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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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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충성은 국가나 조직에 대한 헌신과 복종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영어 단어 allegiance는 국가나 조직에 대한 의무적인 충성을, fidelity는 약속이나 주의를 따르는 것을, loyalty는 개인적인 헌신을 나타낸다. Allegiance는 태생적 충성(natural allegiance)과 귀화에 따른 충성(local allegiance)으로 구분된다. 영국에서는 국왕에 대한 충성을 의무로 하고, 국왕은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닌다. 충성 맹세는 공직자나 귀화자가 주권자에게 맹세하는 서약으로, 역사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왔으며, 현대에는 국가의 가치에 대한 맹세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슬람권에서는 바이아라는 충성의 맹세가 존재하며, 사회심리학에서는 조직 몰입이라는 개념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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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정의국가, 군주, 정치 조직, 대의, 정부 또는 통치자에 대한 의무 또는 충성심
다른 뜻충의
영어allegiance
관련 개념
관련 개념시민권
애국심
국가주의
충성맹세
역사
역사고대부터 다양한 형태로 존재
역사적으로 충성은 봉건제와 군주제에서 중요한 역할 수행
현대에는 국가에 대한 충성이 강조
충성의 대상은 국가, 군주, 정치 조직, 대의, 정부, 통치자 등 다양함
법적 의미
법적 의미법률과 제도에 의해 규정
시민은 국가에 충성할 의무를 가짐
법률 위반 시 제재를 받을 수 있음
심리적 의미
심리적 의미개인의 정체성과 소속감과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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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ISSN1346-5554
DOI10.15027/35389

2. 용어

'충성'이라는 단어는 중세 영어 'ligeaunce|리전스enm'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다시 고대 프랑스어 'liege|리제ang'(봉신, 자유로운)에서 온 'liege(군왕, 영주)'에서 형성되었다.[24][2] 'al-' 접두사는 다른 법률 용어인 'allegation(주장)'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2] 라틴어 'ligare|리가레la'(묶다)와 연결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24][2]

전통적으로 영어권 법률에서는 '충성'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했다. 하나는 외국인도 자신이 사는 나라의 제도에 보여야 할 존중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성과 그에 따른 복종을 의미했다.[2]

영국에서는 한때 충성은 불변하는 것이라는 교리가 있었고, 미국에서도 채택되었다. "Nemo potest exuere patriam"(누구도 조국을 버릴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1870년 이전 법률에서는 출생이나 귀화로 요건을 충족하면 영국 왕관에 대한 충성을 져야 했고, 이는 의회의 행위 등을 제외하고는 결코 포기하거나 상실할 수 없었다.[2]

왕관에 대한 충성 포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는 강제징집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었고, 1812년 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퀸스톤 하이츠 전투 이후 13명의 아일랜드계 미국인 포로반역죄로 처형되기도 했다.[5]

충성은 신하가 군주에게 묶이는 유대였고, 그 대가로 군주는 신하에게 보호를 제공했다. 이는 군주와 신하 사이의 상호 유대와 의무였다.[2]

충성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었다:[2]


  • (a) ''Ligeantia naturalis, absoluta, pura et indefinita'' (자연적 충성): 본성과 생득권에 의한 것으로, ''alta ligeantia''라고도 불렸다.
  • (b) ''Ligeantia acquisita'' (획득된 충성): 본성이 아니라 획득이나 귀화에 의한 것이다.
  • (c) ''Ligeantia localis'' (지역적 충성): 법률의 효력에 의해, 친선적인 외국인이 국가에 입국하여 국가에 있는 동안 군주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군주에게 졌다.
  • (d) 법적 복종: 특정 법률이 신하 또는 외국인 모두에게 충성 서약을 요구할 때 발생했다.


자연적 충성은 군주의 영토 내에서 태어남으로써 획득되었고, 획득된 충성은 귀화 또는 귀화 허가에 의해 획득되었다. 지역적 충성은 왕관의 보호를 받는 동안 외국인이 지불했다.[2]

1870년 귀화법에 의해 영국 국민은 국적과 충성을 포기할 수 있게 되었고, 국적이 상실되는 방식이 정의되었다.[2]

주권자의 동의 없이 본래의 충성심을 버릴 수 없다는 교리는 미국에서 일찍이 폐기되었다. 연방 대법원장 존 럿리지는 "한 사람은 동시에 두 정부의 시민권을 향유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6] 1868년 국외 추방법에서는 "국외 추방의 권리는 모든 사람의 자연적이고 본질적인 권리"라고 선언했다.[2]

충성 서약은 중요한 공직을 맡은 사람과 귀화 조건으로 주권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서약이다. 미국과 일부 다른 공화국에서는 이 서약을 충성 맹세(Pledge of Allegiance)라고 하며, 국기에 대한, 공화국에 대한, 그리고 특히 자유정의라는 국가의 핵심 가치에 대한 맹세를 한다. 미국의 충성 맹세 낭독은 자발적이다.[7]

영어로 충성을 나타내는 단어에는 Allegiance, Fidelity, Loyalty가 있다.[11]

  • '''Fidelity''': 약속, 주의 등을 따르는 것
  • '''Loyalty''': 개인의 마음,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헌신
  • '''Allegiance''': 국가나 조직에 대한 의무적인 충성


「Allegiance」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속한 국가 등에 대한 충성('''natural allegiance''')과 귀화한 국가 등에 대한 충성('''local allegiance''') 두 종류가 있다.[11]

영국에서는 원칙적으로 국왕의 영토 내에서 출생한 자는 영국 국민으로서 국왕에게 충성할 의무가 있고, 국왕은 영국 국민에 대한 보호 의무를 가진다.[12]

3. 종류

영어에서 충성을 나타내는 단어에는 Allegiance, Fidelity, Loyalty가 있다.


