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만술
1. 개요
서만술은 1927년 경상북도 경주 출생으로,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선총련)의 주요 인물이었다. 1955년 조선총련 결성에 참여하여, 히로시마현 본부 위원장, 중앙상임위원회 조직국장, 중앙위원회 부의장 등을 역임하고, 2001년 한덕수 의장 사망 이후 조선총련 중앙상임위원회 의장에 선출되었다. 의장 재임 중 북일 정상회담 실현에 관여했으며,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의 화해를 시도했으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파기되었다. 2012년 심부전으로 사망하여, 유골은 북한 애국열사릉에 매장되었다.
| 한국어 이름 | 서만술 |
|---|---|
| 한자 표기 | 徐萬述 |
| 로마자 표기 | Seo Mansul |
| 출생일 | 1927년 4월 27일 |
| 출생지 | 경상북도 경주군 (현재 대한민국) |
| 사망일 | 2012년 2월 19일 |
| 사망지 | 일본 도쿄도 |
| 알려진 업적 | 조총련 의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
| 소속 정당 | 조선로동당 |
|---|---|
|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구 | 정보 없음 |
|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당선 횟수 | 3회 |
|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임기 시작 | 1990년 4월 |
|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임기 종료 | 2012년 2월 19일 |
| 역대 최고 지도자 | 김일성 (1948년 - 1994년) 김정일 (1994년 - 2011년) 김정은 (2011년 - ) |
| 기타 직책 | 제2대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의장 |
| 기타 직책 임기 시작 | 2001년 5월 |
| 기타 직책 임기 종료 | 2012년 2월 19일 |
| 훈장 및 상훈 | 김일성훈장 공화국 노동영웅 칭호 조국통일상 국기훈장 제1급 노동훈장 공화국 창건 기념 훈장 국기훈장 제3급 김정일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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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의장 -
허종만
허종만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고성 출신으로 조총련에서 활동하며 간부직을 역임하고 의장까지 지냈으며,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노력영웅 칭호를 받는 등 북한 정권과의 관계를 유지했으나, 북한산 송이버섯 부정 수입 혐의로 논란이 된 인물이다. -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의장 -
한덕수 (1907년)
한덕수는 대한제국 출생 재일 한국인으로, 조총련 초대 의장을 지냈으며,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 참여, 해방 후 조총련 결성 주도, 북한 정권과 긴밀한 관계 유지 등의 활동을 했다. -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
조선로동당
조선로동당은 1945년 평양에서 창당되어 김일성이 북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위원장으로 추대된 후 여러 정당과의 통합을 거쳐 현재의 명칭을 갖게 되었으며, 주체사상을 유일 지도 이념으로 하여 북한 사회의 모든 분야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
조선신보
조선신보는 조총련 중앙의 기관지로, 재일 조선인 사회 소식과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를 다루며 김정남 암살 사건 등 국제 이슈에 대해 북한 시각을 반영하고 대한민국과 미국 언론 보도를 비판하는 논조를 보인다. -
조선로동당의 정치인 -
박태원 (1909년)
박태원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소설가로, 모더니즘 소설을 주로 썼으며,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동하다 사망했다. -
조선로동당의 정치인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2. 생애
경상북도 경주시 출신으로,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1955년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선총련) 결성에 참여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조선총련 내에서 여러 주요 직책을 거쳐 1998년 제1부의장에 올랐으며, 2001년에는 한덕수의 뒤를 이어 중앙상임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2012년 심부전으로 사망하였고, 유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의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2.1. 초기 생애 및 조선총련 활동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태어났다.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1955년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선총련) 결성에 참여하였다.
1968년에는 조선총련 히로시마현 본부 위원장을 맡았고, 1973년에는 중앙상임위원회 조직국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중앙위원회 사무총국을 거쳐 1983년 중앙위원회 부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98년에는 제1부의장에 올랐다.
2.2. 조선총련 의장 활동
2001년 5월, 같은 해 2월에 병사한 한덕수의 후임으로 중앙상임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의장 취임 후에는 북일 정상회담의 실현에 관여하였다. 2006년 5월 17일에는 오랫동안 대립 관계에 있던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화해하여 공동 성명을 발표했지만, 같은 해 7월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을 이유로 화해는 파기되었다. 이는 북한의 도발적인 행동이 남북 화해 및 재일동포 사회 통합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012년 2월 19일, 심부전으로 인해 도쿄도 내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2월 25일에 거행된 장례식에는 약 600명이 참석했으며, 북한의 김정은 최고지도자로부터 조화가 전달되었고, 과거 북일 정상회담의 상대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내각총리대신으로부터 조전이 보내졌다. 또한, 일본공산당에서는 시이 가즈오 위원장의 조전과 함께 이치다 타다요시 서기국장이 직접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의 유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옮겨져, 조선인민군 의장대의 조총 발사 등 예우 속에서 평양의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