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토레 스킬라치
1. 개요
살바토레 스킬라치는 이탈리아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주로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득점왕과 골든볼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선수 시절 ACR 메시나, 유벤투스, 인터 밀란 등에서 뛰었으며, 1994년 일본의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하여 1997년 J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1999년 은퇴 후에는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했으며, 2024년 9월 5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이름 | 살바토레 스킬라치 |
|---|---|
| 로마자 표기 | Salvatore Schillaci |
| 별칭 | 토토 |
| 출생일 | 1964년 12월 1일 |
| 출생지 | 팔레르모, 이탈리아 |
| 사망일 | 2024년 9월 18일 |
| 사망지 | 팔레르모, 이탈리아 |
| 키 | 1.75m |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유소년 클럽 | 1981: AMAT 팔레르모 |
|---|---|
| 클럽 | 1982-1989: 메시나 (219경기, 61골) 1989-1992: 유벤투스 (90경기, 26골) 1992-1994: 인테르나치오날레 (30경기, 11골) 1994-1997: 주빌로 이와타 (78경기, 56골) |
| 총 출장 및 득점 | 417경기, 154골 |
| 국가대표팀 | 1989: 이탈리아 U21 (1경기, 0골) 1989: 이탈리아 B (1경기, 0골) 1990-1991: 이탈리아 (16경기, 7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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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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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장 | OM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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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 이탈리아 대통령실 훈장 수여자 목록 |
|---|---|
| 참고 자료 | 유벤투스 영웅: 살바토레 스킬라치 |
| 참고 자료 | BBC 스포츠: 살바토레 스킬라치 이야기 |
| 참고 자료 | 살바토레 스킬라치 - Corriere.it |
-
일본에 거주한 이탈리아인 -
주세페 키아라
주세페 키아라는 17세기 일본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로, 쇄국 정책과 기독교 탄압 속에서 일본 선교를 시도하다 배교 후 유폐되어 생을 마감했으며, 그의 삶은 소설 『침묵』의 주인공 모델이 되었고 묘비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일본에 거주한 이탈리아인 -
다니엘레 마사로
다니엘레 마사로는 AC 밀란의 전성기를 이끈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로, AC 밀란에서 세리에 A 우승 4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등을 기록하고 1994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
일본의 외국인 남자 축구 선수 -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는 CSKA 소피아와 FC 바르셀로나에서 맹활약하며 유러피언 골든 부츠, 라리가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994년 FIFA 월드컵 득점왕, 발롱도르를 수상한 불가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자 논란이 많은 감독이다. -
일본의 외국인 남자 축구 선수 -
이명재 (축구 선수)
이명재는 대한민국의 레프트백 축구 선수로, 울산 현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여 알비렉스 니가타 임대와 김천 상무 군 복무 후 복귀, K리그1 우승 2회 및 FA컵 우승 1회를 기록했으며 2024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나 2023년 인종차별 논란으로 징계를 받았다. -
이탈리아 남자 U-21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잔루카 비알리
잔루카 비알리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크레모네세, 삼프도리아, 유벤투스, 첼시에서 공격수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에서 우승을 경험했고 이탈리아 국가대표로도 활동했으며 은퇴 후 감독과 해설가로 활동하다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
이탈리아 남자 U-21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파비아노 파리시
파비아노 파리시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로, 현재 ACF 피오렌티나에서 레프트 백으로 뛰고 있으며, US 아벨리노 1912와 엠폴리 FC를 거쳐 세리에 A로 승격했고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된 경력이 있다.
2. 선수 경력
스킬라치는 ACR 메시나, 유벤투스,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94년 일본으로 건너가 주빌로 이와타에서 뛴 후 1997년에 은퇴했다.
1989-90 시즌 유벤투스에서 리그 15득점을 기록하고, UEFA컵 우승에 기여했다. 이 활약으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1990년 3월 31일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데뷔했다. 1990년 FIFA 월드컵에서는 조별 리그 첫 경기인 오스트리아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어 결승골을 넣었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전부터 선발로 출전, 잉글랜드와의 3·4위 결정전까지 6골을 기록하며 득점왕과 골든볼을 동시에 수상했다.
