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래키 롤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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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블래키 롤리스는 미국의 음악가로, 1982년 밴드 W.A.S.P.를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다. 플로리다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성장했으며, 10대 후반 오컬트에 심취했으나 이후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왔다. 롤리스는 1970년대 중반 뉴욕 돌스, 킬러 케인, 시스터, 서커스 서커스, 런던 등 여러 밴드에서 활동했으며, W.A.S.P. 결성 이후 밴드의 리더이자 작곡가로 활동하며 여러 앨범을 발표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싱글 "Animal (F**k Like a Beast)"로 인해 부모 음악 자원 센터(PMRC)와 대립하기도 했다. 롤리스는 AC/DC, 블랙 사바스, 비틀즈, 키스, 앨리스 쿠퍼 등으로부터 음악적 영향을 받았으며, 앨리스 쿠퍼와 키스의 영향을 받은 무대 연출을 선보인다.

블래키 롤리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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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함부르크 'Metal Dayz 2015'
본명스티븐 에드워드 더렌
출생일1956년 9월 4일
출생지탬파, 플로리다, 미국
활동 시기1975년–현재
직업가수, 음악가, 작곡가, 배우
음악 스타일
장르헤비 메탈
크리스천 메탈
쇼크 록
글램 메탈
하드 록
악기보컬, 기타, 베이스 기타
눈에 띄는 악기B.C. Rich Warlock
참여 그룹
현재 멤버W.A.S.P.
이전 멤버런던
서커스 서커스
시스터
뉴욕 돌스
킬러 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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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기 생애

2022년의 롤리스
2022년의 롤리스

롤리스는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태어나, 뉴욕스태튼아일랜드에서 자랐다. 그는 근본주의 침례교 신자로 성장했으며, 어린 시절 교회에서 "매우 활동적"이었고 11세에 거듭났다고 스스로 밝혔다. 10대 후반에는 교회를 떠나 오컬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잠시 오컬트를 연구하기도 했으나 이내 그만두었지만, 이후로도 오컬트적인 주제를 계속 다루다가 최근 몇 년 동안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왔다.

그는 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투수였던 라이언 듀렌의 조카이다. 롤리스 자신도 프로 야구 선수 경력을 고려했지만, 형에게 기타를 배우면서 결국 음악의 길을 선택했다.

3. 음악 경력

블래키 롤리스는 Black Rabbit영어과 Orfax Rainbow영어와 같은 밴드에서 연주하며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 1975년에는 글램 록 밴드 뉴욕 돌스의 플로리다 투어 중 탈퇴한 기타리스트 조니 선더스를 대신해 잠시 활동했다. 투어 후에는 베이시스트 아서 케인과 함께 Killer Kane영어을 결성했으며, 1976년에는 웨스트 로스앤젤레스에서 랜디 파이퍼와 함께 시스터를 결성했다. 시스터에는 이후 베이시스트 니키 식스와 기타리스트 리지 그레이, 그리고 크리스 홈스가 합류했다.

롤리스는 1979년에 파이퍼가 다시 합류한 밴드 Circus Circus영어를 결성했다. 1981년, 서커스 서커스가 성공하지 못하자 롤리스는 잠시 런던에 합류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1982년, 롤리스는 랜디 파이퍼와 함께 W.A.S.P.를 결성하고, 초기 베이시스트 릭 폭스(스틸러로 활동)를 해고한 후 베이스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이후 리드 기타의 크리스 홈스와 드럼의 토니 리차드가 합류하며 밴드의 초기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3.1. 뉴욕 돌스와 킬러 케인 (1975-1976)

1975년, 글램 록 밴드 뉴욕 돌스의 플로리다 투어 중 기타리스트 조니 선더스가 탈퇴하자, 롤리스가 오디션을 통해 그의 자리를 맡게 되었다. 다만 그의 활동은 해당 투어의 남은 기간으로 한정되었다.

투어가 끝난 후, 롤리스는 뉴욕 돌스의 베이시스트였던 아서 케인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킬러 케인(Killer Kane)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이 시기 롤리스는 "블래키 구즈먼(Blackie Goozman영어)"이라는 예명을 사용했으며, 이는 킬러 케인의 유일한 EP 음반 뒷면에 기록되어 있다. 약 1년 후 케인은 뉴욕으로 돌아갔지만, 롤리스는 웨스트 로스앤젤레스에 남기로 결정했다.

