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융준
1. 개요
이융준은 조선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아들로, 1858년에 태어나 원자로 책봉되었으나 이듬해 열병으로 사망했다. 태어난 직후 원자궁이 설치되었고, 소명(어린 시절 이름)은 융준으로 정해졌다. 1859년 4월 급작스럽게 사망하여, 철종은 원자상을 선포했다. 이융준은 요절하여 철종의 직계 혈통은 끊어졌으며, 사후 대한제국 수립 이후 부모는 황제와 황후로 추존되었으나 그는 추존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에 서삼릉 왕자·공주 묘역에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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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세자 -
양녕대군
양녕대군은 조선 태종의 장남으로 왕세자였으나 폐위되었고, 동생 세종을 도왔으며 숭례문 현판 글씨를 쓰는 등 예술적 재능을 보였다. -
조선의 왕세자 -
문효세자
정조와 의빈 성씨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 문효세자는 3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5세에 홍역으로 요절하여 정조에게 큰 슬픔을 안겼고, 그의 죽음은 조정의 정치적 상황에도 영향을 미쳤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2. 생애
1858년(철종 9) 음력 10월 17일 창덕궁 대조전에서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유일한 적자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별도의 절차 없이 원자(元子)로 정해졌으며, 1859년 음력 1월 27일에는 소명(小名, 어릴 때 부르는 이름)으로 융준(隆俊)이 선택되었다.
그러나 원자 융준은 1859년 음력 4월 23일 갑자기 열병을 앓다가 태어난 지 약 6개월 만에 요절하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철종에게 큰 슬픔을 안겼으며, 이후 철종은 다른 아들을 얻지 못하여 효종과 영조로 이어지던 왕실 직계 혈통은 철종의 사망과 함께 단절되었다.
대한제국 수립 후 아버지 철종과 어머니 철인왕후는 황제와 황후로 추존되었으나, 이융준은 왕세자로 추존되지 않았다. 그의 묘는 처음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에 마련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의 서삼릉 내 왕자·공주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2.1. 탄생과 원자 책봉
1858년(철종 9) 음력 10월 17일 신시(오후 4시경) 창덕궁 대조전에서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 사이의 유일한 적자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4년 전인 1854년에 아버지 철종의 후궁인 귀인 박씨 소생의 이복 서형이 있었으나 태어난 직후 사망하였다.
태어나자마자 별도의 절차 없이 원자(元子)로 정해졌으며, 당일 원자궁(元子宮)이 설치되었다. 음력 11월 2일 철종은 원자궁 처소의 문에 직접 '이극문'(貳極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같은 해 음력 11월 22일에는 관상감에서 그의 태(胎)를 강원도 원주부 주천면(현 영월군 주천면) 복결산(伏結山) 아래 임좌병향(壬坐丙向)의 땅에 묻었다고 보고하였다.
1859년(철종 10) 음력 1월 27일, 탄생 100일을 맞아 철종은 신하들에게 원자의 소명(어릴 때 부를 이름)을 짓도록 명하였다. 정원용 등이 홍복(洪福), 장록(長祿), 윤중(胤重), 융준(隆俊) 등의 이름을 제안하였고, 철종은 이 중에서 융준(隆俊)을 선택하였다.
2.2. 소명(小名) 융준
1858년(철종 9) 음력 10월 17일 신시(오후 4시)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서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원자(元子)의 정호(定號)를 받았고, 당일 원자궁(元子宮)이 세워졌다. 철종은 11월 2일 원자궁 처소의 문에 직접 '이극문'(貳極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11월 22일 관상감은 그의 태를 강원도 원주부 주천면(현 영월군 주천면)의 복결산(伏結山)에 묻었다고 철종에게 보고하였다.
