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알베르토 자코메티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스위스 출신의 조각가이자 화가로, 20세기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큐비즘, 초현실주의 등의 영향을 받아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특히 가늘고 긴 형태의 인물 조각으로 유명하다. 자코메티는 196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시실을 할애받는 등 말년에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으며, 그의 작품은 현대 사회의 인간 실존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작품은 스위스 프랑 지폐에 등장하기도 했으며, 한국의 철학자 야나이하라 이사쿠와의 교류를 통해 한국에도 알려졌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스위스의 조각가 - 장 팅겔리
    스위스의 조각가이자 화가인 장 팅겔리는 버려진 기계 부품과 산업 폐기물을 활용한 키네틱 아트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누보 레알리즘 운동에 참여, 《메타마틱》 연작과 《뉴욕 찬가》 등의 작품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니키 드 생팔과 협업하여 스트라빈스키 분수와 같은 공공 미술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 스위스의 조각가 - 니키 드 생팔
    프랑스 출신 조각가, 화가, 영화 제작가인 니키 드 생팔은 '사격 회화' 연작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여 풍만한 여성상을 표현한 '나나' 연작과 조각 정원 '타로 가든'으로 알려졌으며, 여성, 사회, 신화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제작했다.
  • 1966년 사망 - 마해송
    마해송은 일제강점기 및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이자 언론인으로, 방정환 등과 색동회를 조직하여 아동문학 운동을 전개했으며, 광복 후에는 작품을 통해 사회상을 비판하는 등 대한민국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 1966년 사망 - 김시현 (1883년)
    김시현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2대 및 제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 지폐의 인물 - 이승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독재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도 받으며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서거하였다.
  • 지폐의 인물 - 찰스 스튜어트 파넬
    찰스 스튜어트 파넬은 19세기 후반 아일랜드의 국민주의 지도자였으며, 아일랜드 의회에서 토지 개혁과 자치 운동을 이끌었으나, 피곳 사건과 오셰이 부인과의 불륜으로 인해 정치적 몰락을 겪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알베르토 자코메티 (1948) (사진: 에미 안드리에세)
이름알베르토 자코메티
출생일1901년 10월 10일
출생지보르고노보, 스탐파, 그라우뷘덴주, 스위스
사망일1966년 1월 11일
사망지쿠어, 그라우뷘덴주, 스위스
배우자아네트 아르 (1949년 결혼)
활동 분야조각, 회화, 드로잉
교육제네바 미술 학교
운동초현실주의
표현주의
입체파
형식주의
주요 작품Tête qui regarde
오전 4시의 궁전
손가락을 가리키는 남자
Grande tête mince
커다란 서 있는 여인 I
기념비적인 머리
걸어가는 남자 I
수상1962년 베니스 비엔날레 "조각 부문 대상"
웹사이트재단 공식 웹사이트
로마자 표기Alberto Giacometti (알베르토 자코메티)
관련 정보
직업조각가
화가
제도사
판화가
국적스위스
추가 정보
언어별 이름이탈리아어: Alberto Giacometti
일본어: アルベルト・ジャコメッティ (아루베루토 자코멧티)
한국어: 알베르토 자코메티

2. 생애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그라우뷘덴주 브레가리아 계곡 마로야 지역에 있는 볼고노보에서 태어나 근교 슽암파 마을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 조반니 자코메티는 스위스 인상파 화가였다. 1살 터울의 동생 디에고는 형의 조수이자 모델로 활동했으며, 후에는 가구 제작자가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19년 제네바 미술학교에 입학했으나, 며칠 만에 회화를 그만두고 제네바 공예학교의 모리스 살키소프 밑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1920년 베네치아에, 1921년 로마에 체류한 후 1922년 파리로 이주하여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오귀스트 로댕의 제자 앙투안 부르델에게 사사했다.

''제목 없음 (로마 풍경)'' (1920~21), 필립스 컬렉션


1920년대 중반부터 동생 디에고와 함께 아틀리에를 운영했고, 1927년경부터 파리의 살롱 드 튀일리에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자코메티는 사실적인 조각에 만족하지 못하고 큐비즘, 초현실주의, 원시 조각 등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제작했다. 파리에서는 파블로 피카소, 막스 에른스트, 후안 미로 등의 화가들과 초현실주의 운동의 주창자 앙드레 브르통을 비롯해 장 폴 사르트르, 폴 엘뤼아르 등의 문인들과 교류했다. 1932년 작품인 『새벽 4시의 궁전』은 이 시대의 대표작으로, 초현실주의 회화를 입체로 옮긴 듯한 작품이다.

