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와디스와프 주무다
1. 개요
브와디스와프 주무다는 폴란드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는 모토르 루블린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그바르디아 바르샤바, 실롱스크 브로츠와프, 비제프 우치 등 폴란드 클럽에서 뛰었으며, 이탈리아의 엘라스 베로나, 뉴욕 코스모스, US 크레모네세에서도 활동했다. 주무다는 폴란드 국가대표팀으로 91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으며, 4번의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1974년 대회에서 최우수 신인 선수로 선정되었다. 또한 1976년 하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 본명 | 브와디스와프 안토니 주무다 |
|---|---|
| 출생일 | 1954년 6월 6일 |
| 출생지 | 폴란드 루블린 |
| 신장 | 1.87m |
| 포지션 | 수비수 |
| 청소년 클럽 | 모토르 루블린 (1966–1970) |
|---|---|
| 클럽 | 모토르 루블린 (1970–1972) 그바르디아 바르샤바 (1972–1974) 실롱스크 브로츠와프 (1974–1980) 비제프 우치 (1980–1982) 엘라스 베로나 (1982–1984) 뉴욕 코스모스 (1984) 크레모네세 (1984–1987) |
| 클럽 출장 (골) | 모토르 루블린: 18 (0) 그바르디아 바르샤바: 34 (0) 실롱스크 브로츠와프: 97 (0) 비제프 우치: 67 (1) 엘라스 베로나: 7 (0) 뉴욕 코스모스: 4 (0) 크레모네세: 43 (1) |
| 총 출장 (골) | 271 (2) |
| 청소년 국가대표 | 폴란드 U18 |
|---|---|
| 국가대표 | 폴란드 (1973–1986) |
| 국가대표 출장 (골) | 91 (2) |
| 감독 | 알타이 (1989–1990) 폴란드 U20 (2002–2003) 폴란드 U21 (2004–2005) 폴란드 U16 (2008–2098) 폴란드 U17 (2009–2010) 폴란드 U19 (2010–2011) 폴란드 U20 (2012) |
|---|
| 메달 종류 | 남자 축구 FIFA 월드컵 올림픽 UEFA 유럽 U-18 축구 선수권 대회 |
|---|---|
| 획득 메달 | 1974 서독 3위 1982 스페인 3위 1976 몬트리올 은메달 1972 스페인 3위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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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블린 출신 -
볼레스와프 비에루트
폴란드의 공산주의 정치인 볼레스와프 비에루트는 폴란드 사회당과 공산당에서 활동하며 혁명에 기여하고, 제2차 세계 대전 후 폴란드 공산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대통령과 총리를 역임하면서 폴란드를 소련의 영향력 아래 두고 스탈린주의적 정책을 시행했다. -
루블린 출신 -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는 폴란드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로, 뛰어난 재능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쳤으며, 바이올린 레퍼토리에 중요한 작품들을 남겨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창설과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알타이 SK의 축구 감독 -
밀로시 밀루티노비치
밀로시 밀루티노비치는 FK 파르티잔에서 활약하며 유고슬라비예 컵 우승에 기여하고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월드컵에 참가했던 유고슬라비아의 축구 선수이자, 은퇴 후 여러 클럽과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FK 벨레주 모스타르의 컵 대회 우승과 FK 파르티잔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감독이다. -
알타이 SK의 축구 감독 -
스체판 보베크
스체판 보베크는 유고슬라비아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유고슬라비아 리그 득점왕을 두 차례 차지했고 국가대표팀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은퇴 후에는 감독으로서 여러 클럽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
폴란드의 해외 진출 축구 감독 -
헨리크 카스페르차크
헨리크 카스페르차크는 폴란드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폴란드 국가대표로 월드컵 3위와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하고 폴란드 리그에서 두 차례 우승했으며, 감독으로서는 프랑스 리그 컵 우승과 여러 아프리카 국가대표팀을 지도하며 네이션스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폴란드 리그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달성했다. -
폴란드의 해외 진출 축구 감독 -
안토니 피에흐니체크
폴란드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 정치인인 안토니 피에흐니체크는 선수 시절 폴란드 국가대표팀과 여러 클럽에서 활약했고, 감독으로서는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했으며, 은퇴 후에는 실롱스크 주 의회 의원과 폴란드 상원 의원을 역임했다.
2. 클럽 경력
주무다는 루블린 출신으로, 모토르 루블린에서 축구를 시작해 유소년 무대부터 1군까지 6년 동안 몸담았다. 1972년 기량이 만개하여 폴란드 수도를 연고로 하는 그바르디아 바르샤바로 이적했다. 19세의 주무다는 1973-74 시즌 UEFA컵에서 그바르디아가 나중에 우승을 차지하는 페예노르트에 석패하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실롱스크 브로츠와프와 비제프 우치를 거쳐 폴란드 무대에서 활약했고, 1982년 해외 이적이 허용되어 엘라스 베로나로 이적했다. 1984년에는 미국의 뉴욕 코스모스, 1985년부터는 세리에 B의 크레모네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1987년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폴란드 리그
주무다는 실롱스크 브로츠와프와 비제프 우치에서 활약하며 폴란드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갔다.
