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로 마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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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산드로 마촐라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로,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그는 1961년부터 1977년까지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418경기에 출전하여 116골을 기록하며 4번의 세리에 A 우승, 2번의 유러피언컵 우승, 2번의 인터콘티넨털컵 우승을 달성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으로 70경기에 출전하여 22골을 기록했고, 1968년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과 1970년 월드컵 준우승을 경험했다. 은퇴 후에는 인테르나치오날레와 제노아의 행정가로 활동했으며, 1971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산드로 마촐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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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인테르나치오날레의 마촐라
본명알레산드로 마촐라
출생일1942년 11월 8일
출생지토리노, 이탈리아
1.79m
포지션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클럽 경력
1960–1977인테르나치오날레
출장417
득점116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이탈리아
국가대표 연도1963–1974
국가대표 출장70
국가대표 득점22
메달
유럽 선수권 대회1968 이탈리아
FIFA 월드컵1970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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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2년 출생 - 시어도어 카진스키
  • 1942년 출생 - 우근민

2. 유년 시절

산드로 마촐라는 토리노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그의 아버지 발렌티노 마촐라베네치아에서 토리노로 이적한 첫 해였다. 2년 뒤 그의 남동생 페루초가 출생했는데, 토리노의 페루초 노보 회장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마촐라의 부모는 1946년에 이혼하였는데, 아버지가 산드로의 양육권을 가졌다. 산드로가 6세였을 때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아버지를 잃었다.

1949년, 산드로 마촐라와 그의 아버지 발렌티노 마촐라
1949년, 산드로 마촐라와 그의 아버지 발렌티노 마촐라

3. 클럽 경력

비록 그의 부친은 토리노에서 활약했지만, 산드로 마촐라와 그의 남동생 페루초 마촐라는 인테르나치오날레에 입단했다. 동생과는 달리 산드로 마촐라는 현역 17년을 모두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보냈고, 세리에 A 리그 무대에서 417번 출전해 116골을 기록했다. 1961년 6월 10일, 그는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이 이끌던 1960-61 시즌숙적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몇몇 동세대 유망주들과 함께 세리에 A 신고식을 치렀고, 페널티 킥으로 첫 골을 성공시켰지만, 1-9 대패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경기는 그가 출전한 이 시즌의 유일한 경기였다. 에레라 감독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거물급 미드필더이자 1960년대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주 플레이메이커로 맹활약하는 루이스 수아레스와 함께 그보다 1년 앞서 선수단에 합류했다.

1963-64 시즌, 위대한 인테르(Grande Inter) 선수단의 마촐라(앞줄, 오른쪽에서 2번째)
1963-64 시즌, 위대한 인테르(Grande Inter) 선수단의 마촐라(앞줄, 오른쪽에서 2번째)


에레라의 인테르나치오날레 선수단에는 타르치시오 부르니치자친토 파케티가 측면 수비수로, 브라질의 자이르가 측면 공격수로, 마리오 코르소가 좌측 미드필더로, 아르만도 피키최후방 수비수로 활약했으며, 마촐라는 에레라 감독의 임기 동안 안쪽 우측 공격 자원으로 기용되었다. 이 선수단은 함께 힘을 모아 1960년대 이탈리아와 유럽을 대표하는 선수단으로 거듭났는데, 훗날 이 선수단은 위대한 인테르(Grande Inter)로 회자되었다. 이 선수단은 악명 높은 빗장(catenaccio) 전법으로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순식간에 파고드는 역습으로 득점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마촐라는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4번의 세리에 A 우승(1962-63, 1964-65, 1965-66, 1970-71)을 거두었는데, 1964-65 시즌에는 17골로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같은 해에 안타깝게 3관왕의 기회를 놓쳤다.

1964년, 마촐라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1964년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2골을 기록해 우승을 견인하며 연고지 경쟁 구단 밀란이 직전 해에 이룩한 업적을 달성했다. 그는 7골로 이 시즌 대회 공동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인테르는 이듬해 벤피카를 결승전에서 제압하며 유럽 정상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그러나, 1965-66 시즌에는 나중에 우승을 차지하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준결승전에서 패퇴했고, 1966-67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3번째 결승전 진출에 성공했지만, 마촐라가 페널티 킥으로 7분 만에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셀틱에 1-2로 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마촐라는 1964년1965년 인터콘티넨털컵에서도 연속 우승을 거두었으며, 1964-65 시즌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도 올랐고, 1967-68 시즌에는 같은 대회 3위의 성과를 냈다. 그는 1971-72 시즌에도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다시 올랐으나, 아약스에 0-2로 패했다.

1971년, 세리에 A 우승과 유럽대항전에서의 활약으로, 그는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요한 크라위프에 이어 2위에 올랐다. 1971년은 그가 발롱도르 수상에 가장 근접했던 해이자, 처음으로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린 해였다.

