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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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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치용은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로, 외야수 및 내야수로 활동했다. 신일고등학교 시절 최희섭과 함께 '고교 양대 거포'로 불렸고, 연세대학교 졸업 후 2002년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2008년 LG에서 주전으로 발탁되어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며 '난세영웅'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이후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015년 현역 은퇴 후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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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신일고등학교 시절 광주제일고등학교최희섭과 함께 '고교 양대 거포'로 불렸고, 신일고 1년 후배 봉중근, 김광삼과 함께 3-4-5번 타자 '좌-우-좌 지그재그 타선'을 구축하며 1997년 고교 야구판을 평정했다.[1] 그 해 8월 최희섭, 봉중근과 함께 청소년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에서 벌어진 제17회 세계 청소년 야구대회에 출전, 5위를 차지했다.

LG 트윈스에 지명되었으나 연세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교 1학년 때 4번 타자로 발탁되었으나, 이후 부상으로 인해 성적이 좋지 않았다.

연세대학교 졸업 후 2002년 LG 트윈스와 계약금 1.3억, 연봉 2000만에 계약했다.[1] 그러나 프로 진출 후에도 고교 시절의 배팅 감각을 찾지 못하고, 2008년 시즌 전까지 1-2군을 오가며 자리를 잡지 못했다.[1]

2008년 시즌 팀 내 4번 타자 최동수와 박용택의 부상으로 주전으로 발탁되었다.[1] 5월 11일 대전 한화전에서 프로 데뷔 첫 홈런을 쳤고,[1] 2008년 5월까지 3할 5푼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일본에 진출한 이병규를 대신하여 팀 타선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았다.[1] 6월 26일 대구 삼성전에서 KBO 리그 통산 13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1] 2008년 1군 101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295, 52타점을 기록하며, 팀에서 홀로 맹타를 휘둘러 '''"난세영웅 (亂世英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1]

2009년 시즌 전 SK 와이번스에서 FA를 선언한 이진영의 영입과 시즌 중반 박용택의 복귀로 백업이나 대타로 주로 활약하였다.[1]

2010년 시즌 전 이택근이병규의 영입으로 팀 내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1] 시즌 중 이택근, 박용택 등의 부상으로 잠시 기용되기도 했으나, 1군 16경기 출전에 그치고 2010년 7월 28일 트레이드되었다.[1]

2010년 7월 28일 SK 와이번스LG 트윈스 간의 4:3 트레이드를 통해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SK는 내야수와 외야수가 필요했고, LG는 투수 유망주가 필요했기 때문에 양 팀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안치용은 최동수, 권용관, 이재영과 함께 SK로 이적했고, LG는 박현준, 김선규, 윤상균을 받았다.[1] 이적 후 첫 경기에서 좌익수 3번 타자로 출장하여 멀티 히트를 기록했다.[1]

2011년에는 7월에 4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시즌 후반과 포스트 시즌에서 좋은 타격을 보였고, 처음으로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2012년 이후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2. 1. 아마추어 시절

신일고등학교 시절 광주제일고등학교최희섭과 함께 '고교 양대 거포'로 불렸고, 신일고 1년 후배 봉중근, 김광삼과 함께 3-4-5번 타자 '좌-우-좌 지그재그 타선'을 구축하며 1997년 고교 야구판을 평정했다.[1] 그 해 8월 최희섭, 봉중근과 함께 청소년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에서 벌어진 제17회 세계 청소년 야구대회에 출전, 5위를 차지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최희섭과 함께 '''고교 2대 거포'''로 불렸다. 후에 팀 동료가 되는 봉중근은 고등학교 후배이다. LG 트윈스에서 드래프트 지명되었지만, 연세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거부했다. 대학교 1학년 때 4번 타자로 발탁되어 이현곤·신명철·채상병 등과 강력한 타선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후 부상으로 인해 성적이 좋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평범한 수준이 되었다.

2. 2. [[LG 트윈스]] 시절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안치용은 2002년 고졸 우선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LG 트윈스와 계약금 1.3억, 연봉 2000만에 계약했다.[1] 그러나 프로 진출 후에도 고교 시절의 배팅 감각을 찾는 데 실패하여, 데뷔 시즌 이후 2007년 시즌까지 6시즌 동안 1-2군을 넘나들며 자리를 잡지 못하고 야구 팬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1]

2008년 시즌 개막과 동시에 팀 내 4번 타자 최동수가 허리 부상을 입고 박용택까지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프로 데뷔 7년 만에 주전으로 발탁되었다.[1] 5월 11일 대전 한화전에서 자신의 프로 데뷔 후 첫 홈런을 쳤고,[1] 2008년 5월까지 3할 5푼대의 높은 타격 스탯을 꾸준히 보여 주면서 외야수 이병규일본 진출로 취약해진 LG 트윈스 타선의 새로운 대안으로 다시 주목받았다.[1] 6월 26일 대구 삼성전에서 KBO 리그 통산 13호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였다.[1] 2008년 1군 101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295, 52타점을 기록하며,[1] 투타 모두가 무너진 LG 팀에서 홀로 맹타를 휘둘러 '''"난세영웅 (亂世英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1]

2009년 시즌을 앞두고 SK 와이번스에서 FA를 선언한 외야수 이진영LG 트윈스에서 영입하게 되자 시즌 전부터 주전 자리가 흔들리게 되었다.[1] 시즌 중반 박용택이 복귀하자 외야수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고, 백업이나 대타로서 주로 활약하였다.[1] 일각에서는 펀치력을 높이기 위해 몸을 불린 것이 안치용의 부드러운 스윙을 빼앗아 갔다는 평가도 있다.[1]

2010년 시즌 전 현금 트레이드로 이택근이 영입되고, 일본에 갔던 이병규도 LG로 복귀하면서 LG의 외야는 이진영, 박용택, 이택근, 이병규, 이대형의 '국가대표급 5인방'으로 채워졌고, 팀 내에서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1] 시즌 중에는 이택근, 박용택 등이 부상과 부진으로 잠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을 때 잠시 기용되기도 했으나, 1군 16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고 결국 2010년 7월 28일 트레이드되었다.[1]

2. 3. [[SK 와이번스]] 시절

2010년 7월 28일 SK 와이번스LG 트윈스 간의 4:3 트레이드를 통해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SK는 주전 내야수 박정권, 나주환의 부상으로 내야수와 외야수가 필요했고, LG는 투수 유망주가 필요했기 때문에 양 팀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안치용은 최동수, 권용관, 이재영과 함께 SK로 이적했고, LG는 박현준, 김선규, 윤상균을 받았다.[1] 이적 후 첫 경기에서 좌익수 3번 타자로 출장하여 멀티 히트를 기록했다.[1]

2011년에는 7월에 4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시즌 후반과 포스트 시즌에서 좋은 타격을 보였고, 처음으로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2012년 이후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3. 은퇴 이후

2015년 1월 12일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야구 해설자로 변신했다. KBS N 스포츠에서 해설자 생활을 시작했다.[2]

4. 출신 학교

참조

[1] 뉴스 고교 선후배 봉중근-안치용 'LG 9연패 끊었다' http://sports.hankoo[...] 스포츠한국 2008-05-11
[2] 뉴스 안치용 해설가 데뷔, '제2 야구인생' 연다 https://news.naver.c[...] 이데일리 201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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