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학교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인성학교는 1916년 상하이에 설립된 한인 학교이다. 1919년 상해고려교민친목회에 인수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교육 방침에 따라 운영되었으며, 민족 교육을 목표로 한국어, 한국사 교육에 힘썼다. 일제의 탄압으로 1935년 폐교되었으나, 1999년 개교한 상해한국학교가 인성학교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인성학교 - [지명]에 관한 문서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상하이시의 학교 - 상하이 푸단 국제 학교
    상하이 푸단 국제 학교는 2002년에 개교한 학교이다.
  • 상하이시의 학교 - 상하이 콩코디아 국제학교
    상하이 콩코디아 국제학교는 1998년 개교하여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국적 기업 종사자, 미국 거주자, 외교관 자녀를 대상으로 미국식 교육 과정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학생들의 학문적, 예술적 역량 발달과 자기 주도 학습 능력을 장려하는 상하이 소재 국제학교이다.
  • 재외한국학교 - 동경한국학교
    동경한국학교는 1954년 개교하여 한국어, 일본어, 영어 삼중 언어 교육을 실시하며, 한국 및 일본 대학 진학을 지원하는 재일 한국인 대상 학교이다.
  • 재외한국학교 - 위해중세한국국제학교
  • 1916년 개교 - SOAS 런던 대학교
    SOAS 런던 대학교는 1916년 런던에 설립된 런던 대학교의 단과대학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연구에 특화되어 있으며, 다양한 학문 분야를 포괄하고 런던 중심부에 캠퍼스를 두고 있다.
  • 1916년 개교 - 경북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는 1916년 대구고등보통학교로 개교하여 교명 변경과 학제 개편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으며, 1985년 수성구 황금동으로 교사를 이전하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개교했으며, 목련과 느티나무를 상징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 등 저명한 동문을 배출했다.

2. 역사적 배경

1876년 개항 이후 많은 사람들이 상하이로 이동했고, 1910년대 초부터 소규모의 한인 사회가 형성되었다. 1919년 3·1 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 상하이 교민 수는 약 1,000명으로 증가했고, 자녀 교육 문제가 대두되었다. 만주와 시베리아 지역에는 많은 학교가 설립되었으나, 상하이에는 학교가 없어 외국 학교에서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했다. 1908년 대동보국회 상하이 지회가 대동학교를 설립하며 한국인이 세운 교육 기관이 처음 등장했으나, 자금 부족으로 1909년 폐교되었다. 1913년 상하이 최초의 독립운동 단체인 동제사에서 박달학원을 설립하여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등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다. 1916년 가을, 여운형, 선우혁, 한진교, 김철 등이 상하이 교회에서 민족 교육 기관 설립을 결의하였다.

2.1. 초기 한인 사회와 교육 기관

1910년대 초 상하이에는 소규모의 한인 사회가 형성되었다. 1916년 약 200명의 한인 거류민은 1917년 500여 명으로 증가했고, 1918년 상하이고려교민친목회가 조직되기도 했다. 1919년 3·1 운동으로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세워진 이후에는 교민이 약 1,000명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이들 자녀들의 교육 문제가 대두되었다. 만주와 시베리아 지역에는 많은 학교가 설립되었으나, 상하이에는 학교가 없어 외국 학교에서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했다.

상하이에 한국인이 세운 교육 기관은 1908년 대동보국회 상하이 지회가 대동학교를 설립하면서 최초로 세워졌으나, 자금 부족으로 1909년 폐교되었다. 이후 상하이 최초의 독립운동 단체인 동제사에서 1913년 박달학원을 설립했다.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등의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이곳에서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다. 이런 상황에서 1916년 가을 상하이 교회에서 여운형, 선우혁, 한진교, 김철 등이 민족 교육 기관을 설립할 것을 결의하였다.

2.2.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교육

1919년 3·1 운동으로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세워진 이후 교민이 약 1,000명으로 증가하면서, 이들 자녀들의 교육 문제가 대두되었다. 만주와 시베리아 지역에는 많은 학교가 설립되었으나, 상하이에는 학교가 없어 외국 학교에서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했다. 상하이에서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교육기관은 1908년 대동보국회 상하이 지회가 설립한 대동학교였으나, 자금 부족으로 1909년 폐교되었다. 이후 상하이 최초의 독립운동 단체인 동제사에서 1913년 박달학원을 설립했고,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등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이곳에서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1916년 가을, 상하이 교회에서 여운형, 선우혁, 한진교, 김철 등이 민족교육기관 설립을 결의하였다.

