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네현 제2구
1. 개요
시마네현 제2구는 1994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신설된 일본 중의원 소선거구이다. "다케시타 왕국"으로 불리며 다케시타 노보루 전 총리의 영향력이 강했던 지역으로, 2002년 구역 변동을 거쳐 하마다시, 이즈모시, 마스다시, 오다시, 고쓰시, 오치군, 가노아시군을 포함한다. 역대 국회의원으로는 다케시타 노보루, 다케시타 와타루 등이 있으며, 2021년 제49회 총선거에서는 다카미 야스히로가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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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네현의 선거구 -
돗토리현·시마네현 선거구
돗토리현·시마네현 선거구는 돗토리현과 시마네현 전역을 관할하는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구로, 2명의 의원을 선출하며, 자유민주당이 주로 의석을 차지해왔다. -
시마네현의 선거구 -
시마네현 제1구
시마네현 제1구는 마쓰에시, 야스기시 등을 관할하며 독도를 포함하는 일본 중의원의 소선거구로, 자유민주당 호소다 히로유키의 사망 후 2024년 보궐선거에서 입헌민주당 가메이 아키코가 당선되어 처음으로 야당 의원을 배출했다. -
일본 중의원 선거구 -
에히메현 제2구
에히메현 제2구는 일본 에히메현의 중의원 선거구로, 마쓰야마시 일부, 이마바리시, 도온시, 오치군, 이요군을 포함하며 과거 자유민주당 텃밭이었으나 2024년 총선에서 입헌민주당이 승리하며 변화를 겪었고, 무라카미 세이이치로 의원이 장기간 당선되었던 지역이다. -
일본 중의원 선거구 -
에히메현 제3구
에히메현 제3구는 일본 에히메현의 중의원 선거구로, 과거에는 에히메현 동부 지역을 관할했으나 선거구 개정 이후 관할 지역이 크게 변경되었고, 정당 간 경쟁이 치열한 지역이다.
2. 역사
1994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시마네현 제2구가 신설되었다. 이 지역은 다케시타 노보루 전 총리의 강력한 영향력으로 "다케시타 왕국"이라 불릴 정도였으며, 소선거구제 도입 후에도 다케시타 노보루와 그의 후계자인 친동생 다케시타 와타루가 굳건한 지지 기반을 다졌다. 2005년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국민신당 소속 가메이 히사오키가 처음으로 비례대표로 부활하면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2009년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자민당에 대한 역풍 속에서도 다케시타 와타루가 재선되었고, 1구의 호소다 히로유키도 소선거구에서 당선되어 "다케시타 왕국"의 면모를 유지했다. 2012년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다케시타가 큰 표 차로 당선되는 등 자민당의 강세가 이어졌다.
2021년 다케시타 와타루는 정계 은퇴를 표명했으나, 임기 만료 전 2021년 9월 17일 사망했다. 보궐 선거는 실시되지 않았고,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까지 시마네 2구는 공석이었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 하의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다케시타 와타루의 은퇴로 공모를 통해 선출된 다카미 야스히로가 당선되어 자민당 의석을 지켰다.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다카미 야스히로는 큰 표 차로 당선되었다.
2002년, 2013년, 2022년에는 공직선거법 개정에 따른 구역 변동이 있었다.
2.1. 구역 변동 상세
1994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시마네현 제2구가 신설되었다. 이후 2002년, 2013년, 2022년에 걸쳐 공직선거법 개정에 따른 구역 변동이 있었다.
2.1.1. 2002년 이전
1994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신설되었다. 2002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어 구역 변동이 있었다. 1994년 공직선거법 개정부터 2002년 소선거구 개정까지의 구역은 다음과 같다.
2.1.2. 2002년부터 2022년까지
2002년(헤이세이 14년) 공직선거법 개정부터 2013년 소선거구 개정까지의 구역은 다음과 같다. 구획 변경 결과, 신 2구는 시마네현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광대한 범위가 되어 전국에서도 12번째 넓이를 가지게 되었다. 넓이는 교토부의 총 면적(4613km2)과 거의 일치한다.
