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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국립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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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 국립은행(Sveriges Riksbank)은 1668년 설립된 스웨덴의 중앙은행이다. 스톡홀름 방코의 실패를 교훈 삼아 설립되었으며, 1866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897년 지폐 발행 독점권을 얻으며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했으며, 1993년 변동 환율과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도입했다. 2009년 세계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행하는 등 혁신적인 통화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e-크로나 도입을 추진하는 등 디지털 화폐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스웨덴 국립은행은 알프레드 노벨 기념 경제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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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국립은행 - [중앙은행]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명칭 (현지어)(스베리에스 릭스방크)
스웨덴 국립은행 본점
본점
위치스톡홀름
설립일1668년9월 17일
총재에릭 테데엔
통화스웨덴 크로나
ISO 4217 코드SEK
웹사이트스웨덴 국립은행 공식 웹사이트
이전 명칭국립 제계급 은행 (1866년)
스톡홀름 은행(1668년)
일반 정보
소유 형태100% 국유화
본사 위치Brunkebergstorg 11, 103 37 스톡홀름, 스웨덴
총재에릭 테데엔
통화스웨덴 크로나
통화 코드SEK
외환 보유고498억 3천만 USD
예금 금리0.65
대출 금리0.75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이전 기관Riksens Ständers Bank (1668)
Stockholms Banco (1657)
지급준비율없음
준비금 이자율해당 없음 (지급준비금 없음)
통화 정책
대출 금리0.25%
역사
이전 기관Riksens Ständers Bank

2. 역사

1668년에 요한 팜스트루흐가 설립한 스톡홀름 방코(Stockholms Banco, 팜스트루흐 은행이라고도 알려짐)가 스웨덴 국립은행의 전신이다. 이 은행은 사립 은행이었지만, 국왕이었다. 국왕은 팜스트루흐에게 보낸 서한에서 규정에 따라 은행 운영을 허가했다. 그러나 스톡홀름 방코는 필요한 담보 없이 너무 많은 지폐를 발행한 결과 붕괴되었다. 은행의 손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던 팜스트루흐는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나중에 사면을 받았다. 1668년 9월 17일, 팜스트루흐가 은행을 운영할 수 있는 특권은 ''Riksens Ständers Bank''()로 이전되었고, 당시 국회의 후원 아래 운영되었다. 스톡홀름 방코의 실패로 인해 새로운 은행은 국왕의 간섭을 막기 위해 신분 의회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운영되었다. 1866년 새로운 의회가 설립되면서 은행의 이름은 스베리에스 국립은행(Sveriges Riksbank)으로 변경되었다.

스톡홀름 방코의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은 국립은행은 지폐 발행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01년, 소위 "신용 지폐"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18세기 중반 즈음에 위조 지폐가 등장하여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위조 방지를 위해 국립은행이 자체 지폐 용지를 생산하기로 결정했고, 툼바에 툼바 브루크(Tumba Bruk)라는 제지 공장이 설립되었다.

몇 년 후, 최초의 상업 은행이 설립되었고 이들 역시 지폐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지폐는 이자가 지급되지 않는 은행에 대한 청구권을 나타냈고, 따라서 은행에게 상당한 수익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행된 모든 지폐의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국립은행에 예금 형태로 보증이 필요했다.

19세기 중반의 32 스킬링 방코 지폐(1843)


19세기 동안 국립은행은 신용 기관이자 지폐 발행 기관으로서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했다. 은행은 또한 국가 무역 거래를 관리하고 일반 대중에게 신용을 제공했다. 첫 번째 지점은 1824년에 개설되었고, 이후 각 주(''län'')에 지점이 개설되었다. 중앙 은행으로서의 현재 운영 활동은 19세기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금리 관련 활동은 수행되지 않았다.

국립은행이 중앙 은행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된 것은 1897년, 첫 번째 국립은행법이 통과되고 국립은행이 지폐 발행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갖게 되면서부터이다. 이 저작권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통화 정책과 관련된 역할과 중요성을 마무리 지었는데, 지폐 발행에 대한 독점적 권한은 통화 정책을 수행하고 통화 가치를 방어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결정의 배경에는 사립 은행이 지폐 발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반복적인 요구가 있었는데, 이는 그로 인한 이윤이 일반 대중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스웨덴 통화는 금본위제에 의해 으로 뒷받침되었고, 1931년까지 종이 증서는 금화로 교환될 수 있었지만, 전문적인 임시 법에 따라 은행은 이 의무에서 벗어났다. 이 법은 1975년 새로운 헌법이 비준되어 은행이 정부로부터 분리되어 금으로 지폐를 교환할 의무가 없는 독립적인 조직이 될 때까지 매년 갱신되었다.[7]

