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드로스
1. 개요
아산드로스는 필로타스의 아들이자 파르메니온의 형제이며, 알렉산드로스 3세의 동방 원정에 참여하여 활약했다. 알렉산더 사후 카리아의 태수가 되었으나, 디아도코이 전쟁에서 안티고노스 1세에게 패하여 몰락했다. 카리아 태수 재임 기간 동안 알렉산드로스 3세와 필리포스 3세 아리다이오스의 이름으로 주화를 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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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사트라프 -
네아르코스
네아르코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의 탐험가이자 장군으로, 인더스 강을 따라 항해하여 페르시아만까지 도달했으며, 그의 항해 기록은 아리아노스의 저서 《인디카》의 자료로 활용되었다. -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사트라프 -
스타산드로스
스타산드로스는 알렉산드로스 3세 사후 제국 분열기에 아레이아와 도란기아나 태수를 지냈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페르시아 원정 친위대 출신으로 디아도코이 전쟁에서 에우메네스를 지지하여 안티고노스에 맞섰으나, 가비에네 전투 패배 후 행적이 묘연해졌다. -
알렉산드로스 대왕 휘하의 장군 -
네아르코스
네아르코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의 탐험가이자 장군으로, 인더스 강을 따라 항해하여 페르시아만까지 도달했으며, 그의 항해 기록은 아리아노스의 저서 《인디카》의 자료로 활용되었다. -
알렉산드로스 대왕 휘하의 장군 -
스타산드로스
스타산드로스는 알렉산드로스 3세 사후 제국 분열기에 아레이아와 도란기아나 태수를 지냈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페르시아 원정 친위대 출신으로 디아도코이 전쟁에서 에우메네스를 지지하여 안티고노스에 맞섰으나, 가비에네 전투 패배 후 행적이 묘연해졌다. -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사람 -
플라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테네에 아카데메이아를 설립하여 철학, 수학 등을 가르치고 이데아론, 영혼론 등을 주요 사상으로 삼아 서양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사람 -
투키디데스
투키디데스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역사가이자 장군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집필을 위해 망명 생활을 했으며, 그의 책은 객관적인 서술과 정치적 통찰력으로 후대 역사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동방원정
아산드로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에 참여하여 기원전 324년에 사르디스를 무혈 점령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를 스피트리다테스(다리우스 3세 휘하 리디아, 이오니아 태수)가 다스리던 리디아와 기타 지역의 태수로 임명하고, 통치에 필요한 기병과 경장보병 지휘권도 부여했다. 기원전 328년 초, 아산드로스는 네아르코스(당시 리키아, 팜필리아 태수)와 함께 그리스 용병을 이끌고 자리아스파에 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합류했다.
3. 알렉산더의 사후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제국은 혼란에 빠졌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제국의 분할 과정에서 아산드로스는 카리아 사트라피(총독령)를 얻었으며, 이후 안티파트로스에 의해 확정되었다. 그는 카리아의 이란 식민지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지역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의 지위를 높였다.
기원전 317년, 안티고노스가 파르스 지방과 메디아에서 에우메네스를 상대로 원정을 벌이는 동안, 아산드로스는 아나톨리아에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여 리키아와 카파도키아로 세력을 확장했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와 카산드로스가 안티고노스에 대항하여 결성한 동맹의 일원이었다.
3.1. 디아도코이 전쟁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후계자 없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바빌론 회의에서 아산드로스는 카리아 태수 자리를 얻었다. 섭정 페르디카스와 그에게 불만을 품은 장군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아산드로스는 안티파트로스 편에 섰으나, 페르디카스 파의 장군 아탈로스와 알케타스에게 패배했다.
기원전 321년, 페르디카스가 사망한 후 열린 트리파라디소스 회의에서 아산드로스는 카리아 태수 지위를 유지했다.
기원전 315년, 안티고노스가 소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아산드로스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지원을 받으며 안티고노스의 조카 프톨레마이오스와 싸웠다.
3.2. 몰락
기원전 313년, 안티고노스는 군대를 이끌고 아산드로스를 공격하여 항복시켰다. 안티고노스는 아산드로스에게 연안 그리스 도시의 자유를 회복시키고, 카리아 태수 자리를 양보하며, 형제 아가톤을 인질로 보내라는 굴욕적인 강화 조약을 강요했다. 그러나 며칠 후 아산드로스는 이 조약을 거부하고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안티고노스는 이에 분개하여 즉시 군대를 보내 카리아를 완전히 정복했다. 이후 아산드로스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4. 주화
아산드로스는 카리아에서 재임하는 동안,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필리포스 3세 아리다이오스의 이름으로 밀레투스에서 여러 종류의 주화를 주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