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이 반란
1. 개요
시나이 반란은 시나이 반도에서 일어난 무장 반란이다.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 이후 보안군 주둔이 감소하면서 무장 단체의 활동이 자유로워졌고, 2011년 이집트 혁명 이후에는 이집트의 불안정성을 틈타 급진 이슬람주의 세력이 이집트군과 상업 시설을 공격했다. 시나이 반도는 가자 지구와 연계되어 있으며, 이슬람 군 등 가자 지구 무장 단체의 지원을 받았다. 2011년부터 이집트 정부는 군사 작전을 통해 반군을 진압하려 했지만, 반군은 공격의 강도와 규모를 확대하며 이집트 본토까지 테러를 감행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의 불안정을 우려하여 이집트군의 증강을 승인했으며, 미국은 이집트에 정보 공유 및 기술 지원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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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전투 -
바니야스 포위전
바니야스 포위전은 2011년 시리아 봉기 당시 시리아 정부군이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바니야스를 공격하여 도시를 장악하고 시위대를 진압한 군사 작전으로, 종파 갈등 심화에 영향을 주며 5월 14일 종료되었다. -
2011년 전투 -
2011년 6월 지스르앗슈구르 충돌
2011년 6월 지스르 앗슈구르 충돌은 시리아 내전 초기에 정부군과 반정부 시위대 간 무력 충돌로, 정부군의 강경 진압과 국제 사회의 우려 속에 시리아 내전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2012년 전투 -
방어의 기둥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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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전투 -
알레포 전투 (2012년~2016년)
알레포 전투 (2012년~2016년)는 시리아 내전 중 알레포를 두고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세력 간에 벌어진 격렬한 전투이며, 정부군의 승리로 종결되었고 도시와 문화 유산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
2013년 전투 -
알레포 전투 (2012년~2016년)
알레포 전투 (2012년~2016년)는 시리아 내전 중 알레포를 두고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세력 간에 벌어진 격렬한 전투이며, 정부군의 승리로 종결되었고 도시와 문화 유산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
2013년 전투 -
락까 전투 (2013년)
2. 배경
시나이 반도는 오랫동안 무법 지대로 알려져 역사적으로 무기와 물자 밀수의 통로 역할을 해왔다. 수피교는 성전주의 세력이 이 지역을 장악하기 전까지 우세한 종교였다.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 조약으로 인해 이 지역의 안보 병력이 줄어들면서 무장 단체가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2011년 이집트 혁명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된 이후, 이집트의 불안정은 더욱 심화되었다. 시나이 반도에 생긴 안보 공백을 틈타 급진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이 이집트군과 상업 시설을 공격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 분쟁에는 카이로 중앙 정부에 대한 오랜 불만을 가진 현지 무장 베두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군대나 경찰에 입대할 수 없고, 관광업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우며, 많은 토지가 빼앗겼다고 불평한다. 또한, 시나이에 대한 제한적인 정부 투자와 개발은 지역 주민이었던 베두인 족의 반발을 샀으며, 시나이의 험준한 지형과 자원 부족은 이 지역을 빈곤하게 만들어 무장 세력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2.1. 가자 지구와의 연계성
시나이 반도에서 활동하는 15개의 무장 단체들은 가자 지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가자 지구에 본부를 둔 이슬람 군은 시나이 반도 무장 단체들의 훈련 및 보급을 담당했다. 이슬람 군의 지도자 모하메트 도르모시는 하마스 지도부와도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었다. Ynet에 따르면 이슬람 군은 훈련을 위해 가자 지구로 구성원들을 밀반입한 후 시나이 반도로 돌려보내 테러 및 지하디스트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이후 하마스와 이슬람 군은 적대 관계로 돌아섰고, 이슬람 군은 하마스를 "배교자" 조직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2015년 4월 하마스는 가자 지구 내 극단주의 이데올로기를 퇴치하기 위한 선전 운동을 시작했으며, 당시 IS나 다른 특정 단체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예루살렘 포스트는 이것이 시리아의 야르무크 난민촌에 대한 ISIS 공격에 대한 대응이라고 추측했다. 2015년 7월 ISIS는 하마스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집트는 하마스가 시나이 ISIS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공개적으로 두 단체는 격렬한 적대 관계를 유지했다. 2017년 라파 국경 검문소에서 IS 자살 폭탄 테러범이 하마스 정부의 국경 경비대원을 살해하고 다른 여러 명을 부상시켰다. 하마스는 살라피 무장 세력 수십 명을 가자 지구에서 체포했다.