월드컵 이후 부상 등으로 부진을 겪었고, 인터 밀란으로 이적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1994년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하여 J리그에서 활약하다가 1997년 은퇴했다.
2.1. 클럽 경력
스킬라치는 1964년 12월 1일 이탈리아 팔레르모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향 도시의 아마추어 팀인 '아마트 팔레르모'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 제과점 견습공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1981년 아마트 팔레르모에서 선수로 뛰기 시작했다.
1982년 메시나로 이적하여 프랑코 스콜리오와 즈데네크 제만 감독의 지도 아래 스트라이커로서 기량을 발전시켰다. 1988-89 시즌에는 세리에 B 득점왕을 차지하며 세리에 A의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1989-90 시즌 리그에서 15골을 기록하고, UEFA컵 1989-90 우승에 기여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6골을 넣어 득점왕과 골든볼을 수상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월드컵 이후 부상 등으로 부진을 겪었고, 1992-93 시즌 인터 밀란으로 이적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1993-94 시즌 초반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11월부터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했다. 3월에 복귀하여 밀란 더비에서 동점골을 넣는 등 활약했지만, 부상으로 리그 9경기 출전, 5골에 그쳤다.
1994년,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하여 J리그 최초의 이탈리아 선수가 되었다. 1995년 시즌에는 31골을 기록했지만, 부상으로 득점왕 경쟁에서 후쿠다 마사히로에게 1점 차로 밀려 2위를 기록했다. 1996년에도 쇼난 벨마레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지만, 1997년 세레소 오사카전에서 골을 넣은 후 요통이 악화되어 은퇴했다.
스킬라치의 클럽, 시즌 및 대회별 출전 및 득점 기록은 다음과 같다.
| 클럽 | 시즌 | 리그 | 컵 | 대륙 대회 | 기타 | 총계 | ||||||
|---|---|---|---|---|---|---|---|---|---|---|---|---|
| 리그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 메시나 | 1982–83 | 세리에 C2 | 26 | 3 | — | — | — | 26 | 3 | |||
| 1983–84 | 세리에 C1 | 26 | 4 | — | — | — | 26 | 4 | ||||
| 1984–85 | 세리에 C1 | 31 | 4 | — | — | — | 31 | 4 | ||||
| 1985–86 | 세리에 C1 | 31 | 11 | 6 | 1 | — | — | 37 | 12 | |||
| 1986–87 | 세리에 B | 33 | 3 | 3 | 2 | — | — | 36 | 5 | |||
| 1987–88 | 세리에 B | 37 | 13 | 5 | 2 | — | — | 42 | 15 | |||
| 1988–89 | 세리에 B | 35 | 23 | 4 | 2 | — | — | 39 | 25 | |||
| 총계 | 219 | 61 | 18 | 7 | — | — | 237 | 68 | ||||
| 유벤투스 | 1989–90 | 세리에 A | 30 | 15 | 8 | 2 | 12 | 4 | — | 50 | 21 | |
| 1990–91 | 세리에 A | 29 | 5 | 5 | 0 | 7 | 3 | 1 | 0 | 42 | 8 | |
| 1991–92 | 세리에 A | 31 | 6 | 9 | 1 | — | — | 40 | 7 | |||
| 총계 | 90 | 26 | 22 | 3 | 19 | 7 | 1 | 0 | 132 | 36 | ||
| 인터 밀란 | 1992–93 | 세리에 A | 21 | 6 | 2 | 1 | — | — | 23 | 7 | ||
| 1993–94 | 세리에 A | 9 | 5 | 1 | 0 | 3 | 0 | — | 13 | 5 | ||
| 총계 | 30 | 11 | 3 | 1 | 3 | 0 | — | 36 | 12 | |||
| 주빌로 이와타 | 1994 | J1리그 | 18 | 9 | 1 | 0 | 4 | 5 | — | 23 | 14 | |
| 1995 | J1리그 | 34 | 31 | 0 | 0 | — | — | 34 | 31 | |||
| 1996 | J1리그 | 23 | 15 | 0 | 0 | 8 | 3 | — | 31 | 18 | ||
| 1997 | J1리그 | 3 | 1 | 0 | 0 | 2 | 1 | — | 5 | 2 | ||
| 총계 | 78 | 56 | 1 | 0 | 14 | 9 | — | 93 | 65 | |||
| 통산 총계 | 417 | 154 | 44 | 11 | 36 | 16 | 1 | 0 | 498 | 181 | ||
2.1.1. 주요 클럽
ACR 메시나, 유벤투스,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94년 일본으로 건너가 주빌로 이와타에서 뛰었고 1997년에 은퇴했다.