  • Fidelity: 약속, 주의 등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 Loyalty: 개인의 마음,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을 나타낸다.
  • Allegiance: 국가나 조직에 대한 의무적인 충성을 의미한다.


Allegiance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속한 국가나 주권자에게 보이는 충성(natural allegiance)과 귀화한 국가 등에 보이는 충성(local allegiance) 두 가지 종류가 있다.[11]

3. 1. 전통적 분류

전통적으로 영어권 법률 해설가들은 '충성'이라는 용어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했다. 하나는 외국인조차도 자신이 사는 나라의 제도에 대해 보여야 할 존중을 의미했고, 다른 하나는 국민성과 그 국민성에 따른 복종을 의미했다.[2]

영국에서는 원칙적으로 국왕의 영토 내에서 출생한 자는 영국 국민으로서 "국왕에 대한 충성"을 의무로 하고, 국왕은 "영국 국민에 대한 보호 의무"를 가진다.[12] 충성은 신하가 군주에게 묶이는 유대였는데, 그 대가로 군주는 신하에게 보호를 제공했다. 그것은 군주와 신하 사이의 상호 유대와 의무였으며, 그에 따라 신하들은 그들에게 복종하고 봉사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충성스러운 신하(liege subjects)라고 불렸고, 군주는 그들을 유지하고 방어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충성스러운 군주(liege lord)라고 불렸다.[25]

충성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었다.[3]

종류설명
천부적 충성 (Ligeantia naturalis, absoluta, pura et indefinita)원래 본성과 생득권에 의한 것이며, alta ligeantia라고 불린다. 이것을 빚진 자들은 subditus natus라고 불린다.
획득된 충성 (Ligeantia acquisita)본성이 아니라 획득이나 귀화에 의한 것으로, 귀화인(denizen)이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그들이 subditus datus이기 때문이다.
지역적 충성 (Ligeantia localis)법률의 효력에 의해, 우호적인 외국인이 국가에 입국할 때, 그들이 국가에 있는 동안 군주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그들은 군주에게 지역적 복종이나 충성을 빚진다.
법적 복종특정 법률이 신하 또는 외국인 모두에게 충성 서약을 요구할 때



자연적 충성은 외교관, 침략군, 적군 점령 지역의 외국인의 자녀를 제외하고 군주의 영토 내에서 태어남으로써 획득되었다. 자연적 충성과 복종은 모든 신하에게서 분리할 수 없는 사건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태어나자마자 생득권으로 군주에게 충성과 복종을 빚지기 때문이다.[4] 획득된 충성은 귀화 또는 귀화 허가에 의해 획득되었다. 지역적 충성은 왕관의 보호를 받고 있는 동안 외국인에 의해 지불되었다. 법적 충성은 외국인이 왕관 아래 특정 직책에 필요한 충성 서약을 했을 때 지불되었다.

1870년 귀화법에 의해 영국 국민이 국적과 충성을 포기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국적이 상실되는 방식이 정의되었다.[2]

주권자의 동의 없이 어떤 사람도 그의 본래의 충성심을 버릴 수 없다는 교리는 미국에서 일찍이 폐기되었으며, 연방 대법원장 존 럿리지도 탈보트 대 얀슨 사건에서 "한 사람은 동시에 두 정부의 시민권을 향유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6] 1868년 7월 27일, 미국 헌법 제14조가 채택되기 하루 전에 미국 의회는 국외 추방법의 서문에서 "국외 추방의 권리는 모든 사람의 자연적이고 본질적인 권리이며,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의 권리를 누리는 데 필수적이다"라고 선언했다.[2]

「Allegiance」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속해 있던 국가나 주권자에게 보이는 충성('''natural allegiance'''), 다른 하나는 귀화한 국가 등에 보이는 충성('''local allegiance''')이다.[11]

3. 2. 현대적 관점

전통적으로 영어권 법률 해설가들은 '충성'이라는 용어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했다. 하나는 외국인조차도 자신이 사는 나라의 제도에 대해 보여야 할 존중을 의미했고, 다른 하나는 국민성과 그 국민성에 따른 복종을 의미했다.[2]

영국에서는 원칙적으로 국왕의 영토 내에서 출생한 자는 영국 국민으로서 "국왕에 대한 충성"을 의무로 하고, 국왕은 "영국 국민에 대한 보호 의무"를 가진다.[12] 충성은 신하가 군주에게 묶이는 유대였는데, 그 대가로 군주는 신하에게 보호를 제공했다. 그것은 군주와 신하 사이의 상호 유대와 의무였으며, 그에 따라 신하들은 그들에게 복종하고 봉사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충성스러운 신하(liege subjects)라고 불렸고, 군주는 그들을 유지하고 방어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충성스러운 군주(liege lord)라고 불렸다.[25]