마촐라는 1970년부터 1977년 여름 은퇴할 때까지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주장을 맡았다. 그는 인테르에서 세리에 A 4회 우승(1962-63, 1964-65, 1965-66, 1970-71), 유러피언컵 2회 우승(1963-64, 1964-65), 인터콘티넨털컵 2회 우승(1964, 1965)을 달성했고, 1964-65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했다.

4. 국가대표팀 경력

마촐라는 1963년부터 1974년까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70경기에 출전해 22골을 기록했다. 1963년 5월 12일, 20세의 나이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데뷔하여 페널티킥으로 득점을 기록했다. 1966년 FIFA 월드컵에서는 에드몬도 파브리 감독의 이탈리아 선수단 일원으로 조별 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득점했지만, 팀은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UEFA 유로 1968에서 이탈리아는 페루초 발카레지 감독의 지휘 아래 안방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마촐라는 맹활약하여 대회의 선수단에 이름을 올렸다.

1970년 FIFA 월드컵에서 발카레지 감독은 마촐라와 잔니 리베라의 공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릴레이'(staffetta) 전법을 사용했다. 마촐라는 선발로, 리베라는 후반에 교체 투입되는 방식이었다. 이 전술로 이탈리아는 결승에 진출했지만,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 1-4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1974년 FIFA 월드컵에서는 두 선수를 함께 기용했지만, 노쇠한 이탈리아는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5. 은퇴 후

마촐라는 현역 은퇴 후 1977년부터 1984년까지 인테르와 제노아에서 행정직을 맡았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는 인테르에 단장으로 복귀했고, 이후 가브리엘레 오리알리에게 단장직을 넘겼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는 토리노의 단장을 역임했다.

마촐라는 라이 스포츠 해설가로도 활동했다. 그는 1982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루이지 콜롬보와 함께 텔레몬테카를로(사상 첫 민영 텔레비전 결승전 중계)에서, 2006년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마르코 치볼리와 함께 RAI에서 해설을 맡아 이탈리아가 우승한 두 번의 결승전을 모두 중계한 유일한 이탈리아 해설가이다.

6. 경기 방식

산드로 마촐라는 빠르고 재능이 뛰어났으며, 전술적 지능과 다재다능함을 갖춘 선수였다. 그는 공격형 미드필더는 물론, 안쪽 공격수(인사이드 포워드), 중앙 공격수(센터 포워드)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어린 시절에는 공격적인 성향의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인테르엘레니오 에레라 감독 아래에서는 주로 오른쪽 인사이드 포워드로 기용되어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윙어, 주요 스트라이커, 세컨드 스트라이커로도 기용될 수 있었다.

말년에는 속도와 기동성이 다소 떨어지면서, 뛰어난 패스, 시야, 기술, 공 다루는 능력, 정교한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주로 맡았다. 또한 더 깊은 미드필더 역할, 즉 플레이메이커로도 뛸 수 있었다.

마촐라는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후방에서 창의적인 역할을 수행했지만, 골 결정력 또한 뛰어났다. 페널티 박스 안팎에서 강력하고 정확한 슈팅을 날릴 수 있었고, 공격적인 움직임을 통해 동료의 패스를 받아 득점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1964-65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마촐라는 놀라운 주력, 가속력, 체력, 드리블 능력, 민첩성, 기술, 균형 감각으로 유명했다. 특히 공을 소유한 채 전속력으로 달릴 때 뛰어난 모습을 보였으며, 이러한 능력과 기술을 바탕으로 경기 중 수비수를 자주 제쳤다.

축구 선수로서의 능력 외에도, 마촐라는 강한 성격, 정신력, 투지, 그리고 리더십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7. 축구 외 활동

산드로 마촐라는 1968년 7월 3일, 밀라노에서 자코모 불가렐리, 잔니 리베라, 에르네스토 카스타노, 잔카를로 데 시스티, 자코모 로시 등 여러 동료 선수들과, 변호사이자 갓 은퇴한 선수인 세르지오 캄파나와 함께 이탈리아 축구 선수 협회(AIC)를 창립했다. 캄파나는 이 단체의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마촐라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8. 경력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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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시즌, 대회별 출장 및 득점 기록
클럽시즌리그유럽기타합계
리그명출장출장출장출장출장
인테르나치오날레1960–61세리에 A11000011
1961–6210000010
1962–632310112411
1963–6430900973916
1964–6533172063214321
1965–6630191041223722
1966–673017221034222
1967–6828692378
1968–6929730327
1969–7028451101436
1970–712973210313610
1971–7228792924611
1972–732629460416
1973–7426410320387
1974–752337040343
1975–76252104356
1976–772819320394
합계4181168026631774568163
경력 합계4181168026631774568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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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 및 연도별 출장 및 득점 기록
국가대표팀연도출장
이탈리아196341
196433
196586
196695
196733
196850
196942
1970102
197150
197280
197360
197450
합계7022

8.1. 클럽

산드로 마촐라는 그의 아버지 발렌티노 마촐라가 토리노에서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남동생 페루초 마촐라와 함께 인테르나치오날레에 입단했다. 그는 현역 17년 동안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만 뛰었으며, 세리에 A에서 417경기에 출전하여 116골을 기록했다.