3.2. 시스터와 서커스 서커스 (1976-1981)

1976년, 롤리스는 웨스트 로스앤젤레스에서 미래의 W.A.S.P. 기타리스트가 될 랜디 파이퍼와 함께 시스터를 결성했다. 1978년경에는 새로운 라인업이 구성되었는데, 여기에는 베이시스트 니키 식스와 기타리스트 리지 그레이가 포함되었고, 이후 크리스 홈스가 합류했다.

롤리스는 1979년에 서커스 서커스(Circus Circus)라는 밴드를 결성했고, 이 밴드에는 랜디 파이퍼가 다시 라인업에 합류했다. 1981년, 서커스 서커스가 성공하지 못하자 롤리스는 리지 그레이와 니키 식스가 있던 밴드 런던에 잠시 합류하여 몇 번의 공연을 하고 데모로 두 곡을 녹음했다. 하지만 이 시기 니키 식스는 이미 머틀리 크루를 결성하기 위해 런던을 떠난 상태였다.

3.3. 런던 (1981)

1981년, 이전에 활동하던 밴드 서커스 서커스(Circus Circus)가 성공하지 못하자, 블래키 롤리스는 리지 그레이와 니키 식스가 있던 밴드 런던에 합류했다. 그는 런던에서 몇 차례 공연을 하고 데모용으로 두 곡을 녹음하는 등 짧은 기간 동안 활동했다. 하지만 롤리스가 합류할 무렵, 니키 식스는 이미 머틀리 크루를 결성하기 위해 밴드를 떠난 상태였다.

3.4. W.A.S.P. (1982-현재)

1982년, 롤리스는 베이시스트 릭 폭스(스틸러로 활동)를 해고하고 베이스로 포지션을 변경했으며, 랜디 파이퍼와 함께 W.A.S.P.를 결성했다. 밴드 이름 W.A.S.P.는 폭스가 지었으나, 그는 개인적인 문제로 밴드 합류 4개월 만에 해고되었다. 이후 리드 기타에 크리스 홈스, 드럼에 토니 리차드가 합류하며 초기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W.A.S.P.는 여러 차례 멤버 교체를 겪었지만, 롤리스는 유일하게 남은 원년 멤버이자 주요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곡들은 기독교적인 성장 배경의 영향으로 종교적이거나 종말론적인 주제를 다루는 경향이 있다. 롤리스는 최근 인터뷰에서 자신이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왔으며, 스스로를 거듭난 기독교인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2006년 W.A.S.P.와 함께 공연하는 로우리스
2006년 W.A.S.P.와 함께 공연하는 로우리스


롤리스는 자신의 음악적 영향으로 AC/DC, 블랙 사바스, 비틀즈, 키스, 앨리스 쿠퍼 등을 꼽았다. 그의 무대 연출은 특히 앨리스 쿠퍼와 키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공연 중 진 시몬스나 폴 스탠리를 모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W.A.S.P.는 싱글 "Animal (F**k Like a Beast)"로 인해 부모 음악 자원 센터(PMRC)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롤리스는 이에 맞서 헤비 메탈 음악을 옹호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밴드는 1985년부터 1988년까지 "L.O.V.E. Machine", "I Wanna Be Somebody", "Wild Child" 등의 히트 싱글을 발표하며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22년 11월, 롤리스는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자신과 밴드가 라이브 공연에서 백킹 트랙을 사용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4. 음악적 영향

로우리스는 AC/DC, 블랙 사바스, 비틀즈, 키스, 그리고 앨리스 쿠퍼를 자신의 음악적 영향으로 언급했다. 그의 무대 연출은 특히 앨리스 쿠퍼키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공연 중에 진 시몬스나 폴 스탠리를 모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5. 논란과 사회적 활동

블래키 롤리스는 그의 음악 경력 동안 여러 논란에 직면했으며, 사회적 이슈와 정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기도 했다. 특히, 부모 음악 자원 센터(PMRC) 등 음악 콘텐츠 규제 움직임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을 보였으며, 정치 참여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5.1. 부모 음악 자원 센터 (PMRC)와의 대립

1980년대 중반, W.A.S.P.는 밴드의 싱글 "Animal (F**k Like a Beast)"의 가사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강한 비난을 받았다. 이로 인해 롤리스는 부모 음악 자원 센터(PMRC)에 맞서 헤비 메탈 음악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5.2. 정치적 견해

1989년 인터뷰에서 롤리스는 밴드 활동과 관련하여 두 차례 총격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심각한 살해 협박으로 인해 FBI의 보호를 한 달간 받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한때 상원 의원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