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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토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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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래드 토머스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야구 선수로, 1995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계약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미네소타 트윈스, 보스턴 레드삭스, 시애틀 매리너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 메이저 리그 팀에서 활동했으며, 일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한국 한화 이글스, 대만 중신 브라더스 등 해외 리그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호주 국가대표로 출전했으며, 2008년 한화 이글스에서 31세이브를 기록하며 KBO 단일 시즌 세이브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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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토머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브래드 토머스, 2011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시절
토머스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활동했다.
본명브래들리 리처드 "브래드" 토머스
출생일1977년 10월 22일
출생지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 시드니
신장193cm
체중97kg
포지션투수
투타좌투좌타
선수 경력
MLB 데뷔2001년 5월 26일, 미네소타 트윈스
MLB 마지막 경기2011년 5월 10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NPB 데뷔2005년 3월 27일
NPB 마지막 경기2006년 10월 25일
KBO 데뷔2008년 3월 30일
KBO 마지막 경기2009년 9월 25일
CPBL 데뷔2012년 5월 10일
CPBL 마지막 경기2014년 8월 30일
소속팀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96년)
미네소타 트윈스 (1997년 ~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 (2004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005년 ~ 2006년)
한화 이글스 (2008년 ~ 2009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010년 ~ 2011년)
슝디 엘리펀츠
중신슝디 엘리펀츠
(2012년 ~ 2014년)
파견팀시드니 블루삭스 (2011-12, 2012-13)
국가대표
대표팀오스트레일리아
올림픽2000년 시드니 올림픽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9년, 2013년
코치 경력
코치슝디 엘리펀츠 투수 코치 (2013년)
MLB 성적
승패26승 6패
평균자책점3.80
탈삼진745
NPB 성적
승패15승 6패
평균자책점2.21
탈삼진194
KBO 성적
승패15승 1패
평균자책점1.86
탈삼진179
CPBL 성적
승패15승 2패
평균자책점1.05
탈삼진174

2. 프로 입단 전

1995년 시드니에 있는 미첼고등학교(Mitchell High School) 재학 중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아마추어 자유 선수 계약을 맺었으나, 1997년 비자 문제로 퇴단하고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했다.[10] 2004년 보스턴 레드 삭스로 이적했지만, 왼쪽 팔꿈치 수술로 등판하지 못했다. 월드 시리즈 40인 로스터에는 포함되어 챔피언 링을 받았으나,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가 되었다.

2. 1. 아마추어 선수 시절 (1995-1997)

시드니에 있는 미첼고등학교(Mitchell High School) 재학 중이던 1995년 7월 2일, 미국 메이저 리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아마추어 자유 선수 계약을 맺었다. 이후 1997년 5월 9일 다저스가 마이너 리그에서 규정인수 이상의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비자 문제로 퇴단하게 되었고, 5월 12일 자유 계약 선수로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하였다.[10]

3. 프로 선수 경력

2005년 마이클 나카무라의 소개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의 테스트를 받고 합격하여 입단하였다. 등번호는 당시 결번이었던 70번이었다.

개막 당시에는 선발투수 자원으로 기대되었지만, 2004년에 왼쪽 팔꿈치를 수술한 여파로 제구력이 흔들려 볼넷을 자주 허용하는 등 문제점을 드러내며 2군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왼쪽 팔꿈치가 회복되어 구위가 좋아지자 1군에 다시 승격되었고, 주로 승리 계투조를 담당하였다. 다테이시 히사유키, 다케다 히사시, 다테야마 요시노리와 함께 "4Ts(포티즈)"라는 계투조를 이루어 시즌 후반부에 활약하였다. 8월 31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에서 일본 무대 첫 세이브를 올렸고, 9월에는 155km/h의 강속구를 던지기도 하였다.

시즌 후반 셋업맨으로 활약한 점을 인정받아 페르난도 세기놀과 함께 팀과 재계약했다.

