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노 육군비행학교
1. 개요
아케노 육군비행학교는 1924년 5월에 설립되어 1944년까지 운영된 일본 육군의 비행학교이다. 1918년 임시 항공술 연습 위원회 발족을 시작으로, 1921년 육군 항공학교 아케노 분교를 거쳐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로 독립했다. 공중 전투, 사격, 화기 취급 등의 교육 및 연구를 담당했으며, 1944년 아케노 교도 비행 사단으로 개편되어 교육과 작전 임무를 병행했다. 1945년 4월에 학교령이 폐지되었고, 같은 해 7월에는 교도 비행 사단이 제1, 제2 교도 비행대로 재편성되었다. 8월 종전 이후에는 순차적으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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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시의 역사 -
오바타정 (미에현)
오바타정은 미에현 이세 평야 남부에 위치했던 정으로, 2005년 이세시로 합병되었으며, 육상자위대 아케노 주둔지 등이 있던 곳이다. -
이세시의 역사 -
와타라이군
와타라이군은 미에현 중남부에 위치하며, 이세 신궁의 신사령으로 번성했고, 현재는 4개의 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
일본 제국 육군 항공대의 학교 -
육군항공사관학교
육군항공사관학교는 1937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분교로 설립되어 항공병과 장교를 양성하다 1945년 일본 패전으로 폐교되었으며, 폐교 후 부지는 현재 일본 항공자위대 이루마 공군기지로 사용되고 있다. -
일본 제국 육군 항공대의 학교 -
육군항공기술학교
육군항공기술학교는 1935년 8월 1일에 발족하여 일본 육군의 항공 기술 교육을 담당했으며, 1938년 이후 장교 기술 교육에 집중하다가 1945년 6월에 폐지되었다. -
1945년 폐교 -
육군예과사관학교
육군예과사관학교는 일본 제국 육군의 사관 후보생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어 1937년 독립 후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운영되다 종전 후 폐지되었으며, 현재 그 부지는 육상자위대 아사카 주둔지로 사용되고 있다. -
1945년 폐교 -
육군항공사관학교
육군항공사관학교는 1937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분교로 설립되어 항공병과 장교를 양성하다 1945년 일본 패전으로 폐교되었으며, 폐교 후 부지는 현재 일본 항공자위대 이루마 공군기지로 사용되고 있다.
2. 연혁
* 1918년 12월 - 임시 항공술 연습 위원회가 발족했다.
* 1919년 3월 - 시즈오카현 아라이정에 임시 항공술 연습 사격반을 설치했다.
* 1919년 12월 -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의 육군 항공학교 교육부에 사격반이 발족했다.
* 1920년 4월 - 미에현 와타라이군 기타하마촌에서 육군 항공학교 교육부 사격반의 교육이 개시되었다.
* 1921년 4월 - 육군 항공학교 아케노 분교가 설치되었다.
* 1924년 5월 -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로 독립하였다.
* 1943년 8월 - 이바라키현 나카군 마에와타리촌에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 분교를 설치하였다.
* 1944년 6월 -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는 아케노 교도 비행 사단으로,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 분교는 히타치 교도 비행 사단으로 개편되었다.
* 1945년 4월 -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령이 폐지되었다.
* 1945년 7월 - 교도 비행 사단 제1교도 비행대, 제2교도 비행대와 비행 제111전대, 비행 제112전대로 개편되었다.
* 1945년 8월 - 종전을 맞이하여 순차적으로 복원되었다.
2.1. 임시 항공술 연습 사격반 (1918-1920)
1918년 (다이쇼 7년) 12월, 일본 육군은 프랑스 군사 고문단의 지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임시 항공술 연습 위원을 조직하고 조종반, 사격반, 기체 제작반 등 8개 반으로 나누어 준비에 착수했다.
1919년 (다이쇼 8년) 1월, Jacques-Paul Faure프랑스어 대령을 단장으로 하는 57명의 프랑스 항공 교육 군사 사절단(프랑스 항공 교육단)이 일본을 방문했다.
임시 항공술 연습 위원 중 아카바 유노스케 소령을 반장으로 하는 사격반은 공중 사격 훈련 시 유탄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해안이나 큰 호수 근처를 거점으로 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시즈오카현하마나군아라이정(현재의 고사이시 아라이 지구)에 임시 시설을 건설하고, 같은 해 5월부터 교육을 시작했다.
