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니아 마티디아
1. 개요
살로니아 마티디아는 로마 제국의 귀족 여성으로, 119년에 사망했다. 세 번의 결혼을 통해 비비아 사비나와 마티디아 마이너를 낳았으며, 비비아 사비나는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와 결혼했다. 마티디아는 112년에 아우구스타 칭호를 받았고, 117년 트라야누스 황제 사후 그의 유해를 로마로 가져오는 데 기여했다. 하드리아누스는 마티디아의 장례 연설을 하고 그녀를 신격화하여 신전을 바쳤다. 마티디아는 자신의 이름을 딴 기념물과 비문을 통해 존경받았으며,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와 연결되어 정치적,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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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 로마 여성 -
폼페이아 플로티나
폼페이아 플로티나는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의 아내이자 하드리아누스 즉위에 영향을 미쳤으며, 에피쿠로스 학파를 후원하고 황제 숭배 대상이 된 로마 황후이다. -
1세기 로마 여성 -
마르키아 (트라야누스의 어머니)
마르키아는 로마 노빌레스 계급의 마르키아 씨족 출신으로 트라야누스의 어머니이며, 아들 트라야누스는 로마 제국의 오현제 중 한 명으로 제국을 번영으로 이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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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아 플로티나
폼페이아 플로티나는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의 아내이자 하드리아누스 즉위에 영향을 미쳤으며, 에피쿠로스 학파를 후원하고 황제 숭배 대상이 된 로마 황후이다. -
로마의 인물신 -
로물루스
로물루스는 로마 건국 신화의 중심이자 전설적인 초대 왕으로, 쌍둥이 형제 레무스와 함께 로마 건설, 통치, 신화적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로마의 기원과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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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아 플로티나
폼페이아 플로티나는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의 아내이자 하드리아누스 즉위에 영향을 미쳤으며, 에피쿠로스 학파를 후원하고 황제 숭배 대상이 된 로마 황후이다.
2. 생애
마티디아는 루키우스 비비우스 사비누스, 루키우스 민디우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루필리우스 프루기 보누스와 세 번 결혼했으나 모두 남편이 먼저 사망했다. 비비아 사비나를 하드리아누스와 결혼시키는 등 황실과의 관계를 돈독히 했다.
삼촌 트라야누스 황제를 따라 여행하며 의사 결정을 도왔고, 로마 제국 전역에 기념물과 비문을 통해 존경받았다. 112년 아우구스타 칭호를 받았으며, 117년 트라야누스 황제가 사망하자 유해를 로마로 가져왔다. 119년 사망 후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신격화되었고, 신전과 제단이 로마에 세워졌다. 이는 로마 여성으로서 최초의 사례였다.
2.1. 초기 생애와 첫 번째 결혼
81년에서 82년 사이, 마티디아는 보결 집정관이자 전 총독인 루키우스 비비우스 사비누스와 결혼했다. 사비누스는 83년 또는 84년에 사망했다. 마티디아는 사비누스 사이에서 딸 비비아 사비나를 낳았고, 비비아 사비나는 훗날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와 결혼하게 된다. 마티디아는 사촌인 하드리아누스를 매우 좋아했고, 그가 비비아 사비나와 결혼하는 것을 허락했다.
2.2. 두 번째와 세 번째 결혼
84년, 마티디아는 루키우스 민디우스라는 로마 귀족과 두 번째 결혼을 하였다. 마티디아는 민디우스와의 사이에서 마티디아 마이너로 알려진 딸 민디아 마티디아를 낳았다. 민디우스는 85년에 사망했다.
마티디아는 이후 88년에 보결 집정관이었던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루필리우스 프루기 보누스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프루기는 이전 결혼에서 루필리아 파우스티나라는 딸을 두었다. 파우스티나는 원로원 의원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와 결혼했고, 그들의 딸은 황후 파우스티나 1세가 되었으며, 아들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의 아들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되었다.
2.3. 황실과의 관계 및 업적
마티디아는 삼촌인 트라야누스와 함께 여행하며 그의 의사 결정에 도움을 주었다. 그녀의 어머니처럼, 마티디아는 로마 제국 전역에 그녀의 이름을 딴 기념물과 비문을 통해 존경받았다. 112년 8월 29일, 마르키아나의 죽음과 신격화 이후 아우구스타 칭호를 받았다.
