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침 송씨
1. 개요
상침 송씨는 조선 세종의 후궁으로, 연현과 진어를 담당하고 사설과 전등을 통솔하는 궁관이었다. 1425년에 딸 정현옹주를 낳았으나 정식 후궁으로 책봉되지는 못했다.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오암리 출신이라는 설화가 전해지며, 출생 연도는 1396년으로 추정된다.
| 작위 | 상침 |
|---|---|
| 배우자 | 세종 |
| 자녀 | 정현옹주(딸) |
| 왕조 | 조선 |
| 아버지 | 미상 |
| 어머니 | 미상 |
| 출생일 | 1396년 |
| 출생지 | 조선 |
| 사망지 | 조선 |
| 사망일 | 1463년 10월 12일 (양력) (68세) |
| 사망 원인 | 병사(천식) |
| 매장지 | 상침송씨지묘 (충청남도 아산 도고면 오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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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6년 출생 -
미켈로초
미켈로초는 피렌체 출신의 초기 르네상스 건축가이자 조각가로, 로렌초 기베르티와 도나텔로의 제자였으며 코시모 데 메디치의 후원을 받아 메디치 궁전과 산 마르코 수도원 재건축 등 르네상스 건축 발전에 기여했다. -
1396년 출생 -
변효문
변효문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문과 급제 후 농업 기술 및 법의학 발전에 기여하고 일본과의 계해약조 체결 등 외교적 역할도 수행했으나, 만년에 불법 장물 사건으로 파직되었다. -
1463년 사망 -
윤사로
윤사로는 세조의 계유정난 공신으로 의정부 좌찬성 등 요직을 역임하며 세조 정권에 기여하고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는 등 권력층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조선왕조실록에 영민함과 청렴함이 기록됨과 동시에 재산 축적에 대한 비판도 함께 제시된 조선 전기의 인물이다. -
1463년 사망 -
장 뷔로
15세기 프랑스의 포병 전문가이자 군사 지도자, 행정가였던 장 뷔로는 샤를 7세 휘하에서 백년전쟁의 프랑스 승리에 기여하고 여러 공성전과 전투에서 활약했으며, 행정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
14세기 한국 사람 -
태조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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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한국 사람 -
충선왕
충선왕은 고려 제26대 왕으로 즉위 후 원나라 간섭 속에서 심양왕에 봉해졌으며, 고려와 심양을 동시에 통치하는 동군연합을 이루었으나 개혁 정치는 실패하고 티베트로 유배되었다.
2. 생애
상침 송씨는 조선에서 유일하게 상침 작위를 가진 궁관이었다. 상침은 궁중 의복과 진상품을 관리하고 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역할이었다. 1425년(세종 7년) 정현옹주를 낳았다.
세종 사후 사위 윤사로의 집에서 지내다가 1463년(세조 9년) 음력 8월 21일 천식으로 68세에 사망하였다. 왕녀를 낳았음에도 후궁 첩지를 받지 못했다. 이듬해 음력 2월 9일 충청도 신창현 오리곡 진산갑좌경향(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오암리)에 묻혔으며, 묘비명 탁본은 온양문화원에서 보관하고 있다.
2.1. 출신
상침 송씨의 본관 및 가계는 알려진 바 없으며, 1396년(태조 5년)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오암리에 전해지는 출생 설화를 통해 그녀의 출신 배경을 추정할 수 있다.
2.1.1. 출생 설화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오암리에 전해지는 설화에 따르면, 옛날 도고면 오리실 윗말에 송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는데, 인근에 목화가 활짝 피어 송씨 집안의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목화를 따러 갔다. 그런데 목화밭에 어떤 노승이 누워있었고, 많이 굶은 듯하여 며느리가 젖을 짜 노승에게 주었다. 노승은 은혜를 갚고자 시어머니와 며느리에게 앞산을 가리키며 "저 곳에 묘를 쓰십시오. 그러면 왕비가 나올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곧 사라졌다. 이후 그 자리에 묘를 썼더니, 그 며느리의 딸이 훗날 상침 송씨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설화를 통해 송씨를 도고면 오암리 출신으로 추정하며, 신분은 낮았지만 외모는 출중했을 것으로 보인다.
2.2. 궁관 시절
상침 송씨는 조선에서 유일하게 상침 작위를 가진 궁관이었다. 상침은 궁중 의복과 진상품을 관리하고 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역할로, 연현과 진어를 담당하고 사설과 전등을 통솔했다. 상침은 궁관 작위로, 세종 때까지 품계는 정5품이었으나 훗날 종6품으로 바뀌었다.
2.2.1. 정현옹주 출산
1425년(세종 7년) 정현옹주를 낳았다.
2.3. 사망
세종 사후 사위 윤사로의 집에서 지내다가, 1463년(세조 9년) 음력 8월 21일 천식으로 향년 68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왕녀를 낳았음에도 끝내 후궁의 첩지를 받지 못했다. 이듬해 음력 2월 9일 충청도 신창현 오리곡 진산갑좌경향(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오암리)에 무덤을 마련하여 매장하였으며, 묘비명 탁본은 온양문화원에서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