1992년 11월, 스웨덴 크로나의 고정 환율 제도가 붕괴되었다. 몇 달 후인 1993년 1월, 국립은행 이사회는 변동 환율과 인플레이션 목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통화 정책 체제를 개발했다. 이러한 정책은 캐나다 은행의 지원을 광범위하게 받았는데, 캐나다 은행은 유사한 소규모 개방 경제이면서 환율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으면서 인플레이션을 통제한 경험이 많았다.[8]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스웨덴은 193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고, 이는 "스웨덴 은행 구제 금융"이라고 불렸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약 2%로 낮추었고, 1990년대 후반의 강력한 성장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은 계속 낮게 유지되었다.

2000년대 동안에는 정책 부서인 금융 안정성 부서와 통화 정책 부서를 위해 운영 및 행정 부서가 축소되었다. 변화하는 시대의 직접적인 결과는 국립은행이 스웨덴 내 모든 지점을 폐쇄하고 동전 및 지폐 처리를 민간 기업에 위탁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정책 부서는 중앙 은행의 핵심이며, 은행의 350명 정규직의 약 절반을 고용하고 있다.

2. 1. 스톡홀름 방코 (1656-1668)

1656년 요한 팜스트루흐가 설립한 스톡홀름 방코(Stockholms Banco, 팜스트루흐 은행이라고도 알려짐)는 스웨덴 국립은행의 전신이다.[25] 이 은행은 사립 은행이었지만, 국왕 칼 10세는 팜스트루흐에게 보낸 서한에서 규정에 따라 은행 운영을 허가했다. 은행의 경영진을 선택하는 것 또한 국왕의 권한이었다.[25] 팜스트루흐가 총재를 맡았지만, 보좌역인 지배인 3명은 시민, 귀족, 스톡홀름 공사에서 각각 1명씩 선출되었다. 설립 3년 후에는 감사도 임명되었다.[25]

스톡홀름 방코는 설립 초기부터 현대적인 경영 방식을 채택했다. 융자 부문에서는 동산 및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제공했고, 환전 부문에서는 국내에 유통되던 여러 종류의 통화를 예금하고 현물 주화를 인출할 수 있었으며, 수표 발행을 통해 예금을 맡긴 채 양도할 수 있었다. 이는 예금 채권의 양도가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오늘날의 은행 시스템과는 대조적이다. 스톡홀름 방코는 순조롭게 이익을 냈다.

그러나 국내에서 구리가 부족해지자 문제가 발생했다. 정부는 개주(改鑄)를 통해 순수 구리 136kg을 기존 권면액 75달러에서 90달러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개주 전후의 구리화를 비교하면 옛날 것이 구리를 더 많이 포함하여 소재 가치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고, 예금자들은 스톡홀름 방코에 보관된 옛날 구리화를 융해 수출하여 이익을 얻으려 했다. 이로 인해 구리화가 녹아 없어지는 문제가 발생했으며, 은화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수 있다.[26]

1661년, 스톡홀름 방코는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 최초의 지폐를 발행했다.[26] 이 지폐는 신용 지폐로, 은행 발행의 어음과 같아 주화로 교환할 수 있었다. 액면가가 정돈된 숫자이고 무이자였으며, 변제기가 지참인 지불이라는 편리함 때문에 지폐는 같은 액면가의 구리화보다 때때로 더 높은 시세로 거래되었다. 은행은 이 지폐를 대출에 사용했고, 융자가 활발해짐에 따라 유통량이 증가했다. 그러나 금고의 주화는 늘지 않아 지급 준비율이 하락하고 교환이 어려워졌다.

