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루 알하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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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루 알하노프는 1957년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태어나 체첸에서 성장했으며, 소련군 복무 후 경찰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제1차 체첸 전쟁 당시 러시아 편에서 활동하며 용기훈장을 받았고, 제2차 체첸 전쟁 중에는 경찰군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2003년 체첸 내무부 장관을 거쳐, 2004년 아흐마트 카디로프 대통령 암살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람잔 카디로프와의 갈등으로 2007년 사임하고 러시아 연방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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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 알하노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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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알루 알하노프 |
원어 이름 | Алу Алханов |
로마자 표기 | Alu Alkhanov |
출생일 | 1957년 1월 20일 |
출생지 | 탈디코르간,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소비에트 연방 |
국적 | 러시아 |
정치 | |
직함 | 체첸 공화국의 대통령 |
대수 | 제2대 |
임기 시작 | 2004년 8월 30일 |
임기 종료 | 2007년 2월 15일 |
정당 | 무소속 |
전임자 | 세르게이 아브라모프 (대행), 아흐마트 카디로프 |
후임자 | 람잔 카디로프 |
수상 | |
훈장 | [[파일:Orden_for_Service_III.png|50px]] [[파일:Orden of Honour.png|40 px|link=Order of Honour (Russian Federation)]] [[파일:Orden of Courage.png |40 px|link=Order of Courage (Russia)]] 조국공헌훈장 |
2. 초기 생애 및 경력
알루 알하노프는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태어나 체첸에서 성장했으며, 소련군 복무를 마친 뒤 경찰에 투신했다. 벨라루스의 교통경찰학교와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의 고등경찰학교를 졸업한 후, 1992년 체첸-인구시 자치 공화국 정부의 북 코카서스 교통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하여 부서장까지 역임했다.[1]
제1차 체첸 전쟁 발발 시 러시아 측을 지지하며 분리주의 세력에 맞섰고, 1996년 그로즈니 전투에서의 공로로 용기훈장을 받았다.[1] 제2차 체첸 전쟁 이후 아흐마트 카디로프가 체첸 공화국의 실권을 잡자 그의 정부에 합류하여 2003년 4월 내무부 장관에 임명되었고, 경찰 소장(Major General) 계급을 받았다.[1] 2004년 5월 아흐마트 카디로프 대통령 암살 사건 이후, 러시아 정부의 지지를 받는 유력한 후계자로 부상했다.[1]
2. 1. 출생 및 가족 배경
알루 알하노프는 1957년 1월 20일,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가족이 이주해 있던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탈디코르간 주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태어난 지 사흘 만에 가족은 고향인 체첸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받았다. 그는 울루스-마르탄에서 학교 교육을 받았으며, 16세부터는 국영 농장인 소프호즈에서 일하기 시작했다.2. 2. 소련군 복무
1957년 1월 20일,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탈디코르간 주에서 태어났다.[1][2] 그러나 태어난 지 사흘 만에 가족과 함께 고향인 체첸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되었다.[2]울루스-마르탄에서 학교 교육을 마친 후, 16세부터 소프호즈에서 일하기 시작했다.[2] 이후 소련군에 입대하여 복무 의무를 마쳤다.[1][2]
