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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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플랑드르 화가 얀 반 에이크가 1434년에 그린 유화로, 이탈리아 상인 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의 초상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와 그의 두 번째 아내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은 부부의 모습, 방 안의 여러 상징물, 그리고 얀 반 에이크의 서명을 담고 있으며, 15세기의 결혼과 부의 상징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결혼 계약을 묘사한 것이라는 해석과, 부의 상징, 상징적 의미에 대한 다양한 학술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영국 국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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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 |
---|---|
작품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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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르놀피니 초상 |
원어 제목 (네덜란드어) | Portret van Giovanni Arnolfini en zijn vrouw |
원어 제목 (영어) | The Arnolfini Portrait |
화가 | 얀 반 에이크 |
제작 연도 | 1434년 |
종류 | 유화 |
기법 | alla prima (즉석에서) 기법 사용. 오크 패널 세 조각 위에 유화로 그림. |
재료 | 오크 패널 |
크기 (높이) | 82.2 cm |
크기 (가로) | 60 cm |
패널 크기 | 84.5 cm × 62.5 cm |
소장 | 런던 내셔널 갤러리 |
소장 도시 | 런던 |
등장 인물 | |
인물 | 조반니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 |
2. 모델의 정체
오랫동안 이 그림은 플랑드르 침실을 배경으로 한 조반니 디 아리고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 조반나 체나미의 초상화로 여겨졌다. 그러나 1997년, 그들이 그림이 그려진 1434년보다 13년 후이자 얀 판 에이크가 죽은 1441년보다 6년 후인 1447년에 결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그림의 모델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오늘날에는 이 그림이 조반니 디 아리고의 사촌인 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를 그린 것이라는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얀 판 에이크가 그린 조반니 아르놀피니의 초상을 보면, 이 그림에 묘사된 남자의 얼굴과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 묘사된 남자의 얼굴은 상당히 흡사하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 등장한 두 남녀의 맞잡은 손을 보면, 결혼하는 장면이라면 서로의 오른손을 잡았어야 하지만, 남자는 왼손으로 여자의 오른손을 잡고 있다. 이는 당시 신분 차이가 큰 경우 행해지던 '왼손 결혼'으로, 첩을 들이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며 상속권은 인정되지 않았다.[105]
2. 1. 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
루카 출신의 이탈리아 상인 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는 적어도 1419년부터 브루제에 거주하였다.[103] 그는 금융업에 종사했고, 브뤼헤와 프랑스 파리를 거점으로 삼아 성공 가도를 달렸다.[105] 얀 반 에이크가 베를린 회화관에 그린 그의 초상화가 남아있다는 점에서 그가 화가의 친구였다는 추측도 있다.[104]
2. 2. 코스탄자 트렌타
이 그림은 1997년까지 조반니 디 아리고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 잔 체나미의 초상화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그림의 모델이 된 부부가 결혼한 것은 그림이 그려진 1434년보다 13년 후이자, 화가 얀 판 에이크가 사망한 1441년보다도 6년 뒤인 1447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13]현재는 이 그림의 대상이 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속 여인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두 번째 아내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2003년에는 1433년 2월에 사망한 첫 번째 아내 코스탄자 트렌타라는 가설이 제기되었다.[102] 이 가설에 따르면, 이 그림은 살아있는 사람(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과 죽은 사람(코스탄자 트렌타)을 함께 그린, 부분적으로 기념적인 초상화가 된다. 여성 위쪽의 꺼진 촛불, 배경 둥근 장식에서 그녀 쪽에 있는 그리스도 죽음 이후의 장면, 남성의 검은 옷과 같은 세부 사항들이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한다.[14]
3. 묘사
이 그림은[106] 원래 약간의 손실과 손상이 있었으나 대부분 수정을 거쳤으며, 대체적으로 좋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그림을 적외선 리프렉토그램으로 촬영하면 밑그림 단계에 묘사된 인물의 얼굴, 거울, 기타 요소에서 많은 자잘한 수정과 펜티멘토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창문 밖으로 열매를 맺고 있는 벚나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부부가 여름철 2층 방에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 방은 침실이 아니라 응접실인데, 당시 프랑스와 부르고뉴 지방에서는 응접실에 침대를 두는 것이 유행이었으며, 앉는 용도 이외에는 산모와 신생아가 손님을 맞이할 때를 제외하고는 사용되지 않았다. 창문은 여섯 개의 내부 목재 덧문이 달려 있으며, 열려 있는 창문의 최상단 부분에만 유리가 끼워져 있고, 이 유리는 파랑, 빨강, 녹색으로 칠해진 밝은 과녁 문양의 스테인드 글라스이다.