1663년 가을, 디폴트가 공표되었다. 지폐는 점점 할인되었고, 정부는 사태를 조사한 후 지폐를 회수하여 불태우라고 명령했다. 신규 융자도 중단되었다. 1667년, 팜스트루흐는 경영 책임을 물어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집행은 면제되었다. 이러한 관대한 조치는 정부의 개주와 부족한 금속 확보 책임 등 정치적인 배경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26]

결국 스톡홀름 방코는 필요한 담보 없이 너무 많은 지폐를 발행한 결과 붕괴되었다.[25] 1668년 9월 17일, 팜스트루흐가 은행을 운영할 수 있는 특권은 ''Riksens Ständers Bank''()로 이전되었고, 당시 국회의 후원 아래 운영되었다. 스톡홀름 방코의 실패로 인해 새로운 은행은 국왕의 간섭을 막기 위해 신분 의회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운영되었다. 1866년 새로운 의회가 설립되면서 은행의 이름은 스베리에스 국립은행(Sveriges Riksbank)으로 변경되었다.[25]

2. 2. 국립 제 계급 은행 (1668-1866)

1668년 9월 17일, 스웨덴 의회에서 신 은행 설립을 인가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법률에서는 스톡홀름 방코의 실패를 교훈 삼아, 신 은행의 경영권을 의회의 감독 하에 두었다.[27] 요한 팜스트루흐가 설립한 스톡홀름 방코는 필요한 담보 없이 너무 많은 지폐를 발행하여 붕괴되었다. 이러한 스톡홀름 방코의 실패는 국왕의 간섭을 막기 위해 신분 의회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운영되도록 하는 배경이 되었다. 1866년 새로운 의회가 설립되면서 은행의 이름은 스베리에스 국립은행(Sveriges Riksbank)으로 변경되었다.

스톡홀름 방코의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은 국립은행은 초기에는 지폐 발행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01년, 소위 "신용 지폐"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18세기 중반 즈음에 위조 지폐가 등장하여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위조 방지를 위해 국립은행은 자체 지폐 용지를 생산하기로 결정했고, 툼바에 툼바 브루크(Tumba Bruk)라는 제지 공장이 1759년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19세기 동안 국립은행은 신용 기관이자 지폐 발행 기관으로서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했다. 은행은 또한 국가 무역 거래를 관리하고 일반 대중에게 신용을 제공했다. 첫 번째 지점은 1824년에 개설되었고, 이후 각 주(''län'')에 지점이 개설되었다. 중앙 은행으로서의 현재 운영 활동은 19세기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금리 관련 활동은 수행되지 않았다.

2. 3. 스웨덴 국립은행 (1866-현재)

1866년 의회 개혁으로 왕국의 4계급이 폐지되었다. 또한 의회에는 상원과 하원이 설치되었다. 이듬해부터 의회에 의해 국립 제 계급 은행은 '''스웨덴 국립은행'''(Sveriges Riksbank)으로 개칭되었다.

1873년, 스웨덴은 이웃 국가인 덴마크와 함께 을 기초로 한 스칸디나비아 통화 동맹을 결성했다. 1875년에는 노르웨이도 스칸디나비아 통화 동맹에 참가했다. 스칸디나비아 통화 동맹은 공통 통화 단위로 크로나를 도입하고, 여러 외국에 대해 통일적인 환율을 설정했다.

1879년, 민간 발행 수표가 할인되기 시작했다. 또한, 국립 은행의 일반 기업 대상 대출이 폐지되었다.

1896년, 어음 교환 제도가 생겼다.

1897년, 스웨덴 국립은행은 입법에 의해 통화의 독점 발행권을 획득했다. 6년 후에는 민간 은행의 발권이 중지되었다. 이렇게 스웨덴 국립은행은 중앙 은행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30]. 이러한 1890년대, 국립 은행은 예금을 제한하면서도 전체 은행의 대출 총액의 약 15%를 차지했다. 민간 은행도 대출을 받았지만, 주요 융자처는 발렌베리 가문을 대표로 하는 대기업이었다.

1899년, 어음 교환 제도가 국립 은행에서 운영하기로 결정되었다.

1906년 10월, 국립 은행은 건물로 이전했다.

2. 3. 1. 제1차 세계 대전과 그 이후 (1914-1945)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스웨덴은 중립국이었지만, 전쟁의 영향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국제 무역이 위축되면서 금 유입이 감소하고, 스웨덴 크로나의 가치가 불안정해졌다. 이에 따라 1914년 8월 2일, 스웨덴 국립은행은 일시적으로 금 태환을 중단했다.[7] 이는 금본위제의 중단을 의미하며, 전쟁 기간 동안 스웨덴은 관리 통화 제도를 운영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스웨덴은 금본위제로 복귀하고자 했으나, 세계 경제의 불안정으로 인해 쉽지 않았다. 1920년대 후반, 대공황이 발생하면서 스웨덴 경제는 다시 큰 타격을 입었다. 스웨덴 국립은행은 금리 인하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경기 침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1931년, 스웨덴은 다시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관리 통화 제도로 전환했다.[7] 이는 스웨덴 크로나의 변동 환율 제도를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스웨덴 국립은행인플레이션 억제를 주요 목표로 하는 통화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다.

