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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말말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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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속말말갈은 발해 건국 이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연합하여 당나라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세력이다. 당나라에 숙위로 들어간 돌지계, 당나라 장수 이근행,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 대조영의 아버지 걸걸중상 등이 속말말갈과 관련된 인물이다. 696년 거란의 반란을 틈타 걸걸중상과 걸사비우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하여 백두산 동북 지역에 할거했으나, 당나라의 공격으로 걸걸중상과 걸사비우는 사망했다. 이후 대조영은 진국을 건국하고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당나라와는 아들을 입시시키는 등 관계를 맺었으며, 당 예종 대에 발해군왕으로 책봉된 이후에는 발해로 칭해졌다.

2. 속말말갈 지도자

발해 건국 이전 속말말갈의 주요 지도자로는 돌지계, 이근행, 대조영, 사리걸걸중상 등이 있었다. 대조영은 고구려가 멸망하자 가족을 이끌고 영주로 이주했다.[1]

696년, 거란이진충, 손만영이 반란을 일으키자, 걸걸중상걸사비우와 함께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했다.[1] 무측천은 이들을 회유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이해고를 보내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걸사비우와 걸걸중상은 참수되었고, 대조영은 남은 무리를 이끌고 진국을 건국했다.[1]

2. 1. 속말말갈의 주요 지도자


  • 돌지계
  • 이근행
  • 대조영: 발해 건국자. 고구려에 속해 있던 속말말갈이었으며, 고구려 멸망 후 가족을 이끌고 영주로 이주했다.[1] 만세통천 원년(696년), 거란 수령 이진충, 손만영의 반란으로 영주가 함락되고, 돌궐 묵철 가한이 주나라에 거란 토벌을 요청하여 대파했을 때, 걸걸중상은 말갈 추장 걸사비우와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동쪽으로 도망쳤다.[1] 무측천은 걸사비우를 허국공, 걸걸중상을 진국공으로 삼아 죄를 사면하려 했으나, 걸사비우가 따르지 않아 이해고 등이 공격하여 걸사비우와 걸걸중상을 참수했다.[1] 걸걸중상의 아들 대조영은 남은 무리를 이끌고 도주, 이해고의 추격을 뿌리치고 진국을 건국하여 스스로 진국왕이라 칭하고 돌궐에 신종했다.[1] 당 중종 (재위: 683년 - 684년, 705년 - 710년) 시대에 아들을 당나라에 보내 입시하게 했고, 당 예종 선천 중기(712년 - 713년)에 당나라는 대조영에게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을 하사했다.[1]
  • 사리걸걸중상: 걸사비우와 함께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도망쳐 요수를 건너 백두산 동북 지역에 할거했다.[1] 무측천에게 진국공으로 봉해졌으나, 이해고에게 참수되었다.[1]

3. 발해 건국 과정

발해 건국자인 대조영은 고구려에 속해 있던 속말말갈인이었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대조영은 가족을 이끌고 영주로 이주했다.[1]

696년, 영주에서 거란이진충손만영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걸걸중상걸사비우가 봉기하였으나 실패하고,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하여 진국을 건국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하위 섹션들에 자세히 나와 있다.

3. 1. 영주에서의 혼란

만세통천 원년(696년) 거란의 수령 이진충, 손만영이 반란을 일으켜 영주를 함락시켰다.[1] 이로 인해 돌궐의 가한 아사나묵철은 주나라에 거란 토벌을 요청하여 이들을 크게 무찔렀다.[1]

3. 2. 걸걸중상과 걸사비우의 봉기

만세통천 원년(696년), 거란 수령인 이진충손만영이 반란을 일으켜 영주를 함락시키자, 돌궐 가한 아사나묵철은 주나라에 거란 토벌을 요청하여 이를 대파했다. 이때, 사리(舍利)의 걸걸중상은 말갈 추장 걸사비우와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동쪽으로 도망쳐 요수를 건너 태백산(백두산) 동북 지역에 할거했다.[1] 무측천은 걸사비우를 허국공, 걸걸중상을 진국공으로 삼아 죄를 사면했지만, 걸사비우가 명령을 따르지 않자 옥검위대장군 이해고, 중랑장 색구를 보내 공격하게 했다.[1] 걸사비우와 걸걸중상은 참수되었고, 걸걸중상의 아들 대조영은 남은 무리를 이끌고 도주했다.[1] 이해고는 대조영 등을 추격했지만, 대조영이 고구려, 말갈 군사를 사용하여 반격해오자 패배했다.[1]

3. 3. 대조영의 진국 건국

만세통천 원년(696년), 거란 수령인 이진충, 손만영이 반란을 일으켜 영주를 함락시키자, 돌궐 가한인 아사나묵철은 주나라에 거란 토벌을 요청하여 이를 대파했다. 이 때, 사리(舍利)의 걸걸중상이라는 인물은 말갈 추장 걸사비우와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동쪽으로 도망쳐 요수를 건너 태백산(백두산)의 동북 지역에 할거했다. 무측천은 처음 걸사비우를 허국공으로, 걸걸중상을 진국공으로 삼아 그 죄를 사면했지만, 걸사비우가 그 명령을 따르지 않자 옥검위대장군 이해고, 중랑장 색구를 보내 공격하게 했다. 걸사비우와 걸걸중상은 참수되었고, 걸걸중상의 아들인 대조영은 남은 무리를 이끌고 도주했다. 이해고는 대조영 등을 추격했지만, 대조영이 고구려, 말갈 군사를 사용하여 반격해오자 패배했다.[1]

당시 거란이 돌궐에 붙어 중국과 말갈 사이의 길을 막았기 때문에 주나라는 다시 대조영을 토벌할 수 없게 되었다. 대조영은 걸사비우의 무리를 병합하고, 중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점을 이용하여 진국을 건국하고 스스로를 진국왕이라 칭하며 돌궐에 신종했다. 또한 부여, 옥저, 변한 등의 여러 국가를 지배하에 두었다.[1]

3. 4. 당나라와의 관계

당 중종(재위: 683년 - 684년, 705년 - 710년) 시대에 대조영은 아들을 당나라에 보내 입시했다.[1] 당 예종의 선천 중기(712년 - 713년)에 당나라는 대조영에게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을 하사했다.[1] 이 즈음부터 대조영은 말갈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주로 발해라고 칭하게 되었다.[1]

참조

[1] 서적 新唐書列伝第一百四十四 北狄
[2] 서적 북사
[3] 서적 太平寰宇記
[4] 서적 太平寰宇記
[5] 서적 통지
[6] 서적 신당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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