군 복무를 마친 뒤 1983년 소련 경찰(Militsiya)에 입대했으며,[1] 벨라루스 모길레프(Mogilev)에 있는 교통경찰학교를 졸업했다.[1][2] 1984년부터 치안 관련 직무에 종사하기 시작했다.[2]
2. 3. 경찰 경력
소련군 복무를 마친 후, 1983년 소련 경찰(밀리치야)에 입대하여 벨라루스 모길리우(Mogilev)에 있는 교통경찰학교를 졸업했다.[1][2] 1984년부터는 치안 관련 직무에 종사하기 시작했다.[2]이후 러시아 내무부가 로스토프나도누에 설치한 고급 경찰학교에 진학하여[2] 1992년 과정을 마쳤다.[1] 귀국 후 당시 러시아 연방 내의 체첸-인구시 자치 공화국 정부로부터 북 코카서스 교통부 차장으로 임명되었으며,[1][2] 이후 부서장(교통국장)으로 승진하여 제1차 체첸 전쟁 중이던 1997년까지 그 직책을 유지했다.[1][2]
1994년 제1차 체첸 전쟁이 발발하자 알하노프는 러시아 편에 서서 체첸 이치케리아 공화국의 조하르 두다예프 정권과 같은 분리주의 세력에 맞섰다.[1][2] 1996년 분리주의자들이 그로즈니를 공격했을 당시에는 사령관으로서 활약하여 러시아로부터 용기훈장을 수여받았다.[1][2] 전쟁 휴전 후 아슬란 마스하도프가 이끄는 독립파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알하노프는 러시아 측에 남아 저항을 계속했다.[2]
제2차 체첸 전쟁에서 예전 독립파의 거물이었고, 종교 문제로 마스하도프 대통령과 대립했던 아흐마트 카디로프 사령관이 러시아군과 손을 잡고 그로즈니를 점령하자, 카디로프로부터 경찰 소장으로 임명되었다.[2] 2003년 4월 아흐마트 카디로프 정권이 성립하자 내무장관을 역임하며 치안 조직 재건에 힘썼고, 이때 다시 경찰 소장(Major General) 계급을 받았다.[1][2]
3. 체첸 전쟁과 정치 입문
카자흐스탄 탈디코르간 주 출신으로, 학교 졸업 후 소련군에 복무했다. 1983년 소련 경찰(Militsiya)에 들어가 벨라루스 모길리우의 교통경찰학교와 로스토프나도누의 고등경찰학교를 졸업했다. 1992년에는 당시 체첸-인구시 자치 공화국 그로즈니 정부의 북카프카스 교통부 차장이 되었고, 이후 러시아 내무부 로스토프나도누 고급 경찰학교 유학 후 북카프카스 교통국 부국장으로 임명되어 1997년까지 근무했다.
1994년 제1차 체첸 전쟁이 발발하자, 알하노프는 러시아 편에 서서 체첸 이치케리아 공화국의 조하르 두다예프 정권과 같은 분리주의 세력에 맞섰다. 그는 줄곧 연방파에 속하여 활동했으며, 1996년 그로즈니 공방전에서의 활약으로 용기훈장을 받았다. 전쟁 중이던 1997년에는 교통국장으로 승진했다. 휴전 후 아슬란 마스하도프가 이끄는 독립파 정권이 들어섰지만, 알하노프는 연방파로서 저항을 계속했다.
제2차 체첸 전쟁 이후, 과거 독립파였으나 러시아와 협력하게 된 아흐마트 카디로프가 그로즈니를 장악하자, 알하노프는 카디로프에 의해 체첸 경찰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2003년 4월, 카디로프가 이끄는 친러시아 성향의 체첸 정부가 수립되자 내무부 장관에 임명되어 전쟁으로 파괴된 치안 조직을 재건하는 데 힘썼다. 2004년 5월 9일 아흐마트 카디로프가 암살되자, 알하노프는 러시아 정부의 지지를 받는 유력한 후계자로 부상하며 본격적인 정치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3. 1. 제1차 체첸 전쟁
1994년 제1차 체첸 전쟁이 발발하자 알하노프는 러시아 편에 서서 체첸 이치케리아 공화국의 조하르 두다예프 정권과 같은 분리주의 세력에 맞서 싸웠다. 그는 줄곧 연방파에 속하여 활동했다. 1996년 분리주의자들이 그로즈니를 공격했을 때, 알하노프는 사령관으로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며, 이 공로로 러시아 정부로부터 용기훈장을 수여받았다. 전쟁 중이던 1997년에는 북카프카스 교통국 국장으로 승진했다. 전쟁이 휴전되고 아슬란 마스하도프가 이끄는 독립파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알하노프는 연방파로서 저항 활동을 이어갔다.3. 2. 제2차 체첸 전쟁
제2차 체첸 전쟁 중, 과거 독립파의 주요 인물이었으나 아슬란 마스하도프 대통령과 대립하던 아흐마트 카디로프는 러시아군과 협력하여 그로즈니를 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알하노프는 카디로프에 의해 체첸 경찰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2003년 4월, 아흐마트 카디로프가 이끄는 친러시아 성향의 체첸 정부가 공식 출범하자, 알하노프는 내무부 장관을 맡아 전쟁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체첸의 치안 조직을 다시 세우는 데 힘썼다.4. 체첸 공화국 대통령
2004년 5월 9일 아흐마트 카디로프 대통령이 암살된 후 혼란 속에서 러시아 정부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선거 과정에서는 러시아 군의 지원과 경쟁 후보 배제 논란 등이 있었으며, 이는 하위 섹션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자세히 다룬다.