1935년 초현실주의적 화풍을 버리고 다시 인물 모델을 크로키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돌아가, 초현실주의 그룹에서도 탈퇴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2년 제네바로 돌아갔다가 전후인 1946년 다시 파리로 이주했다.

자코메티는 전쟁 전에도 가늘고 긴 인물상을 제작했지만, 전후인 1950년대부터 제작된 인물상은 살집도 요철도 없이, "조각"으로서의 한계라고 할 만큼 가늘고 긴 것이 특징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이러한 자코메티의 인물상을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실존을 표현한 것으로 높이 평가했다. 참고로 고대 이탈리아 에트루리아 문명에도 가늘고 길게 늘어진 인물 조각이 있으며, 그것과의 관련성도 지적되고 있다.

1962년 제31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석한 알베르토 자코메티


196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자코메티를 위해 전시실 하나가 할애되었다. 이처럼 말년에는 국제적으로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또한 말년에는 회화, 판화 등 평면 예술로의 회귀도 보인다. 판화집 『끝없는 파리』는 1958년부터 1965년에 걸쳐 제작한 석판화 150점을 수록하고 있으며, 자코메티 자신의 텍스트가 붙어 있는데, 말년의 대표작이다. 1966년, 스위스 쿠어에서 사망했다.

2. 1. 초기 생애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1868년 스위스 보르고노보에서 후기 인상파 화가인 조반니 자코메티와 아네타 자코메티-스탐파 사이에서 태어난 네 자녀 중 장남이었다.[11] 그는 종교재판을 피해 도망친 프로테스탄트 난민의 후손으로,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관심을 가졌으며, 아버지와 대부의 격려를 받았다.[11] 그의 형제인 디에고(1902~1985)와 브루노(1907~2012)도 화가이자 건축가가 되었다.[11] 그의 사촌인 자카리아 자코메티는 헌법학 교수이자 취리히 대학교 총장이 되었는데, 1905년 12세에 고아가 된 후 그들과 함께 자랐다.[12]

자코메티는 스위스의 이탈리아 국경 근처, 현재 그라우뷘덴주 브레가리아 계곡 마로야 지역에 있는 볼고노보에서 태어나 근교 슽암파 마을에서 자랐다. 1살 터울의 동생 디에고는 형의 조수이자 모델로 활동했으며, 후에는 가구 제작자가 되었다.

자코메티는 고등학교 졸업 후 1919년 제네바 미술학교에 입학했으나, 며칠 만에 회화를 그만두고 제네바 공예학교의 모리스 살키소프 밑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1920년 베네치아, 1921년 로마에 체류한 후 1922년 파리로 이주하여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로댕의 제자 앙투안 부르델에게 사사했다.

2. 2. 학업과 초기 활동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그라우뷘덴주 브레가리아 계곡 마로야 지역에 있는 볼고노보에서 태어나 근교 슽암파 마을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 조반니 자코메티는 스위스 인상파 화가였다. 1살 터울의 동생 디에고는 형의 조수이자 모델로 활동했으며, 후에는 가구 제작자가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19년 제네바 미술학교에 입학했으나, 며칠 만에 회화를 그만두고 제네바 공예학교의 모리스 살키소프 밑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1920년 베네치아에, 1921년 로마에 체류한 후 1922년 파리로 이주하여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오귀스트 로댕의 제자 앙투안 부르델에게 사사했다.

1920년대 중반부터 동생 디에고와 함께 아틀리에를 운영했고, 1927년경부터 파리의 살롱 드 튀일리에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자코메티는 큐비즘, 초현실주의, 원시 조각 등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제작했다. 파리에서는 파블로 피카소, 막스 에른스트, 후안 미로 등의 화가들과 초현실주의 운동의 주창자 앙드레 브르통을 비롯해 장 폴 사르트르, 폴 엘뤼아르 등의 문인들과 교류했다.

1935년 초현실주의적 화풍을 버리고 다시 인물 모델을 크로키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돌아가, 초현실주의 그룹에서도 탈퇴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2년 제네바로 돌아갔다가 전후인 1946년 다시 파리로 이주했다.

