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 (후한)
1. 개요
사원(射援)은 후한 말 촉한의 관료이다. 본래 성은 사(謝)였으나 조상 대에 射로 개성하였다. 형 사견과 함께 어려서부터 명성이 있었으며, 헌제 초 삼보에 기근이 들자 익주로 가서 유장에게 의탁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한중왕 추대 상소에 참여했고, 유비의 유조에서 제갈량이 그의 능력을 칭찬했다는 기록이 있다. 촉한 건국 후 제갈량에게 발탁되어 좨주, 종사중랑을 역임하다가 사망했다.
2. 가계 배경
사례교위 우푸펑군(右扶風郡) (현 산시성 싱핑 시) 출신이다. 원래 성씨는 사(謝)씨였으나, 선조인 사복(謝服)이 장군으로 출정했을 때 황제가 성씨가 좋지 않다고 여겨 사(射)로 성을 바꾸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사복의 후손들은 사(射)씨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형 사견(射堅)과 함께 명성이 있었으며, 당시 명망 높던 장군 황보숭은 사원을 비범하게 여겨 자신의 딸을 아내로 맞게 하였다.
2.1. 사견(射堅)
사원의 형으로, 자는 문고(文固)이다. 젊은 시절부터 동생 사원과 함께 명성이 있었으며, 삼공의 부름을 받아 관직에 나아가 황문시랑을 지냈다. 그의 가문은 본래 '사(謝)'씨였으나, 선조인 사복(謝服)이 장군으로 출정할 때 황제가 성씨가 좋지 않다고 여겨 '사(射)'로 바꾸게 했다고 전해진다.
헌제 초기에 삼보 지역에 큰 기근과 혼란이 발생하자, 사견은 관직을 버리고 동생 사원과 함께 남서쪽 익주로 피난하여 당시 익주목이었던 유장에게 의탁했다. 유장은 사견을 장사로 임명했다.
214년,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사견은 유비에게 발탁되어 광한군 태수를 거쳐 촉군 태수를 역임했다.
3. 생애
본래 사(謝)씨였으나, 선조인 사복(謝服) 대에 이르러 사(射)씨로 성을 바꾸었다.
어릴 때부터 형 사견(射堅)과 함께 명성이 있었으며, 태위 황보숭은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자신의 딸과 혼인시켰다.
헌제 초기에 삼보 지역에 큰 기근이 들자, 형 사견과 함께 관직을 버리고 익주로 가서 유장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유비가 익주와 한중을 평정한 후인 건안 24년(219년), 여러 신하들이 유비를 한중왕으로 추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는데, 이때 사원은 의조(議曹)·종사중랑(從事中郞)·군의(軍議) 중랑장으로서 이름을 올렸다. 이는 헌제가 조조에게 위왕(魏王) 작위를 내린 것에 맞서 유비 또한 제후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주요 인물 11명 중 한 명으로 기록된 것이다.
촉한 건국 이후, 승상 제갈량이 관직을 열었을 때 사원을 좨주(祭酒)로 임명하였다. 장무 3년(223년) 4월, 유비가 임종 시 황태자 유선에게 남긴 유조(遺詔)에는 "사군(射君, 사원으로 추정됨)이 와서 승상(제갈량)이 너의 지력이 뛰어나고 배움이 기대 이상이라고 감탄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승상이 너를 그렇게 보니 내가 무엇을 더 걱정하겠는가?"라는 내용이 있다.
이후 종사중랑(從事中郞)으로 옮겼으나, 재임 중에 사망하였다. 5세기 배송지는 조기와 지우(摯虞)가 저술한 《삼보결록주(三輔決錄注)》의 기록을 인용하여 사원의 행적을 보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