1859년(철종 10) 음력 1월 27일, 탄생 백일을 맞아 부왕 철종은 신하들에게 원자의 소명(小名, 어릴 때 부르는 이름)을 짓도록 명했다. 영의정 정원용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처음에는 홍복(洪福), 장록(長祿) 등의 이름이 제안되었으나 철종은 "아직 중후함이 부족하다"며 다른 이름을 원했다. 이에 신하들이 윤중(胤重)과 융준(隆俊)을 다시 올리자, 철종은 이 중에서 융준(隆俊)을 원자의 소명으로 직접 선택했다. 이는 그가 태어난 지 약 3개월 만에 정해진 이름이다. 당시 승정원일기에는 철종이 원자를 직접 신하들에게 보여주며 기뻐하고, 이름 자(字)의 의미를 논하며 '융준'이 더 중후하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1859년 음력 3월 30일에는 철종이 원자 융준을 직접 안고 나와 신료들을 접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자 융준은 1859년 음력 4월 23일 진시(오전 8시경)에 갑자기 몸에 열병이 생겨 약방 관원들이 입진하였으나, 갑자기 사망하였다. 사망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음 날인 음력 4월 24일 철종은 원자상(元子喪)을 선포했다.
2.3. 요절
1859년(철종 10) 음력 4월 23일 몸에 열병이 생겨 약방 관원들이 입진하였으나 갑자기 사망하였다. 태어난 지 6개월 만이었다. 그가 어떤 질병으로 사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음 날인 음력 4월 24일 철종은 원자상(元子喪)을 선포하고 병조판서와 훈련대장 등을 특별히 소환하였다.
상복을 벗은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승정원일기》에는 1859년 이후 관련 기록이 없다. 매장일 역시 알려지지 않았지만, 처음 묘는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에 마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는 그의 시호에 대한 기록이 없어 시호가 내려졌는지도 불확실하다.
이융준의 요절 이후, 철종의 후궁인 귀인 조씨가 두 아들을 더 낳았으나, 이들 역시 태어난 직후 사망했다(각각 1859년, 1861년). 결과적으로 철종은 후사를 잇지 못했고, 효종과 영조로 이어지던 왕실 직계 혈통은 4년 후 철종의 죽음으로 단절되었다. 훗날 대한제국이 수립된 후 아버지 철종과 어머니 철인왕후는 각각 황제와 황후로 추존되었지만, 이융준은 왕세자로 추존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그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의 서삼릉 내 왕자·공주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묘비에 새겨진 일본 연호가 긁혀 있어 정확한 이장 연도는 알 수 없다.
3. 사후
원자(元子)의 상복을 벗는 탈상(脫喪) 일자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며, 1859년 이후의 승정원일기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시신이 언제 매장되었는지도 알 수 없으나, 처음에는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에 묻혔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는 이융준의 시호에 대한 기록이 없어, 시호를 받았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가 죽은 뒤에도 서모인 귀인 조씨가 1859년 11월 7일(음력 10월 13일)과 1861년 1월 15일에 아들을 낳았지만, 두 아들 모두 태어나자마자 사망했다. 이복 동생들이 어떤 이유로 사망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철종에게는 더 이상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고, 이융준이 죽은 지 4년 후 아버지 철종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효종과 영조로부터 이어지던 왕실의 직계 혈통은 단절되었다.
대한제국이 수립된 후 아버지 철종과 어머니 철인왕후는 황제와 황후로 추존되었지만, 이융준은 태자로 추증되지 못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그의 묘는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 원당리(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서삼릉 내 왕자 및 왕녀 묘역으로 옮겨졌다. 이장 과정에서 묘비에 새겨져 있던 일본식 연호 부분이 긁혀 훼손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이장 연도는 알 수 없고 11월 1일이라는 날짜만 남아 있다.
4. 가족 관계
* 아버지: 철종(哲宗, 1831년 7월 25일 ~ 1864년 1월 16일)
* 어머니: 철인왕후(哲仁王后, 1837년 4월 27일 ~ 1878년 6월 12일)
친할아버지: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㼅, 1785년 4월 29일 ~ 1841년 12월 14일)
친할머니 (적조모): 완양부대부인(完陽府大夫人) 최씨(崔氏, 1804년 2월 19일 ~ 1840년 2월 19일)
친할머니 (생조모):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廉氏, 1793년 7월 20일 ~ ?)
외할아버지: 김문근(金汶根, 1801년 11월 25일 ~ 1863년 11월 6일)
외할머니: 연양부부인(延陽府夫人) 연안 이씨(延安 李氏, 1799년 ~ 1824년)
* 서모: 숙의 범씨(淑儀 范氏, 1838년 ~ 1883년 음력 12월 26일)
이복 여동생: 영혜옹주(永惠翁主, 1859년 ~ 1872년 7월 4일)
** 이복 매제: 박영효(朴泳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