두 인물은 매우 값비싼 옷을 입고 있다. 더운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남녀가 각각 입고 있는 겉옷은 타바드와 드레스로, 모피가 의상 가장자리 장식과 안감 전체로 사용되었다. 남자의 경우는 검은담비를, 여자는 족제비 모피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남자가 쓰고 있는 모자는 짚으로 엮은 것을 검게 염색한 것으로, 당시에 사람들이 여름마다 종종 쓰는 모자였다. 남자의 타바다는 안료의 색이 바랜 현재에 비해 한때 보라빛을 많이 띄었으며, 비단 벨벳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의상 안에는 무늬가 새겨진 돈수 재질의 더블릿을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자의 드레스는 소매자락과 길게 끌리는 옷자락에 대깅(옷을 접어서 바느질한 후 자르거나 닳게 하여 장식)이 되어있고, 안쪽 드레스 또한 흰 모피가 대어져 있다.
여자의 황금 목걸이와 팔찌는 단순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매우 비싼 장신구였으며,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남자의 경우는 상인 신분에 맞는 의상을 입어야 한다는 사회적 제약 때문에 귀족의 초상화처럼 황금 목걸이나 장식이 많은 의상을 입지 않았다.[1] "남성의 의복의 절제된 색상은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가 선호하는 색상과 일치한다"는 의견도 있다.[10]
거울에는 부부를 마주보고 문 안쪽에 서있는 두 남자가 보인다. 파란 옷을 입은 남자는 화가 본인으로 보이는데, 벨라스케스와는 다르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 부부 앞에 서있는 개는 오늘날 브뤼셀 그리펀으로 알려진 품종의 초기 형태이다.
3. 1. 부의 상징
방 안에는 여러 가지 부를 상징하는 물건들이 표현되어 있다. 천장에 달린 황동 샹들리에는 당시 기준으로 크고 정교하며 매우 비쌌을 것이다. 샹들리에 윗부분에는 도르래와 쇠사슬로 아래의 촛불을 쉽게 끄고 켤 수 있는 연동 장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반 에이크는 방의 다른 부분을 묘사하기 위해 생략했을 것이다. 인물 뒤쪽 벽에 달린 볼록 거울은 그리스도의 수난 장면이 그려진 목재 틀이 유리 뒷부분에 붙어 있다. 이 거울은 당시에 실제 만들어질 수 있던 것보다 크게 그려져 있는데, 이는 반 에이크가 시도했던 또 다른 현실주의에서의 신중한 이탈이라고 볼 수 있다. 거울 속에 비치는 벽난로나 실내에 놓인 물건들은 특별한 상징성이 없다. 왼쪽에 우연히 놓인 듯한 오렌지도 부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부르고뉴에서 오렌지는 매우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었기에 아르놀피니의 거래 품목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1]이 외에도 천장에 걸린 철제 막대로 고정되어 있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침대 커튼, 의자와 뒤쪽 벽에 붙은 긴 의자(오른쪽, 침대에 의해 일부가 가려짐)에 새겨진 조각, 침대 밑에 깔린 작은 오리엔탈 카펫 등이 부의 상징으로 꼽힌다. 이러한 값비싼 카펫을 소유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덜란드에서 지금까지도 그러하듯 탁자에 올려놓았다.[1][10]
3. 2. 서명
그림에는 거울 윗부분 벽에 "Johannes de eyck fuit hic. 1434" (얀 반 에이크가 1434년에 여기에 있었다)라고 서명과 날짜가 적혀 있다.[103] 이 서명은 당시 격언이나 다른 문구를 벽에 큰 글씨로 쓰는 방식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반 에이크의 다른 서명 중에는 자상화의 나무 액자에 트롱프뢰유로 그려, 나무에 조각으로 새긴 것처럼 보이게 한 것도 있다.[103]4. 학술적 논쟁
1934년,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벌링턴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이 그림이 결혼 계약을 기록한 법적 문서라고 주장하며, 그림 속 여러 요소에 숨겨진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17] 파노프스키의 주장은 미술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세부 사항의 상징적 기능에 대한 분석은 널리 받아들여져 다른 초기 네덜란드 회화에도 적용되었다.[18]