충성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었다.[3][4]

  • (a) ''Ligeantia naturalis, absoluta, pura et indefinita'': 원래 본성과 생득권에 의한 것이며, ''alta ligeantia''라고 불리며, 이것을 빚진 자들은 ''subditus natus''라고 불린다.
  • (b) ''Ligeantia acquisita'': 본성이 아니라 획득이나 귀화에 의한 것으로, 귀화인(denizen) 또는 오히려 denizon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subditus datus''이기 때문이다.
  • (c) ''Ligeantia localis'': 법률의 효력에 의해, 친선적인 외국인이 국가에 입국할 때, 그들이 국가에 있는 동안 군주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그들은 군주에게 지역적 복종이나 충성을 빚진다.
  • (d) 특정 법률이 신하 또는 외국인 모두에게 충성 서약을 요구할 때의 법적 복종.


자연적 충성은 (외교관이나 침략군 또는 적군 점령지역의 외국인의 자녀를 제외하고) 군주의 영토 내에서 태어남으로써 획득되었다. 획득된 충성은 귀화 또는 귀화 허가에 의해 획득되었다. 지역적 충성은 왕관의 보호를 받고 있는 동안 외국인에 의해 지불되었다. 법적 충성은 외국인이 왕관 아래 특정 직책에 필요한 충성 서약을 했을 때 지불되었다.

1870년 귀화법에 의해 영국 국민이 국적과 충성을 포기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국적이 상실되는 방식이 정의되었다.[2] 주권자의 동의 없이 어떤 사람도 그의 본래의 충성심을 버릴 수 없다는 교리는 미국에서 일찍이 폐기되었으며, 연방 대법원장 존 럿리지도 탈보트 대 얀슨 사건에서 "한 사람은 동시에 두 정부의 시민권을 향유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6] 1868년 7월 27일, 미국 헌법 제14조가 채택되기 하루 전에 미국 의회는 국외 추방법의 서문에서 "국외 추방의 권리는 모든 사람의 자연적이고 본질적인 권리이며,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의 권리를 누리는 데 필수적이다"라고 선언했다.[2]

영어로 충성을 나타내는 단어에는 Allegiance, Fidelity, Loyalty가 있다.

  • '''Fidelity''' : 약속, 주의 등을 따르는 것
  • '''Loyalty''' : 개인의 마음,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을 나타낸다.
  • '''Allegiance''' : 국가나 조직에 대한 의무적인 충성


「Allegiance」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속해 있던 국가나 주권자에게 보이는 충성('''natural allegiance'''), 다른 하나는 귀화한 국가 등에 보이는 충성('''local allegiance''')이다.[11]

4. 역사적 변천

'충성'이라는 단어는 중세 영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와 적용 범위가 변화해왔다.

영어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충성'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했다. 하나는 외국인이라도 자신이 거주하는 국가의 제도에 대해 보여야 하는 존중이었고, 다른 하나는 국민성과 그에 따른 복종이었다.[2] 영국에서는 한때 충성이 불변하는 것이라고 여겨 "누구도 조국을 버릴 수 없다"는 교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강제징집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었고, 1812년 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5]

충성은 원래 군주와 신하 사이의 상호적인 유대 관계였다. 신하는 군주에게 복종과 봉사를 제공하고, 군주는 신하를 보호해야 했다. 영지법에 따르면 충성은 신하가 군주에게 바쳐야 하는 진실하고 충실한 복종이었다.

충성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종류가 있었다.[2]

종류설명
Ligeantia naturalis, absoluta, pura et indefinita본성과 생득권에 의한 자연적인 충성.
Ligeantia acquisita획득이나 귀화에 의한 충성.
Ligeantia localis특정 지역에서 군주의 보호를 받음으로써 발생하는 지역적 충성.
법적 복종법률에 의해 요구되는 충성 서약.



1870년 귀화법을 통해 영국 국민은 국적과 충성을 포기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주권자의 동의 없이 본래의 충성심을 버릴 수 없다는 교리가 일찍이 폐기되었다.[6]

현대에는 국가에 따라 귀화 시 또는 공식 행사에서 충성 맹세를 하기도 한다.[13][14] 이슬람권에서는 바이아(بَيْعَةar)라 불리는 “충성의 맹세”가 존재한다.[15]

4. 1. 중세 시대

'충성'이라는 단어는 중세 영어 'ligeaunce|리전스enm'(중세 라틴어 'ligeantia|리지안티아la')에서 유래했다. 'ligeaunce|리전스enm'의 접두사 'al-'은 다른 법률 용어인 'allegation'(주장을 뜻함)과의 혼동으로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충성'은 게르만어 기원의 고대 프랑스어 'liege|리즈ang'(봉신, 자유로운)에서 온 '봉신(liege)'에서 형성되었다. 라틴어 'ligare|리가레la'(묶다)와의 관련성은 잘못된 것이다.[2]

