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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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송문화는 일제강점기에 친일 행위를 한 인물로, 한성부 출신이며 도지사를 지낸 송문헌의 형제이다. 관립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직 생활을 시작하여 경기도 학무과 서기를 거쳐 조선총독부 군수로 임명되었다. 강화군, 광주군, 양주군 군수를 역임하고 평안북도 참여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중일 전쟁 시기 군수 물자 공출에 협력하고 창씨개명했으며, 한국 전쟁 중 실종되어 납북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송문화
기본 정보
이름 (한글)송문화
이름 (한자)宋文華
이름 (로마자 표기)Song Mun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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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송문화는 한성부 출신으로, 1910년 관립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1920년 경기도 학무과 서기로 관직에 들어선 후, 1924년부터 조선총독부 군수로 승진하여 강화군, 광주군, 양주군 군수를 역임했다. 1931년 훈6등 서보장을 받았으며, 1935년에는 훈6등 종6위에 올랐다. 1941년 중추원 참의까지 역임하였다. 1937년 개성부윤으로 임명되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개성지부 이사장, 조선방공협회 개성지부 평의원 등을 역임하며 중일 전쟁의 각종 군수 물자 공출에 협력했고, 1940년 창씨개명했다.

한국 전쟁 중인 1950년에 실종되었으며, 납북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후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교직 경력

한성부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도지사까지 지낸 고위 관료 송문헌과 형제 사이이다. 1886년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1910년 관립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하동공립보통학교 부훈도로 임명되어 교직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 성주공립보통학교 훈도, 1914년 이천공립보통학교 훈도를 지냈으며, 1920년 경기도 학무과 서기로 관직에 들어섰다. 하동공립보통학교, 성주공립보통학교 등에서 판임관 4등인 부훈도로 근무했다.

2.2. 조선총독부 관료 경력

1920년 경기도 학무과 서기로 관직에 들어섰다. 1924년 조선총독부 군수로 승진, 강화군, 광주군, 양주군 군수를 차례로 지냈다. 1931년 훈6등 서보장을 받았고, 1935년 기준 훈6등 종6위에 서위되었다. 이후 평안북도 참여관을 거쳐 1941년 중추원 참의에 올랐다. 1940년 창씨개명했다. 1941년 평안북도 참여관 겸 산업부장으로 전임되었다. 1942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임명되어 임시지원병제 익찬위원회 위원 등을 겸임하며, 1945년 광복 때까지 재임했다.

2.3. 광복 이후

한국 전쟁 중인 1950년에 실종되어 종적을 알 수 없다. 납북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중추원과 도 참여관, 조선총독부 사무관 세 분야에 수록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중추원과 관료 부문에도 선정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3. 친일 행적 및 평가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중추원과 도 참여관, 조선총독부 사무관의 세 분야에 수록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서도 중추원과 관료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4. 형제

송문헌과 형제 사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