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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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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흥사단은 19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에 의해 창립된 민족운동단체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교민 사회를 보호하는 데 힘썼으며, 해방 후에는 국내로 본부를 옮겨 사회 개혁 운동과 교육 사업을 펼쳤다. 현재는 민족통일, 투명사회, 교육운동 등 3대 시민운동을 전개하며, 청소년 시설 운영, 도산아카데미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 역사

1909년 8월 신민회 산하 청년운동단체로 설립된 청년학우회1910년 국권 상실로 해체되었으나, 그 이념은 흥사단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청년학우회는 무실, 역행, 자강, 충실, 근면, 정제, 용감 등을 강령으로 삼았고, 덕(德)·체(體)·지(智) 3육에 관한 동맹수련을 매일 한 가지 이상씩 행하여 공동체의 힘을 기르는 훈련을 하였다. 최남선이 중앙 총무를 맡았으나, 이는 도산 안창호의 지도·감독 하에 이루어졌다.[1]

1913년 5월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를 비롯한 6인이 창단발기인대회를 개최하고 안창호를 전권위원으로 선출하였다. 그해 12월 20일 창립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914년 7월 조병옥이 충청도 대표로 선정되어 8도 대표 선정을 마쳤으나, 후에 대표가 교체되기도 했다.

안창호, 이광수, 장이욱, 주요한, 주요섭, 김동원, 조병옥, 안병욱 등이 흥사단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흥사단 단우들은 안악사건, 105인 사건, 3·1 운동, 수양동우회 사건 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독립운동에 기여하였다. 흥사단은 미국 내 한인 교민들의 사회 활동과 권익 보호 등도 적극 지원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하와이, 필라델피아, 캐나다, 멕시코 등지로 지부가 확산되었다. 1919년 상하이에 흥사단 원동지부가 결성되고, 1922년 이광수 등에 의해 흥사단 원동지부 조선지회가 조직되었다. 수양동맹회와 동우구락부는 통합되어 수양동우회로 개편되었으나,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을 계기로 해산되었다.

1948년 본부를 국내로 옮기고 재조직되었다. 장이욱, 안병욱, 김동원, 주요한, 주요섭, 조병옥 등이 주요 인물이었다. 현재 본부는 서울 대학로에 있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적극 지지하였다. 새 정부 수립 후 사회 개혁 운동, 교육 사업, 장학 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현재까지 배출된 회원 수는 10만 명에 달한다.

1990년대 시민사회가 성장하면서 흥사단은 다양한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97년 민족통일운동, 2001년 투명사회운동, 2002년 교육운동을 포함한 3대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지역사회 풀뿌리 시민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1]

2013년 5월 13일, 흥사단은 창립 100주년을 맞아 '민족을 위한 100년, 세계를 향한 100년'이라는 비전을 선포했다. 흥사단은 시민운동 외에도 전국 24개 청소년 시설 (자원봉사센터, 청소년 회관, 수련관 등)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1]

2. 1. 배경

1909년 8월 신민회 산하 청년운동단체로 설립된 청년학우회1910년 8월 국권 상실로 해체되었으나, 청년들에게 조선혼(朝鮮魂)을 일깨우고 심어주기 위한 이념은 흥사단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청년학우회는 무실, 역행, 자강, 충실, 근면, 정제, 용감 등을 강령으로 삼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덕(德)·체(體)·지(智) 3육에 관한 동맹수련을 매일 한 가지 이상씩 행하여 공동체의 힘을 기르는 훈련을 하였다. 최남선이 중앙 총무를 맡아 청년학우회를 운영하였으나, 이 모든 과정은 사실상 도산 안창호의 구상과 꼼꼼한 지도·감독 하에 이루어졌다.[1]

2. 2. 일제 강점기

1913년 5월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를 비롯한 하상옥, 정원도, 강영소, 홍언, 양주은 등 6인이 이대위 목사의 집례로 창단발기인대회를 개최하고 전권위원으로 안창호를 선출하였다. 그해 12월 20일에는 홍언(경기도), 염만석(강원도), 민찬호(황해도), 송종익(경상도), 강영소(평안도), 김종림(함경도), 정원도(전라도) 등으로 창립위원회(위원장 홍언)를 구성하였다. 1914년 7월에 조병옥이 충청도 대표로 선정되어 8도 대표 선정을 마쳤으나, 후에 김항주(황해도), 김홍균(평안도) 대표로 교체되었다.

안창호, 이광수, 장이욱, 주요한, 주요섭, 김동원, 조병옥, 안병욱 등이 흥사단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흥사단 단우들은 안악사건, 105인 사건, 3·1 운동, 수양동우회 사건 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독립운동에 기여하였다.