1936년부터 1940년 사이에 자코메티는 인물의 머리에 집중하여 조각을 했고, 앉아 있는 사람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13] 그는 자신의 여동생과 화가 이자벨 로스쏜과 가까운 모델을 선호했다.[13] 이후 그의 이자벨 조각상이 늘어지는 단계가 이어졌는데, 사지가 길어졌다.[14] 그는 종종 조각이 못처럼 가늘어지고 담배갑 크기로 줄어들 때까지 조각했고, 그로 인해 크게 실망했다.[13]

2. 3. 중년과 전후 활동

1922년,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조각가 앙투안 부르델(로댕의 동료)에게 배우기 위해 파리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자코메티는 입체파와 초현실주의를 실험했고, 선도적인 초현실주의 조각가 중 한 명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의 동료들 중에는 미로, 에른스트, 피카소, 브롤 흐예르트, 발튀스가 있었다. 1920년대 중반부터 동생 디에고와 함께 아틀리에를 운영했고, 1927년경부터 파리의 살롱 드 튀일리에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36년부터 1940년 사이에 자코메티는 인물의 머리에 집중하여 조각을 했고, 앉아 있는 사람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자신의 여동생과 화가 이자벨 로스쏜과 가까운 모델을 선호했다. 이후 그의 이자벨 조각상이 늘어지는 단계가 이어졌는데, 사지가 길어졌다. 그는 종종 조각이 못처럼 가늘어지고 담배갑 크기로 줄어들 때까지 조각했고, 그로 인해 크게 실망했다. 그의 친구 중 한 명은 자코메티가 당신을 조각하기로 결정한다면 "당신의 머리를 칼날처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2년, 자코메티는 고국 제네바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1946년 적십자 사무원 아네트 아름(Annette Arm)을 만났고, 1949년 결혼했다. 결혼 후 그의 작은 조각들은 커졌지만, 커질수록 더 가늘어졌다. 자코메티의 남은 생애 동안 아네트는 그의 주요 여성 모델이었다. 그의 그림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지속적인 수정 작업의 결과로 인물들은 고립되어 심하게 가늘어져 보인다. 그는 자주 자신의 주제를 다시 다루었는데, 그의 가장 좋아하는 모델 중 하나는 파리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를 함께 사용한 그의 남동생 디에고였다. 196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자코메티를 위해 전시실 하나가 할애되었다.

2. 4. 말년

1958년, 자코메티는 뉴욕에서 건설이 시작된 체이스 맨해튼 은행 건물을 위해 기념비적인 조각 작품을 제작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자코메티는 조각과 장소 사이의 관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프로젝트를 중단했기 때문에 의뢰는 완료되지 않았다.[18] 196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조각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이 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18] 인기를 얻고 그의 작품이 수요가 많았을 때조차도 그는 모델을 계속 수정했고, 종종 그것들을 파괴하거나 몇 년 후 다시 사용하기 위해 따로 두었다.[18]

말년에 자코메티의 작품들은 유럽 전역의 여러 대규모 전시회에서 선보였다. 국제적인 인기를 얻고 건강이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1965년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작품 전시회를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는 ''파리 생상''이라는 책의 텍스트를 준비했는데, 이 책에는 그가 살았던 모든 장소에 대한 기억을 담은 150점의 석판화가 담겨 있다.[18]

자코메티는 1966년 스위스 쿠어의 칸톤 병원(Kantonsspital)에서 심장 질환(심낭염(pericarditis))과 만성 폐쇄성 폐 질환(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으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고향인 보르고노보(Borgonovo)로 돌아와 부모님 곁에 매장되었다.[18] 자녀가 없었기에 아네트 자코메티(Annette Giacometti)는 그의 재산권을 단독으로 소유하게 되었다.[15] 그녀가 1993년에 사망하자 프랑스 정부에 의해 자코메티 재단(Fondation Giacometti)이 설립되었다.

196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자코메티를 위해 전시실 하나가 할애되었다. 이처럼 말년에는 국제적으로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또한 말년에는 회화, 판화 등 평면 예술로의 회귀도 보인다. 판화집 『끝없는 파리』는 1958년부터 1965년에 걸쳐 제작한 석판화 150점을 수록하고 있으며, 자코메티 자신의 텍스트가 붙어 있는데, 말년의 대표작이다. 1966년, 스위스 쿠어에서 사망했다.

