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형 (14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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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형은 1434년에 출생하여 1451년 무과에 급제한 조선의 무신이다. 세조 즉위에 공을 세워 원종공신으로 책봉되었고,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정충적개공신에, 성종 즉위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에 각각 책봉되었다. 한성부윤, 황해도관찰사,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했으며, 24년간 당상관으로 재직했다. 1479년 사망하여 좌찬성으로 추증되었고, '평양'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선형은 1434년(세종 16년)에 출생하여 1451년(문종 1년) 18세의 나이로 증광시 무과에 급제했다.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언급된 기록만 104건이 나올 만큼 수많은 관직을 거쳤다. 1455년(세조 원년) 12월 경흥부사(종3품), 판사(종3품)로서 ‘세조’ 즉위에 공이 있다고 하여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2. 생애
1456년 3월 경상좌도수군처치사(정3품, 경상도 부산 동래지역 해군 전단장), 안주목사(정3품), 한성부윤(종2품, 서울특별시 부시장), 판종성부사를 역임했다. 1459년 8월에는 상호군(정3품, 수도방위사령부 여단장) 직책으로, ‘세조’임금이 “나의 장자방”이라고 부르던 ‘도체찰사(정1품, 왕명에 따른 국정의 총책임자)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근접경호를 책임지면서 그의 측근이 되었다. 1460년 10월 회령부사 겸 병마절제사(종2품, 함경도 회령 시장 겸 군단장), 1463년 4월 인수부윤(왕실 재산 관리자)을 거쳐, 1464년 1월에는 중추원부사, 4월에는 한성부윤으로 다시 임명되었다.
1465년(세조 11년) 1월 경상도제언순찰사로 임명되어 경상북도 경주의 북천(北川)에 새로운 수로(하천 물길)를 건설했다. 1466년 6월 의주목사 겸 절제사(평안도 의주 시장 겸 군단장)가 되었다. 1467년 1월, 무장(군인)이지만 성품이 청렴하고 대쪽 같다는 어명과 함께 문관으로만 임명되던 황해도관찰사(종2품, 황해도 도지사)가 되었다.
2. 1. 출생과 초기 관직
선형은 1434년(세종 16년)에 출생하여 1451년(문종 1년) 18세의 나이로 증광시 무과에 급제했다.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언급된 기록만 104건이 나올 만큼 수많은 관직을 거쳤다. 1455년(세조 원년) 12월 경흥부사(종3품), 판사(종3품)로서 ‘세조’ 즉위에 공이 있다고 하여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1456년 3월 경상좌도수군처치사(정3품, 경상도 부산 동래지역 해군 전단장), 안주목사(정3품), 한성부윤(종2품, 서울특별시 부시장), 판종성부사를 역임했다. 1459년 8월에는 상호군(정3품, 수도방위사령부 여단장) 직책으로, ‘세조’임금이 “나의 장자방”이라고 부르던 ‘도체찰사(정1품, 왕명에 따른 국정의 총책임자)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근접경호를 책임지면서 그의 측근이 되었다. 1460년 10월 회령부사 겸 병마절제사(종2품, 함경도 회령 시장 겸 군단장), 1463년 4월 인수부윤(왕실 재산 관리자)을 거쳐, 1464년 1월에는 중추원부사, 4월에는 한성부윤으로 다시 임명되었다.
1465년(세조 11년) 1월 경상도제언순찰사로 임명되어 경상북도 경주의 북천(北川)에 새로운 수로(하천 물길)를 건설했다. 1466년 6월 의주목사 겸 절제사(평안도 의주 시장 겸 군단장)가 되었다. 1467년 1월, 무장(군인)이지만 성품이 청렴하고 대쪽 같다는 어명과 함께 문관으로만 임명되던 황해도관찰사(종2품, 황해도 도지사)가 되었다.
2. 2. 한명회와의 관계와 주요 관직 역임
선형은 1434년(세종 16년)에 태어나 1451년(문종 1년) 18세의 나이로 증광시 무과에 급제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104건이나 나올 만큼 수많은 관직을 거쳤다. 1459년 8월 상호군(정3품) 직책으로 도체찰사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근접 경호를 책임지면서 그의 측근이 되었다. 한명회는 세조가 "나의 장자방"이라고 부르던 인물이다.
1455년(세조 원년) 경흥부사(종3품), 판사(종3품)로서 세조 즉위에 공을 세워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1456년 경상좌도수군처치사(정3품), 안주목사(정3품), 한성부윤(종2품), 판종성부사를 역임했다. 1460년 회령부사 겸 병마절제사(종2품), 1463년 인수부윤, 1464년 중추원부사, 한성부윤을 거쳤다. 1465년(세조 11년) 경상도제언순찰사로 임명되어 경주 북천에 새로운 수로를 건설했고, 1466년 의주목사 겸 절제사가 되었다. 1467년 1월에는 무관 출신임에도 황해도관찰사(종2품)에 임명되었다.