1961년 6월 10일,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이 이끌던 1960-61 시즌숙적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고, 페널티 킥으로 첫 골을 넣었지만 팀은 1-9로 크게 졌다. 이 경기는 그가 출전한 이 시즌의 유일한 경기였다.

에레라 감독의 인테르나치오날레는 타르치시오 부르니치, 자친토 파케티가 측면 수비를 맡고, 브라질의 자이르가 측면, 마리오 코르소가 좌측 중원, 아르만도 피키최후방 수비수를 맡았으며, 마촐라는 안쪽 우측 공격 자원으로 기용되었다. 이들은 1960년대 이탈리아와 유럽을 대표하는 선수단으로 성장했으며, 훗날 위대한 인테르(Grande Inter)로 불리게 되었다. 이 선수단은 빗장(catenaccio) 전법을 바탕으로 강력한 수비 후 빠른 역습을 통해 득점을 올리는 방식으로 유명했다.

마촐라는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4번의 세리에 A 우승(1962-63, 1964-65, 1965-66, 1970-71)을 경험했다. 특히 1964-65 시즌에는 17골로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1964년, 1964년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2골을 넣어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에서 7골로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인테르는 이듬해 결승전에서 벤피카를 꺾고 유럽 정상 2연패를 달성했다. 1966-67 시즌에는 결승전에 진출하여 마촐라가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었지만, 셀틱에 1-2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1964년1965년에는 인터콘티넨털컵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했으며, 1964-65 시즌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도 진출했다. 1971-72 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다시 올랐으나, 아약스에 0-2로 패했다.

1971년, 세리에 A 우승과 유럽대항전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에서 요한 크라위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는 그가 발롱도르 수상에 가장 근접했던 해였다.

마촐라는 1970년부터 1977년 은퇴할 때까지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주장을 맡았다. 은퇴 시점까지 그는 세리에 A 4회, 유러피언컵 2회, 인터콘티넨털컵 2회 우승을 달성했고, 1964-65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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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시즌, 대회별 출장 및 득점 기록
클럽시즌리그유럽기타합계
리그명출장출장출장출장출장
인테르나치오날레1960–61세리에 A11000011
1961–6210000010
1962–632310112411
1963–6430900973916
1964–6533172063214321
1965–6630191041223722
1966–673017221034222
1967–6828692378
1968–6929730327
1969–7028451101436
1970–712973210313610
1971–7228792924611
1972–732629460416
1973–7426410320387
1974–752337040343
1975–76252104356
1976–772819320394
합계4181168026631774568163
경력 합계4181168026631774568163

8.2. 국가대표팀

마촐라는 1963년부터 1974년까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70경기에 출전해 22골을 넣었다. 1963년 5월 12일,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페널티킥으로 득점까지 기록했다. 1966년 월드컵 조별 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칠레전에서 득점을 기록했지만, 이탈리아는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1968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는 이탈리아의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대회의 선수단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잔니 리베라와의 포지션 문제로 인해 페루초 발카레지 감독의 '릴레이'(staffetta) 전술에 따라 번갈아 출전해야 했다. 이 전술로 이탈리아는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브라질에 1-4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1974년 월드컵에서는 두 선수 모두 노쇠하여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였고, 이탈리아는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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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 및 연도별 출장 및 득점 기록
국가대표팀연도출장
이탈리아196341
196433
196586
196695
196733
196850
196942
1970102
197150
197280
197360
197450
합계7022

9.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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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르나치오날레
세리에 A4회1962-63, 1964-65, 1965-66, 1970-71
유러피언컵2회1963-64, 1964-65
인터콘티넨털컵2회1964, 1965
이탈리아
유럽 선수권 대회1회1968
월드컵준우승1970
개인
세리에 A 득점왕1회1964-65 (17골)
유러피언컵 득점왕1회1963-64 (파르티잔의 블라디카 코바체비치, 레알 마드리드푸슈카시 페렌츠와 함께 7골로 공동 득점왕)
국제 축구 연맹 올해의 선수단1회1967
유럽 선수권 대회의 선수단1회1968
발롱도르2위1971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1회2014
인테르나치오날레 명예의 전당1회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