2. 3. 2. 현대 통화 정책 (1945-현재)

1992년 11월, 스웨덴 크로나의 고정 환율 제도가 붕괴되었다.[7] 1993년 1월, 스웨덴 국립은행 이사회는 변동 환율과 인플레이션 목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통화 정책 체제를 개발했다. 이러한 정책은 캐나다 은행의 지원을 받았는데, 캐나다 은행은 소규모 개방 경제이면서 환율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으면서 인플레이션을 통제한 경험이 많았다.[8]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스웨덴은 193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고, 이는 "스웨덴 은행 구제 금융"이라고 불렸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약 2%로 낮추었고, 1990년대 후반의 강력한 성장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은 계속 낮게 유지되었다.

2000년대 동안에는 정책 부서인 금융 안정성 부서와 통화 정책 부서를 위해 운영 및 행정 부서가 축소되었다. 변화하는 시대의 직접적인 결과는 스웨덴 국립은행이 스웨덴 내 모든 지점을 폐쇄하고 동전 및 지폐 처리를 민간 기업에 위탁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정책 부서는 중앙 은행의 핵심이며, 은행의 350명 정규직의 약 절반을 고용하고 있다.

2009년 7월 2일, 스웨덴의 릭스방크는 세계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했다. 이는 환매 조건부 채권 금리를 0.25%로 인하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연동된 초단기 예금 금리는 −0.25%까지, 초단기 대출 금리는 0.75%로 인하되었다.[9] 이는 2007-2008년 금융 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를 억제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당시 은행 부총재 Lars E. O. Svensson은 환매 조건부 채권 금리를 0.00%로 인하하는 것을 선호했다.[9] 스웨덴의 마이너스 할인율 도입은 전 세계 중앙 은행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10]

2014년 10월 28일, 릭스방크는 환매 조건부 채권 금리를 0.00%로 인하했다.[11][12]

2015년 2월 12일, 릭스방크는 다시 환매 조건부 채권 금리를 −0.10%로 인하했다. 릭스방크는 동시에 300억 스웨덴 크로나 상당의 국채를 매입할 것이며, 추가 조치가 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13][14] 예금 금리는 −0.85%로, 대출 금리는 0.65%로 인하되었다.[15]

2015년 3월 18일, 릭스방크는 환매 조건부 채권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여 −0.25%로 조정했다.[16] 릭스방크는 동시에 300억 스웨덴 크로나 상당의 국채를 매입하여 스웨덴 크로나의 절상을 막아 인플레이션 상승을 방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17] 스웨덴의 인플레이션은 2012년 말부터 거의 0%에 가까웠으며, 2월에는 2.0% 목표치를 훨씬 밑도는 0.1%를 기록했고, 이러한 조치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17] 릭스방크는 금리를 "적어도 2016년 하반기까지" −0.25%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17] 그 결과 예금 금리는 −1.00%로, 대출 금리는 0.50%로 인하되었다.[15]

이후 릭스방크는 금리를 두 차례 더 인하했는데, 2015년 7월 8일에 0.10%p 인하하여 −0.35%로, 가장 최근인 2016년 2월 17일에는 0.15%p 추가 인하하여 −0.50%로 조정했다.[18] 현재 예금 및 대출 금리는 각각 −1.25%와 0.25%이다.[15][19]

2020년 이후 환매 조건부 채권 금리 (현재는 ''styrränta'', 정책 금리로 알려짐)는 0.0% 이상이다.

3. 통화 정책

릭스방크는 기준 금리(styrränta)를 통해 통화 정책을 시행하며, 이는 세계 중앙은행들 사이에서 혁신적인 기관으로 평가받는 배경이 되었다.[9]

스웨덴 국립은행은 여러 정책을 시행하여 중앙은행들 사이에서 혁신적인 기관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2009년 7월 2일, 릭스방크는 세계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했다.[9] 이는 2007-2008년 금융 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였다.[9] 당시 은행 부총재 Lars E. O. Svensson은 환매 조건부 채권 금리를 0.00%로 인하하는 것을 선호했다.[9] 2014년 10월 28일, 릭스방크는 환매 조건부 채권 금리를 0.00%로 인하했다.[11][12]

이후 릭스방크는 금리를 지속적으로 인하하여 2015년 2월 12일에는 -0.10%[13][14], 2015년 3월 18일에는 -0.25%[16], 2015년 7월 8일에는 -0.35%[18], 2016년 2월 17일에는 -0.50%[18]까지 낮췄다. 이러한 금리 인하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기 위한 조치였다.[17] 릭스방크는 동시에 국채 매입을 통해 스웨덴 크로나의 가치 상승을 억제하려 했다.[17]

2020년 이후 기준 금리는 0.0% 이상이다.