이후 학자들은 그림 속 상황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제시했다. 에드윈 홀은 결혼이 아닌 약혼을 묘사한다고 주장했고, 마거릿 D. 캐롤은 남편이 아내에게 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했다.[19] 캐롤은 또한 이 그림이 조반니 아르놀피니의 좋은 성품과 부르고뉴 네덜란드 궁정에서의 야망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20]
얀 바티스트 베도는 파노프스키의 결혼 계약 초상화라는 주장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그림 속 요소들이 숨겨진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에는 의문을 제기했다.[21] 그는 당시 사회 현실과 상징이 충돌하지 않는다면, 화가가 실제로 상징성을 의도했는지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21]
크레이그 하비슨은 파노프스키와 베도의 중간 입장을 취하며, 그림에 대한 다원적 해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22] 그는 세속적, 종교적 맥락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언 캠벨은 그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으며, 단순한 결혼 기념 초상화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23] 그는 당시 벽에 정교한 비문이 있는 것이 일반적인 장식 형태였다고 언급하며, 반 에이크의 ''어느 남자의 초상 (레알 수베니르)''에도 법률적인 형식의 서명이 있다고 덧붙였다.[15]
5. 해석과 상징적 의미
그림 속 두 인물의 배치와 옷차림은 15세기 결혼과 성 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을 보여준다. 여자는 방 안쪽 침대 옆에 있어 가정적인 역할을, 남자는 창문 옆에 있어 바깥세상에서의 역할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아르놀피니는 정면을 보고 있고, 그의 아내는 남편을 바라본다. 남자의 수직으로 들린 손은 권위를, 여자의 낮고 수평적인 자세는 복종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남편과 동등함을 보여준다.[27] 이 부부는 부르고뉴 궁정 생활의 일원이었으며, 아내는 남편의 부하가 아닌 동등한 존재였다.[27]
부부가 손을 맞잡은 모습은 결혼 서약으로 해석되기도 한다.[28] 남자가 왼손으로 여자의 오른손을 잡는 것은 모르간 결혼을 암시한다는 주장도 있지만,[29] 그림 속 인물들은 궁정 신분에서 동등한 지위를 가졌기 때문에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29]
그림 속 여성이 임신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당시 유행하던 옷차림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조반나 체나미와 코스탄자 트렌타 모두 아이 없이 사망했다는 기록은 여인이 임신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1]
방 뒤편 볼록 거울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묘사한 작은 원형 장식들이 새겨져 있다. 이는 거울에 비치는 인물들에게 구원의 약속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46] 거울 자체는 결혼 서약을 지켜보는 하나님의 눈을 상징할 수 있으며, 흠 없는 거울은 성모 마리아의 무염시태와 순결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46] 거울 속에는 문간에 서 있는 두 인물이 비치는데, 그중 한 명은 화가 자신일 가능성이 있다.[46]
작은 개는 충성[46] 혹은 욕망을 나타내 부부의 아이를 갖고자 하는 소망을 의미할 수도 있다.[40] 개는 남편이 아내에게 주는 선물인 애완견일 수도 있다. 궁정의 많은 부유한 여성들이 애완견을 동반자로 데리고 있었는데, 이는 부부의 부와 궁정 생활에서의 지위를 반영한다.[42]
샹들리에의 촛불은 전통적인 플랑드르 결혼 관습에서 사용된 촛불일 것이다.[46] 이 촛불은 성령의 임재 또는 항상 존재하는 신의 눈을 암시할 수 있다.