2.2. 육군 항공학교 아케노 분교 (1921-1924)
1920년(다이쇼 9년) 4월, 육군 항공학교 교육부 사격반은 미에현 와타라이군 기타하마촌에서 장교 9명, 군속 공원 21명으로 공중 사격 교육을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사격반 사무소는 기타하마촌에 새로 지어진 시설로 이전했다. 이 시설은 육군 항공학교의 "사격 분교"라고 불렸으나, 육군 항공학교 조례에 따른 정식 분교는 아니었다.
1921년(다이쇼 10년) 3월, 육군 항공학교 조례 개정(군령 육 제1호)으로 분교 설치가 가능해졌고, 같은 해 4월, 미에현 와타라이군 기타하마촌(현재의 이세시 북부)에 육군 항공학교 아케노 분교가 정식으로 설치되었다. 아케노 분교에서는 특종 학생 또는 소집 위관 등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다.
역대 분교장은 다음과 같다.
2.3.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 (1924-1944)
1924년(다이쇼 13년) 5월, 육군 항공학교 조례가 폐지되고 육군 비행학교령(군령 육 제6호)이 시행되면서, 기존의 육군 항공학교는 도코로자와, 시모시즈(지바현지바군), 아케노의 각 육군 비행학교로 재편성되었다. 이에 따라 육군 항공학교 아케노 분교는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로 독립하여 육군 항공부 직할 교육 기관이 되었다.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는 공중 전투, 공중 사격, 화기 취급 등에 관한 교육, 조사, 연구 및 시험을 담당했다. 초기 편성은 육군 항공부 본부장에 소속되는 교장 아래, 본부, 교육부와 학생으로 구성되었다.
1924년 5월 당시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 입교 대상 및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925년(다이쇼 14년) 5월, 항공병과가 독립 병과로 신설되고, 육군 항공부는 육군 항공 본부로 승격되었다. 이와 함께 육군 비행학교령도 개정되어(군령 육 제7호),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는 본부, 교육부, 연구부, 재료창, 학생으로 편성되었다. 1933년(쇼와 8년)에는 육군 비행학교령 개정(군령 육 제10호)으로 대공 사격이 교육, 연구, 시험 담당 내용에 추가되었고, 간사가 배치되었다.
1935년 (쇼와 10년) 8월,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령(군령 육 제12호)이 시행되면서, 전투 비행대에 필요한 학술, 병기 및 기재 연구/시험과 더불어 하사관 후보자 교육, 공중 사격, 화기 취급, 대공 사격 교육 및 연구를 담당하게 되었다. 피교육자에는 하사관 후보자가 추가되었고, 학교 편성은 교장, 간사, 본부, 교육부, 연구부, 하사관 후보자대, 재료창, 학생으로 구성되었다.
1935년 8월 당시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 피교육자는 다음과 같았다.
| 구분 | 대상 | 내용 | 수학 기간 |
|---|---|---|---|
| 갑종 학생 | 항공병과 위관 (필요시 타 병과 위관도 가능) | 전술 및 공중 전투 학술 수습 | 약 6개월 (통상 매년 1회) |
| 을종 학생 | 새롭게 비행기 조종을 습득한 항공병과 위관 (필요시 타 병과 위관도 가능) | 전투 조종 학술 수습 | 약 3개월 (통상 매년 1회) |
| 특종 학생 | 항공병과 위관 및 하사관 (필요시 타 병과 위관도 가능) | 화기 취급 및 대공 사격 학술 수습 | 약 3개월 (위관/하사관 매년 1회) |
| 하사관 후보자 | 각 부대 파견 항공병과 하사관 후보자 | 전투 조종 학술 수습 | 약 3개월 (매년 1회) |
| 기타 | 임시 각 병과 장교 이하 소집 | 필요 교육 실시 | - |
1938년 (쇼와 13년) 7월,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령 개정(군령 육 제12호)으로 하사관 후보자 교육과 대공 사격 관련 내용이 삭제되고, 피교육자에서 하사관 후보자와 특종 학생이 제외되었다. 학교 편성은 교장, 간사, 본부, 교육부, 연구부, 재료창, 학생으로 변경되었다.