중세에는 주군과 신하가 주종 관계를 맺을 때, 오마주(オマージュ)라 불리는 서임식을 거행했다. 현대에는 충성 맹세(loyalty oath)라 불리는 충성 맹세 (미국), 충성 맹세 (독일) 등 각국에서 귀화 시나 공식 행사에서 행해지고 있다.[13][14]

4. 2. 근대 국가의 성립

전통적으로 영어권 법률에서는 '충성'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했다. 하나는 외국인도 자신이 사는 나라의 제도에 대해 보여야 할 존중을, 다른 하나는 국민성과 그에 따른 복종을 의미했다.[2]

영국에서는 충성이 불변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누구도 조국을 버릴 수 없다"는 교리가 있었다. 1870년 이전 법률에 따르면, 출생이나 귀화를 통해 영국 국민이 된 사람은 영국 왕관에 대한 충성을 져야 했다.[2]

왕관에 대한 충성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는 강제징집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일으켰고, 이는 1812년 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퀸스톤 하이츠 전투 이후 13명의 아일랜드계 미국인 포로반역죄로 처형되기도 했다.[5]

충성은 신하가 군주에게 묶이는 유대였으며, 군주는 신하에게 보호를 제공했다. 이는 상호적인 의무 관계로, 신하는 복종과 봉사를, 군주는 유지와 방어를 해야 했다.

영지법에 따르면 충성은 신하가 군주에게 바쳐야 하는 진실하고 충실한 복종이었다. 자연적 충성과 복종은 모든 신하에게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충성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었다.[2]

종류설명
Ligeantia naturalis, absoluta, pura et indefinita본성과 생득권에 의한 것으로, alta ligeantia라고도 불리며, 이를 빚진 자들은 subditus natus라고 불렸다.
Ligeantia acquisita본성이 아니라 획득이나 귀화에 의한 것으로, 귀화인(denizen) 또는 denizon이라고 불렸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subditus datus이기 때문이다.
Ligeantia localis법률의 효력에 의해, 친선적인 외국인이 국가에 입국할 때, 그들이 국가에 있는 동안 군주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그들은 군주에게 지역적 복종이나 충성을 빚진다.
법적 복종특정 법률이 신하 또는 외국인 모두에게 충성 서약을 요구할 때의 복종.



자연적 충성은 군주의 영토 내에서 태어남으로써 획득되었고, 획득된 충성은 귀화 또는 귀화 허가에 의해 획득되었다. 지역적 충성은 왕관의 보호를 받는 동안 외국인이 지불했다. 법적 충성은 외국인이 왕관 아래 특정 직책에 필요한 충성 서약을 했을 때 지불되었다.

1870년 귀화법에 의해 영국 국민은 국적과 충성을 포기할 수 있게 되었다. 주권자의 동의 없이 본래의 충성심을 버릴 수 없다는 교리는 미국에서 일찍이 폐기되었으며, 연방 대법원장 존 럿리지는 "한 사람은 동시에 두 정부의 시민권을 향유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6] 1868년 7월 27일, 미국 의회는 국외 추방법의 서문에서 "국외 추방의 권리는 모든 사람의 자연적이고 본질적인 권리"라고 선언했다.

외국 국적과 미국 시민권을 동시에 가진 사람은 미국과 고국(또는 새로운 거주 국가)에 이중 충성 의무를 지닌다. 이러한 충성심이 상충하는 경우, 반역죄를 저지를 수 있다. 미국 법에서는 미국의 요구가 최우선권을 갖는다.[2]

4. 3. 영국

전통적으로 영어권 법률 해설가들은 '충성'이라는 용어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했다. 하나는 외국인조차도 자신이 사는 나라의 제도에 대해 보여야 할 존중을 의미했고, 다른 하나는 국민성과 그 국민성에 따른 복종을 의미했다.[2]

영국의 교리는 한때 미국에서도 채택되었는데, 충성은 불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Nemo potest exuere patriam"(누구도 조국을 버릴 수 없다)라는 격언이 있었다. 1870년 이전 법률에 따르면, 출생이나 귀화를 통해 요건을 충족한 모든 사람은, 유아기에 가족이 거주하는 다른 국가로 이주했더라도, 영국 왕관에 대한 충성을 져야 했다. 의회의 행위 또는 그들이 거주하는 영국 영토의 일부에 대한 독립 인정이나 할양을 제외하고는 결코 사임하거나 상실할 수 없었다.[2]

왕관에 대한 충성의 포기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러한 태도는 강제징집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었고, 이는 1812년 전쟁 중 더 큰 갈등으로 이어졌다. 당시 퀸스톤 하이츠 전투 이후 13명의 아일랜드계 미국인 포로반역죄로 처형되기도 했다.[5]

충성은 신하가 군주에게 묶이는 유대였는데, 그 대가로 군주는 신하에게 보호를 제공했다. 그것은 군주와 신하 사이의 상호 유대와 의무였다. 왕관의 신하에 대한 의무는 그들을 통치하고 보호하는 것이었고, 신하의 왕관에 대한 상호 의무는 충성이었다.

영지법에 따르면, 충성은 신하가 군주에게 지불해야 하는 진실하고 충실한 복종이었다.

