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구
1. 개요
설구는 전한 초기의 인물로, 사인으로서 종군하여 장군으로 활약하며 항우와 종리말을 공격한 공로로 광평후에 봉해졌다. 고제의 명으로 왕흡과 함께 왕릉과 연합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대홍려를 역임했다. 혜제 7년에 사망했으며, 시호는 경(敬)이며 작위는 아들 설산이 이었다.
-
기원전 188년 사망 -
주진
주진은 고조를 도와 거병하여 공을 세워 도창후에 봉해진 인물로, 고제를 따라 종군하며 공을 세웠고 혜제 8년에 사망하여 장(莊)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고조공신 중 23위로 기록되었다. -
기원전 188년 사망 -
전한 혜제
전한 혜제는 고조 유방과 여태후의 적자로 태어나 전한의 제2대 황제에 즉위했으나, 여태후의 섭정으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정치에 뜻을 잃어 국정을 소홀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설구는 사인(舍人)으로서 풍(豊) 땅에서부터 종군하여 패상(霸上)에 이르렀다. 낭중(郞中)이 되어 한나라로 들어가고, 장군이 되어 항우와 종리말을 친 공으로 고제 6년(기원전 202년) 12월 갑신일에 광평후에 봉해지고 식읍 4,500호를 받았다.
고제 원년(기원전 206년), 고제의 명령으로 장군으로서 왕흡과 함께 관문을 나가 남양군에서 독자적 세력을 이끄는 왕릉과 합류하여 패에 있는 태공과 여후를 맞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항우가 이를 듣고 양가에서 저지하게 해 더 나아가지 못했다. 고제 5년(기원전 202년), 전객이 됐다.
혜제 7년(기원전 188)에 죽으니 시호를 경(敬)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설산이 이었다.
2.1. 초기 활동
설구는 사인(舍人)으로서 풍(豊) 땅에서부터 종군하여 패상(霸上)에 이르렀다. 낭중(郞中)이 되어 한나라로 들어가고, 장군이 되어 항우와 종리말을 친 공으로 고제 6년(기원전 202년) 12월 갑신일에 광평후에 봉해지고 식읍 4,500호를 받았다.
고제 원년(기원전 206년), 고제의 명령으로 장군으로서 왕흡과 함께 관문을 나가 남양군에서 독자적 세력을 이끄는 왕릉과 합류하여 패에 있는 태공과 여후를 맞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항우가 이를 듣고 양가에서 저지하게 해 더 나아가지 못했다. 고제 5년(기원전 202년), 전객이 됐다.
혜제 7년(기원전 188)에 죽으니 시호를 경(敬)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설산이 이었다.
2.2. 광평후 책봉
설구는 사인(舍人)으로서 풍(豊) 땅에서부터 종군하여 패상(霸上)에 이르렀다. 낭중(郞中)이 되어 한나라로 들어가고, 장군이 되어 항우와 종리말을 친 공으로 고제 6년(기원전 202년) 12월 갑신일에 광평후에 봉해지고 식읍 4,500호를 받았다.
고제 원년(기원전 206년), 고제의 명령으로 장군으로서 왕흡과 함께 관문을 나가 남양군에서 독자적 세력을 이끄는 왕릉과 합류하여 패에 있는 태공과 여후를 맞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항우가 이를 듣고 양가에서 저지하게 해 더 나아가지 못했다. 고제 5년(기원전 202년), 전객이 됐다.
2.3. 왕릉과의 연합 시도
2.4. 대홍려 역임
설구는 사인(舍人)으로서 풍(豊) 땅에서부터 종군하여 패상(霸上)에 이르렀다. 낭중(郞中)이 되어 한나라로 들어가고, 장군이 되어 항우와 종리말을 친 공으로 고제 6년(기원전 202년) 12월 갑신일에 광평후에 봉해지고 식읍 4,500호를 받았다.
고제 원년(기원전 206년), 고제의 명령으로 장군으로서 왕흡과 함께 관문을 나가 남양군에서 독자적 세력을 이끄는 왕릉과 합류하여 패에 있는 태공과 여후를 맞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항우가 이를 듣고 양가에서 저지하게 해 더 나아가지 못했다. 고제 5년(기원전 202년), 전객이 됐다.
혜제 7년(기원전 188년)에 죽으니 시호를 경(敬)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설산이 이었다.
2.5. 사망과 시호
사인(舍人)으로서 풍(豊) 땅에서부터 종군하여 패상(霸上)에 이르렀다. 낭중(郞中)이 되어 한나라로 들어가고, 장군이 되어 항우와 종리말을 친 공으로 고제 6년(기원전 202년) 12월 갑신일에 광평후에 봉해지고 식읍 4,500호를 받았다.
고제 원년(기원전 206년), 고제의 명령으로 장군으로서 왕흡과 함께 관문을 나가 남양군에서 독자적 세력을 이끄는 왕릉과 합류하여 패에 있는 태공과 여후를 맞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항우가 이를 듣고 양가에서 저지하게 해 더 나아가지 못했다. 고제 5년(기원전 202년), 전객이 됐다.
혜제 7년(기원전 188)에 죽으니 시호를 경(敬)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설산이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