창밖 나무에 있는 체리는 사랑을 상징할 수 있다. 창문턱과 상자에 놓인 오렌지는 인간의 타락 전 에덴 동산에 만연했던 순수함과 무죄를 상징할 수 있다.[46] 오렌지는 네덜란드에서는 흔하지 않아 부의 상징이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결혼의 다산을 상징했다.[47]
5. 1. 인물과 결혼
두 인물의 배치와 복장은 15세기 결혼과 성 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반영한다. 여자는 방 안쪽 침대 옆에 서서 가정적인 역할을, 남자는 창문 옆에 서서 외부 세계에서의 역할을 상징한다. 아르놀피니는 정면을 응시하고, 그의 아내는 남편을 응시한다. 그의 손은 수직으로 들려 권위를, 그녀의 손은 낮고 수평적인 자세로 복종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남편과 동등함을 보여준다.[27] 부부는 부르고뉴 궁정 생활의 일부였으며, 그녀는 그의 하찮은 부하가 아닌 동등한 존재였다.[27]
부부가 손을 맞잡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파노프스키는 이를 결혼 서약으로 해석했다.[28] 남자가 왼손으로 여자의 오른손을 잡는 것은 결혼이 모르간 결혼이며 비밀 결혼이 아님을 시사한다는 주장이 있다.[29] 그러나 이 그림에 묘사된 인물들은 궁정 신분에서 동등한 지위를 가졌기에 이 이론은 타당하지 않다.[29] 마거릿 캐롤은 아내가 남편을 대신하여 사업 거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계약을 묘사한다고 주장한다.[30]
5. 2. 임신
그림 속 여성이 임신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당시 유행하던 옷차림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조반나 체나미와 코스탄자 트렌타 모두 아이 없이 사망했다는 기록은 여인이 임신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1]5. 3. 거울
방 뒤편 볼록 거울 프레임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묘사한 작은 원형 장식들이 새겨져 있어, 거울에 비치는 인물들에게 구원의 약속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46] 거울 자체는 결혼 서약을 지켜보는 하나님의 눈을 상징할 수 있으며, 흠 없는 거울은 성모 마리아의 무염시태와 순결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46] 거울 속에는 문간에 서 있는 두 인물이 비치는데, 그중 한 명은 화가 자신일 가능성이 있다.[46] 파노프스키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은 결혼을 합법화하는 데 필요한 두 명의 증인이며, 벽에 있는 반 에이크의 서명은 그가 직접 참석한 사건의 문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어떤 저자는 이 그림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묘사한 것으로 언급하기도 한다.[38] 구면 거울이라고 가정하면, 창틀의 가장 왼쪽 부분, 테이블 가장자리, 드레스 자락을 제외하고는 왜곡이 정확하게 묘사되었다.[39]
5. 4. 기타 사물

작은 개는 충성을 상징할 수 있으며,[46] 혹은 욕망을 나타내 부부의 아이를 갖고자 하는 소망을 의미할 수도 있다.[40] 부부와 달리 개는 보는 사람을 바라본다.[41] 개는 단순히 남편이 아내에게 주는 선물인 애완견일 수도 있다. 궁정의 많은 부유한 여성들이 애완견을 동반자로 데리고 있었는데, 이는 부부의 부와 궁정 생활에서의 지위를 반영한다.[42] 개는 그리폰 테리어이거나, 아니면 아펜핀셔로 보인다.[43]