충성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었다.[2]

  • (a) ''Ligeantia naturalis, absoluta, pura et indefinita'': 원래 본성과 생득권에 의한 것이며, ''alta ligeantia''라고 불렸다. 이것을 빚진 자들은 ''subditus natus''라고 불렸다.
  • (b) ''Ligeantia acquisita'': 본성이 아니라 획득이나 귀화에 의한 것으로, 귀화인을 ''subditus datus''라고 불렀다.
  • (c) ''Ligeantia localis'': 법률의 효력에 의해, 친선적인 외국인이 국가에 입국할 때, 그들이 국가에 있는 동안 군주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그들은 군주에게 지역적 복종이나 충성을 빚는다.
  • (d) 법적 복종: 특정 법률이 신하 또는 외국인 모두에게 충성 서약을 요구할 때.


자연적 충성은 (외교관이나 침략군 또는 적군 점령지역의 외국인의 자녀를 제외하고) 군주의 영토 내에서 태어남으로써 획득되었다. 획득된 충성은 귀화 또는 귀화 허가에 의해 획득되었다. 지역적 충성은 왕관의 보호를 받고 있는 동안 외국인에 의해 지불되었다. 법적 충성은 외국인이 왕관 아래 특정 직책에 필요한 충성 서약을 했을 때 지불되었다.

1870년 귀화법에 의해 영국 국민이 국적과 충성을 포기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국적이 상실되는 방식이 정의되었다. 주권자의 동의 없이 어떤 사람도 그의 본래의 충성심을 버릴 수 없다는 교리는 미국에서 일찍이 폐기되었다.[2]

영국에서는, 원칙적으로 국왕의 영토 내에서 출생한 자는 영국 국민으로서 "국왕에 대한 충성"을 의무로 하고, 국왕은 "영국 국민에 대한 보호 의무"를 가진다.[12]

4. 4. 미국

영어권 법률 해설가들은 전통적으로 '충성'이라는 용어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했다. 하나는 외국인도 자신이 사는 나라의 제도에 대해 보여야 할 존중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국민성과 그 국민성에 따른 복종을 의미했다.[2]

영국의 교리는 한때 미국에서도 채택되었는데, 충성은 불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누구도 조국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2] 1870년 이전 법률에 따르면, 출생이나 귀화를 통해 요건을 충족한 모든 사람은 영국 왕관에 대한 충성을 져야 했다.[2]

왕관에 대한 충성의 포기를 받아들이지 않은 태도는 강제징집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었고, 이는 1812년 전쟁 중 더 큰 갈등으로 이어졌다. 당시 퀸스톤 하이츠 전투 이후 13명의 아일랜드계 미국인 포로반역죄로 처형되기도 했다.[5]

충성은 신하가 군주에게 묶이는 유대였고, 그 대가로 군주는 신하에게 보호를 제공했다. 군주와 신하 사이의 상호 유대와 의무였다.[2]

자연적 충성과 복종은 모든 신하에게 분리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2] 천황 생존자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 충성을 빚는다. 적군이 적대 행위 중에 영토를 점령하는 경우에도, 점령된 국가 시민의 충성심이 변화될 수 없었다.[2]

충성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었다:[2]

  • (a) ''Ligeantia naturalis, absoluta, pura et indefinita'': 원래 본성과 생득권에 의한 것.
  • (b) ''Ligeantia acquisita'': 본성이 아니라 획득이나 귀화에 의한 것.
  • (c) ''Ligeantia localis'': 법률의 효력에 의해, 친선적인 외국인이 국가에 입국할 때, 그들이 국가에 있는 동안 군주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그들은 군주에게 지역적 복종이나 충성을 빚는다.
  • (d) 법적 복종: 특정 법률이 신하 또는 외국인 모두에게 충성 서약을 요구할 때.


1870년 귀화법에 의해 영국 국민이 국적과 충성을 포기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국적이 상실되는 방식이 정의되었다.[2]

주권자의 동의 없이 어떤 사람도 그의 본래의 충성심을 버릴 수 없다는 교리는 미국에서 일찍이 폐기되었으며, 연방 대법원장 존 럿리지도 "한 사람은 동시에 두 정부의 시민권을 향유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6] 1868년 7월 27일, 미국 헌법 제14조가 채택되기 하루 전에 미국 의회는 국외 추방법의 서문에서 "국외 추방의 권리는 모든 사람의 자연적이고 본질적인 권리이며,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의 권리를 누리는 데 필수적이다"라고 선언했다.[2]

외국 국적의 천부 시민권자이자 미국 시민인 모든 사람과 미국 천부 시민권자이자 외국 국적의 시민인 모든 사람은 미국과 고국 또는 새로운 거주 국가에 이중 충성 의무를 지닌다. 이러한 충성심이 상충하는 경우, 그 사람은 한 국가 또는 두 국가 모두에 대해 반역죄를 저지를 수 있다. 두 주권 국가의 충성 의무 요구가 상충하는 경우, 미국 법에서는 미국의 요구가 최우선권을 갖는다.[2]

영어로 충성을 나타내는 단어에는 Allegiance, Fidelity, Loyalty가 있다.[11]

  • '''Fidelity''': 약속, 주의 등을 따르는 것
  • '''Loyalty''': 개인의 마음,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을 나타낸다.
  • '''Allegiance''': 국가나 조직에 대한 의무적인 충성

「Allegiance」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속해 있던 국가나 주권자에게 보이는 충성('''natural allegiance''')과 귀화한 국가 등에 보이는 충성('''local allegiance''')의 두 종류가 있다.[11]

5. 충성의 맹세

충성의 맹세는 중요한 공직자나 귀화하는 사람이 주권자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약속하는 서약이다. 미국 등 일부 공화국에서는 이를 'Pledge of Allegiance'라고 부르며, 군주 대신 국기, 공화국, 그리고 자유정의 같은 핵심 가치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다.