2.2. 해외 리그
주무다는 1982년에 폴란드 정부의 승인을 받아 해외 이적이 허용되어 이탈리아의 엘라스 베로나로 이적했다. 베로나에서 부상으로 허덕이던 주무다는 잠시 뉴욕 코스모스에서 활약하다가 크레모네세에 입단해 이탈리아 무대로 복귀했고, 3년 중 2년을 세리에 B에서 보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주무다는 폴란드 국가대표팀에서 91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1976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은메달을 획득했다.
3.1. FIFA 월드컵
주무다는 폴란드 국가대표팀 경기에 91번 출전해 2골을 기록했다.
그는 1974년, 1978년, 1982년, 1986년 총 4번의 월드컵에 참가했다. 1974년 대회에서는 3위에 입상했으며, 최우수 신인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월드컵 본선에 21경기에 출전했는데, 이는 우베 젤러, 디에고 마라도나와 함께 최다 경기 출전 공동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보다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로는 리오넬 메시, 로타어 마테우스, 미로슬라프 클로제, 파올로 말디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있다. 또한 4번의 월드컵 참가 기록은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안토니오 카르바할, 로타어 마테우스, 라파엘 마르케스, 안드레스 과르다도에 이어 공동 7위에 해당하며,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 잔니 리베라 등과 같은 기록이다.
3.2. 올림픽
주무다는 1976년 하계 올림픽에 폴란드 선수단 일원으로 참가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3.3. 국가대표팀 통계
주무다는 폴란드 국가대표팀 경기에 91번 출전해 2골을 기록했다.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장 | 골 |
|---|---|---|---|
| 폴란드 | 1973 | 1 | 0 |
| 1974 | 9 | 0 | |
| 1975 | 10 | 0 | |
| 1976 | 9 | 0 | |
| 1977 | 11 | 0 | |
| 1978 | 12 | 1 | |
| 1979 | 4 | 0 | |
| 1980 | 9 | 0 | |
| 1981 | 7 | 0 | |
| 1982 | 7 | 0 | |
| 1983 | 0 | 0 | |
| 1984 | 7 | 0 | |
| 1985 | 4 | 1 | |
| 1986 | 1 | 0 | |
| 합계 | 91 | 2 | |
4. 은퇴 후 경력
주무다는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어 폴란드 U-23 대표팀 코치 및 폴란드 대표팀 코치를 역임했으며, 2002년 월드컵에서는 예지 엥겔 감독의 어시스턴트를 맡았다.
5. 수상 내역
| 클럽 | |
|---|---|
| 실롱스크 브로츠와프 | |
| 비제프 우치 | |
| 국가대표팀 | |
| 폴란드 | |
| 개인 | |
| 월드컵 최우수 신인 선수 | 1974 |
| 폴란드 올해의 신인 | 1974 |
5.1. 클럽
주무다는 루블린 출신으로, 모토르 루블린에서 축구를 시작해 유소년 무대부터 1군까지 6년 동안 몸담았다. 1972년에 기량이 만개하여 폴란드 수도를 연고로 하는 그바르디아 바르샤바로 이적했다. 19세의 주무다는 1973-74 시즌 UEFA컵에서 페예노르트에 석패하며 선전했다. 이후 실롱스크 브로츠와프와 비제프 우치를 거치며 폴란드 무대에서 활약했고, 1982년에 폴란드 정부의 승인으로 이탈리아의 엘라스 베로나로 이적했다. 베로나에서 부상으로 허덕이던 주무다는 잠시 뉴욕 코스모스에서 활약하다가 크레모네세에 입단해 이탈리아 무대로 복귀했고, 3년 중 2년을 세리에 B에서 보냈다. 주무다는 1987년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5.2. 국가대표팀
주무다는 폴란드 국가대표팀 경기에 91번 출전해 2골을 기록했다.
그는 4번의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그가 출전한 첫 대회인 1974년 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다. 그는 대회 최우수 신인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월드컵 본선 21번의 경기에 출전했는데, 우베 젤러와 디에고 마라도나와 함께 최다 경기 출전 공동 6위에 올라 있고, 그보다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로는 리오넬 메시, 로타어 마테우스, 미로슬라프 클로제, 파올로 말디니, 그리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밖에 없다. 그는 1974년, 1978년, 1982년, 그리고 1986년 대회 총 4번을 참가해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안토니오 카르바할, 로타어 마테우스, 라파엘 마르케스, 그리고 안드레스 과르다도에 이어 공동 최다 7위로 많은 대회에 참가해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 그리고 잔니 리베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는 1976년 하계 올림픽에 폴란드 선수단 일원으로 참가해 은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5.3. 개인
주무다는 폴란드 국가대표팀 경기에 91번 출전해 2골을 기록했다.
그는 1974년 대회를 시작으로 4번의 월드컵에 참가하여 3위에 입상했고, 대회 최우수 신인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베 젤러, 디에고 마라도나와 함께 월드컵 본선 최다 경기 출전 공동 6위(21경기)에 올라 있으며, 리오넬 메시, 로타어 마테우스, 미로슬라프 클로제, 파올로 말디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만이 주무다보다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1974년, 1978년, 1982년, 1986년 대회까지 총 4번의 월드컵에 참가하여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안토니오 카르바할, 로타어 마테우스, 라파엘 마르케스, 안드레스 과르다도에 이어 공동 7위로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 잔니 리베라 등과 함께 최다 월드컵 참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76년 하계 올림픽에 폴란드 선수단 일원으로 참가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월드컵 최우수 신인 선수: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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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올해의 신인: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