정교한 6개의 가지가 있는 샹들리에의 왼쪽 앞 홀더에 있는 단 하나의 촛불은 아마도 전통적인 플랑드르 결혼 관습에서 사용된 촛불일 것이다.[46] 교회 성소 램프처럼 밝은 햇빛 속에서 켜져 있는 이 촛불은 성령의 임재 또는 항상 존재하는 신의 눈을 암시할 수 있다. 또는 마가렛 코스터는 그림이 기념 초상화라고 주장하는데, 조반니 쪽에 켜진 단 하나의 촛불은 아내 쪽에서 겨우 볼 수 있는 타버린 촛불의 심지와 대조를 이루며, 그가 살아있고 그녀는 죽었다는 흔한 은유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45]
창밖 나무에 있는 체리는 사랑을 상징할 수 있다. 창문턱과 상자에 놓인 오렌지는 인간의 타락 전 에덴 동산에 만연했던 순수함과 무죄를 상징할 수 있다.[46] 오렌지는 네덜란드에서는 흔하지 않고 부의 상징이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결혼의 다산을 상징했다.[47] 더 간단하게는, 이 과일은 오렌지가 매우 비싼 수입품이었기 때문에 부부의 부의 상징일 수 있다.
남성 피사체의 패튼이라고 불리는 덧신은 실내 신발을 덮어 외부 요소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가 그것을 벗었다는 생각은 그가 더 이상 방황하지 않을 것이며, 아내에 대한 그의 성실함을 암시하며, 종교적인 이유로 아내가 죽은 후 재혼하지 않을 것임을 나타낼 수 있다.
6. 소장 내력
1434년 작품 제작 이후, 아르놀피니 부부가 소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1] 1516년 이전, 스페인 궁정 관리였던 디에고 데 게바라가 소유하게 되었다.[1] 그는 미하엘 시토프가 그린 초상화의 모델이기도 하다. 디에고 데 게바라는 대부분의 생애를 네덜란드에서 보냈으며, 아르놀피니 부부를 만났을 수도 있다.[1]
1516년, 디에고 데 게바라는 이 초상화를 오스트리아의 마가렛에게 기증했다. 이 그림은 그녀가 메헬렌에서 직접 작성한 그림 목록의 첫 번째 항목에 나타나며, "방에 있는 그의 아내와 함께 헤르눌 르 팽이라고 불리는 큰 그림"으로 묘사되어 있다.[1] 1530년, 이 그림은 마가렛의 조카 헝가리의 마리아에게 상속되었고, 1558년 그녀가 사망한 후 스페인 펠리페 2세에게 상속되었다.[1]
1599년, 한 독일 방문객이 마드리드 왕궁에서 이 그림을 보았고, 액자에는 오비디우스의 구절이 적혀 있었다.[1] 1700년에는 스페인 카를로스 2세가 사망한 후 작성된 목록에 셔터와 오비디우스의 구절과 함께 나타났다. 1794년까지 현재의 마드리드 왕궁으로 옮겨졌다.[1]
1816년, 이 그림은 제임스 헤이 대령의 소유로 런던에 있었다. 그는 워털루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후 브뤼셀에서 요양하던 방에 이 그림이 걸려 있었다고 주장했다.[49] 헤이는 토머스 로렌스 경을 통해 이 그림을 영국의 조지 4세 왕세자에게 제안했고, 왕세자는 런던 칼턴 하우스에서 2년 동안 보관하다가 1818년에 반환했다.[49]
1828년경, 헤이는 친구에게 그림을 맡겼고, 1841년 공개 전시회에 포함될 때까지 그 친구나 그림을 보지 못했다. 1842년, 영국 국립 미술관이 600GBP에 이 그림을 구매하여 현재까지 소장하고 있다.[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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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ter 2003. Also see {{仮リンク|ジョヴァンニ・アルノルフィーニ|en|Giovanni Arnolfini}} for a fuller discussion of the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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