1467년 7월 형조참판(종2품)으로서 이시애의 난 평정에 큰 공을 세워 정충적개공신 3등에 책봉되고, 황해도병마수군절도사(종2품)에 임명됨과 동시에 자헌대부(정2품) 유성군으로 봉해졌다. 1470년(성종 1년) 경기도관찰사(종2품)가 되었고, 1471년 성종 즉위에 공이 있어 좌리공신 4등에 책봉되었다. 충청도관찰사, 영안북도절도사를 거쳐 1472년 정헌대부(정2품) 유성군으로 품계가 올랐다. 1477년 지중추부사(정2품)가 되었다.
1479년 1월 13일 별세하여 예조장으로 장례를 치렀고, 좌찬성(종1품)으로 추증되었으며, '평양'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정여창이 선평양공 행장을 지어 추모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선형이 무략이 있고 경서와 역사에 정통했으며 청렴 검소하고 백성들에게 위엄과 은혜를 베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숙주는 보한재집에 선형 장군과 관련된 시 2개를 남겼다.
선형은 정2품 상계 정헌대부에 오르고 공신 칭호를 3번 받았으며, 유성군으로 봉해지고, 별세 후 좌찬성을 거쳐 우의정(정1품)으로 추증되었다. 세조와 성종의 신임 속에 24년간 당상관을 역임했다. 왕실과의 관계도 좋아 세조의 증손녀와 선형의 증손자가 혼인하기도 했다.
2. 3. 이시애의 난 평정과 공신 책봉
선형은 1467년(세조 13년)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키자 형조참판(刑曹參判, 종2품, 법무부 차관)으로서 오자경(吳子慶)·한계미(韓繼美) 등과 함께 각각 1천여 군졸을 이끌고 진압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정충적개공신(精忠敵愾功臣) 3등에 책봉되었고, 황해도 병마수군절도사(종2품, 황해도 군단장 겸 해군 전단장)에 임명되었으며, 자헌대부(資憲大夫, 정2품, 장관급) 유성군(楡城君)으로 봉해졌다. '이시애의 난' 당시 선형은 선군(船軍, 해군) 동원을 적극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471년(성종 2년)에는 성종 즉위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봉되었다.
2. 4. 성종 시대의 활동과 사망
선형은 1434년(세종 16년)에 태어나 1451년(문종 1년) 18세에 증광시 무과에 급제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104건이나 나올 정도로 여러 관직을 거쳤다. 1455년(세조 원년) 경흥부사, 판사로서 세조 즉위에 공을 세워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1456년 경상좌도수군처치사, 안주목사, 한성부윤, 판종성부사를 역임했다. 1459년 상호군으로서 한명회의 경호를 맡으며 그의 측근이 되었다. 1460년 회령부사 겸 병마절제사, 1463년 인수부윤, 1464년 중추원부사와 한성부윤을 역임했다. 1465년(세조 11년) 경상도제언순찰사로 임명되어 경주 북천에 새로운 수로를 건설했다.
1466년 의주목사 겸 절제사가 되었고, 1467년 1월 문관으로만 임명되던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다. 같은 해 5월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선군 동원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7월 형조참판으로서 오자경, 한계미 등과 함께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정충적개공신 3등에 책봉되고, 황해도병마수군절도사 및 자헌대부 유성군으로 봉해졌다.
1470년(성종 1년) 경기도관찰사가 되었고, 1471년 성종 즉위 공으로 좌리공신 4등에 책봉되었다. 충청도관찰사, 영안북도절도사를 거쳐 1472년 정헌대부 유성군으로 품계가 올랐다. 1477년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479년 1월 13일 별세하여 예조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좌찬성으로 추증되고 평양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유성군으로 봉해질 때 받은 서울대 교수아파트 뒷산에 안장되었다. 정여창이 선평양공 행장을 지어 추모했다. 신숙주는 보한재집에 선형 장군과 관련된 시 2개를 남겼다.
선형은 정2품 상계 정헌대부에 올랐고, 공신 칭호를 3번 받았으며, 유성군으로 봉해졌다. 사후 좌찬성(종1품)을 거쳐 우의정(정1품)으로 추증되었다. 세조와 성종의 신임 속에 45년간의 짧은 생애 동안 24년간 당상관을 역임했다. 왕실과의 관계도 좋아 세조의 증손녀와 선형의 증손자가 혼인하기도 했다. 경기도 고양시 강매동 영모재에서 불천위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전남 보성군 오충사, 경기도 고양시 오충사, 전남 장흥군 포충사에서도 춘추로 제사를 지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선형이 무략이 있고 경서와 역사에 정통했으며, 청렴 검소하며 백성들에게 위엄과 은혜를 베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3. 평가 및 추모
3. 1. 당대 평가
3. 2. 후대 평가
3. 3. 추모 사업
4. 가계
5. 관련 유물 및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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