1982년 시칠리아 클럽 메시나에 입단하여 1989년까지 활동하며 득점력을 선보였고, 특히 1988-89 세리에 B에서 23골을 기록하며 세리에 B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후 토리노 클럽 유벤투스에 합류하여 1989년 8월 27일 세리에 A에 데뷔했다.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이 이끌던 1980년대 이탈리아 축구를 지배했던 "꿈의 팀"이 해체된 후, 스킬라치는 디노 초프 감독 체제에서 팀의 부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리그 15골을 포함, 모든 대회에서 21골을 넣으며 1989-90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우승을 이끌었다.
1990년 FIFA 월드컵 이후, 스킬라치는 로베르토 바지오와 함께 유벤투스에서 2년을 더 뛰고 인터 밀란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신체적 문제로 인해 유벤투스와 인터 밀란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1994년, 주빌로 이와타에 합류하여 J리그에서 뛴 최초의 이탈리아 선수가 되었고, 1997년 J리그 디비전 1 우승을 차지했다. 1999년에 은퇴했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살바토레 스킬라치는 1990년 FIFA 월드컵 초반에는 후보 선수였지만, 오스트리아와의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교체 투입된 후부터 잉글랜드와의 3, 4위전까지 모든 경기에 출전하여 총 6골을 기록하며 골든볼과 골든슈를 동시에 차지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월드컵 역사상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꼽는다.
1990년 3월 31일, 스킬라치는 아제글리오 비치니 감독이 이끄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친선 경기(1-0 승)에서 이탈리아 U-21 대표 출신으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그는 자국에서 열린 1990년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다.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스킬라치는 이탈리아의 첫 경기인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안드레아 카르네발레를 대신해 출전하여 결승골을 넣었고, 경기는 이탈리아의 1-0 승리로 끝났다.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는 로베르토 바조와 함께 출전하여 2-0 승리를 거두었고, 바조와 스킬라치 모두 득점했다. 스킬라치는 이탈리아의 다음 두 녹아웃 스테이지 경기에서도 바조와 함께 선발 출전했으며, 16강전 우루과이와 8강전 아일랜드 경기에서 각각 득점을 올렸고,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는 알도 세레나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와의 준결승전에서는 잔루카 비알리가 바조를 대신해 선발 출전했고, 스킬라치는 계속해서 출전했다. 경기는 1-1로 끝났고, 스킬라치는 토너먼트에서 다섯 번째 골을 넣었지만, 이탈리아는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는데, 스킬라치는 부상을 이유로 승부차기에 참가하지 않았다.
바조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한 후, 스킬라치는 승부차기로 결정된 잉글랜드와의 3-4위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6골로 골든 부트를 수상했다. 그는 1990년부터 1991년까지 16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넣었는데, 이탈리아 대표팀에서의 다른 유일한 골은 1991년 UEFA 유로 1992 예선 경기에서 노르웨이와의 원정 경기에서 2-1로 패한 경기에서 넣었다.