2018년 시나이 ISIS에 가입했던 가자 지구 출신 팔레스타인인들이 카삼 여단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는 한 남성을 사로잡아 살해했다. 살해범들은 살인 장면을 담은 영상을 제작하여 하마스에 대한 "전쟁 선포"로 공개했다.
2019년, ISIS에 의한 또 다른 자살 폭탄 테러가 가자 지구 경찰을 직접 겨냥했다. 세 명의 경찰관이 사망했고, 세 희생자 모두 하마스 대원이었다고 주장된다.
3. 분쟁의 전개
2011년 이집트 혁명 이후 시나이 반도의 불안정성이 증가하면서 무장 단체의 공격이 빈번해졌다. 특히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축출되면서 이집트의 불안정이 커졌고, 급진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이 시나이 반도에 생긴 안보 공백을 이용해 이집트군과 상업 시설에 공격을 가했다.
2011년 8월, 이집트 정부는 '독수리 작전'을 개시하여 무장 단체 진압에 나섰지만, 제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2012년 8월에는 '시나이 작전'을 통해 무장 단체 제거 및 수에즈 운하 보호를 목표로 했으나,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
2013년 이집트 쿠데타 이후 이슬람주의 단체들의 공격이 격화되었고, 이집트군은 대규모 체포와 강경한 보안 조치를 취했다. 2014년 11월, '안사르 바이트 알마크디스'가 IS에 충성을 맹세하고 '시나이 주'로 개명하면서 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2015년 이후 반군 공격의 강도와 규모가 확대되었다. 2015년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 3월 10일: 물탱크를 이용한 경찰서 자살폭탄 공격 시도 (실패).
* 4월 2일: 군 검문소 공격으로 군인 15명, 민간인 2명, 공격자 15명 사망.
* 4월 12일: 북시나이에서 장갑차 폭격으로 군인 6명 사망, 아리시 경찰서 공격으로 경찰 5명과 민간인 1명 사망.
2016년 초반 반군의 공격이 증가했지만, 8월까지 공격과 사상자 수는 감소했다. 2018년 2월, 이집트군은 '시나이 2018 종합 작전'을 개시하여 대규모 공습과 지상 공격을 감행했다.
2019년, 휴먼 라이츠 워치는 이집트군과 경찰이 시나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권 침해를 자행했다고 보고했다. 2020년, IS는 비르 알 아브드 서쪽 시나이 반도의 5개 마을을 점령했다가 이집트군에 의해 격퇴되었다.
2021년 이후에도 산발적인 공격과 충돌이 계속되고 있으며, 2023년 1월 이집트 대통령은 북시나이 주에서 테러가 종식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여전히 분쟁의 여파가 남아있다.
3.1. 이집트 본토로의 확산
2013년 12월 24일, 만수라의 다칼리야 주 경찰서를 강타한 대규모 폭탄 테러로 16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가 이 공격에 대한 책임을 주장했다. 이 단체는 이집트군이 "세속 정부"에 복종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불신자로 간주하며, 이탈하지 않으면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4년 8월 5일, 무장 민병대가 마트루흐 도로에서 경찰차를 공격하여 경찰 5명이 사망했다.
2014년 11월 28일, 시나이 주라는 무장 단체가 카이로와 칼리우비야에서 군인 2명을 살해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주장했다.
2014년 12월 1일, 시나이 주는 2014년 8월 이집트 서부 사막에서 미국 시민 1명을 살해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주장했다.
2014년 12월 21일, 이집트 경찰이 나일 삼각주에 있는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 세포를 급습하여 대원 5명을 사살했다.