대통령으로서 알하노프는 전임자 아흐마트 카디로프의 정책 기조를 이어받아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공화국 통치의 '이슬람화'를 추진하였다. 2006년 6월에는 체첸 공화국이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치되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기 동안 당시 총리였던 람잔 카디로프와의 권력 갈등이 계속되었다. 람잔 카디로프는 대통령직을 강력히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결국 2007년 2월 알하노프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람잔 카디로프가 그 자리를 계승했다. 이 과정은 하위 섹션 '람잔 카디로프와의 갈등'에서 상세히 설명한다.
4. 1. 2004년 대통령 선거
2004년 5월 9일, 아흐마트 카디로프 대통령이 독립파 사령관 샴릴 바사예프에게 암살당하면서 대통령직이 공석이 되었다. 세르게이 아브라모프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혼란을 수습하는 가운데, 러시아 정부는 알루 알하노프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추천했다.알하노프는 평생 관료 출신으로 뚜렷한 대중적 기반이 없었으며, 많은 관찰자들에게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측근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선거 전부터 러시아 정부가 알하노프의 승리를 위해 개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체첸에 대한 러시아 정책의 비판가들은 정부가 그의 패배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투표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전임자 선거 역시 개표 조작, 러시아 군인들에 의한 유권자 협박, 잠재적 분리주의 후보들의 배제 주장으로 얼룩진 바 있다.
알하노프는 7명의 도전자와 맞섰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던 모스크바 기반의 체첸 사업가 말릭 사이둘라예프는 지원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다는 기술적인 이유로 출마가 금지되었다. 이는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나머지 후보들은 대부분 체첸 내 인지도가 낮거나 정부와 연계된 인물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젊은 층의 지지를 받던 람잔 카디로프는 20대여서 출마할 수 없었다.
이름 | 주요 경력 | 비고 |
---|---|---|
알루 알하노프 | 체첸 공화국 내무부 장관 | 러시아 정부 지지 후보 |
아브둘라 부가예프 | 역사학자, 현대 인문학 아카데미 체첸 지부장 | 2003년 대선 2위 (5.7%) |
모브사르 카미도프 | 러시아 연방보안청(FSB) 체첸 지부 대령 | |
바카 비사예프 | 경제학자, 대통령 권한대행 세르게이 아브라모프 고문 | |
무흐무드-카산 아사코프 | 체첸 주 의회 직원 | |
마고메드 아이다미로프 | 톨스토이-유르트 마을 사업가 | |
우마르 아부예프 | 체첸 석유화학 회사 사장 |
알하노프의 공약은 사실상 전임자 아흐마트 카디로프의 정책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주요 내용은 체첸이 계속 러시아의 일부로 남는 것을 전제로 경제적 자치권 확보, 원조와 투자 유치, 실업률 감소와 러시아 군대 주둔 축소, 분리주의 지도자 아슬란 마스카도프와의 평화 회담 개최 등이었다.
선거 과정에서 러시아군 부대가 알하노프를 노골적으로 지원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반대파는 카리스마는 부족하지만 연방 정부 관료로서 신뢰할 만한 경력을 가진 알하노프를 푸틴 정권이 처음부터 대통령으로 임명할 생각이었다고 주장했다. 2004년 8월 선거 결과, 알하노프는 85.25%라는 높은 투표율 속에서 73.67%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위는 모브사르 카미도프(8.95%), 3위는 아브둘라 부가예프(4.5%)였다. 비사예프는 4위, 아부예프는 5위, 아사코프는 6위, 아이다미로프는 7위를 차지했으며, 득표율은 0.6%에서 4.3% 사이였다. 유권자의 1%는 "모든 후보 반대"에 투표했다.
