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키아 (트라야누스의 어머니)
1. 개요
마르키아는 로마 원로원 의원 퀸투스 마르키우스 바레아 수라의 딸이자,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귀족 가문 출신으로, 로마에서 태어나 히스파니아 출신의 로마 장군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와 결혼하여 울피아 마르키아나와 트라야누스를 낳았다. 트라야누스는 98년부터 117년까지 로마 황제로 재위했으며, 마르키아는 아들이 황제가 된 것을 보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트라야누스는 마르키아를 기리기 위해 북아프리카에 식민 도시를 건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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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르바-트라야누스 왕조 -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 아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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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대 출생 -
페트로니우스
로마 제정 시대 작가 페트로니우스는 네로 황제의 측근이자 《사티리콘》의 작가로, 풍자적인 소설과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으나 모함으로 자살했다. -
20년대 출생 -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 (트라야누스의 아버지)
로마 원로원 의원이었던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는 이탈리아 움브리아 출신 울피아 가문으로 히스파니아 바이티카 속주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딸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외할머니인 울피아 마르키아나이다. -
1세기 로마 여성 -
폼페이아 플로티나
폼페이아 플로티나는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의 아내이자 하드리아누스 즉위에 영향을 미쳤으며, 에피쿠로스 학파를 후원하고 황제 숭배 대상이 된 로마 황후이다. -
1세기 로마 여성 -
살로니아 마티디아
살로니아 마티디아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조카딸로서, 세 번의 결혼과 황실과의 관계로 로마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특히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신격화되어 신전을 헌정받고 아우구스타 칭호를 받는 등 높은 지위와 권력을 누린 인물이다.
2. 가계
마르키아는 귀족이자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플레브스계 가문인 마르키아 씨족 출신으로, 그녀의 가문은 로마의 왕 안쿠스 마르키우스의 후손들이라 주장한다. 원로원 의원 퀸투스 마르키우스 바레아 수라와 안토니아 푸르닐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퀸투스 마르키우스 바레아 수라는 미래의 로마 황제인 베스파시아누스와 친구 사이였고, 그의 여동생 마르키아 푸르닐라는 차기 로마 황제 티투스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마르키아의 친삼촌은 원로원 의원 퀸투스 마르키우스 바레아 수라누스였으며, 친가쪽 사촌은 귀족 여성 마르키아 세르빌리아 소라나가 있었다. 조부는 34년에 보좌 집정관이자 41-43년에 아프리카 속주의 프로콘술을 맡았던 퀸투스 마르키우스 바레아였고, 외조부는 45년에 보좌 집정관인 아울루스 안토니우스 루푸스일 수 있다. 마르키아의 가문은 네로 황제의 반대자들과 연관되어 있어서, 65년 피소 음모가 실패한 이후로 네로의 냉대를 받았다.
히스파니아 바이티카 속주의 이탈리카 (오늘날 스페인 세비야 인근) 출신의 로마 장군이자 원로원 의원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와 혼인했다. 슬하에 두 자녀를 낳았다.
* 딸 - 울피아 마르키아나: 부유한 원로원 의원이자 법무관이 된 가이우스 살로니우스 마티디우스 파트루이누스와 혼인하여 68년에 딸 살로니아 마티디아를 낳았다.
* 아들 - 트라야누스: 98년부터 117년까지 로마 황제였다.
3. 생애
마르키아는 로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재위 기간(41년~54년)에 마르키아는 히스파니아 출신의 로마 장군이자 원로원 의원인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와 혼인했다. 트라야누스는 히스파니아 바이티카 속주에 있는 이탈리카 (오늘날 스페인 세비야 인근) 출신이었다. 마르키아가 트라야누스와 혼인한 이후로, 얼마간을 이탈리카에서 살았다.
마르키아는 트라야누스 사이에서 자녀 두 명을 낳았다.
* 딸 - 울피아 마르키아나 (48년~112년/114년): 어머니의 외가쪽 조상에서 이름을 물려받았다. 마르키아나는 부유한 원로원 의원이자 차후에 법무관이 된 가이우스 살로니우스 마티디우스 파트루이누스와 혼인했다. 마르키아나는 파트루미누스 사이에서 68년에 딸 살로니아 마티디아를 낳았다.
* 아들 - 트라야누스 (53년~117년): 트라야누스는 98년부터 사망한 117년까지 로마 황제로 있었다. 그는 폼페이아 플로티나라는 여성과 혼인했다.
마르키아는 이탈리아 북동부에 있는 Figlinae Marcianae라는 점토를 생산하는 토지를 갖고 있었고, 마르키아가 사망했을 때, 트라야누스가 이 토지를 상속했다. 마르키아가 자신의 아들이 황제가 된 것을 보았는지는 확실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