2006년에는 등번호를 17번으로 변경하였다. 개막부터 계투조로 활약하여 40경기에 등판, 4승 1패 1세이브를 기록했다. 7월에는 부인의 출산으로 잠시 귀국하기도 했다. 시즌 중 기복이 있었지만, 리그 우승과 44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다. 일본 시리즈 4차전에 등판하여 피안타 1개, 사사구 1개를 기록하고 이닝 도중에 강판되었다(자책점 0).

그해를 끝으로 선발을 원하는 구단과 중간 계투를 원하는 토머스 자신의 의견 차이로 11월 29일에 방출되어 자유계약 선수가 되었다. 이후 뉴질랜드 우승 여행에는 함께 참가했다.

2008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여 한국 프로 야구에서 뛰게 되었다. 시즌 초반에는 세이브 기회를 놓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곧 안정감을 찾고 2008년 외국인 용병 투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2009년에도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으나, 팀 성적 부진으로 등판 기회가 줄었다.

2012년, 토머스는 대만 중화 직업봉구 대연맹(CPBL)의 형제 엘리펀츠와 계약하여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41경기에서 48이닝 동안 3승 무패, 23세이브, 66탈삼진, 평균자책점 0.75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다.

2013년에는 CPBL에서 마무리 투수와 투수 코치를 겸임했지만, 투구에 집중하기 위해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의 평균자책점과 26세이브를 기록하며 2시즌 연속 세이브 리더가 되었다.

2014년 7월, 토마스는 형제 엘리펀츠와 재계약에 합의했다. 2014년 7월 4일에는 아시아 프로 리그 (NPB, KBO, CPBL) 통산 100번째 세이브를 달성했고, 첫 주에만 5세이브를 추가하며 활약을 이어갔다.

3. 1. 미국 메이저 리그 시절 (1995-2004, 2007, 2010-2011)

토머스는 1995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자유 계약 선수로 계약했다. 1997년 5월 9일, 정부와의 비자 문제로 다저스에서 방출되었고, 사흘 뒤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트윈스의 유망주 투수 1위였으며, 마이너 리그에서 4번의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월드 올스타(2001 퓨처스 게임)에 참가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트윈스에서 메이저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101경기에 나섰다. 2004년 월드 챔피언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되었다.[6] 2007년 시즌은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여 보냈다.

2009년 12월 7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메이저 리그 계약을 체결했다.[6] 2010년 시즌 전체를 타이거스 불펜에서 투구하며 6승 2패, 69⅓이닝, 평균자책점 3.89를 기록했다. 텍사스 레인저스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2번의 선발 등판을 했다.

2011년 다시 한번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불펜에서 주전 선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5월 11일 왼쪽 팔꿈치 염증으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2011년 7월 25일, 60일짜리 부상자 명단으로 이동했고, 아메리칸 리그 준우승팀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3. 1. 1.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95-1997)

1995년 7월 2일, 시드니에 있는 미첼고등학교(Mitchell High School)를 다니던 중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아마추어 자유 선수 계약을 맺었다.[10] 그러나 1997년 5월 9일, 다저스가 마이너 리그에서 규정보다 많은 외국인 선수를 보유한 사실이 드러나 비자 문제로 팀에서 나오게 되었다.[10]

3. 1. 2. 미네소타 트윈스 (1997-2004)

1997년 5월 9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마이너 리그에서 규정인수 이상의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비자 문제로 퇴단하게 되었고, 5월 12일 자유 계약 선수로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하였다.[10] 1998년부터 2004년까지 트윈스의 유망주 투수 1위였으며, 마이너 리그에서 4번의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월드 올스타(2001 퓨처스 게임)에 참가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트윈스에서 메이저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101경기에 나섰다.

3. 1. 3. 보스턴 레드삭스 (2004)

토마스는 2004년 월드 챔피언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되었다.[6]

3. 1. 4.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 리그 (2007)

2008년 1월 2일, 한국 프로 야구한화 이글스와 계약하기 전인 2007년에 토머스는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 리그에서 활동했다.

