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권씨 (단종)
1. 개요
숙의 권씨는 단종의 후궁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1454년 단종의 왕비 간택에서 탈락한 후 후궁으로 입궁했으나, 아버지 권완이 단종 복위 모의에 연루되어 능지처참을 당하면서 공신의 노비가 되었다. 1464년에 방면된 후 중종 연간까지 생존했으며, 충청도 보은 등지에서 궁핍한 생활을 했다.
| 이름 | 숙의 권씨 |
|---|---|
| 작위 | 후궁 (숙의) |
| 별칭 | 법명 혜경 |
| 배우자 | 단종 |
| 자녀 | 없음 |
| 휘 | 권중비 |
| 왕조 | 조선 |
| 아버지 | 권완 |
| 어머니 | 미상 |
| 출생일 | 미상 |
| 출생지 | 조선 |
| 사망지 | 미상 |
| 사망일 | 1519년 이후 |
| 사망 원인 | 병사 |
| 국적 | 조선 |
-
조선 단종 -
계유정난
계유정난은 1453년 수양대군이 황보인, 김종서 등의 고명대신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으로, 수양대군이 권력을 장악하여 왕위에 오르고 훈구파의 권력 독점을 야기하며 조선의 정치 구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조선 단종 -
김종서 (1383년)
김종서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무신, 학자로, 육진을 개척하고 국경을 확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문신으로서도 활약했으나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에게 살해되었다. -
조선의 후궁 -
숙의 나씨 (중종)
조선 중종의 후궁인 숙의 나씨는 나주 나씨로, 중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26세에 출산 중 사망하여 경빈 박씨와의 관계 속에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그녀의 묘는 이천시의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
조선의 후궁 -
숙의 방씨
숙의 방씨는 철종의 후궁으로 두 딸을 낳았으나 모두 요절하였고, 사후 조귀인의 예에 따라 장례를 치렀으며 묘는 서삼릉 후궁 묘역으로 이장, 해당 묘역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드라마에서 묘사되기도 했다. -
조선 세조 -
윤곤
윤곤은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 건국 후 완산부윤, 대장군 등을 지냈고, 제2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을 도와 공신이 되었으며, 명나라 사신, 의정부 참찬, 이조판서를 역임한 문신, 무신, 정치인, 외교관이다. -
조선 세조 -
계유정난
계유정난은 1453년 수양대군이 황보인, 김종서 등의 고명대신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으로, 수양대군이 권력을 장악하여 왕위에 오르고 훈구파의 권력 독점을 야기하며 조선의 정치 구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숙의 권씨는 1454년(단종 2년) 정순왕후, 숙의 김씨와 함께 단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었으나, 아버지 권완이 단종 복위 모의에 가담하여 처형당하면서 친정이 몰락하는 비극을 겪었다. 이후 공신의 노비가 되었다가 1464년(세조 10년)에 방면되었으나, 일족인 권람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궁핍한 생활을 했다. 중종 연간까지 생존했으며, 1519년(중종 14년)부터 충청도관찰사의 청으로 구휼을 받았다. 단종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다.
2.1. 입궁과 후궁 시절 (1454년)
1454년(단종 2년) 음력 1월 8일 효령대군, 수양대군을 비롯한 여러 종친들에 의해 창덕궁에서 열린 단종의 왕비 간택에 참여하여 삼간택에 올랐다. 음력 1월 10일 함께 삼간택에 올랐던 송현수의 딸이 왕비(정순왕후)로 정해지면서 권씨와 또 다른 삼간택 후보 김사우의 딸은 단종의 후궁(숙의 김씨)이 되었다. 이후 대사헌 권준의 집에서 거처하다가 음력 1월 24일 정순왕후, 숙의 김씨와 함께 입궁하였다.
2.2. 단종 폐위와 가문의 몰락 (1457년)
권씨의 아버지 권완은 세조 즉위 후에도 한양에서 관직을 지냈는데, 여러 대신들이 권완을 탄핵하였으나 세조는 공신이라는 이유로 탄핵을 윤허하지 않았다. 그러나 1457년(세조 3년) 음력 6월 21일, 권완은 정순왕후의 아버지 송현수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꾀했다는 혐의로 의금부에 하옥되었고,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 결국 권완은 같은 해 음력 7월 15일에 능지처참을 당하고 가산이 적몰되었다.
한편, 권씨는 친정이 역모죄로 몰락하면서 공신의 노비가 되었다가 1464년(세조 10년) 음력 4월 18일에야 방면되었다. 당시 권신 권람은 권씨의 일족이었는데, 권씨의 노비와 땅을 모두 차지하고 권씨에게는 조금도 나눠주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2.3. 방면 이후의 삶과 말년 (1464년 ~ 1519년 이후)
세조 때 권신 권람은 권씨의 일족이었으나, 권씨의 노비와 땅을 모두 차지하고 권씨에게는 조금도 나눠주지 않았다.
이후 권씨는 중종 연간까지 살았으며, 충청도 보은, 진천 등에서 지냈다. 보은에 있을 때에는 생활이 매우 궁핍하여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1519년(중종 14년) 음력 1월 26일 당시 충청도관찰사의 청으로 권씨 및 숙의 김씨에게 공물이 지급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같은 시기에 후궁이 되었던 김씨의 나이가 80세를 넘겼다는 기록으로 보아, 권씨 역시 연로했을 것으로 보인다. 단종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아버지 | 권완(權完) | |
| 시아버지 | 문종 | 조선 제5대 왕 |
| 시어머니 | 현덕왕후 | |
| 남편 | 단종 | 조선 제6대 왕 |
3.2. 시가
시아버지는 문종(1414~1452, 재위:1450~1452)이고, 시어머니는 현덕왕후(1418~1441)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