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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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경은 고려 시대 평양에 설치된 행정 구역이다. 태조 왕건은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며 서경을 중시하여 918년 대도호부를 설치하고, 922년 관부와 관리를 두는 등 초기 발전을 이루었다. 정종 때 천도를 시도했으나 실패했으며, 성종 때 제도 정비를 통해 개경과 동등한 지위를 갖추었다. 인종 때 묘청의 난으로 큰 타격을 입었으며, 명종 때 조위총의 난으로 독립성을 잃고 지위가 격하되었다. 몽골의 침략과 반란으로 쇠퇴하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기도 했으며, 공민왕 때 평양부로 개칭되었다.

서경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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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918년 태조이 평양에 대도호부를 설치하고 왕식렴을 보내 지키게 한 것을 시작으로, 서경은 고려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922년에는 본격적인 행정 기구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947년(정종 2) 개경 호족들의 반발로 좌절되었지만, 서경으로 천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995년(성종 14) 지서경유수사 등 문·무반 및 5부를 별도로 설치하였고, 1062년(문종 16)에는 서경기 4도를 설치하여 개경과 대등한 제도와 지위를 갖추게 되었다.

인종 때 묘청 등이 서경 천도 운동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서경은 큰 타격을 입었다. 1138년(인종 16) 6조를 설치하는 등 복구 노력이 있었지만, 조신들 사이에 서경의 관제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명종 때 조위총의 난으로 중앙의 직접 통제를 받게 되면서 서경의 독립성은 상실되고 지위가 격하되었다.

고종 때는 몽골의 침략1233년 홍복원, 필현보의 반란으로 1252년까지 황폐해졌다.

1269년(원종 10년) 최탄, 이연령 등이 원나라에 항복하여 동녕부가 설치되고 몽골의 직접 지배를 받았다. 1290년(충렬왕 16) 고려에 반환되었고, 공민왕 때 평양부로 개칭되었다.

2.1. 설치와 초기 발전

918년 태조이 평양에 대도호부(大都護府)를 설치하고, 왕식렴을 보내 지키게 하면서 참좌(參佐) 4·5인을 두었다. 922년 태조는 서경에 행차하여 새로 관부와 관리를 설치하고 재성(在城)을 쌓았다. 이는 본격적인 행정 기구 설치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947년(정종 2)에는 서경성(西京城)을 쌓고 도참설(圖讖說)에 따라 천도하려 했으나, 개경 호족들의 반발로 실패하였다.

2.2. 제도 정비와 위상 강화

995년(성종 14)에 지서경유수사(知西京留守事) 등 문·무반 및 5부를 별도로 설치하였고, 1062년(문종 16)에는 개경의 경기에 준하는 서경기(西京畿) 4도를 설치하여 개경과 대등한 제도와 지위를 갖추게 되었다.

2.3. 묘청의 난과 서경

인종 때 묘청 등은 서경 천도 운동을 일으켰고, 그 결과 서경은 많은 타격을 받았다. 이후 서경의 복구 문제가 대두하여 1138년(인종 16) 6조를 설치하고 영(令)·승(丞) 등을 두었다. 이러한 관제가 확정되기까지 조신(朝臣)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 《고려사》에는 “서경을 평정한 이후부터는 조정의 의논이 일치하지 않아 어떤 사람은 "서경은 근본이 되는 지역이고 또 태조께서 설치한 곳이니, 구제(舊制)로 하는 것이 좋다."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서경은 반란을 일으킨 지역이므로, 마땅히 일체 옛 것을 혁파하여 동경(東京)의 제도대로 해야 한다."라고 하였으므로 오랫동안 처리하지 못하다가, 이에 이르러 처음으로 이러한 관속들을 둔 것이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2.4. 조위총의 난과 서경

명종 때 조위총의 난으로 서경은 중앙의 직접 통제를 받게 되어, 그 독립성이 상실되고 지위가 격하되었다.

2.5. 몽골 지배와 쇠퇴

고종 때 몽골의 침략1233년 홍복원, 필현보의 반란으로 1252년까지 황폐한 채 방치되어 쇠퇴하였다.

2.6. 고려 말의 서경

1269년(원종 10년) 최탄, 이연령 등이 난을 일으켜 여러 성을 바치고 원나라에 항복하였다. 원은 이곳을 동녕부로 삼고 관리를 두어 몽골의 직접 지배를 받게 하였다. 1290년(충렬왕 16) 고려에 다시 반환되어 서경이라 하였다. 그 후 공민왕 때 평양부로 개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