3. 1. 5.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2010-2011)

토마스는 2009년 12월 7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메이저 리그 계약을 체결했다.[6] 2010년 시즌 전체를 타이거스 불펜에서 투구하며 6승 2패, 69⅓이닝, 평균자책점 3.89를 기록했다. 텍사스 레인저스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2번의 선발 등판을 하기도 했다.

2011년에도 타이거스의 불펜 주전 선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5월 11일 왼쪽 팔꿈치 염증으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7월 25일에는 60일짜리 부상자 명단으로 이동했고, 결국 아메리칸 리그 준우승팀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다음은 토마스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시절 기록이다.

연도소속팀등판선발승리패전세이브홀드승률투구 이닝평균자책점WHIP
2010디트로이트 타이거스4926203.75069⅓3.891.53
20111200100.000119.002.09


3. 2. 일본 프로 야구 시절 (2005-2006)

2005년 마이클 나카무라의 소개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의 테스트를 받고 합격하여 입단하였다. 등번호는 당시 결번이었던 70번이었다.[1]

개막 당시에는 선발투수 자원으로 기대되었지만, 2004년에 왼쪽 팔꿈치를 수술한 여파로 제구력이 흔들려 볼넷을 자주 허용하는 등 문제점을 드러내며 2군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왼쪽 팔꿈치가 회복되어 구위가 좋아지자 1군에 다시 승격되었고, 주로 승리 계투조를 담당하였다. 다테이시 히사유키, 다케다 히사시, 다테야마 요시노리와 함께 "4Ts(포티즈)"라는 계투조를 이루어 시즌 후반부에 활약하였다. 8월 31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에서 일본 무대 첫 세이브를 올렸고, 9월에는 155km/h의 강속구를 던지기도 하였다.[1]

시즌 후반 셋업맨으로 활약한 점을 인정받아 페르난도 세기놀과 함께 팀과 재계약했다.[1]

2006년에는 등번호를 17번으로 변경하였다. 개막부터 계투조로 활약하여 40경기에 등판, 4승 1패 1세이브를 기록했다. 7월에는 부인의 출산으로 잠시 귀국하기도 했다. 시즌 중 기복이 있었지만, 리그 우승과 44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다. 일본 시리즈 4차전에 등판하여 피안타 1개, 사사구 1개를 기록하고 이닝 도중에 강판되었다(자책점 0).[1]

그해를 끝으로 선발을 원하는 구단과 중간 계투를 원하는 토머스 자신의 의견 차이로 11월 29일에 방출되어 자유계약 선수가 되었다. 이후 뉴질랜드 우승 여행에는 함께 참가했다.[1]

3. 2. 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005-2006)

마이클 나카무라의 소개로 2005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입단 테스트를 받고 합격했다. 등번호는 '''70'''번이었다. 최고 구속 155km/h의 강속구를 던지는 좌완 투수로 기대를 모았다.

개막 초에는 선발 투수로 기용되었으나, 2004년 왼쪽 팔꿈치 수술의 영향으로 제구력이 좋지 않았고, 공의 구위도 좋지 않다는 약점을 보였다. 직구를 노려 맞거나, 볼넷을 남발하며 스스로 무너져 초반에 강판되는 일이 잦아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왼쪽 팔꿈치 상태가 좋아지면서 구위가 회복되어 1군에 다시 올라왔다. 짧은 이닝을 던지는 패전 처리 투수로 시작하여 시즌 후반에는 승리조 셋업맨으로 활약했다. 타테이시 나오유키, 타케다 히사시, 타테야마 요시노리와 함께 "4Ts(포티즈)"라는 필승 계투조를 이루어 팀의 후반 상승세를 이끌었다. 8월 27일 소프트뱅크전에서 다나카 유키오의 끝내기 안타로 일본 무대 첫 승을 거두었고, 8월 30일 라쿠텐전에서는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9월 경기에서는 실제로 155km/h를 기록하기도 했다. 시즌 성적만 보면 잔류가 불투명했지만, 구원 등판만으로 평균자책점을 4점대로 낮추는 등 후반기 셋업맨으로 활약한 점을 인정받아 페르난도 세기뇰과 함께 다음 시즌 재계약에 성공했다.