| 국가대표팀 | 년도 | 출전 | 득점 |
|---|---|---|---|
| 이탈리아 | 1990 | 12 | 6 |
| 1991 | 4 | 1 | |
| 합계 || 16 || 7 | |||
| # | 날짜 | 경기장 | 상대 | 득점 | 결과 | 대회 |
|---|---|---|---|---|---|---|
| 1 | 1990년 6월 9일 | 올림피코 스타디움, 로마 | 1–0 | 1–0 | 1990년 FIFA 월드컵 | |
| 2 | 1990년 6월 19일 | 올림피코 스타디움, 로마 | 1–0 | 2–0 | 1990년 FIFA 월드컵 | |
| 3 | 1990년 6월 25일 | 올림피코 스타디움, 로마 | 1–0 | 2–0 | 1990년 FIFA 월드컵 | |
| 4 | 1990년 6월 30일 | 올림피코 스타디움, 로마 | 1–0 | 1–0 | 1990년 FIFA 월드컵 | |
| 5 | 1990년 7월 3일 | 산 파올로 스타디움, 나폴리 | 1–0 | 1-1 (연장전, 3-4 승부차기) | 1990년 FIFA 월드컵 | |
| 6 | 1990년 7월 7일 | 산 니콜라 스타디움, 바리 | 2–1 | 2–1 | 1990년 FIFA 월드컵 | |
| 7 | 1991년 6월 5일 | 울레발 스타디온, 오슬로 | 1–2 | 1–2 | UEFA 유로 1992 예선 |
3. 플레이 스타일
스킬라치는 골 결정력이 뛰어나고 기술이 탄탄하며, 작고 빠르며 민첩하고 기동성이 좋은 스트라이커였다. 그는 많은 골을 넣고, 신뢰할 수 있으며 기회를 잘 활용하는 득점원으로, 특히 예측력, 반응 속도, 그리고 뛰어난 위치 선정 능력으로 유명했다. 이러한 능력들과 가속력 덕분에 그는 상대 선수보다 먼저 공에 도달할 수 있었고, 공격적인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종종 "적시적소에 나타나는" 선수라는 평판을 얻었다. 그는 페널티 박스 안팎에서 모두 훌륭한 마무리 능력을 보였고, 강력한 슈팅으로 발리슛을 성공시킬 수 있었으며, 공중볼 능력이 특출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헤딩슛으로도 득점할 수 있었다. 또한 세트피스에서 정확성을 보였고 페널티킥에서도 효과적이었다. 그는 주로 이기적이고 본능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알려져 있었지만, 뛰어난 패서라고는 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료와 연계하여 플레이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그의 득점 능력 때문에 전 메시나 감독 프란체스코 스콜리오는 그를 두고 "그만큼 득점을 원하는 선수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4. 은퇴 후
스킬라치는 1999년에 은퇴하여 고향 팔레르모에서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축구 교실을 열었다. 또한 이탈리아의 리얼리티 쇼에 출연하여 인기를 얻었다.
UEFA 유로 2012 기간에는 크레이그 도일 라이브에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가대표팀 주장 스티븐 피에나르는 스킬라치를 따라 '쉴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2008년 나카타 히데토시(中田英寿)가 주최한 "+1 FOOTBALL MATCH(플러스원 풋볼 매치)"에 출전했고, 2016년 일본에서 열린 자선 경기에 유벤투스 레전드 멤버로 참가하여 1골을 넣었다.
말년에는 대장암(結腸癌)을 앓았으며, 2024년 9월 18일 아침, 입원 중이던 팔레르모의 병원에서 향년 59세로 사망했다.
5. 개인사
스킬라치의 조카인 프란체스코 디 마리아노와 사촌인 안토니오 마우리치오 스킬라치도 프로 축구 선수였다. 그는 두 번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 그는 자신을 로마 가톨릭 신자라고 생각했다.
스킬라치는 2022년에 결장암 진단을 받았다. 2024년 9월에는 심방 부정맥으로 입원했다.