2014년 12월 26일, 카이로 동부 외곽에 있는 엘살람 시티에서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 무장 대원 2명이 총격전에서 사망했다. 내무부는 나중에 사망한 무장 대원 중 한 명이 나일 삼각주에 있는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의 지휘관이라고 밝혔다.
4. 이집트 정부의 대응
2011년 이집트 혁명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된 후, 시나이 반도에는 안보 공백이 발생했다. 이를 틈타 급진 이슬람 세력들이 이 지역의 특수한 환경을 이용하여 이집트 군사 시설과 상업 시설에 여러 차례 공격을 감행했다.
이 분쟁에는 현지 무장 베두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들은 카이로 중앙 정부에 대한 오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들은 군대나 경찰에 입대할 수 없고, 관광업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우며, 많은 토지를 빼앗겼다고 불평한다.
원래 시나이 반도는 무장 지하디스트 사상이 퍼지기 전까지 수피즘이 우세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시나이 반도는 오랫동안 무법 지대였으며, 역사적으로 무기와 물자 밀수의 통로 역할을 해왔다.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 조약의 안보 조항은 이 지역의 안보 병력 감축을 규정하여, 무장 세력이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하였다. 게다가 시나이에 대한 정부 주도의 투자와 개발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부족의 충성심을 중시하는 현지 베두인 인구는 차별을 받았다. 시나이의 험준한 지형과 자원 부족은 이 지역을 빈곤하게 만들었고, 이는 무장 세력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4.1. 군사적 대응
이집트군은 시나이 반도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고, 여러 군사 작전을 전개하여 반군에 대응했다. 2011년 8월, 이집트는 '독수리 작전(Operation Eagle)'을 개시하여 북시나이 도시 중심부에서 이슬람 무장 반군과 범죄 조직을 몰아내고, 가자 국경 검문소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2012년 8월에는 '시나이 작전(Operation Sinai)'을 시작하여 무장 이슬람주의 단체를 제거하고 수에즈 운하를 보호하며, 시나이 반도와 가자 지구를 연결하는 터널 네트워크를 파괴하고자 했다.
2013년 7월, 2013년 이집트 쿠데타 이후 이집트군과 보안 당국은 시나이 반도를 근거지로 하는 이슬람주의 단체들을 주요 표적으로 삼았다. 2014년에는 이집트군이 반도 내 민병대와의 전투에서 우위를 점했고, 안사르 바이트 알마크디스(Ansar Bait al-Maqdis)와 같은 무장 세력들을 방어적인 입장에 몰아넣었다.
2014년 11월, 2014년 10월 시나이 공격 이후 이집트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통행 금지령을 시행했으며, 시나이 반도와 가자 지구의 국경 지역에 완충 지대를 설치했다. 이집트군은 해당 공격 이후 처음으로 무장 드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018년 2월 9일, 이집트군은 '시나이 2018 종합 작전(Comprehensive Operation – Sinai 2018)'을 개시했다.
이집트군은 전차, 장갑차, 헬리콥터, 무장 전투기, 드론 등을 동원하여 무장 단체의 은신처를 공격하고, 검문소를 설치하여 교통 감시와 밀수 단속을 강화했다. 이집트 정부는 이집트-가자 국경을 따라 완충 지대를 설정하고, 군 작전 지역에서 4륜구동 차량을 금지하는 등 추가 조치를 취했다.
2017년 11월 모스크 공격 이후,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은 "최대한의 힘"으로 응답할 것을 맹세했고, 이집트 당국은 공군이 무장 세력의 차량과 무기들을 추격 및 파괴하고 인근 산악지대에서 공습을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집트군의 군사 작전은 민간인에게도 피해를 입혔다. 휴먼 라이츠 워치는 2019년 5월 보고에서 이집트군과 경찰이 시나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자의적 체포, 강제 실종, 고문, 사법 살인, 집단 처벌 및 강제 추방을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집트군은 학교를 군 기지로 사용하면서 학생들의 교육 기회를 박탈하고 문맹률을 증가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4.2. 사법적 대응
이집트 정부는 시나이반도에서 테러 행위를 저지른 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자들에게 사형을 집행했다. 2017년 12월 26일, 이집트는 2013년 군 검문소 공격으로 군인 9명을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남성 15명에게 사형을 집행했다.