2006년에는 등번호를 '''17'''번으로 변경했다. 개막부터 셋업맨이나 롱 릴리프로 활약하며 40경기에 등판해 4승 1패 1세이브를 기록했다. 7월에는 아내의 출산으로 잠시 귀국하기도 했다. 시즌 중 기복이 심해 안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리그 우승과 44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일본 시리즈 4차전에 등판했으나 피안타 1개, 사사구 1개를 기록하고 이닝 도중에 강판되었다(자책점은 0). 시즌 종료 후, 선발 투수를 원하는 구단과 중간 계투를 원하는 토머스 자신의 의견 차이로 11월 29일 팀에서 방출되었다. 뉴질랜드 우승 여행에는 함께 참가했다.

3. 3. 한국 프로 야구 시절 (2008-2009)

2008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여 한국 프로 야구에서 뛰게 되었다. 시즌 초반에는 세이브 기회를 놓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곧 안정감을 찾고 2008년 외국인 용병 투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2009년에도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으나, 팀 성적 부진으로 등판 기회가 줄었다.[11][12]

3. 3. 1. 한화 이글스 (2008-2009)

2008년 한화 이글스와 계약금 45000USD, 연봉 240000USD의 조건으로 입단 계약을 맺었다.[11] 시즌 초 경기에서 세이브 기회를 날려 버리는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차츰 안정감을 되찾아 2008년 외국인 용병 투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보여 주었다. 2008 정규 시즌 기록은 3승 6패 31세이브, 평균 자책점은 2.84이다.

2008년 12월 10일, 전 시즌 연봉보다 25% 인상된 계약금 56000USD, 연봉 300000USD 등 총액 356000USD에 재계약하였다.[12] 2009년에는 팀이 최하위로 처지면서 등판 횟수도 감소했다. KBO 리그에서 2년간 그는 44세이브, 5승 1패, 2.0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한화 이글스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그는 2008년 33세이브를 기록하며 KBO 단일 시즌 (120경기) 세이브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에서 뛸 당시 등번호는 '''26'''번 이었다.

3. 4. 대만 프로 야구 시절 (2012-2014)

2012년, 토머스는 대만 중화 직업봉구 대연맹(CPBL)의 형제 엘리펀츠와 계약하여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41경기에서 48이닝 동안 3승 무패, 23세이브, 66탈삼진, 평균자책점 0.75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다.[1]

2013년에는 CPBL에서 마무리 투수와 투수 코치를 겸임했지만, 투구에 집중하기 위해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의 평균자책점과 26세이브를 기록하며 2시즌 연속 세이브 리더가 되었다.[1]

2014년 7월, 토마스는 형제 엘리펀츠와 재계약에 합의했다. 2014년 7월 4일에는 아시아 프로 리그 (NPB, KBO, CPBL) 통산 100번째 세이브를 달성했고, 첫 주에만 5세이브를 추가하며 활약을 이어갔다.[1]

3. 4. 1. 중신 브라더스 (2012-2014)

2012년 5월 슝디 엘리펀츠와 계약을 체결했다. 시즌 초 마무리 투수였던 라이언 큘렌이 방출된 후 대체 선수로 입단하여, 41경기에서 3승 무패 23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 0.75를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1] 2013년 시즌에는 재계약과 함께 투수 코치 제안을 받아 선수 겸 코치로 활동하게 되었으며,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로 참가하였다.[1] 2013년 시즌에는 45경기에 출장하여 1승 4패 26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1.56을 기록하였다.[1] 2013년 시즌 오프에 팀을 떠났지만, 2014년 시즌 중 팀명이 중신슝디 엘리펀츠로 바뀐 후 다시 팀에 합류하여 17경기에서 1승 3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3.78을 기록하였다.[1]