중세 시대에는 주군과 신하 사이에 오마주(hommage|오마주프랑스어)라는 서임식이 있었고, 현대에는 충성 맹세 (미국), 충성 맹세 (독일)처럼 각 나라에서 귀화나 공식 행사 때 충성 맹세를 한다.[13][14] 이슬람권에는 바이아(بَيْعَة|바이아ar)라는 충성 맹세가 있다.[15]

5. 1. 역사

충성 서약(Oath of allegiance)은 중요한 공직을 맡은 모든 사람과 귀화 조건으로 주권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서약이다. 고대 관습법에 따르면, 12세 이상의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었으며, 반체제 인사를 가려내는 시험으로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1558년) 통치 시대에 처음으로 법령에 의해 부과되었으며, 그 형식은 그 이후 여러 번 변경되었다. 혁명 시대까지, 맹세는 "왕과 그의 상속자에게 충실하고 충성하며, 생명과 사지, 그리고 세속적인 명예를 위해 진실과 충성을 다하며, 그에게 해를 끼치거나 손해를 입히려는 어떤 악의적인 계획도 알거나 듣지 않고 그로부터 그를 방어할 것"이었다. 이것은 절대 저항 불가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협약 의회는 그 이후로 사용되어 온 형식—"나는 진심으로 ... 폐하께 충실하고 진실된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을 제정했다.[2]

미국과 일부 다른 공화국에서는 이 서약을 충성 맹세(Pledge of Allegiance)라고 한다. 군주에게 충성을 선언하는 대신, 국기에 대한, 공화국에 대한, 그리고 특히 자유정의라는 국가의 핵심 가치에 대한 맹세를 한다. 미국의 충성 맹세 낭독은 자발적이다. 왜냐하면 미국 헌법의 제1 수정 조항에 따라 국민에게 보장된 권리, 특히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며, 여기에는 말하지 않을 자유도 본질적으로 포함되기 때문이다.[7]

중세에는 주군과 신하가 주종 관계를 맺을 때, 오마주(hommage|오마주프랑스어)라 불리는 서임식을 거행했다. 현대에는 충성 맹세(loyalty oath)라 불리는 충성 맹세 (미국), 충성 맹세 (독일) 등, 각국에서 귀화 시나 공식 행사에서 행해지고 있다.[13][14]

이슬람권에서는 바이아(بَيْعَة|바이아ar)라 불리는 “충성의 맹세”가 존재한다.[15]

5. 2. 현대

현대에는 충성 맹세(loyalty oath)라 불리는 충성 맹세 (미국), 충성 맹세 (독일) 등, 각국에서 귀화 시나 공식 행사에서 행해지고 있다.[13][14]

미국과 일부 다른 공화국에서는 이 서약을 충성 맹세(Pledge of Allegiance)라고 한다. 군주에게 충성을 선언하는 대신, 국기에 대한, 공화국에 대한, 그리고 특히 자유정의라는 국가의 핵심 가치에 대한 맹세를 한다. 미국의 충성 맹세 낭독은 자발적이다. 왜냐하면 미국 헌법의 제1 수정 조항에 따라 국민에게 보장된 권리, 특히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며, 여기에는 말하지 않을 자유도 본질적으로 포함되기 때문이다.[7]

이슬람권에서는 바이아(بَيْعَة|바이아ar)라 불리는 “충성의 맹세”가 존재한다.[15]

6. 이슬람권의 충성

이슬람권에서는 바이아(بَيْعَةar)라 불리는 “충성의 맹세”가 존재한다.[15]

7. 사회심리학적 연구

사회심리학 분야에서 충성심은 1980년대 Organizational commitment영어이라는 조작성이 높은 개념이 도입된 이후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16][17][18]

조직몰입이란 “특정 조직에 대한 개인의 동일시 및 참여의 강도”가 대표적인 정의로 여겨지지만, 연구자나 목적에 따라 정의가 변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19] 쉽게 말하면 “조직에 얼마나 기여하고 싶은가”라는 경향을 의미한다.