6. 수상 내역
| 개인 수상 | |
|---|---|
| 세리에 B 득점왕 | 1988-89 |
| 1990년 FIFA 월드컵 골든 부트 | 1990 |
| 1990년 FIFA 월드컵 골든볼 | 1990 |
| 1990년 FIFA 월드컵 올스타 팀 | 1990 |
| 발롱도르 2위 | 1990 |
| 옹즈 다르장 | 1990 |
| 1991 | |
6.1. 클럽
1964년 12월 1일 이탈리아 팔레르모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스킬라치는 고향 도시의 아마추어 팀이자 지역 버스 회사 축구팀인 '아마트 팔레르모'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82년 시칠리아 클럽 메시나에 입단하여 1989년까지 활동하며 득점력을 선보였고, 특히 1988-89 세리에 B 시즌 23골로 세리에 B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 후 토리노 클럽 유벤투스에 합류하여 1989년 8월 27일 세리에 A에 데뷔했다. 당시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 아래 1980년대 이탈리아 축구를 지배했던 유벤투스는 팀 해체의 여파를 겪고 있었고, 스킬라치의 합류는 디노 초프 감독 체제하에서 팀의 부활과 맞물렸다. 그는 그 시즌 리그 15골을 포함해 모든 대회에서 21골을 넣는 매우 긍정적인 활약을 펼쳤고, 유벤투스는 1989-90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우승을 차지했다.
1990년 월드컵 종료 후 스킬라치는 로베르토 바지오와 함께 유벤투스에서 2년 더 활동한 후 인터 밀란에 합류했다. 그러나 1990년 월드컵 이후 겪은 신체적 문제로 인해 유벤투스 팬들뿐만 아니라 인터 밀란 팬들의 기대에도 미치지 못했다.
1994년 주빌로 이와타에 합류하여 J리그에서 뛴 최초의 이탈리아 선수가 되었고, 1997년에 이 클럽과 함께 J리그 디비전 1 우승을 차지했다. 1999년에 은퇴했다.
| 클럽 | 시즌 | 리그 | 컵 | 대륙 대회 | 기타 | 총계 | ||||||
|---|---|---|---|---|---|---|---|---|---|---|---|---|
| 리그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 메시나 | 1982–83 | 세리에 C2 | 26 | 3 | — | — | — | 26 | 3 | |||
| 1983–84 | 세리에 C1 | 26 | 4 | — | — | — | 26 | 4 | ||||
| 1984–85 | 세리에 C1 | 31 | 4 | — | — | — | 31 | 4 | ||||
| 1985–86 | 세리에 C1 | 31 | 11 | 6 | 1 | — | — | 37 | 12 | |||
| 1986–87 | 세리에 B | 33 | 3 | 3 | 2 | — | — | 36 | 5 | |||
| 1987–88 | 세리에 B | 37 | 13 | 5 | 2 | — | — | 42 | 15 | |||
| 1988–89 | 세리에 B | 35 | 23 | 4 | 2 | — | — | 39 | 25 | |||
| 총계 | 219 | 61 | 18 | 7 | — | — | 237 | 68 | ||||
| 유벤투스 | 1989–90 | 세리에 A | 30 | 15 | 8 | 2 | 12 | 4 | — | 50 | 21 | |
| 1990–91 | 세리에 A | 29 | 5 | 5 | 0 | 7 | 3 | 1 | 0 | 42 | 8 | |
| 1991–92 | 세리에 A | 31 | 6 | 9 | 1 | — | — | 40 | 7 | |||
| 총계 | 90 | 26 | 22 | 3 | 19 | 7 | 1 | 0 | 132 | 36 | ||
| 인터 밀란 | 1992–93 | 세리에 A | 21 | 6 | 2 | 1 | — | — | 23 | 7 | ||
| 1993–94 | 세리에 A | 9 | 5 | 1 | 0 | 3 | 0 | — | 13 | 5 | ||
| 총계 | 30 | 11 | 3 | 1 | 3 | 0 | — | 36 | 12 | |||
| 주빌로 이와타 | 1994 | J1리그 | 18 | 9 | 1 | 0 | 4 | 5 | — | 23 | 14 | |
| 1995 | J1리그 | 34 | 31 | 0 | 0 | — | — | 34 | 31 | |||
| 1996 | J1리그 | 23 | 15 | 0 | 0 | 8 | 3 | — | 31 | 18 | ||
