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이코 지진
1. 개요
스이코 지진은 일본서기에 기록된 지진으로, 스이코 천황 7년(599년) 5월 28일에 발생하여 건조물이 붕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지진의 피해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쇼토쿠 태자가 지진을 예측하고 건물 보강을 촉구했다는 내용도 전해진다. 지진학자 이마무라 아키츠네는 이 지진을 일본 최초의 대지진으로 평가했으며, 가와스미 히로시는 규모를 MK = 4.3으로 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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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지진 -
526년 안티오키아 지진
526년 안티오키아 지진은 526년 5월 29일 안티오키아에서 발생한 규모 7.0의 강력한 지진으로, 도시 파괴와 대규모 화재를 일으켜 25만 명의 사망자를 냈으며, 유스티누스 1세 황제의 구호 조치로 복구가 시작되었다. -
일본의 지진 -
간토 대지진
1923년 9월 1일 간토 지방 남부에서 발생한 간토 대지진은 대규모 지진과 그로 인한 화재, 여진, 쓰나미로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으며, 간토 대학살과 같은 비극을 낳고 일본의 재해 예방 및 도시 계획에 큰 영향을 준 일본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 중 하나이다. -
일본의 지진 -
일본 해구
일본 해구는 태평양판과 오호츠크판의 수렴경계에 위치한 깊고 활발한 지진 활동을 보이는 해구로, 잦은 지진과 쓰나미 위험을 야기하며 지질학적 및 해양생물학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다. -
아스카 시대 -
다이호 율령
다이호 율령은 701년 일본에서 당나라 율령을 토대로 제정된 법전으로, 율은 당나라 것을 따르고 령은 일본 실정에 맞게 수정되었으며, 천황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 확립과 행정 효율성 및 투명성 증진, 그리고 통일 국가 건설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지만, 원문은 전해지지 않고 양로령을 바탕으로 복원 중이다. -
아스카 시대 -
야마토 시대
야마토 시대는 4세기 초 일본 긴키 지방을 중심으로 성립되어 오키미를 중심으로 한 귀족 계급이 형성되었으며, 쇼토쿠 태자가 국내 체제를 혁신하고 아스카 문화를 꽃피우다가 710년 헤이조쿄 천도로 나라 시대로 이어진 시대이다.
2. 역사적 기록
599년 지진에 대한 기록은 《일본서기》, 《쇼토쿠 태자전력》, 《구마노 연대기》 등 여러 역사서에 등장한다. 이들 기록에는 지진 발생 사실과 더불어 쇼토쿠 태자가 지진을 예측하고 피해 복구를 위해 세금 면제를 건의하는 등 노력을 했다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다만, 《구마노 연대기》나 《도요하마정지》 같은 후대의 기록은 《일본서기》의 내용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어, 그 내용이 얼마나 구체적인지는 알 수 없다.
2.1. 《일본서기》
599년 음력 4월 27일(율리우스력 5월 26일, 그레고리력 5월 28일) 조항에 피해 지진에 대한 기록이 있다.
지진으로 건물과 창고가 모두 파괴되었다. 조정에서는 사방에 명하여 지진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했다. 쇼토쿠 태자의 전기에 따르면, 태자가 지진을 예측하고 건물의 보강을 촉구했으며, 지진 후에는 세금 면제를 건의했다고 한다.
七年夏四月丁未朔辛酉。 地震。 舎屋悉破。 仍令四方。 祭祀地震神。일본어
2.2. 《쇼토쿠 태자전력》
쇼토쿠 태자의 전기에 따르면, 태자가 지진을 예측하고 건물 보강을 촉구했으며, 지진 후에는 세금 면제를 건의했다고 전해진다.
『쇼토쿠 태자전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春三月。太子占天曰。必有地震乎。即令天下。堅造屋舎。夏四月。大地震。舎屋悉破。太子竊奏曰。天以爲男。以陽。地以爲女。以陰。陰理不足。則陽迫不通。陽道不充。則陰塞不達。故有地震。陛下爲女主。居於男位。唯理陰事。不施陽徳。故有斯殃。伏願。以徳沢潤万物。以仁化覆百姓。天皇大悦。詔於天下。悉除今年租庸調税。일본어
2.3. 《구마노 연대기》 및 기타 기록
《구마노 연대기》(고서·세대기)에도 《일본서기》와 유사한 기록이 있으며, 《도요하마정지》에도 사누키국(현재의 가가와현)에서 미진(微震)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들 기록은 《일본서기》보다 훨씬 후대에 작성된 것이라 상세한 내용은 불분명하다.
* 《구마노 연대기》
[[을미]] 7일본어
4月27日、地震、舎屋破倒、祭神也일본어
* 《도요하마정지》
讃岐国亦微震 (四・二七)일본어
3. 지진학적 분석
현대 지진학자들은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599년 지진의 규모와 진앙을 추정하고 있다. 이마무라 아키츠네는 이 지진이 정사에 나타나는 최초의 대지진이라고 평가했고, 가와스미 히로시는 이 지진의 규모를 M = 7.0으로 추정했다.
3.1. 이마무라 아키츠네
지진학자 이마무라 아키츠네는 인교 지진과는 대조적으로, 본 지진이야말로 정사에 나타나는 최초의 대지진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대일본지진사료'에는 '야마토국 지진'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사방에 지진의 신을 제사지내게 한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좁은 범위의 지진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3.2. 가와스미 히로시
가와스미 히로시는 이 지진의 규모를 MK = 4.3으로 판정했으며, 규모는 M = 7.0으로 환산했지만, 진앙은 제시하지 않았고 규모의 근거도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