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빈 신씨
1. 개요
신빈 신씨는 조선 태종의 후궁으로, 함녕군 이인을 낳았으며, 1872년 고종대에 정1품 신빈으로 추증되었다. 원경왕후 사후 내명부를 총괄했으며, 태종의 총애를 받았다. 태종 사후 비구니가 되어 불교에 귀의하였으며, 세종은 그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불경을 금으로 쓰게 했다. 1435년에 사망했으며, 세종은 국모에 준하는 예우를 했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해 있으며, 2001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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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신씨 -
신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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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신씨 -
신건 (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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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5년 사망 -
선덕제
선덕제는 명나라의 5대 황제로, 뛰어난 능력과 정치적 경험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통치를 이룩하고 정화의 남방 항해를 재개하는 등 업적을 남겼으나, 환관의 권력 강화는 비판받기도 하며, 문인화가로서 재능도 보인 그의 치세는 명나라 전성기로 평가된다. -
1435년 사망 -
조반나 2세
조반나 2세는 1414년부터 1435년까지 나폴리 여왕으로 재임하며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나폴리를 통치했고 예술과 문학을 후원했지만 후계자를 남기지 못해 앙주 가문의 르네 1세에게 왕위가 넘어갔다. -
1377년 출생 -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의 건축가, 조각가, 기술자로, 피렌체 대성당 돔 설계 및 건설, 선 원근법 체계화 등 건축과 미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만능인이다. -
1377년 출생 -
건문제
건문제는 명나라의 제2대 황제로, 유교적 이상 정치를 추구하며 개혁을 시도했으나 숙부들의 반란으로 실종되었고 사후 복권되었다.
2. 생애
본관은 영월이고 아버지는 검교 공조참의 신영귀(辛永貴)이다. 본래 원경왕후 민씨의 나인으로 궁에 들어왔으며, 1402년(태종 2년) 아들 함녕군 인(裀)을 낳았다. 1414년(태종 14년) 아들 함녕군이 정윤(正尹)에 봉해지면서 신녕옹주(信寧翁主)로 봉해졌다.
1422년(세종 4년) 태종을 간호한 공으로 신녕궁주(愼寧宮主)로 봉해졌고, 태종 사후에는 비구니가 되었다. 1435년(세종 17년) 세상을 떠났으며, 세종은 서모임에도 국모에 준하는 예우를 갖추었다.
1872년(고종 9년) 정1품 신빈(信嬪)으로 추증되었다. 묘역인 신빈신씨묘역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에 있으며, 2001년 9월 18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2.1. 태종과의 관계
본관은 영월이며 검교 공조참의 신영귀(辛永貴)의 딸이다. 본래 원경왕후 민씨를 모시는 나인이었으나, 1402년(태종 2년) 아들 함녕군 인(裀)을 낳았다. 이후 1414년(태종 14년) 1월 13일, 아들 인(裀)이 정윤(正尹)으로 봉해지면서 신씨도 신녕옹주(信寧翁主)가 되었다.
신씨는 태종의 여러 후궁 가운데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았다. 그녀의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탄핵을 당해 벌을 두려워하던 신효창(申孝昌)이 당시 태종의 총애를 받던 신녕옹주에게 노비를 뇌물로 바치려 했으나, 신씨는 이를 받지 않았다. 또한 광대 이법화(李法華)의 아들 오마지(吾麿知)가 사신을 따라 북경에 가고 싶어 무수리 내은이(內隱伊)와 그 오빠 봉길(奉吉)을 통해 신녕옹주에게 뇌물을 주려 했으나 이 역시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
원경왕후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내명부를 총괄하며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1422년(세종 4년), 태종이 병으로 자리에 누웠을 때 정성껏 간호하였고, 그 공으로 신녕궁주(愼寧宮主)로 봉해졌다. 태종이 승하한 뒤에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불경을 외며 태종의 명복을 빌었다. 다른 후궁들도 그녀를 따라 불교에 귀의했다고 전해진다.