| 1997 | J1리그 | 3 | 1 | 0 | 0 | 2 | 1 | — | 5 | 2 | ||
| 총계 | 78 | 56 | 1 | 0 | 14 | 9 | — | 93 | 65 | |||
| 통산 총계 | 417 | 154 | 44 | 11 | 36 | 16 | 1 | 0 | 498 | 181 | ||
; 수상 경력
* 메시나
세리에 C2 : 1982–83
세리에 C1 : 1985–86
* 유벤투스
코파 이탈리아 : 1989–90
UEFA컵 : 1989–90
* 인터 밀란
** UEFA컵 : 1993–94
6.2. 국가대표팀
1990년 3월 31일, 살바토레 스킬라치는 아제글리오 비치니 감독이 이끄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친선 경기(1-0 승리)에서 이탈리아 U-21 대표 출신으로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그는 자국에서 열린 1990년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다.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스킬라치는 이탈리아의 첫 경기인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안드레아 카르네발레를 대신해 출전했다. 그는 결승골을 넣었고, 경기는 이탈리아의 1-0 승리로 끝났다.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는 로베르토 바조와 함께 출전하여 2-0 승리를 거두었고, 바조와 스킬라치 모두 득점했다. 스킬라치는 이탈리아의 다음 두 녹아웃 스테이지 경기에서도 바조와 함께 선발 출전했으며, 16강전 우루과이와 8강전 아일랜드 경기에서 각각 득점을 올렸고,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는 알도 세레나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와의 준결승전에서는 잔루카 비알리가 바조를 대신해 선발 출전했고, 스킬라치는 계속해서 출전했다. 경기는 1-1로 끝났고, 스킬라치는 토너먼트에서 다섯 번째 골을 넣었지만, 이탈리아는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는데, 스킬라치는 부상을 이유로 승부차기에 참가하지 않았다.
바조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한 후, 스킬라치는 승부차기로 결정된 잉글랜드와의 3-4위전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6골로 골든 부트를, 그리고 대회 최우수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전반적으로 그는 1990년부터 1991년까지 16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넣었는데, 이탈리아 대표팀에서의 다른 유일한 골은 1991년 UEFA 유로 1992 예선 경기에서 노르웨이와의 원정 경기에서 2-1로 패한 경기에서 넣었다.
| 국가대표팀 | 년도 | 출전 | 득점 |
|---|---|---|---|
| 이탈리아 | 1990 | 12 | 6 |
| 1991 | 4 | 1 | |
| 합계 | 16 | 7 | |
:득점과 결과는 이탈리아의 득점을 먼저 표시합니다.
| # | 날짜 | 경기장 | 상대 | 득점 | 결과 | 대회 |
|---|---|---|---|---|---|---|
| 1 | 1990년 6월 9일 | 올림피코 스타디움, 로마 | 1–0 | 1–0 | 1990년 FIFA 월드컵 | |
| 2 | 1990년 6월 19일 | 올림피코 스타디움, 로마 | 1–0 | 2–0 | 1990년 FIFA 월드컵 | |
| 3 | 1990년 6월 25일 | 올림피코 스타디움, 로마 | 1–0 | 2–0 | 1990년 FIFA 월드컵 | |
| 4 | 1990년 6월 30일 | 올림피코 스타디움, 로마 | 1–0 | 1–0 | 1990년 FIFA 월드컵 | |
| 5 | 1990년 7월 3일 | 산 파올로 스타디움, 나폴리 | 1–0 | 1990년 FIFA 월드컵 | ||
| 6 | 1990년 7월 7일 | 산 니콜라 스타디움, 바리 | 2–1 | 2–1 | 1990년 FIFA 월드컵 | |
| 7 | 1991년 6월 5일 | 울레발 스타디온, 오슬로 | 1–2 | 1–2 | UEFA 유로 1992 예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