안고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일본의 신찬성씨록과 속일본기에서 이를 언급하고 있다.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백제의 정치인 -
부여설례
아신왕의 서얼 아우인 부여설례는 405년 아신왕 사후 둘째 형 훈해를 시해하고 조카인 태자 영(전지왕)이 귀국하기 전 섭정과 보위를 참칭했으나, 전지왕의 즉위로 섭정은 종료되었다. -
405년 사망 -
아신왕
아신왕은 백제 제17대 국왕으로, 고구려의 침략에 맞서 왜와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는 등 국운 유지를 위해 노력했으나, 전쟁에서의 패배로 백제의 쇠퇴를 막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의 삶과 결정은 역사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
405년 사망 -
모용덕
모용덕은 전연의 모용황의 아들로, 후연을 거쳐 남연을 건국하고 연왕을 자칭했으며, 400년에 황제에 즉위하여 건평으로 개원했다. -
백제의 왕자 -
부여융
부여융은 백제 의자왕의 아들이자 당나라 장수로, 백제 멸망 후 당나라 웅진도독으로 임명되어 백제 유민을 다스렸으나 신라와의 관계 악화로 축출되어 낙양에서 사망했으며, 백제 마지막 태자 여부 논쟁과 엇갈린 행적으로 평가가 나뉜다. -
백제의 왕자 -
부여용
부여용은 백제 의자왕의 손자이자 부여융의 아들이며, 무왕에서 시작된 백제 왕족의 후손으로 부여충승, 부여충지, 선광왕을 아들로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