4. 국가대표 경력

토머스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한 호주 국가대표팀 선수였으며, 올림픽에서의 명성을 기리기 위해 Oly라는 성을 사용하기도 했다.[4]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호주 대표팀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4]

5. 9/11 테러 사건

토머스는 미네소타 트윈스 더블A 제휴팀의 일원으로서 2001년 플레이오프에 참가했다. 그는 원래 2001년 9월 11일 호주행 비행기를 예약했었다. 그의 원래 비행편은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하는 아메리칸 항공 11편으로, 세계 무역 센터에 충돌했다. 마이클 커디어가 끝내기 홈런을 쳐서 팀을 플레이오프 2라운드로 진출시켰고, 토머스는 비행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3]

6. 개인사

가족으로는 부인인 칼리 토머스와 딸인 시에나 토머스가 있다.[13]

7. 통산 기록

사사구타자이닝피안타피홈런4구사구탈삼진삼진율폭투보크실점자책점평균
자책점2005닛폰햄3815100023648.1541395519.500230254.6620064041100020845.2502234438.473121193.74통산2시즌7856200044494.01043629949.003351444.21



한국 프로 야구 (KBO)
년도평균자책경기수홀드완투완봉이닝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
2008한화2.8459363100063 1/352327632120
20092.884525130005043221562016
통산2시즌2.8810451144000113 1/3955481194136



Brad Thomas|브래드 토머스영어2008년 한화 이글스와 계약금 45000USD, 연봉 240000USD의 조건으로 입단 계약을 맺었다.[11] 2008년 12월 10일, 전 시즌 연봉보다 25% 인상된 계약금 56000USD, 연봉 300000USD 등 총액 356000USD에 재계약하였다.[12]

7. 1. 일본 프로 야구 (NPB)

사사구타자이닝피안타피홈런4구사구탈삼진삼진율폭투보크실점자책점평균
자책점2005닛폰햄3815100023648.1541395519.500230254.6620064041100020845.2502234438.473121193.74통산2시즌7856200044494.01043629949.003351444.21


7. 2. 한국 프로 야구 (KBO)

Brad Thomas|브래드 토머스영어2008년 한화 이글스와 계약금 45000USD, 연봉 240000USD의 조건으로 입단 계약을 맺었다.[11] 시즌 초 경기에서 세이브 기회를 날려 버리는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차츰 안정감을 되찾아 2008년 외국인 용병 투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보여 주었다. 2008 정규 시즌 기록은 3승 6패 31세이브, 평균 자책점은 2.84이다.

2008년 12월 10일, 전 시즌 연봉보다 25% 인상된 계약금 56000USD, 연봉 300000USD 등 총액 356000USD에 재계약하였다.[12] 2009년에는 팀이 최하위로 처지면서 등판 횟수도 감소했다. 2009년 12월, 미국 프로 야구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메이저 계약을 맺었다. 2011년 시즌까지 불펜투수로서 활동하다가 방출되었다.

년도평균자책경기수홀드완투완봉이닝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
2008한화2.845936310063 1/352327632120
20092.88452513005043221562016
통산2시즌2.8810451144000113 1/395548119413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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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뉴스 WBC서 뛰는 KBO 전·현직 용병 반갑다 - 코르테스·가르시아, 멕시코 대표팀서 활약. 토머스는 호주, 존슨은 캐나다 마운드 지켜 http://www.dailian.c[...] 데일리안 2009-03-09
[10] 뉴스 호주 출신의 한화 특급 마무리 토마스 https://news.naver.c[...] 민기자닷컴 2008-07-22
[11] 뉴스 한화, 외국인 타자 덕 클락-투수 브래드 토마스 영입 http://www.mydaily.c[...] 마이데일리 2008-01-02
[12] 뉴스 한화 이글스, 용병 마무리 투수 브래드 토마스와 재계약 http://www.mydaily.c[...] 마이데일리 2008-12-10
[13] 뉴스 연예인급 인기인 딸을 둔 한화 용병 브래드 토마스 http://isplus.joins.[...] 일간스포츠 2008-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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