1423년(세종 5년), 신씨가 태종의 명복을 빌고자 하는 뜻을 보이자 세종은 문소전(文昭殿)의 불당(佛堂)에 금으로 불경을 쓰게 하며 그녀의 정성을 도왔다.
1435년(세종 17년) 신씨가 세상을 떠나자, 세종은 그녀가 비록 서모(庶母)였지만 국모(國母)에 준하는 예우를 갖추어 장례를 치렀다. 상장(喪章)을 갖추고 친히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조문하였으며, 수의(壽衣)를 하사하기도 했다.
훗날 1872년(고종 9년)에 정1품 신빈(信嬪)으로 추증되었다.
2.2. 불교 귀의
1422년(세종 4년) 태종이 죽은 후에 스스로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아침 저녁으로 불경을 외우며 태종의 명복을 빌었다. 신씨의 이러한 행동은 다른 후궁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그들도 이를 따라했다. 1423년(세종 5년), 신씨가 태종의 복을 빌고자 하는 뜻을 세종은 받아들여 문소전(文昭殿)의 불당(佛堂)에 금으로 불경을 쓰게 하였다.
3. 가족 관계
* 아버지 : 신영귀( 辛永貴한국어 )
* 남편 : 태종( 太宗한국어 , 1367 ~ 1422)
3.1. 자녀
* 장남 : 함녕군( 諴寧君ko-Hani , 1402 ~ 1467) 이인( 李裀ko-Hani )
부인 : 전주군부인 최씨( 全州郡夫人 崔氏ko-Hani ) - 좌의정( 左議政ko-Hani ) 최사강( 崔士康ko-Hani )의 딸
* 손자 : 덕성군 민( 德城君 敏ko-Hani , 1430 ~ 1473)
손자며느리 : 능선군부인 구씨, 구신충( 具信忠ko-Hani )의 딸
* 증손자(양증손자) : 팔계군 정( 八溪君 停ko-Hani ) - 임영대군의 4남
* 손녀 : 파평 윤씨 윤오( 尹塢ko-Hani )에게 출가
* 손녀 : 조졸
* 차남 : 온녕군( 溫寧君ko-Hani , 1407 ~ 1454) 이정( 李裎ko-Hani )
부인 : 익산군부인 박씨( 益山郡夫人 朴氏ko-Hani ) - 박안명( 朴安命ko-Hani )의 딸
* 장녀 : 정신옹주( 貞信翁主ko-Hani , ? ~ 1452)
사위 : 영평군( 鈴平君ko-Hani ) 윤계동( 尹季童ko-Hani )
* 차녀 : 정정옹주( 貞靜翁主ko-Hani , 1410 ~ 1456)
사위 : 한원군( 漢原君ko-Hani ) 조선( 趙璿ko-Hani )
* 삼녀 : 숙정옹주( 淑貞翁主ko-Hani , ~ 1489년 이후)
사위 : 일성군( 日城君ko-Hani ) 정효전( 鄭孝全ko-Hani )
* 사녀 : 숙녕옹주( 淑寧翁主ko-Hani , 생몰년 미상)
사위 : 파성군( 坡城君ko-Hani ) 윤우( 尹愚ko-Hani )
* 오녀 : 소신옹주( 昭信翁主ko-Hani , ? ~ 1437)
사위 : 유천위( 柔川尉ko-Hani ) 변효순( 邊孝順ko-Hani )
* 육녀 : 소숙옹주( 昭淑翁主ko-Hani , ? ~ 1456)
사위 : 해평위( 海平尉ko-Hani ) 윤연명( 尹延命ko-Hani )
* 칠녀 : 숙경옹주( 淑慶翁主ko-Hani , 1420 ~ 1494)
사위 : 파평군( 坡平君ko-Hani ) 윤암( 尹巖ko-Hani )
4. 묘소
신빈신씨묘역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산 13번지에 있다. 2001년 9월 18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05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