1938년 7월 당시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 피교육자는 다음과 같았다.
| 구분 | 대상 | 내용 | 수학 기간 |
|---|---|---|---|
| 갑종 학생 | 항공병과 대위 | 전술 및 공중 전투 학술 수습 | 약 6개월 (통상 매년 1회) |
| 을종 학생 | 새롭게 비행기 조종을 습득한 항공병과 위관 | 전투 조종 학술 수습 | 약 3개월 (통상 매년 1회) |
| 기타 | 임시 각 병과(헌병과 제외) 장교 이하 소집 | 필요 교육 실시 | - |
같은 해 12월, 육군 항공 총감부가 설립되어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는 항공 총감 관할이 되었다.
1940년 (쇼와 15년) 8월,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령 개정(군령 육 제15호)으로 분교소를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확인된 분교소는 다음과 같다.
* 요코시바 분교소(지바현 산무군요코시바정): 1940년 8월 지정, 10월 지정 해제
* 덴류 분교소(시즈오카현 이와타군소데우라촌): 1940년 10월 지정
* 하라노마치 분교소(후쿠시마현소마군오타촌): 1941년 5월 지정, 1943년 4월 지정 해제
* 기타이세 분교소(미에현 스즈카군가와사키촌): 1943년 4월 지정
* 사노 분교소(오사카부센난군사노정): 1944년 6월 설치
1941년 6월,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령 개정(군령 육 제10호)으로 학생 조건이 "항공병과"에서 "항공 관련 병과"로 변경되었고, 을종 학생은 위관 및 견습사관으로 확대되었으며, 수학 기간이 약 6개월로 연장되었다.
1941년 (쇼와 16년) 12월,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방공 전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1943년 (쇼와 18년) 8월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령 개정(군령 육 제8호)으로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 분교(미토 분교)가 설치되었다. 미토 분교는 이바라키현 나카군 마에와타리 마을(현재의 히타치나카시 신코마치)에 위치했으며, 방공 전투, 고고도 전투, 야간 전투 연구 및 교육을 담당했다.
2.4. 아케노 교도 비행 사단 및 히타치 교도 비행 사단 (1944-1945)
1944년 6월, 육군 중앙은 비행 학교 5개교와 1개 분교, 항공 정비 학교 1개교를 군대화하여, 교육과 작전 행동을 상시 병행하게 했다. 이에 따라 아케노 육군 비행 학교 및 미토 분교는 폐쇄되고, 각각 아케노 교도 비행 사단과 히타치 교도 비행 사단으로 개편되었다.
아케노 교도 비행 사단은 사단 사령부, 4개 교도 비행대, 1개 교도 정비대, 통신대, 교육대와 학생으로 구성되었으며, 아케노, 기타이세, 덴류, 사노, 도조니시(미야자키현)의 각 육군 비행장에 분산 배치되었다. 히타치 교도 비행 사단은 사단 사령부, 2개 교도 비행대, 1개 교도 정비대, 통신대, 교육대, 학생으로 편성되어 미토기타, 미토미나미, 노시로(아키타현)의 각 육군 비행장에 배치되어, 전투 분과 조종 요원 교육 외에 방공 전투, 중(重) 전투기, 야간 전투기 등의 운용에 대한 연구를 실시했다.
같은 해 8월, 교도 항공군 사령부가 편성되어 각 교도 비행 사단을 지휘했다.
같은 해 9월 하순, 육군 중앙은 아케노 교도 비행 사단의 일부를 첩 1호 작전에 투입하기로 결정했고, 다음 해 10월, 비행 제200전대(전대장: 타카하시 타케시중좌)가 편성되었다. 이 전대는 4식 전투기 약 80기를 보유했으나, 인원 충족이 쉽지 않아 경험이 부족한 자도 포함되었다. 비행 제200전대는 필리핀 루손 섬에서 작전 행동에 참여했다.
같은 해 11월, 필리핀 전투에서 육군 특별 공격대(특공대)에 의한 자폭 공격이 시작되자, 아케노 교도 비행 사단과 히타치 교도 비행 사단에서 특공대가 편성되었다.
1945년 1월과 3월, 아케노 교도 비행 사단에서 총 21개 대, 히타치 교도 비행 사단에서 총 8개 대의 특공대가 추가로 편성되었다.