117년 트라야누스가 사망했을 때, 마티디아와 플로티나는 황제의 유해를 로마로 가져왔다. 119년 마티디아가 사망하자,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그녀의 장례 연설을 했고, 그녀를 신격화했으며, 로마에 그녀를 위한 신전과 제단을 하사했다. 그녀는 남편과 공유하거나 작은 신사가 아닌, 자신의 완전한 규모의 신전을 헌정받은 최초의 신격화된 로마 여성이 되었다.
2.4. 죽음과 신격화
117년 트라야누스가 사망했을 때, 마티디아와 플로티나는 황제의 유해를 로마로 가져왔다. 119년 마티디아가 사망하자, 하드리아누스는 그녀의 장례 연설을 했고, 그녀를 신격화했으며, 로마에 그녀를 위한 신전과 제단을 하사했다. 그녀는 남편과 공유하거나 작은 신사가 아닌, 자신의 완전한 규모의 신전을 헌정받은 최초의 신격화된 로마 여성이 되었다.
3. 가계
살로니아 마티디아는 세 번 결혼했다.
| 배우자 | 사망 년도 | 자녀 |
|---|---|---|
| 루키우스 비비우스 사비누스 | 83년 또는 84년 | 비비아 사비나 (하드리아누스와 결혼) |
| 루키우스 민디우스 | 85년 | 마티디아 마이너 |
|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루필리우스 프루기 보누스 | (불명) | (없음, 프루기의 전처 소생 딸 루필리아 파우스티나는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와 결혼) |
* 첫 번째 남편은 루키우스 비비우스 사비누스로, 83년 또는 84년에 사망했다.
* 두 번째 남편은 루키우스 민디우스로, 85년에 사망했다.
* 세 번째 남편은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루필리우스 프루기 보누스였다.
3.1.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와의 연결
마티디아는 81년에서 82년 사이에 보결 집정관이자 전 총독인 루키우스 비비우스 사비누스와 결혼했다. 사비누스는 83년 또는 84년에 사망했다. 마티디아는 사비누스와의 사이에서 딸 비비아 사비나를 낳았고, 비비아 사비나는 훗날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와 결혼하게 된다. 마티디아는 사촌인 하드리아누스를 매우 좋아했고, 그가 비비아 사비나와 결혼하는 것을 허락했다.
84년, 마티디아는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로마 귀족 루키우스 민디우스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마티디아는 민디우스와의 사이에서 딸 민디아 마티디아를 낳았으며, 일반적으로 마티디아 마이너로 알려져 있다. 민디우스는 85년에 사망했다.
마티디아는 후에 88년에 보결 집정관이었던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루필리우스 프루기 보누스와 결혼했다. 프루기는 이전 결혼에서 딸 루필리아 파우스티나를 두었다. 파우스티나는 로마 원로원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와 결혼했고, 그들의 딸은 황후 파우스티나 1세가 되었으며, 아들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의 아들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되었다.
4. 유산
마티디아는 트라야누스 황제를 도와 의사 결정에 참여했으며, 로마 제국 전역에 그녀의 이름을 딴 기념물과 비문을 통해 존경받았다. 112년 어머니 마르키아나가 사망하고 신격화되자 아우구스타 칭호를 받았다. 117년 트라야누스가 사망했을 때, 마티디아와 플로티나는 황제의 유해를 로마로 돌려보냈다.
4.1. 신격화된 여성으로서의 위상
마티디아는 종종 삼촌 트라야누스와 함께 여행하며 그의 의사 결정에 도움을 주었다. 그녀의 어머니처럼, 마티디아는 로마 제국 전역에 그녀의 이름을 딴 기념물과 비문을 통해 존경받았다. 112년 8월 29일, 마르키아나의 죽음과 신격화 이후 아우구스타 칭호를 받았다.
117년 트라야누스가 사망했을 때, 마티디아와 플로티나는 황제의 유해를 로마로 가져왔다. 119년 마티디아가 사망하자,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그녀의 장례 연설을 했고, 그녀를 신격화했으며, 로마에 그녀를 위한 신전과 제단을 하사했다. 그녀는 남편과 공유하거나 작은 신사가 아닌, 자신의 완전한 규모의 신전을 헌정받은 최초의 신격화된 로마 여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