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대비
1. 개요
대왕대비는 조선 시대 국왕의 조모로서, 국왕에게 친권을 행사하며 때로는 수렴청정을 통해 실권을 장악했다.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부터 고종의 법적 어머니 신정왕후까지 존재했으며, 주로 왕비가 대비나 왕대비로 있다가 장수를 누려 대왕대비가 되었다. 어린 국왕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하거나, 방계 왕족을 왕위 계승자로 지명하는 등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순조 이후 자녀가 없는 국왕이 이어지면서, 대왕대비가 실권을 유지하기 위해 젊고 경험 없는 인물을 즉위시키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는 세도 정치로 이어져 조선의 근대화를 늦추는 결과를 낳았다.
2. 조선의 역대 대왕대비
조선시대에는 왕이 돌아가신 뒤 왕위를 이을 아들이나 손자가 없을 때, 왕실의 가장 높은 어른인 대왕대비가 왕위 계승자를 지명할 권한을 가졌다. 대왕대비는 주로 선왕의 왕비였으며, 왕의 할머니뻘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은 조선시대 역대 대왕대비 목록이다.
| 국왕 | 자격 (국왕과의 관계) | 대왕대비 | 존호 | 시호 | 배우자 | 본관 | 재위 기간 (음력/양력) | 능묘 |
|---|---|---|---|---|---|---|---|---|
| 성종 | 할머니 | 자성대왕대비 | 정희왕후 | 세조 | 파평 윤씨 | 1469년 11월 28일(12월 31일) ~ 1483년 3월 30일(5월 6일) | 광릉 | |
| 연산군 | 할머니 | 인수대왕대비 | 소혜왕후 | 덕종 | 청주 한씨 | 1494년 12월 29일(1495년 1월 25일) ~ 1504년 4월 27일(5월 11일) | 경릉 | |
| 선왕비 (작은 할머니) | 인혜대왕대비 | 안순왕후 | 예종 | 청주 한씨 | 1494년 12월 29일(1495년 1월 25일) ~ 1498년 12월 23일(1499년 2월 3일) | 창릉 | ||
| 명종 | 어머니 | 성렬대왕대비 | 문정왕후 | 중종 | 파평 윤씨 | 1545년 7월 6일(8월 12일) ~ 1565년 4월 6일(5월 5일) | 태릉 | |
| 인조 | 의붓 할머니 | 소성대왕대비 | 인목왕후 | 선조 | 연안 김씨 | 1624년 10월 7일(11월 17일) ~ 1632년 6월 28일(8월 13일) | 목릉 | |
| 현종 | 의붓 할머니 | 자의대왕대비 | 장렬왕후 | 인조 | 양주 조씨 | 1659년 5월 9일(6월 28일) ~ 1688년 8월 26일(9월 20일) | 휘릉 | |
| 숙종 | 의붓 증조할머니 | |||||||
| 영조 | 의붓 어머니 | 혜순대왕대비 | 인원왕후 | 숙종 | 경주 김씨 | 1724년 8월 30일(10월 16일) ~ 1757년 3월 26일(5월 13일) | 명릉 | |
| 순조 | 의붓 증조할머니 | 예순대왕대비 | 정순왕후 | 영조 | 경주 김씨 | 1800년 7월 4일(8월 23일) ~ 1805년 1월 12일(2월 11일) | 원릉 | |
| 헌종 | 할머니 | 명경대왕대비 | 순원왕후 | 순조 | 안동 김씨 | 1834년 11월 19일(12월 19일) ~ 1857년 8월 4일(9월 21일) | 인릉 | |
| 철종 | 법적 어머니 | |||||||
| 선왕비 (법적 형수) | 효유대왕대비 | 신정왕후 | 문조 | 풍양 조씨 | 1857년 8월 10일(9월 27일) ~ 1890년 4월 17일(6월 4일) | 수릉 | ||
| 고종 | 법적 어머니 |
대왕대비는 국왕의 친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어린 국왕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하기도 했다. 정희왕후, 문정왕후, 정순왕후, 순원왕후 등이 대표적이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젊은 나이에 사망하거나 자녀가 없는 국왕이 많아지면서, 방계에서 왕위를 잇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때 대왕대비는 자신의 친족을 왕으로 세워 권력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였고, 이는 세도 정치로 이어져 조선의 근대화를 늦추는 요인이 되었다. 안동 김씨와 경주 김씨 등이 대표적인 세도 정치 가문이다.
2.1. 정희왕후 (세조의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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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왕후는 조선 세조의 왕비이자 성종의 할머니이다. 1469년(성종 즉위년) 음력 11월 28일부터 1483년 음력 3월 30일까지 대왕대비였다. 수렴청정을 통해 어린 왕을 대신하여 권력을 행사한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다.
2.2. 소혜왕후 (덕종의 왕비)
1494년 12월 29일(1495년 1월 25일)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할머니로서 대왕대비가 되었으며, 인수대왕대비(仁粹大王大妃)로 불렸다. 1504년 4월 27일(5월 11일) 사망할 때까지 대왕대비로 있었다. 청주 한씨이며, 덕종의 왕비이자 소혜왕후이다. 능은 경릉이다.
2.3. 안순왕후 (예종의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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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혜대왕대비는 예종의 왕비인 안순왕후의 존호이다. 청주 한씨이다. 1494년 12월 29일(1495년 1월 25일)부터 1498년 12월 23일(1499년 2월 3일)까지 대왕대비로 재위했다. 연산군에게는 작은 할머니가 된다. 능은 창릉이다.