흥사단은 독립운동을 위한 조직적 재정 후원과 일꾼 양성을 통해 민족 독립의 사명을 완수하는 일에 매진했을 뿐 아니라, 미국 내 한인 교민들의 사회 활동, 권익 보호, 언론 활동, 교민 사회 단결과 사회 활동 등을 적극 지원하였다. 흥사단은 미국 캘리포니아와 샌프란시스코, 하와이, 필라델피아 등으로 지부가 확산되었고, 캐나다멕시코 등 한국인 교민들이 정착한 곳으로 지부가 확산되었다. 1919년에는 흥사단 원동지부(중국 상하이)가 결성되고, 1922년에는 이광수 등에 의해 흥사단 원동지부 조선지회가 조직되었다. 흥사단 조선지회의 측면 지원 단체로 김동원에 의해 동우구락부, 이광수에 의해 수양동맹회가 조직되었다. 수양동맹회와 동우구락부는 다시 통합되어 수양동우회로 개편되었으나,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을 계기로 해산되었다.

2. 3. 해방 이후

1948년 본부를 국내로 옮기고 재조직되었다. 장이욱, 안병욱, 김동원, 주요한, 주요섭, 조병옥 등이 흥사단의 주요 인물이었다. 현재 본부는 서울 대학로에 있다. 잡지 《새벽》을 발간하였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적극 지지하였다. 새 정부 수립 후 사회 개혁 운동, 고등학교·대학교·청년아카데미 조직을 바탕으로 한 교육 사업, 장학 사업, 언론 감시 활동 등 다양한 정치, 사회 활동을 주관하거나 동참하였다. 현재까지 배출된 회원 수는 10만 명에 달한다.

2. 4. 현재

1990년대 시민사회가 성장하면서 시민들의 참여가 활발해졌고, 흥사단은 이에 발맞춰 다양한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97년 민족통일운동을 시작으로, 2001년에는 투명사회운동, 2002년에는 교육운동을 포함한 3대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지역사회 풀뿌리 시민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1]

2013년 5월 13일, 흥사단은 창립 100주년을 맞아 '민족을 위한 100년, 세계를 향한 100년'이라는 비전을 선포했다. 이를 통해 앞으로 100년 동안 지속 가능한 흥사단운동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1]

흥사단은 시민운동 외에도 전국 24개 청소년 시설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자원봉사센터, 청소년 회관, 수련관 등이 있다.[1]

3. 역대 지도부

흥사단은 역대 이사장과 총재를 두어 단체를 이끌어 왔다. 1913년 초대 이사장 안창호를 시작으로, 송종익, 1929년 곽림대, 김성권, 이암, 한시대 등이 이사장직을 역임하였다. 1967년 이용설이 이사장에 취임한 후, 이대위, 백낙준, 박원선, 최희송(~ 1980년) 등이 이사장직을 수행하였다. 1980년 김주흥, 1983년 서영훈, 안병욱, 안기영(~ 1995년 1월)을 거쳐 1995년 1월부터 1999년 1월 9일까지 김종림이 이사장을 연임하였다. 1999년 1월 9일 이후 이대형, 김소선이 이사장직을 맡았으며, 2006년 10월 18일 구치모가 이사장에 취임하여 2007년 2월까지 재임하였다. 이후 2007년 2월 박인주, 2009년 반재철, 2014년 이윤배가 이사장으로 활동하였다.

역대 총재로는 유길준, 안창호가 있었다. 서영훈 역시 총재를 역임한 바 있다.

3. 1. 역대 이사장


3. 2. 역대 총재

대수이름재임 기간
1유길준?
2안창호?
???
?서영훈?


4. 운동 본부

흥사단은 민족통일운동본부, 투명사회운동본부, 교육운동본부의 3대 운동본부를 운영하고 있다.[1][2][3]

4. 1. 민족통일운동본부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흥민통)는 1997년에 흥사단의 3대 운동 중 가장 먼저 설립된 운동본부이다.[1]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 청소년과 대한민국 청소년이 함께하는 한중청소년친선문화제를 주최하고, 통일아카데미, 통일포럼 등을 진행하는 통일운동 단체이다.

