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준
1. 개요
신언준은 평안남도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다.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상하이로 유학하여 상해청년동맹회를 결성하며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안창호의 흥사단에서 활동하며 안창호를 보좌하고, 여운형이 설립한 인성학교의 학감을 역임했다.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중국 문제를 한국에 알리고, 한국 독립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폐결핵으로 35세에 사망했으며, 198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주체사상 비판으로 유명한 철학자 신일철은 그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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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군 출신 -
우동측
우동측은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후 요직을 두루 거치며 김정은 체제 안착을 위한 숙청을 주도했으며, 뇌졸중 또는 숙청설 이후에도 열병식에 참가하여 건재함을 과시했다. -
평원군 출신 -
박흥주
박흥주는 일제강점기 출생으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 중앙정보부 근무, 김재규 전속부관을 거쳐 10·26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다. -
한국독립당의 당원 -
김시현 (1883년)
김시현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2대 및 제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
한국독립당의 당원 -
김정례
김정례는 대한민국 제1세대 여성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서, 여성단체 창립 및 국회의원, 보건사회부 장관, 정당 상임고문 등을 역임하며 여성계와 정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여성 정치 진출에 기여했다. -
1938년 사망 -
에드윈 홀
에드윈 허버트 홀은 홀 효과를 발견하고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 교수로 재직하며 물리학 교과서를 저술한 미국의 물리학자이다. -
1938년 사망 -
박성빈 (조선)
박성빈은 1871년에 태어나 무과에 급제하고 동학 농민 운동에 가담했으며, 아들 박정희는 대통령이 되었다.
2. 생애
평안남도 평원군 출생이다. 평안북도 정주시의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대 초반 상하이로 유학했다.
대학 재학 중 상해청년동맹회를 발기해 설립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열에서 독립 운동을 시작했다. 상해청년동맹회는 김상덕, 엄항섭, 윤소야 등이 참여한 단체이다.
안창호의 흥사단 간부를 지내며 1927년 안창호가 중국 각지를 돌며 외교적인 노력을 벌일 때는 그를 보좌하였고, 상하이에 망명한 독립 운동가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여운형이 설립한 인성학교의 학감을 맡기도 했다. 이후 상하이와 난징에 머물면서 《동아일보》 특파원을 지냈다.
신언준이 중국에서 기자로 근무하며 외부 기고를 병행하여 언론 활동을 하던 1920년대 중반부터 약 10년 동안은 일본이 만보산 사건 등으로 중국인과 한국인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때였다. 그는 중국 문제를 한국에 바로 알리고 중국 내에서도 한국 독립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폐결핵이 악화되어 귀국한 뒤 1938년 35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198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주체사상 비판으로 유명한 철학자 신일철이 그의 아들이다.
2.2. 상하이 유학 및 독립운동 참여
평안남도 평원군 출생으로, 평안북도 정주시의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대 초반 상하이로 유학했다. 대학 재학 중 상해청년동맹회를 발기해 설립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열에서 독립 운동을 시작했다. 상해청년동맹회는 김상덕, 엄항섭, 윤소야 등이 참여한 단체이다.
안창호의 흥사단 간부를 지냈으며, 1927년 안창호가 중국 각지를 돌며 외교적인 노력을 벌일 때 그를 보좌하였다. 상하이에 망명한 독립 운동가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여운형이 설립한 인성학교의 학감을 맡기도 했다. 이후 상하이와 난징에 머물면서 《동아일보》 특파원을 지내다가 35세의 나이에 병사했다.
신언준이 중국에서 기자로 근무하며 외부 기고를 병행하여 언론 활동을 하던 1920년대 중반부터 약 10년 동안은 일본이 만보산 사건 등으로 중국인과 한국인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때였다. 그는 중국 문제를 한국에 바로 알리고 중국 내에서도 한국 독립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2.3. 흥사단 및 인성학교 활동
신언준은 평안남도 평원군 출생으로, 평안북도 정주시의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대 초반 상하이로 유학했다. 대학 재학 중 상해청년동맹회를 발기해 설립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열에서 독립 운동을 시작했다. 상해청년동맹회는 김상덕, 엄항섭, 윤소야 등이 참여한 단체이다.
안창호의 흥사단 간부를 지내며 안창호가 1927년 중국 각지를 돌며 외교적인 노력을 벌일 때는 그를 보좌하였고, 상하이에 망명한 독립 운동가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여운형이 설립한 인성학교의 학감을 맡기도 했다.
2.4. 언론 활동과 일제 비판
평안남도 평원군 출신으로, 평안북도 정주시의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대 초반 상하이로 유학했다. 대학 재학 중 상해청년동맹회를 발기해 설립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열에서 독립 운동을 시작했다. 상해청년동맹회는 김상덕, 엄항섭, 윤소야 등이 참여한 단체이다.
안창호의 흥사단 간부를 지내며 1927년 안창호가 중국 각지를 돌며 외교적인 노력을 벌일 때 그를 보좌하였고, 상하이에 망명한 독립 운동가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여운형이 설립한 인성학교의 학감을 맡기도 했다. 이후 상하이와 난징에 머물면서 《동아일보》 특파원을 지냈다.
신언준은 중국에서 기자로 근무하며 외부 기고를 병행하여 언론 활동을 하던 1920년대 중반부터 약 10년 동안은 일본이 만보산 사건 등으로 중국인과 한국인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때였다. 그는 중국 문제를 한국에 바로 알리고 중국 내에서도 한국 독립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