스웨덴 국립은행은 기준금리 외에도 양적 완화, 환율 개입 등의 정책 수단을 활용하여 중앙은행들 사이에서 혁신적인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3. 1. 인플레이션 목표제

스웨덴 국립은행은 여러 정책을 시행하여 중앙은행들 사이에서 혁신적인 기관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3. 2. 기준 금리 (정책 금리)

릭스방크는 기준 금리(styrränta)를 통해 통화 정책을 시행하며, 이는 세계 중앙은행들 사이에서 혁신적인 기관으로 평가받는 배경이 되었다.[9]

2009년 7월 2일, 릭스방크는 세계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했다.[9] 이는 2007-2008년 금융 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였다.[9] 당시 은행 부총재 Lars E. O. Svensson은 환매 조건부 채권 금리를 0.00%로 인하하는 것을 선호했다.[9] 2014년 10월 28일, 릭스방크는 환매 조건부 채권 금리를 0.00%로 인하했다.[11][12]

이후 릭스방크는 금리를 지속적으로 인하하여 2015년 2월 12일에는 -0.10%[13][14], 2015년 3월 18일에는 -0.25%[16], 2015년 7월 8일에는 -0.35%[18], 2016년 2월 17일에는 -0.50%[18]까지 낮췄다. 이러한 금리 인하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기 위한 조치였다.[17] 릭스방크는 동시에 국채 매입을 통해 스웨덴 크로나의 가치 상승을 억제하려 했다.[17]

2020년 이후 기준 금리는 0.0% 이상이다.

3. 3. 기타 정책 수단

스웨덴 국립은행은 기준금리 외에도 양적 완화, 환율 개입 등의 정책 수단을 활용하여 중앙은행들 사이에서 혁신적인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4. 금융 안정성

4. 1. 은행 감독

4. 2. 위기 대응

5. 화폐 발행

5. 1. 지폐와 동전

5. 2. e-크로나

스웨덴 국민의 현금 사용 감소에 따라, 스웨덴 중앙은행(Riksbank)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인 ''e-크로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20] e-크로나는 현금과 동일한 특성을 갖지만 디지털 형태로 존재한다.[20] 2016년 11월, 중앙은행은 ''e-크로나'' 발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연구 프로그램을 발표했다.[21] 2017년 9월 첫 번째 중간 보고서에서 "e-크로나 도입에 대한 주요 장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22]

2021년 말까지 스웨덴 중앙은행이 e-크로나 발행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e-크로나 판매를 주장하는 사기 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다.[23]

6. 조직 및 거버넌스

6. 1. 이사회

6. 2. 총재 및 부총재

스웨덴 국립은행의 총재는 스웨덴 중앙은행의 수장이다. 역대 총재는 다음과 같다.

  • 이바르 로트 (Ivar Rooth), 1929년–1948년
  • 클라스 뵈크 (Klas Böök), 1948년–1951년
  • 마츠 렘네 (Mats Lemne), 1951년–1955년
  • 페르 오스브링크 (Per Åsbrink), 1955년–1973년
  • 크리스테르 빅만 (Krister Wickman), 1973년–1976년
  • 칼 헨리크 노르란데르 (Carl Henrik Nordlander), 1976년–1979년
  • 라르스 볼린 (Lars Wohlin), 1979년–1982년
  • 벵트 데니스 (Bengt Dennis), 1982년–1993년
  • 우르반 벡스트룀 (Urban Bäckström), 1993년 – 2002년 12월 31일
  • 라르스 하이켄스텐 (Lars Heikensten), 2003년 1월 1일 – 2005년 12월 31일
  • 스테판 잉베스 (Stefan Ingves), 2006년 1월 1일 – 2022년 12월 31일
  • 에릭 테데엔 (Erik Thedéen), 2023년 1월 1일–