같은 해 4월, 본토 결전에 대비해 항공 총군 사령부가 편성되면서, 아케노 교도 비행 사단은 엔슈나다, 구마노나다 방면의 결호 작전 준비 및 미군 기동 부대 공격 임무를, 히타치 교도 비행 사단은 간토 지방 방어 임무를 부여받았다.
2.5. 교도 비행 사단 제1, 제2 교도 비행대 (1945)
1945년 7월 10일, 군령 육갑 제103호에 따라 아케노를 포함한 각 교도비행사단은 교육 부대와 작전 부대로 분리 개편되었다. 기존 6개의 교도비행사단은 통합되어 지명을 붙이지 않는 교도비행사단으로 개편되었고, 사령부와 제1~제6 교도비행대로 구성되었다. 아케노 교도비행사단은 제1교도비행대, 히타치 교도비행사단은 제2교도비행대가 되었다.
아케노 교도비행사단에서는 비행 제111전대(전대장: 이시카와 마사시 중좌), 히타치 교도비행사단에서는 비행 제112전대(전대장: 유하라 히데미 중좌)가 작전 전임 부대로 편성되었다. 각 비행전대는 411명으로 편성되었고, 5식 전투기 55기와 예비기 28기를 보유했다. 같은 해 7월 18일, 대륙명 제1366호에 의해 항공총군 제20전투비행집단(집단장: 아오키 타케조 중장)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같은 해 8월, 포츠담 선언 수락이 결정되고 8월 15일 정오에 옥음방송이 진행되었다. 8월 18일, 전 육군은 작전 임무를 해제하고, 각 교도비행대 및 비행전대는 복원되었다.
제1교도비행대 대대장은 마츠무라 키지로 대좌, 제2교도비행대 대대장은 요시다 타다시 중좌였다.
3. 주요 임무 및 훈련
아케노 육군비행학교는 조종사 양성을 위한 기본 및 고급 비행 훈련을 실시했으며, 공중전과 사격술 등을 교육했다. 1943년에는 항공의 중요성을 인식한 육군 중앙이 조종사 대량 양성 방침을 세우고, 육군 항공의 중점을 중폭격기에서 전투기로 전환하면서 아케노 육군비행학교는 더욱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또한, 신형 전투기 운용, 방공 전투, 고고도 전투, 야간 전투 등 새로운 전투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임무도 수행했다. 특히, 미국의 고고도 폭격기 B-17과 B-29에 대응하기 위한 방공 전투 기술 연구가 중요하게 이루어졌다.
1944년 3월, 참모본부는 연합군기의 본토 습격에 대비하여 교관, 조교 등 숙련된 인력을 많이 보유한 교육 기관을 방공 전투 체제로 전환하는 "동(東) 2호 작전"을 기안했다. 아케노 육군비행학교 분교(미토 분교)는 제10비행사단 지휘 하의 동 2호 부대로서 방공 임무를 수행하는 히타치 비행대를 편성했다.
1944년 6월, 아케노 육군비행학교는 아케노 교도 비행 사단으로, 미토 분교는 히타치 교도 비행 사단으로 개편되어 교육과 작전 행동을 병행하게 되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특별 공격대(가미카제) 조종사를 양성하고 훈련하는 임무도 수행했다. 1945년, 아케노 교도 비행 사단은 엔슈나다, 구마노나다 방면에 대한 결호 작전 준비를 진행하고, 결호 작전을 통하여 래공하는 미군 기동 부대를 공격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4. 분교 및 관련 시설
1943년 8월,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령 개정 (군령 육 제8호) 시행에 따라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 분교가 설치되었다. 이 분교는 이바라키현 나카군 마에와타리 마을 (현재의 히타치나카시 신코마치)의 미토 육군비행학교 시설을 이용하여 설치되었기 때문에, "미토 분교"라고도 불렸다. 미토 육군 비행학교는 미야기현나토리군으로 이전하여 같은 해 10월 센다이 육군 비행학교로 개칭했다.
