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문헌서원
1. 개요
서천 문헌서원은 고려 후기 학자 이곡과 이색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1594년에 처음 세워졌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1610년에 재건되었다. 사액서원으로 지정되어 이종학, 이자, 이개 등을 추가로 배향했으나,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 이후 1969년에 현재 위치에 다시 건립되어 이곡, 이색을 비롯한 여섯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관련 문화재로는 이색 초상(보물 제1215호), 가정목은선생문집판(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7호), 서천 이색 신도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7호), 서천 한산이씨 계미보책판(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6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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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 | 문화재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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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 번호 | 125 |
| 지정일 | 1984년 5월 17일 |
| 주소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서원로172번길 66 (영모리) |
| 시대 | 조선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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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군의 문화유산 -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 숲
충청남도 서천군 마량리에 위치한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군락지로, 다양한 상록활엽수와 함께 자생하며 따뜻한 기후대의 식생을 보여주는 중요한 생태적 가치를 지니고 식물지리학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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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남산성
서천 남산성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 세종 때까지 서천의 관아가 위치했던 석축산성으로, 백제 시대 축조된 성을 수축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 멸망 당시 부녀자들의 전설과 서천 남산놀이가 전해지고, 운은산 봉수대가 설치되어 통신망 역할을 수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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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돈암서원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1634년에 건립된 논산 돈암서원은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서원 중 하나로, 김집, 송준길, 송시열이 추가로 배향되었으며 응도당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재가 지정,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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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현서원 유적
충현서원 유적은 조선 시대 학자 서기가 주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 후 복원되었고 여러 학자를 배향하며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 1976년 복원되어 사당, 재실, 비석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매년 제향을 지낸다. -
서천군의 건축물 -
판교역 (서천)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에 위치한 판교역(서천)은 1930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2008년 장항선 이설과 함께 현재 위치로 이전, 2면 4선의 쌍섬식 승강장에서 무궁화호가 운행되는 장항선의 철도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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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역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에 위치한 장항역은 1930년 개업 후 2008년 이전되었으며, ITX-새마을호, 무궁화호, 서해금빛열차가 정차하는 2면 4선의 고가 섬식 승강장을 갖춘 한국철도공사의 철도역이다.
2. 역사
가정 이곡과 목은 이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594년(선조 27년)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610년(광해군 2년) 한산고촌으로 이전하여 재건되었고, 이듬해 사액서원이 되었다. 이종학, 이자, 이개 등을 추가로 모셨다. 1871년(고종 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처음 서원이 있던 곳에 단을 만들고 분향해 오다가 1969년 현재 위치에 복원되었고, 이종덕을 추가하여 여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2.1. 건립과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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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이곡(1298∼1351)과 목은 이색(1328∼1396)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곡은 고려 후기 학자로서 이색의 아버지이다.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여 실력을 인정받았고, 문명을 떨쳤다.
이색은 고려 후기 문신이며 학자이다. 원·명교체기에 친명정책을 지지하였고, 유교의 입장에서 불교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권근, 김종직, 변계량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다.
문헌서원은 1594년(선조 27년)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그 뒤 1610년(광해군 2년)에 한산고촌으로 옮겨 다시 세웠으며, 이듬해에 나라에서 '문헌'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고 인재 이종학, 음애 이자, 배옥헌 이개 등을 추가로 모시게 되었다. 1871년(고종 8년)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
그 후에도 처음 문헌서원이 있던 곳에 단(壇)을 만들고 분향해 오다가 1969년 지금 있는 자리에 다시 짓고 문양공 이종덕 한 분을 더하여 여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2.2. 재건과 사액
이곡과 이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조선 선조 27년(1594년)에 서원을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그 뒤 광해군 2년(1610년)에 한산고촌으로 옮겨 다시 세웠다. 이듬해에 나라에서 문헌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고 이종학, 이자, 이개 등을 추가로 모시게 되었다. 고종 8년(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
이곡은 고려 후기 학자로서 이색의 아버지이다.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여 실력을 인정받았고, 문명을 떨쳤다. 이색은 고려 후기 문신이며 학자이다. 원·명교체기에 친명정책을 지지하였고, 유교의 입장에서 불교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권근, 김종직, 변계량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다.
그 후에도 처음 문헌서원이 있던 곳에 단(壇)을 만들고 분향해 오다가 1969년 지금 있는 자리에 다시 짓고 이종덕 한 분을 더하여 여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2.3. 훼철과 복원
고려 후기 학자 가정 이곡(1298∼1351)과 목은 이색(1328∼1396)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594년(선조 27년)에 서원을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그 뒤 1610년(광해군 2년)에 한산고촌으로 옮겨 다시 세웠으며, 1611년에는 나라에서 문헌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고 인재 이종학·음애 이자·배옥헌 이개 등을 추가로 모시게 되었다. 1871년(고종 8년)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
이후에도 처음 문헌서원이 있던 곳에 단(壇)을 만들고 분향해 오다가 1969년 지금 있는 자리에 다시 짓고 문양공 이종덕 한 분을 더하여 여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3. 제향 인물
이곡과 이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서원을 세웠다. 이곡은 이색의 아버지로, 원나라 과거에 급제하여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색은 원·명 교체기에 친명정책을 지지한 학자로, 그의 문하에서 권근, 김종직, 변계량 등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룬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조선 선조 때 사액서원이 되면서 이종학, 이자, 이개를 추가로 모셨고, 1969년 이종덕을 추가하여 모두 여섯 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3.1. 이곡 (李穀, 1298~1351)
가정 이곡(李穀, 1298~1351)은 고려 후기의 학자로서 이색의 아버지이다.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여 실력을 인정받았고, 문명을 떨쳤다.
3.2. 이색 (李穡, 1328~1396)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이다. 원·명 교체기에 친명정책을 지지하였고, 유교의 입장에서 불교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권근, 김종직, 변계량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다.
4. 관련 문화재
문헌서원 관련 문화재로는 이색 초상(보물), 가정목은선생문집판과 서천 한산이씨 계미보책판(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서천 이색 신도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가 있다.
4.2. 가정목은선생문집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7호)
이색의 문집을 새긴 목판이다.
4.3. 서천 이색 신도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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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군의 문화재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7호이다.
4.4. 서천 한산이씨 계미보책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6호)
서천 한산이씨 계미보책판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6호이다.
5. 현대의 문헌서원
가정 이곡(1298∼1351)과 목은 이색(1328∼1396)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곡은 고려 후기 학자로서 이색의 아버지이다.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여 실력을 인정받았고, 문명을 떨쳤다. 이색은 고려 후기 문신이며 학자이다. 원·명교체기에 친명정책을 지지하였고, 유교의 입장에서 불교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권근, 김종직, 변계량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다.
문헌서원은 조선 선조 27년(1594)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그 뒤 광해군 2년(1610)에 한산고촌으로 옮겨 다시 세웠다. 이듬해에 나라에서 문헌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고 인재 이종학·음애 이자·배옥헌 이개 등을 추가로 모시게 되었다. 고종 8년(1871)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
그 후에도 처음 문헌서원이 있던 곳에 단(壇)을 만들고 분향해 오다가 1969년 지금 있는 자리에 다시 짓고 문양공 이종덕 한 분을 더하여 여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