4. 2. 투명사회운동본부

1999년 5월 흥사단 반부패투명사회위원회로 출발한 시민운동 단체로, 반부패 청렴운동이 목적이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에 따라 우리 사회를 정직, 공정, 공익, 공개의 가치를 가진 깨끗한 사회로 만들고자 하는 투명사회운동을 한다. 국제 수준에 부응하는 부패방지 입법(김영란법 등)을 비롯한 정책 활동과 공직자와 시민, 그리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청렴한 의식을 심어주는 교육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2]

4. 3. 교육운동본부

2002년에 출범한 흥사단 교육운동본부는 건강한 청소년 육성을 목표로 민주적 교육체제 구축, 청소년 세대의 의견 경청, 인성교육 실천 등을 과제로 삼고 있다. 2005년에는 교육운동본부 운영위원을 맡은 현직 교사가 학교 내 폭력단체인 일진회의 실태를 폭로하기도 했다.[3]

5. 부설 기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바탕으로 통일 문제를 비롯한 국가 사회 발전에 필요한 과제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여러 부설 기관을 두고 있다. 그중 하나인 도산아카데미는 1989년 6월 3일 흥사단 부설 '도산아카데미연구원'으로 설립되었으며, 2000년 7월 19일 '사단법인 도산아카데미'로 등록되었다.[4] 도산아카데미는 학술 및 정책 연구, 사회 교육 및 지도자 훈련, 홍보 및 출판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특히 지도층 인사들을 대상으로 도산 정신을 일깨우고 있다.[4]

5. 1. 도산아카데미

1950년대 후반부터 흥사단이 늙어가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청소년 운동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1956년 연차대회에서 주요한이 새 세대 청년에게 바톤을 넘겨줄 시기가 되었음을 선언하면서 아카데미 창설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4] 1948년에 조직된 청년부가 1956년에 분화되어 고등학생회를 별도로 창립하고, 청년부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 모색되었다. 4·19 혁명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은 흥사단은 대대적인 홍보활동과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4]

1963년 9월 1일에 제정된 '세포의 조직과 운영요강'에 따라, 각 지역 분회 조직과 청년,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소년 아카데미를 창립하기로 하였다. 1963년 8월 25일 본부 강당에서 청년 아카데미 창립 총회가 개최되었고, 8월 31일에는 대학생 서울 아카데미, 9월 13일에는 고등학생 서울 아카데미가 창립되었다.[4] 1963년 10월 5일 부산 분회를 시작으로, 10월 6일 서울 분회, 인천(64. 1), 대구(64. 9), 광주(65. 9), 대전(66. 3), 청주(66. 6), 원주(66. 5) 전주(67. 11), 진주(67. 11), 여수(68. 9), 제주(68. 10) 등지에서 아카데미와 분회가 창립되었다.[4]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분회보다 아카데미가 먼저 창립되었으며, 오랫동안 지방 조직에서 실질적으로 조직체의 생명은 아카데미에 의해 유지되었다.[4]

이러한 아카데미 운동은 민족의 스승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바탕으로 통일 문제를 비롯한 국가 사회 발전에 필요한 과제를 연구하고 실천함으로써 한국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1989년 6월 3일 흥사단 부설 '도산아카데미연구원' 설립으로 계승되었다.[4] 2000년 7월 19일, 행정자치부에 '사단법인 도산아카데미'로 등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4]

도산아카데미는 그동안 학술 및 정책 연구, 사회 교육 및 지도자 훈련, 홍보 및 출판 사업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4] 특히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지도층 인사들을 대상으로 도산 정신을 일깨워 옴으로써 지식인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 모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4] 현재 도산아카데미는 조찬세미나, 스마트사회지도자포럼, CEO코칭포럼 등을 운영하고 있다.[4]

도산아카데미의 주요 사업은 다음과 같다.[4]

  • 민주 시민 의식을 함양하는 사업
  •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을 실천, 보급하는 사업
  • 국가 사회 발전과 관련된 정책 연구 사업
  • 토론회 및 강연회 개최
  • 회보 발간 및 출판 사업
  • 기타 법인 목적 달성에 필요한 사업

5. 2. 흥사단교육수련원

흥사단교육수련원에 대한 내용은 현재 비어 있다. 내용을 추가해 달라는 안내문만 있을 뿐, 해당 수련원에 대한 정보는 원본 소스에서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섹션 내용을 작성할 수 없다.

참조

[1] 저널 “민족은 한반도 내에 실제 하는 힘입니다” -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문성근 사무처장 https://web.archive.[...] 2015-10-26
[2] 뉴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창립 추진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1-05-02
[3] 뉴스 ‘중학생 진술서’로 본 일진회 실태 http://www.hani.co.k[...] 한겨레 2001-05-02
[4] 웹인용 도산아카데미 https://web.archive.[...] 20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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