베커는 조직몰입을 정서적, 공리적인 요소로 분류하였고,[20] 그 후 메이어와 앨런이 정서적 요소, 지속적 요소, 규범적 요소로 재분류하였다.[21] '''정서적 요소'''는 조직에 대한 애착, '''지속적 요소'''는 급여 등의 손익, '''규범적 요소'''는 이전 연구에는 없었던 의무감·윤리관 등의 규범에 따라 그래야 한다는 개념이다.[16][22]

이러한 연구 결과에 따라 OCQ(Organizational Commitment Questionnaire)라는 척도를 사용하여 종업원 등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 기여 의식(몰입)의 경향과 정도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8. 비판적 관점

영어권 법률 해설가들은 전통적으로 '충성'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했다. 하나는 외국인도 자신이 사는 나라 제도에 대해 보여야 할 존중을, 다른 하나는 국민성과 그에 따른 복종을 의미했다.[2] 영국의 교리는 한때 미국에서도 채택되어 충성은 불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Nemo potest exuere patriam"(누구도 조국을 버릴 수 없다)는 격언처럼, 1870년 이전 법률에 따르면 출생이나 귀화로 요건을 충족한 사람은 영국 왕관에 대한 충성을 져야 했다.[2]

왕관에 대한 충성 포기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강제징집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었고, 1812년 전쟁 중 더 큰 갈등으로 이어졌다. 퀸스톤 하이츠 전투 이후 13명의 아일랜드계 미국인 포로반역죄로 처형되기도 했다.[5]

충성은 신하가 군주에게 묶이는 유대였고, 군주는 신하에게 보호를 제공했다. 이는 상호 의무였으며, 신하는 복종과 봉사, 군주는 유지와 방어를 해야 했다. 왕관의 신하에 대한 의무는 통치와 보호였고, 신하의 왕관에 대한 의무는 충성이었다.

영지법에 따르면 충성은 신하가 군주에게 진실하고 충실한 복종이었다. ''Calvin’s Case''(1608)에서는 duplex et reciprocum ligamen; quia sicut subditus regi tenetur ad obedientiam, ita rex subdito tenetur ad protectionem; merito igitur ligeantia dicitur a ligando, quia continet in se duplex ligamenla(신하가 왕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듯이 왕도 신하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충성은 묶는다는 의미에서 유래하며, 이중의 유대를 포함한다)라고 설명한다.

자연적 충성과 복종은 모든 신하에게 분리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천황 생존자들은 어디에 있든 충성을 빚는다. 적군 점령 시에도 시민의 충성심은 변할 수 없었다(''R v Vermaak''(1900)).

충성은 자연인으로서의 군주와 정치적 능력으로서의 군주 모두에게 빚졌다. 재위 군주의 인물에 대한 애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군주의 직책, 왕권, 법과 헌법에 대한 애착도 필요했다. 힘이나 사기로 법과 헌법을 무너뜨리려는 자는 불완전하고 가짜 충성심만을 가질 뿐이었다(''R v O'Connell''(1844)).

충성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었다(''Rittson v Stordy''(1855) 등):


  • (a) ''Ligeantia naturalis, absoluta, pura et indefinita'': 본성과 생득권에 의한 것, ''alta ligeantia''라고도 불리며, 이를 빚진 자들은 ''subditus natus''라고 불렸다.
  • (b) ''Ligeantia acquisita'': 귀화에 의한 것으로, 귀화인(denizen)은 ''subditus datus''라고 불렸다.
  • (c) ''Ligeantia localis'': 친선적인 외국인이 국가에 입국할 때, 그들이 국가에 있는 동안 군주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지역적 복종이나 충성을 빚졌다.
  • (d) 법적 복종: 특정 법률이 충성 서약을 요구할 때.


자연적 충성은 군주의 영토 내에서 태어남으로써 획득되었다. 획득된 충성은 귀화 또는 귀화 허가에 의해 획득되었다. 귀화 허가(''ligeantia acquisita'')는 세 가지로 분류되었다(''Thomas v Sorrel''(1673)):

  • (a) 절대적인 것: 일반적인 귀화 허가와 같이 제한이 없음.
  • (b) 제한적인 것: 군주가 외국인에게 귀화 허가장을 부여하고, 외국인의 남자 상속인에게 또는 외국인의 생애 기간 동안 부여할 때.
  • (c) 조건부: ''cujus est dare, ejus est disponere'', 의회, 특허장, 정복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


지역적 충성은 왕관의 보호를 받는 동안 외국인이 지불했다. 거주 외국인은 적의 점령으로 왕관의 보호가 철회되더라도 충성을 빚졌다(''de Jager v Attorney-General of Natal''(1907)). 법적 충성은 외국인이 왕관 아래 특정 직책에 필요한 충성 서약을 했을 때 지불되었다.

