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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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여훈해는 백제의 왕족으로, 형 아신왕 사후 섭정하며 일본에 볼모로 간 조카 부여 영을 기다렸다. 왕이 되고 싶었던 막내동생 부여설례에게 살해당했다. 훈해의 후손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안고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일본의 신찬성씨록과 속일본기에서 이를 언급하고 있다.

부여훈해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부여훈해
한자 표기扶餘訓解
로마자 표기Buyeo Hunhae
한글 표기부여훈해
직위왕족 종실
국적백제
왕가부여씨
왕조백제
생애
출생미상
출생지백제
사망일405년
사망지백제
사망 원인암살
거주지백제
가족 관계
아버지침류왕
작은아버지진사왕
아신왕
이복 동생부여 홍
동생부여설례
조카전지왕
조카부여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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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아신왕이 죽자 형을 대신하여 섭정하며 일본에 볼모로 간 조카(왕태자 부여 영)를 기다렸다. 그러나 왕이 되고 싶었던 막내동생 부여설례(일명 부여접례)가 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그의 후손들은 안고씨(雁高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신찬성씨록속일본기에서는 일본 안고씨의 시조로 훈해를 지목하고 있다.

3.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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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밀어서 보기
근구수왕
아이부인
침류왕왕비 진씨
진사왕후궁: 미상
아신왕훈해
설례부여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