5. 국제사회의 반응
시나이 반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복합적이었다. 특히 이스라엘과 미국의 반응이 주목할 만하다.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따라 시나이 반도는 비무장 지대로 유지되어야 했지만, 이스라엘은 이집트군의 군사 작전을 승인하거나 지원했다.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협의 없이 군사력을 증강했을 때는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며, 2015년 이후에는 이집트의 자유로운 군사 작전을 허용했다.
미국은 이집트에 정보 및 기술 지원을 제공하며 대테러 작전을 지지했다. 그러나 캠프 데이비드 협정 및 이집트-이스라엘 평화 조약 준수와 이스라엘과의 협력 유지를 강조했다.
요르단은 이집트 파이프라인 공격으로 인해 가스 공급에 차질을 빚어 경제적 손실을 보았고, 이집트에 보상을 요구했다. 다국적 감시군(MFO)은 이집트의 군사 작전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5.1. 이스라엘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따라 시나이 반도는 비무장 지대로 유지되어야 하며, 안보 강화를 위한 군대 외에는 주둔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의 불안정을 우려하여 2011년 이후 이집트군의 두 차례 작전을 승인했다.
2012년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협의 없이 군 병력과 전차를 증파하면서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었다. 아비즈도르 리에베르만 이스라엘 외교부 장관은 이집트와의 평화 조약 유지가 중요하며, 이집트군의 시나이 반도 진입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백악관을 통해 이집트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 캠프 데이비드 협정 위반을 이유로 전차 철수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군사 작전에 대해 공식적인 항의보다는 조용한 접촉과 미국의 중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2012년 8월 24일, 이집트 군사 소식통은 양국 국방장관이 시나이 반도 무장 문제에 대해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이스라엘 국방부는 이를 부인했다.
2012년 9월 8일, 이스라엘은 이글 작전에 대해 이집트와 협의가 있었다고 확인했다.
2015년 7월, 이집트군 검문소에 대한 공격 이후, 이스라엘은 이집트가 시나이 반도 북부에서 자유롭게 군사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벤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집트에 위로를 표하며 이슬람 극단주의와의 싸움에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2월 3일, 뉴욕 타임스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군사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100회 이상의 공습을 실시했다고 보도했으나, 이집트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2021년, 이스라엘은 이집트와의 군사 회담 이후 라파 근처에 이집트군 추가 배치를 허용했다.
5.2. 미국
미국은 시나이 반도의 안보 강화를 위해 이집트에 기밀 정보를 공유하고 기술 지원을 제공했다. 이 기술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원거리 차량 식별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다국적군 감시단도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미국은 위성 이미지와 무인기(드론) 비행, 휴대전화 감청 및 기타 통신 감시를 포함한 정보 공유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이집트의 대테러 작전을 지지하면서도, 1979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 및 이집트-이스라엘 평화 조약 준수와 이스라엘과의 협력 유지를 촉구했다. 2012년 8월 22일, 미국 국방부는 이집트에게 독수리 작전을 비롯한 시나이 반도 내의 안보 작전에 대해 투명하게 해 줄 것을 촉구했다.
2012년 8월 23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집트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이스라엘과의 소통 채널을 유지하고 시나이 반도의 군사화에 대한 투명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5.3. 기타 국가 및 국제기구
이집트 파이프라인은 2011년 초반 봉기 시작 이후 요르단으로 가는 천연가스 수송 중 최소 15차례 공격을 받았다. 이집트산 가스 부족은 요르단 예산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는데, 지난 2년간 요르단 디나르 14억 또는 2 상당이었다. 요르단은 이집트에 손실된 가스량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1979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 당시 창설된 1,650명 규모의 다국적 평화유지군인 다국적 감시군(MFO)은 2012년 이글 작전(Operation Eagle)이 강화되는 동안 저자세를 유지했다. 이집트가 시나이 반도로 무기를 이동하는 것에 대해 이스라엘의 허가를 받았는지, 그리고 이스라엘이 허가를 내주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이 기구의 대표는 "현재 언론의 질문에 답변할 수 없습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