1870년 귀화법에 의해 영국 국민이 국적과 충성을 포기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국적이 상실되는 방식이 정의되었다. 주권자의 동의 없이 본래의 충성심을 버릴 수 없다는 교리는 미국에서 폐기되었고, 연방 대법원장 존 럿리지는 탈보트 대 얀슨 사건에서 "한 사람은 동시에 두 정부의 시민권을 향유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6] 1868년 7월 27일, 미국 의회는 국외 추방법 서문에서 "국외 추방의 권리는 모든 사람의 자연적이고 본질적인 권리"라고 선언했다. 외국 국적의 미국 시민과 미국 시민권자이자 외국 국적의 시민은 미국과 고국 또는 새로운 거주 국가에 이중 충성 의무를 지닌다. 충성심이 상충하는 경우, 반역죄를 저지를 수 있다. 미국 법에서는 미국의 요구가 최우선권을 갖는다.[2]

사회심리학 분야에서 충성심은 1980년대 조직몰입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이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16][17][18] 조직몰입은 “특정 조직에 대한 개인의 동일시 및 참여의 강도”로 정의되지만, 연구자나 목적에 따라 정의가 변한다.[19]

베커는 조직몰입을 정서적, 공리적인 요소로 분류했고,[20] 메이어와 앨런은 정서적 요소, 지속적 요소, 규범적 요소로 재분류했다.[21] '''정서적 요소'''는 조직에 대한 애착, '''지속적 요소'''는 급여 등의 손익, '''규범적 요소'''는 의무감·윤리관 등의 규범에 따른 개념이다.[16][22] OCQ(Organizational Commitment Questionnaire) 척도를 사용하여 조직에 대한 충성심, 기여 의식(몰입)의 경향과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

9. 한국 사회와 충성

사회심리학 분야에서 충성심은 1980년대 조직몰입(Organizational commitment)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이후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16][17][18]

조직몰입의 대표적인 정의는 “특정 조직에 대한 개인의 동일시 및 참여의 강도” 이지만, 연구자나 목적에 따라 정의가 변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19] 쉽게 말하면, “조직에 얼마나 기여하고 싶은가”라는 경향을 의미한다.

베커는 조직몰입을 정서적, 공리적인 요소로 분류하였고,[20] 그 후 메이어와 앨런이 정서적 요소, 지속적 요소, 규범적 요소로 재분류하였다.[21] 여기서 '''정서적 요소'''는 조직에 대한 애착을, '''지속적 요소'''는 급여 등의 손익을, '''규범적 요소'''는 이전 연구에는 없었던 의무감·윤리관 등의 규범에 따라 그래야 한다는 개념을 의미한다.[16][22]

이러한 연구 결과에 따라 OCQ(Organizational Commitment Questionnaire)라는 척도를 사용하여 종업원 등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 기여 의식(몰입)의 경향과 정도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참조

[1] 웹사이트 Allegiance https://www.merriam-[...] Merriam-Webster
[2] 백과사전 Allegiance
[3] 웹사이트 Local allegiance https://www.merriam-[...] Merriam-Webster
[4] 웹사이트 Natural allegiance https://www.merriam-[...] Merriam-Webster
[5] 서적 Agent of Destiny: The Life and Times of Winfield Scott Free Press 1997
[6] 법률 3 U.S. 133 www.law.cornell.edu/[...]
[7] 웹사이트 West Virginia State Board of Education v. Barnette https://www.law.corn[...] 2018-05-08
[8] 서적 Reality Without A Name https://books.google[...] Bilquees Press 2008-03-31
[9] 웹사이트 忠誠 https://kotobank.jp/[...]
[10] 논문 『平家物語』における武士の「孝」と「忠」 広島大学大学院教育学研究科 2013
[11] 서적 Commentaries on the Laws of England: In the Order, and Compiled from the Text of Blackstone and Embracing the New Statutes and Alterations to the Present Time 1840-01-01
[12] 논문 1948年イギリス国籍法における国籍概念の考察 : 入国の自由の観点から https://hdl.handle.n[...] 2011
[13] 웹사이트 忠誠宣誓 https://kotobank.jp/[...]
[14] 논문 アメリカ合衆国における国旗に対する忠誠の誓い(pledge of allegiance to the flag of the United States)の法的問題について http://www1.tcue.ac.[...] 高崎経済大学地域政策学会 2004-10
[15] 웹사이트 バイア https://kotobank.jp/[...]
[16] 서적 「会社人間」の研究 : 組織コミットメントの理論と実際 https://hdl.handle.n[...] 京都大学学術出版会 1997
[17] 간행물 第2章 コミットメント:組織コミットメント、ジョブインボルブメント、キャリアコミットメント、職務満足 http://www.jil.go.jp[...] 独立行政法人 労働政策研究・研修機構
[18] 논문 〈論文〉帰属意識と忠誠心, そして組織コミットメント http://id.nii.ac.jp/[...] 近畿大学商経学会 2013-09
[19] 논문 組織コミットメント尺度の項目特性とその応用可能性 : 3次元組織コミットメント尺度を用いて 1997
[20] 논문 Notes on the Concept of Commitment 1960
[21] 논문 A three-component conceptualization of organizational commitment 1991
[22] 논문 専門職従業員の組織コミットメントとパフォーマンスの関係性--研究リーダー,研究員,技術者を対象にしたデータ分析 (公開月例研究会講演記録〈第257回(2010.12.16)〉 2008〜2009年度産業経営プロジェクト一般研究成果報告 組織流動化時代の人的資源開発に関する研究--組織間協力と組織間人材移転を踏まえた人材開発・育成・活用の問題を中心として) http://www.eco.nihon[...] 2011-03
[23] 웹사이트 http://www.merriam-w[...]
[24] 백과사전 Allegiance
[25] 웹사이트 http://www.merriam-w[...]
[26] 웹사이트 http://www.merria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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