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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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익전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1605년에 태어나 1660년 현종 원년에 사망했다. 신흠의 아들이자 2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1638년 집현전부수찬을 거쳐 병조좌랑, 사간원헌납 등을 역임했다. 청나라에 소현세자의 귀환을 요청했다가 유배를 당하기도 했으며, 효종 즉위 후 가선대부로 가자되고 도승지를 지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그의 문재(文才)와 겸손함, 권력에 대한 초연함 등을 높이 평가했다.

신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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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효종 즉위 후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가자(加資)되었고, 개성유수를 거쳐 1653년 도승지가 되었다. 이후 현종 원년에 병을 얻어 죽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신익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집안 대대로 유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익전 역시 문장에 뛰어났다. 사람됨이 순박하고 겸허하였으며, 명문가의 자제로 높은 벼슬을 역임하였는데, 권세 있는 요직에 임명되면 사양하며 피하고 맡지 않았다. 형의 아들 신면이 권력을 좋아하여 패거리를 모으자 마음속으로 매우 싫어하며 늘 이 점을 자제들에게 경계시켰다. 신면이 치욕스러운 죽음을 당하고 딸이 숭선군 이징에게 시집갔어도 화복의 갈림길에서 전혀 오염을 받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들 인정하였다. 만년에 더욱 조용하고 맑은 생활로 일관하며 세상 일에 참여하지 않고 끝까지 아름다운 이름을 간직하다가 죽었다.

2.1. 초기 생애

1605년 신흠과 전의 이씨 사이에서 2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638년 정언, 지평을 거쳐 집현전 부수찬이 되었다. 병조좌랑 시절에 역졸에게 곤장을 쳐 죽였다는 이유로 탄핵을 당했으나 이듬해 사간원 헌납에 임명되었다. 1640년 소현세자의 귀환을 요청한 일로 이경헌 등과 함께 유배를 당하기도 하였다.

2.2. 관직 생활

1638년 정언, 지평을 거쳐 집현전 부수찬이 되었다. 병조좌랑 시절 역졸에게 곤장을 쳐 죽였다는 이유로 탄핵을 당했으나 이듬해 사간원 헌납에 임명되었다. 1640년 소현세자의 귀환을 요청한 일로 이경헌 등과 함께 유배를 당하기도 하였다. 효종 즉위 후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가자(加資)되었고, 개성유수를 거쳐 1653년 도승지가 되었다. 이후 현종 원년에 병을 얻어 죽었다.

2.3. 사망

현종 원년에 병을 얻어 사망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신익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집안 대대로 유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익전 역시 문장에 뛰어났다. 사람됨이 순박하고 겸허하였으며, 명문가의 자제로 높은 벼슬을 역임하였는데, 권세 있는 요직에 임명되면 사양하며 피하고 맡지 않았다. 형의 아들 신면이 권력을 좋아하여 패거리를 모으자 마음속으로 매우 싫어하며 늘 이 점을 자제들에게 경계시켰다. 신면이 치욕스러운 죽음을 당하고 딸이 숭선군 이징에게 시집갔어도 화복의 갈림길에서 전혀 오염을 받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들 인정하였다. 만년에 더욱 조용하고 맑은 생활로 일관하며 세상 일에 참여하지 않고 끝까지 아름다운 이름을 간직하다가 죽었다.

3. 평가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신익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집안 대대로 유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신익전 역시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다. 사람됨이 순박하고 겸손하였으며, 명문가의 자제로 높은 벼슬을 역임하였는데, 권세 있고 중요한 직책은 사양하며 피하고 맡지 않았다. 형의 아들 신면(申冕)이 권력을 좋아하여 무리를 모으자 마음속으로 매우 싫어하며 늘 이 점을 자제들에게 경계시켰다. 신면이 이미 치욕스러운 죽음을 당하고 딸이 숭선군(崇善君) 이징(李澂)에게 시집갔어도 화와 복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고들 인정하였다. 만년에 더욱 조용하고 깨끗한 생활로 일관하며 세상 일에 참여하지 않고 끝까지 아름다운 이름을 간직하다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