2013년(헤이세이 25년) 공직선거법 개정부터 2022년 소선거구 개정까지의 구역은 다음과 같다.
2.1.3. 현재 (2022년 이후)
2022년(레이와 4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이즈모시와 운난시의 분할이 해소되었다(운난시 전역은 1구로, 이즈모시 전역은 본 구로). 이이시군은 본 구에서 1구로 변경되었다.
4. 역대 국회의원
| 선거명 | 년도 | 당선자 | 정당 | 비고 |
|---|---|---|---|
|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996년 (헤이세이 8년) | 다케시타 노보루 | 자유민주당 |
|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0년 (헤이세이 12년) | 다케시타 와타루 | |
|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3년 (헤이세이 15년) | 다케시타 와타루 | |
|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5년 (헤이세이 17년) | 다케시타 와타루 | |
|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9년 (헤이세이 21년) | 다케시타 와타루 | |
|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12년 (헤이세이 24년) | 다케시타 와타루 | |
|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14년 (헤이세이 26년) | 다케시타 와타루 | |
|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17년 (헤이세이 29년) | 다케시타 와타루 | |
|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21년 (레이와 3년) | 다카미 야스히로 | |
|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24년 (레이와 6년) | 다카미 야스히로 |
5. 역대 선거 결과
| 선거명 | 투표일 | 후보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비고 |
|---|---|---|---|---|---|---|
|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996년 10월 20일 | 다케시타 노보루 | 자유민주당 | 86,462 | ||
| 니시키오리 준 | 신당 사키가케 | 62,790 | ||||
| 사사키 요코 | 일본공산당 | 9,822 | ||||
|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0년 6월 25일 | 다케시타 와타루 | 자유민주당 | 112,774 | ||
| 니시키오리 준 | 민주당 | 51,026 | ||||
| 사사키 요코 | 일본공산당 | 6,857 | ||||
|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3년 11월 9일 | 다케시타 와타루 | 자유민주당 | 145,555 | ||
| 이시다 료조 | 민주당 | 50,951 | ||||
| 데지마 치즈코 | 사회민주당 | 20,965 | ||||
| 무코세 신이치 | 일본공산당 | 10,774 | ||||
|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5년 9월 11일 | 다케시타 와타루 | 자유민주당 | 127,118 | ||
| 카메이 히사오키 | 국민신당 | 72,098 | ||||
| 코무로 토시아키 | 민주당 | 34,999 | ||||
| 무코세 신이치 | 일본공산당 | 10,704 | ||||
|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9년 8월 30일 | 다케시타 와타루 | 자유민주당 | 135,296 | ||
| 카메이 히사오키 | 국민신당 | 108,192 | ||||
| 아이우라 신지 | 행복실현당 | 2,925 | ||||
|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12년 12월 16일 | 다케시타 와타루 | 자유민주당 | 135,270 | ||
| 이시다 쇼고 | 민주당 | 48,046 | ||||
| 무코세 신이치 | 일본공산당 | 16,442 | ||||
|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14년 12월 14일 | 다케시타 와타루 | 자유민주당 | 123,584 | 공명당 추천 | |
| 야마모토 호마레 | 사회민주당 | 34,558 | ||||
| 무코세 신이치 | 일본공산당 | 20,479 | ||||
|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21년 10월 31일 | 다카미 야스히로 | 자유민주당 | 110,327 | 공명당 추천 | |
| 야마모토 호마레 | 입헌민주당 | 52,016 | ||||
| 무카이세 신이치 | 일본 공산당 | 14,361 | ||||
|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24년 | 다카미 야스히로 | 자유민주당 | 99,829 | 공명당 추천 | |
| 오쓰카 사토코 | 입헌민주당 | 49,302 | ||||
| 카메타니 유코 | 일본 공산당 | 14,983 |
* 제42회 총선거는 다케시타 노보루의 사망 직전에 치러져, 그의 친동생인 다케시타 와타루가 후계자로 출마했다.
* 코무로 토시아키는 제45회 총선거에서 시마네현 제1구로 지역구를 옮겨 출마하여 비례대표로 부활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