아케노 육군 비행학교 분교(미토 분교)는 분교장 아래 간사, 본부, 교육부, 연구부, 재료창 및 학생으로 편성되었다. 분교장은 아케노 본교 교장에게 예속되었지만, 그 외에는 거의 독립된 육군 비행학교와 비슷한 편성이었다. 덴류, 기타이세 등의 분교소는 인원을 아케노 본교 정원 내에서 충당했지만, 미토 분교는 분교장에 제5비행사단 참모장이었던 미요시 야스유키 소장을 보직하는 등 "분교"와 "분교소"는 제도에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
미토 분교는 방공 전투, 특히 고고도 전투 및 야간 전투를 중시한 연구 및 교육을 담당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용도에 적합한 신형기 개발이 늦어져 기존 전투기를 보유하는 데 그쳤고, 당초 예상했던 연구 및 교육 착수는 어려웠다. 1943년 말, 방공 전투대 요원 학생 교육을 시작했지만, 고고도 전투 교육은 거의 실시하지 못했고, 야간 전투 교육은 조명대와 연계하여 진행하는 정도로 종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일부에서는 다마 육군 기술 연구소와 협동하여 전파 유도기로 수행하는 방공 전투나, 육군 항공 기술 연구소와 협동하여 고고도 비행이 조종사의 심신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5. 역대 학교장
| 대수 | 성명 | 계급 | 재임 기간 | 비고 |
|---|---|---|---|---|
| 1 | 아카바네 스케유키(赤羽祐之) | 공병 소좌 | 1921년 4월 1일 - 1923년 8월 6일 | |
| 2 | 후지모토 쓰네지(藤本恒治) | 포병 대좌 | 1923년 8월 6일 - 1925년 5월 1일 | |
| 3 | 오자와 토라키치 | 소장 | 1925년 5월 1일 - 1928년 3월 8일 | |
| 4 | 모우치 야스츠구 | 소장 | 1928년 3월 8일 - 1929년 8월 1일 | |
| 5 | 아라마키 요시카츠 | 소장 | 1929년 8월 1일 - 1930년 6월 2일 | |
| 6 | 아사다 레이조 | 소장 | 1930년 6월 2일 - 1931년 8월 1일 | |
| 7 | 호리 타케오 | 소장 | 1931년 8월 1일 - 1931년 10월 3일 | |
| 8 | 도쿠가와 요시토시 | 소장 | 1931년 10월 3일 - 1934년 8월 1일 | |
| 9 | 하루타 류시로 | 소장 | 1934년 8월 1일 - 1936년 3월 7일 | |
| 10 | 와카타케 마타오 | 소장 | 1936년 3월 7일 - 1937년 8월 2일 | |
| 11 | 나가사와 켄지로 | 소장 | 1937년 8월 2일 - 1938년 7월 15일 | |
| 12 | 코바타 히데요시 | 소장 | 1938년 7월 15일 - 1940년 9월 24일 | |
| 13 | 이타바나 요이치 | 소장 | 1940년 9월 24일 - 1942년 11월 26일 | 1941년 3월 1일, 중장 진급 |
| 14 | 아오키 타케조 | 대좌 | 1942년 12월 1일 - 1944년 6월 20일 | 1943년 3월 1일, 소장 진급 |
| 15 | 미요시 야스유키]](三好康之) || 소장 || 1943년 8월 2일 - 1944년 6월 20일 || 미토 분교장 |
1944년 6월, 교도비행사단 편성에 따라 기존 교장은 교도비행사단장이 되었다. 통상 비행사단장은 중장이며 천황에게 직접 임명을 받는 친보직이었으나, 교도비행사단장은 중장 또는 소장으로 친보직이 아니었다。
| 대수 | 성명 | 계급 | 재임 기간 | 비고 |
|---|---|---|---|---|
| 1 | 미요시 야스유키]](三好康之) || 소장 || 1944년 6월 20일 - 1944년 9월 13일 || | |||
| 2 | 후루야 겐조]](古屋健三) || 소장 || 1944년 9월 13일 - 1945년 4월 15일 || | |||
| 3 | 가토 토시오 | 소장 | 1945년 4월 15일 - 1945년 7월 16일 |
1945년 7월 16일, 하치시즈, 아케노, 하마마츠, 호코타, 히타치, 우츠노미야 교도비행사단은 합병하여 단일 교도비행사단 (도치기현 하가군)이 되었고, 아케노에는 제1교도비행대가, 히타치(미토)에는 제2교도비행대가 배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