3. 인성학교의 설립과 발전

1916년 9월 1일 상하이에 위치한 교회 소속 사립학교인 상해한인기독교소학으로 개교했으나, 1917년 2월 쿤밍로 75번지로 옮기면서 인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9년 6월 상해고려교민친목회가 인수하여 임시정부 교육 방침에 따라 인성학교로 개편되었다. 초대 교장은 여운형이었으나, 기본 재산과 소득이 없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학교를 여러 곳으로 옮겨야 했다. 학교 운영을 위해 상하이 교민들에게 기부금을 요청했으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1920년부터 상해거류민단 안에 교육과와 학무위원회를 두어 재정난 타개를 위해 노력하던 중, 상하이 교회에서 인성학교유지회를 설립하고 이동휘, 이동녕, 이시영, 안창호, 신규식, 남형우, 손정도 등을 특별찬조자로 선임하여 인성학교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3.1. 개교 초기 (1916-1919)

1916년 9월 1일 상하이에 위치한 교회 소속 사립학교인 상해한인기독교소학으로 개교했으나, 1917년 2월 쿤밍로 75번지로 옮기면서 인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9년 6월 상해고려교민친목회가 인수하여 임시정부 교육 방침에 따라 인성학교로 개편되었다. 초대 교장은 여운형이었으나, 기본 재산과 소득이 없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학교를 여러 곳으로 옮겨야 했다. 학교 운영을 위해 상하이 교민들에게 기부금을 요청했으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1920년부터 상해거류민단 안에 교육과와 학무위원회를 두어 재정난 타개를 위해 노력하던 중, 상하이 교회에서 인성학교유지회를 설립하고 이동휘, 이동녕, 이시영, 안창호, 신규식, 남형우, 손정도 등을 특별찬조자로 선임하여 인성학교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3.2. 상해거류민단과 임시정부의 지원 (1920년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 인성학교는 거류민단에 소속되었다. 1920년 임시정부 교민친목회가 학교를 인수하고, 여운형의 동생 여운홍이 교장으로 취임하여 학교 유지 및 발전을 위한 기금을 모금했다. 1924년에는 보습과가 강습소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학교 건물 건축을 위한 성금 모금이 국내외 인사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1926년에는 모금된 건축비로 학교 건물을 이전했으며, 1932년에는 유치원과 야간 학교도 설치되었다.

3.3. 교육 목표와 활동

지덕체를 바탕으로 자유덕성과 민족성을 배양하고자 했다. 이러한 목적에서 한국어와 한국사 교육에 치중했으며 교과서는 자체 제작해 사용했고 한국 내에서 전문학교나 중등학교를 졸업한 교사를 초빙해서 교육했다. 1919년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 거류민단에 소속되었다. 이때부터는 보습소를 설치하여 소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중국의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도록 영어, 수학, 한문 등을 가르쳤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교민친목회에서 학교를 인수한 이후인 1920년 여운형의 동생인 여운홍이 교장으로 취임하고 학교 유지, 발전을 위한 기금을 모금했었다. 1924년에는 보습과가 강습소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학교 건물 건축을 위해 성금을 모금하고 이를 한국 국내외의 인사들에게 전달하였다. 1926년에는 이렇게 모인 건축비로 건물을 이전했으며 1932년에는 유치원과 야간 학교도 설치되었다.

4. 일제의 탄압과 폐교

1932년 윤봉길훙커우 공원 사건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에서 이동하게 되었고, 일제의 요구에 따라 프랑스 조계 당국의 간섭이 심해져 1935년 인성학교는 문을 닫았다.

4.1. 폐교 이후

1932년 윤봉길훙커우 공원 사건 이후, 일제의 요구에 따라 프랑스 조계 당국의 간섭이 심해져 1935년에 문을 닫았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학교는 존속했으나, 학생 수가 점차 감소하여 1975년에 폐교되었다. 현재 인성학교 터에는 학교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고 스타벅스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1999년 개교한 상해한국학교가 인성학교를 계승하고 있으며, 매년 1월 '인성제'라는 축제를 열고 '인성'이라는 제목의 책을 학생들에게 배포하여 인성학교의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다.

5. 상해한국학교로의 계승

1999년에 개교한 상해한국학교는 인성학교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6. 주요 동문

* 연미당
* 안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