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사두르니
1. 개요
살바도르 사두르니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그는 FC 바르셀로나에서 16년간 뛰며 1973-74 시즌 라리가 우승, 코파 델 레이 3회 우승,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2회 우승을 경험했으며, 1969, 1974, 1975년에 사모라 상을 수상했다. 스페인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0경기에 출전했으며, 1964년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우승 멤버였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본명 | 살바도르 사두르니 우르피 |
|---|---|
| 출생일 | 1941년 4월 3일 |
| 출생지 | 라르보스, 스페인 |
| 신장 | 1.80m |
| 포지션 | 골키퍼 |
| 유소년 클럽 연도 | 1956–1957 |
|---|---|
| 유소년 클럽 | 벤드렐 |
| 유소년 클럽 연도 | 1957–1960 |
| 유소년 클럽 | 바르셀로나 |
| 클럽 연도 | 1960–1976 |
| 클럽 | 바르셀로나 |
| 출장 | 247 |
| 득점 | 0 |
| 클럽 연도 | 1960–1961 |
| 클럽 | → 마타로 (임대) |
| 총 출장 | 해당 없음 |
| 총 득점 | 해당 없음 |
| 국가대표 연도 | 1963–1969 |
|---|---|
| 국가대표팀 | 스페인 |
| 국가대표 출장 | 10 |
| 국가대표 득점 | 0 |
| 국가대표 연도 | 1968–1971 |
| 국가대표팀 | 카탈루냐 |
| 국가대표 출장 | 2 |
| 국가대표 득점 | 0 |
| 메달 |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1964년 스페인) |
|---|
-
1964년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참가 선수 -
루이스 델 솔
루이스 델 솔은 스페인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레알 베티스,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등에서 활약하며 196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고, 라리가, 유러피언컵, 세리에 A,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차지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하고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우승에 기여했고, 은퇴 후에는 레알 베티스 감독으로 팀을 이끌었다. -
1964년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참가 선수 -
레프 야신
레프 야신은 FC 디나모 모스크바에서 22년간 활약하며 소련 리그 우승 5회 등을 달성하고 1963년 발롱도르를 수상한 소련의 전설적인 축구 골키퍼로, 소련 국가대표팀으로서 올림픽 금메달,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혁신적인 '스위퍼 키퍼' 스타일로 "검은 거미"라는 별명을 얻었다. -
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
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프라스트
마누엘 프라스트는 스페인 축구 선수로서 레알 마드리드 CF의 초창기 주요 선수였으며, 은퇴 후에는 중앙 지역 연맹의 심판 위원회 초대 회장을 맡아 스페인 축구 심판 제도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
1941년 출생 -
신영복
신영복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사회운동가, 대학교수, 저술가로서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수감 생활 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집필하여 반향을 일으켰고, 출소 후 관계론을 중심으로 사상을 발전시키며 독특한 서체로 민중과 소통했으며,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
1941년 출생 -
도정일
도정일은 영문학자이자 사회운동가로, 경희대학교 교수, 도서관장,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문화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으나, 2016년 학력 위조 논란 이후 이를 인정했고, 저서로는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등이 있다.
2. 클럽 경력
사두르니는 카탈루냐 지방 타라고나 주 라르보스 출신으로, CE 마타로에 1년 임대된 후 바르셀로나로 복귀하여 16년간 선수 생활을 하였다. 라 리가 데뷔 시즌에는 9경기에 출전했고, 호세 마누엘 페수도와 주전 경쟁을 거쳐 주전 골키퍼로 자리 잡았다.
1969년 미겔 레이나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으나, 4년 후 레이나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다시 주전이 되었다. 1973-74 시즌에는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수상했고, 바르셀로나는 리그 최소 실점(34경기 24실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스타드 드 랭스와의 헌정 경기를 끝으로 35세에 은퇴했다.
2.1. FC 바르셀로나
사두르니는 카탈루냐 지방 타라고나 주 라르보스 사람이다. 마타로로 1년 임대를 다녀온 후 친정 바르셀로나로 복귀해 16년 현역 생활의 나머지를 이 곳에서 보냈다. 첫 시즌에 라 리가 9경기에 출전하였고, 호세 마누엘 페수도와 수 년 동안 주전 경쟁을 하였고, 이후 붙박이 주전으로 발돋움하였다.
1969년, 사두르니는 주전 지위를 미겔 레이나에게 내주었지만, 레이나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떠나면서 4년 만에 다시 주전 문지기가 되었다. 1973-74 시즌, 그는 현역 시절에 딴 3번의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 중 두 번째 트로피를 땄고, 바르사는 수비 부문에서 34경기 24실점이라는 최고의 지표를 찍고 리그 우승을 거두었다. 그는 스타드 드 랭스와의 헌정 경기 이후 35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사두르니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6년 반 동안 10번의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였는데, 첫 경기는 1963년 1월 9일, 소속 구단의 안방 캄 노우에서 0-0으로 비긴 프랑스와의 친선경기였다. 그는 1962년 FIFA 월드컵과 1964년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대회에서 모두 후보 선수로 대기하였다. 마지막으로 출전한 국가대표팀 경기는 1969년 6월 25일, 0-2로 패한 핀란드와의 1970년 FIFA 월드컵 예선이었다.
4. 수상 내역
4.1. 클럽
사두르니는 카탈루냐 지방 타라고나 주 라르보스 사람이다. 그는 마타로로 1년 임대를 다녀온 후 친정 바르셀로나로 복귀해 16년 현역 생활의 나머지를 이 곳에서 보냈다. 그는 첫 시즌에 라 리가 9경기에 출전하였고, 호세 마누엘 페수도와 수 년 동안 주전 경쟁을 하였고, 이후 붙박이 주전으로 발돋움하였다.
1969년, 사두르니는 주전 지위를 미겔 레이나에게 내주었지만, 레이나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떠나면서 4년 만에 다시 주전 문지기가 되었다. 1973-74 시즌, 그는 현역 시절에 딴 3번의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 중 2번째 트로피를 땄고, 바르사는 수비 부문에서 34경기 24실점이라는 최고의 지표를 찍고 리그 우승을 거두었다. 그는 스타드 드 랭스와의 헌정 경기 이후 35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 대회 | 우승 횟수 | 우승 연도 |
|---|---|---|
| 라 리가 | 1 | 1973–74 |
|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 3 | 1962–63, 1967–68, 1970–71 |
|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 2 | 1965–66, 1971 |
4.2. 국가대표팀
사두르니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6년 반 동안 활약하면서 10번의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였다. 첫 경기는 1963년 1월 9일, 소속 구단의 안방 캄 노우에서 0-0으로 비긴 프랑스와의 친선경기였다. 그는 1962년 FIFA 월드컵과 1964년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대회에서 모두 후보 선수로 대기하였다. 마지막으로 출전한 국가대표팀 경기는 1969년 6월 25일, 0-2로 패한 핀란드와의 1970년 FIFA 월드컵 예선전이었다.
*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