선거 결과는 일부 외부 관찰자들과 체첸 반대파에 의해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미국 국무부와 국제 헬싱키 인권 연맹은 선거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이둘라예프의 자격 박탈을 강조했다. 선거는 독립국가연합(CIS)과 아랍연맹(LAS)의 감시단에 의해 국제적으로 감시되었지만, 서방 감시단은 초청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감시에 참여하지 않았다. 투표 상황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었으며, 2위를 차지한 카미도프 후보는 자신의 선거 운동 직원들이 수많은 부정 행위를 기록했으며 법정에서 투표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4. 2. 정책 및 업적
아흐마트 카디로프 대통령이 2004년 5월 9일 독립파 사령관 샴릴 바사예프에게 암살당한 후, 세르게이 아브라모프 총리가 혼란을 수습하는 가운데 러시아 정부의 추천을 받아 알하노프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알하노프는 특별한 대중적 지지 기반이 부족했으나, 러시아군 부대의 노골적인 지원이 있었다. 명목상 6명의 경쟁 후보가 있었지만, 이들은 실질적인 당선 의지가 없는 형식적인 후보들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당시 젊은 층의 지지를 받던 람잔 카디로프 총리는 나이 제한으로 출마할 수 없었고,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말릭 사이두라예프는 출마가 거부되었다. 반대파는 카리스마는 부족하지만 연방 정부 관료로서 신뢰할 만한 경력을 가진 알하노프를 푸틴 정권이 처음부터 대통령으로 내정했다고 주장했다. 선거 결과, 알하노프는 73.67%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대통령으로서 알하노프는 전임자인 아흐마트 카디로프 정권의 주요 정책, 특히 러시아와의 화해 노선을 계승했다. 동시에 공화국 정부의 '이슬람화'를 추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6년 6월 1일, 그는 공화국이 샤리아에 따라 통치되어야 한다고 언급하며,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많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알하노프는 대통령직을 강력히 원했던 전 반군 출신의 총리 람잔 카디로프와 지속적인 갈등 관계에 놓여 있었다. 결국 이러한 권력 투쟁 끝에 2007년 2월, 알하노프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람잔 카디로프가 그 자리를 계승하게 되었다. 이후 카디로프는 모든 주요 직책에 자신의 측근들을 임명하며 권력 기반을 다졌다.
4. 3. 람잔 카디로프와의 갈등
알루 알하노프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당시 체첸 공화국 총리였던 람잔 카디로프와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람잔 카디로프는 전직 반군 출신으로, 아버지인 아흐마트 카디로프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대통령직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알하노프는 대통령으로서 러시아와의 화해 정책을 계승하는 한편, 공화국 정부의 '이슬람화'를 추진하였다. 2006년 6월 1일에는 체첸 공화국이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채택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직을 둘러싼 알하노프와 람잔 카디로프 총리 간의 대립은 계속되었고, 결국 2007년 2월 15일 알하노프의 사임으로 갈등은 마무리되었다. 알하노프의 사임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람잔 카디로프를 차기 대통령으로 추천한다고 발표했다. 람잔 카디로프는 대통령이 된 이후 모든 주요 직책에 자신의 사람들을 임명하며 권력을 강화했다.
5. 대통령 퇴임 이후
(내용 없음)
5. 1. 러시아 법무부 차관 임명
알카노프는 대통령직에서 사임한 날 러시아 연방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정의 중장(генера́л-полко́вник юсти́ции|게네랄-폴코브니크 유스티치rus)이라는 특별 계급을 보유하고 있다.[1][2]5. 2. 현재 활동
알카노프는 대통령직에서 사임한 날 러시아 연방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정의 중장(Colonel General of Justice)이라는 특별 계급을 가지고 있다.알루 알카노프는 결혼하여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1][2]
6. 수상 경력
훈장/표창 | 수여 날짜 | 수여 사유 |
---|---|---|
조국에 대한 공훈 훈장 4등급 | 2007년 2월 15일 | 러시아 국가와 헌법 질서 강화 및 사회경제 발전에 대한 탁월한 공헌 |
용기 훈장 | ||
명예 훈장 | 2011년 10월 12일 | 노동 성과와 오랜 헌신적인 노력에 대한 공로 |
용기 훈장 (메달) | ||
공공 질서 보호에 대한 공로 메달 | ||
러시아 연방 대통령 감사패 | ||
러시아 연방 정부 훈장 | 2007년 1월 20일 | 체첸 공화국의 경제 및 사회 분야 회복에 대한 막대한 개인적 기여에 대한 공로 |
참조
[1]
웹사이트
Кавказский Узел. Алханов Али Дадашевич
https://www.kavkaz-u[...]
2020-03-14
[2]
뉴스
Алханов, Али Дадашевич
https://tass.ru/ency[...]
ТАС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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