2.4. 문정왕후 (중종의 왕비)
명종의 어머니이자 중종의 왕비였다. 1545년 7월 6일(8월 12일)부터 1565년 4월 6일(5월 5일)까지 대왕대비로 재위하였다. 시호는 문정왕후(文定王后)이며, 존호는 성렬대왕대비(聖烈大王大妃)이다. 본관은 파평 윤씨이다. 능묘는 태릉이다. 어린 명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행하며 권력을 행사했다.
2.5. 인목왕후 (선조의 왕비)
인조의 의붓할머니인 인목왕후는 1624년 10월 7일(11월 17일)부터 1632년 6월 28일(8월 13일)까지 대왕대비로 있었다. 선조의 왕비였던 인목왕후의 본관은 연안 김씨이며, 목릉에 묻혔다.
2.6. 장렬왕후 (인조의 계비)
현종의 의붓 할머니이자, 숙종의 의붓 증조할머니이다. 인조의 계비였으며, 본관은 양주 조씨이다. 1659년 5월 9일(6월 28일)부터 1688년 8월 26일(9월 20일)까지 대왕대비로 있었다. 존호는 자의(慈懿)이며, 능묘는 휘릉이다.
2.7. 인원왕후 (숙종의 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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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왕후(仁元王后)는 숙종의 계비(繼妃)였다. 영조는 인원왕후를 의붓어머니로 모시고 대왕대비로 하였다. 인원왕후의 존호는 혜순(惠順)이다. 경주 김씨이며, 1724년 음력 8월 30일(10월 16일)부터 1757년 음력 3월 26일(5월 13일)까지 대왕대비로 있었다. 명릉에 묻혔다.
2.8. 정순왕후 (영조의 계비)
영조가 승하하고 정조가 즉위하면서 왕대비가 되었으나, 순조가 즉위하면서 대왕대비가 되었다. 본관은 경주 김씨이다.
정순왕후는 수렴청정을 행하며 권력을 잡았다.
2.9. 순원왕후 (순조의 왕비)
헌종 즉위 당시 순원왕후는 할머니였으며, 철종에게는 법적 어머니였다. 1834년 11월 19일(12월 19일)부터 1857년 8월 4일(9월 21일)까지 대왕대비로 있었다. 시호는 순원왕후(純元王后)이며, 순조의 왕비이다. 본관은 안동 김씨이다. 어린 국왕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행하며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순원왕후의 친족인 안동 김씨는 세도 정치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여 조선의 근대화를 늦추는 요인이 되었다.
2.10. 신정왕후 (효명세자의 왕비)
철종의 선왕비이자 고종의 법적 어머니는 신정왕후(효유대왕대비)였다. 신정왕후는 문조의 왕비이며, 풍양 조씨이다. 1857년 8월 10일(9월 27일)부터 1890년 4월 17일(6월 4일)까지 대왕대비로 재위하였으며, 수릉에 안장되었다.
3. 대왕대비의 정치적 영향력
대왕대비는 국왕의 조모로서 국왕에게 친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에, 때로는 국왕을 제치고 실권을 장악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왕비는 대비나 왕대비까지만 하고 사망하여, 장수를 누려 대왕대비가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 젊은 나이에 사망하거나 자녀가 없는 국왕이 늘어나면서, 방계에서 즉위하는 국왕 또한 증가했다.
방계 왕족을 왕위 계승자로 지명하는 것은 친권자인 대왕대비의 권한이었다. 특히 순조가 자녀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한 이후, 이와 마찬가지로 자녀가 없는 국왕이 이어지면서, 대왕대비가 젊고 정치 경험이 없는 인물을 차기 국왕으로 세워 실권을 유지하려는 사례가 잇따랐다.
3.1. 수렴청정
정희왕후, 문정왕후, 정순왕후, 순원왕후 등은 어린 국왕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행하며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대왕대비의 권위를 배경으로, 과거 급제 관료나 왕족을 배척하고, 대왕대비의 친족이 권력을 잡는 세도 정치가 오래 지속되었고, 결국 조선의 근대화를 크게 늦추는 요인이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경주 김씨와 안동 김씨가 있다.
3.2. 세도 정치와의 관계
대왕대비는 국왕의 조모로서 국왕에게 친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에, 때로는 국왕을 제치고 실권을 장악한 대왕대비도 있었다. 정희왕후, 문정왕후, 정순왕후, 순원왕후 등은 어린 국왕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행하며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대부분의 왕비는 대비나 왕대비까지만 하고 사망하여, 장수를 누려 대왕대비가 되는 왕비는 드물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 젊은 나이에 사망하는 국왕이나 자녀가 없는 국왕이 늘어났고, 그 결과 방계에서 즉위하는 국왕 또한 증가했다.
방계 왕족을 왕위 계승자로 지명하는 것은 역시 친권자인 대왕대비였으며, 특히 순조가 자녀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한 이후, 이와 마찬가지로 자녀가 없는 국왕이 이어지면서, 대왕대비가 젊고 정치 경험이 없는 인물을 굳이 차기 국왕으로 세워 계속 실권을 잡으려는 사례가 잇따랐다.
대왕대비의 권위를 배경으로, 과거 급제 관료나 왕족을 배척하고, 대왕대비의 친족이 권력을 잡는 세도 정치가 오래 지속되었고, 결국 조선의 근대화를 크게 늦추는 요인이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경주 김씨와 안동 김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