6. 2. 1. 역대 총재


  • 이바르 로트 (Ivar Rooth), 1929–1948
  • 클라스 뵈크 (Klas Böök), 1948–1951
  • 마츠 렘네 (Mats Lemne), 1951–1955
  • 페르 오스브링크 (Per Åsbrink), 1955–1973
  • 크리스테르 빅만 (Krister Wickman), 1973–1976
  • 칼 헨리크 노르란데르 (Carl Henrik Nordlander), 1976–1979
  • 라르스 볼린 (Lars Wohlin), 1979–1982
  • 벵트 데니스 (Bengt Dennis), 1982–1993
  • 우르반 벡스트룀 (Urban Bäckström), 1993년 – 2002년 12월 31일
  • 라르스 하이켄스텐 (Lars Heikensten), 2003년 1월 1일 – 2005년 12월 31일
  • 스테판 잉베스 (Stefan Ingves), 2006년 1월 1일 – 2022년 12월 31일
  • 에릭 테데엔 (Erik Thedéen), 2023년 1월 1일–

7. 알프레드 노벨 기념 경제학상

1968년 세 번째 100주년을 기념하여, 스웨덴 국립은행은 매년 알프레드 노벨 기념 경제학상을 제정했다. 이 상은 노벨상과 함께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수여된다.

참조

[1] 웹사이트 The Organisation and Structure of Central Banks https://d-nb.info/11[...]
[2] 웹사이트 Policy rate, deposit and lending rate https://www.riksbank[...] Sveriges Riksbank 2022-07-06
[3] 간행물 The Evolution of Central Bank Governance around the World https://www.aeaweb.o[...] 2007-09-01
[4] 웹사이트 History http://www.riksbank.[...] Sveriges Riksbank 2009-03-23
[5] 서적 Money, Financial Flows, and Credit in the Soviet Union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6] 간행물 Bank of Finland's 200 years https://www.bis.org/[...] 2014-10-23
[7] 웹사이트 Frequently asked questions http://www.riksbank.[...] Sveriges Riksbank 2009-03-19
[8] 웹사이트 Inflation Targeting—The Swedish Experience http://www.bankofcan[...] 2007-05-26
[9] 간행물 Repo rate cut to 0.25 per cent http://archive.riksb[...] Sveriges Riksbank 2009-07-02
[10] 뉴스 Bankers watch as Sweden goes negative https://www.ft.com/c[...] 2009-08-27
[11] 간행물 Repo rate cut to zero per cent http://archive.riksb[...] Sveriges Riksbank 2014-10-28
[12] 뉴스 How low can you go? Sweden cuts interest rates to zero https://www.telegrap[...] 2014-10-28
[13] 뉴스 Ingves and Jochnick in hearing on monetary policy: We are determined to safeguard the inflation target http://archive.riksb[...] Sveriges Riksbank 2015-03-05
[14] 뉴스 Riksbank Cuts Key Rate to Negative https://www.bloomber[...] 2015-02-12
[15] 뉴스 Repo rate table 2015 http://www.riksbank.[...] Sveriges Riksbank 2015-04-10
[16] 뉴스 Sweden Cuts Key Interest Rate to Minus 0.25% https://www.nytimes.[...] 2015-03-18
[17] 뉴스 Swedish central bank cuts key rate further below zero https://news.yahoo.c[...] 2015-03-18
[18] 간행물 Repo rate cut to −0.50 per cent http://archive.riksb[...] Sveriges Riksbank 2016-02-11
[19] 뉴스 Repo rate table 2016 http://www.riksbank.[...] Sveriges Riksbank 2016-07-15
[20] 뉴스 Sweden could become the first major country to issue a national digital currency https://www.business[...] 2016-11-16
[21] 웹사이트 Skingsley: Should the Riksbank issue e-krona? http://www.riksbank.[...] Sveriges Riksbank 2016-11-16
[22] 웹사이트 The E-krona Project's First Interim Report https://www.riksbank[...] Sveriges Riksbank 2018-05-21
[23] 문서 False information regarding the sale of e-kronas https://www.riksbank[...]
[24] 뉴스 Sweden cuts rates below zero and starts QE http://www.bbc.co.uk[...] BBC News, Business 2015-02-12
[25] 문서 それぞれの機能は、今日の銀行の融資部および預金部に相当する。
[26] 문서 メキシコ銀の流入がなかったかという疑問は残る。
[27] 문서 1680年2月に旧市街南部に特別に建てられたビルへ転居。
[28] 문서 johan liljencrantz cf.
[29] 문서 イェーテボリとマルメ
[30] 문서 政策金利は動かしていなかった。
[31] 문서 "Inflation Targeting – The Swedish Experience" http://www.bankofcan[...] The Bank of Canada 2007-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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