3. 작품 세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기법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따르면, 핵심으로 축소된 인물들을 통해 잎이 떨어진 겨울 나무와 같은 고독함을 연상시킨다.[20] 그는 걷는 남자, 서 있는 나체 여성, 흉상 등 세 가지 주제에 집중했다.[20] 피에르 마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코메티는 인물을 "투명한 구조물"로 묘사하며, 사실주의적 흉상에 대한 향수와 실존적 위기를 언급했다.[21] 그는 모델을 통해 구조를 이해하려 했으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고, 이는 기술적 문제가 아닌 실존적 갈등의 징후로 해석된다.[21]

자코메티는 초현실주의 미술 운동의 주요 인물이었지만, 그의 작품은 형식주의, 표현주의, 또는 들뢰즈가 언급한 "감각의 블록"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는 주제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 했으며, "드리워진 그림자"를 조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21] 윌리엄 배럿은 자코메티의 가늘고 긴 인물상이 20세기 모더니즘실존주의의 공허함과 무의미함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21] 그는 모든 물질 입자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21]

파리 피나코테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는 자코메티가 에트루리아 미술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보여주었다.[22] 그는 1945년부터 1960년까지 제작한 키 크고 마른 인물상의 청동 조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23], 이는 대도시에서 서두르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인상, 즉 "정지된 순간들의 연속"에서 영향을 받았다.[24] 이러한 인물들은 인류의 실존적 공포, 무의미함, 고독을 표현하며[25], 1940년대와 냉전 시대의 공포 분위기를 반영한다.[26]

3. 1. 주요 특징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기법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따르면, 핵심으로 축소된 인물들을 통해 잎이 떨어진 겨울 나무와 같은 고독함을 연상시킨다.[20] 그는 걷는 남자, 서 있는 나체 여성, 흉상 등 세 가지 주제에 집중했다.[20] 피에르 마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코메티는 인물을 "투명한 구조물"로 묘사하며, 사실주의적 흉상에 대한 향수와 실존적 위기를 언급했다.[21] 그는 모델을 통해 구조를 이해하려 했으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고, 이는 기술적 문제가 아닌 실존적 갈등의 징후로 해석된다.[21]

자코메티는 초현실주의 미술 운동의 주요 인물이었지만, 그의 작품은 형식주의, 표현주의, 또는 들뢰즈가 언급한 "감각의 블록"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는 주제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 했으며, "드리워진 그림자"를 조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21] 윌리엄 배럿은 자코메티의 가늘고 긴 인물상이 20세기 모더니즘실존주의의 공허함과 무의미함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21] 그는 모든 물질 입자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21]

파리 피나코테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는 자코메티가 에트루리아 미술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보여주었다.[22] 그는 1945년부터 1960년까지 제작한 키 크고 마른 인물상의 청동 조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23], 이는 대도시에서 서두르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인상, 즉 "정지된 순간들의 연속"에서 영향을 받았다.[24] 이러한 인물들은 인류의 실존적 공포, 무의미함, 고독을 표현하며[25], 1940년대와 냉전 시대의 공포 분위기를 반영한다.[26]

3. 2. 초현실주의 시기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1932년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오전 4시의 궁전》과 같은 작품을 통해 초현실주의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했다. 1950년에는 도야마현립근대미술관에 전시된 《나체 여인상》을, 1952년에는 도쿠시마현립근대미술관에 전시된 《여성상》을 제작했다. 1956년에는 오하라미술관에 전시된 《베니스의 여인 I》을 제작하였고, 1955년에는 테이트 갤러리에 전시된 《장 주네 (회화)》를 그렸다. 1958년에는 효고현립미술관의 《비석 I》, 하코네 조각의 숲 미술관의 《팔 없는 가녀린 여인》을 제작했다. 1960년에는 취리히 미술관에 전시된 《걷는 남자》를 제작했다. 1958년부터 1965년 사이에 제작된 판화들은 작가 사후인 1969년 《끝없는 파리》라는 판화집으로 발행되었다.

3. 3. 실존주의적 경향

자코메티는 초현실주의 미술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지만, 그의 작품은 쉽게 분류할 수 없다.[21] 어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형식주의적이라고 묘사하고, 다른 사람들은 표현주의적이거나 들뢰즈가 "감각의 블록"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21] 피에르 마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코메티는 인물은 결코 밀집된 덩어리가 아니라 투명한 구조물과 같다고 썼다.[21] 그는 젊은 시절 사실주의적이고 고전적인 흉상을 향수에 젖어 회상하며, 그를 유명하게 만든 스타일을 촉발한 실존적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21]

1935년부터 1940년까지 모델과 함께 작업했지만, 그 결과는 그가 상상했던 것과 달랐고, 머리는 그에게 완전히 알 수 없고 차원이 없는 물체가 되었다.[21] 윌리엄 배럿은 자코메티 인물의 가늘고 긴 형태가 20세기 모더니즘실존주의의 관점, 즉 현대 생활이 점점 더 공허하고 의미가 없다는 견해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21]

자코메티의 조각 기법에 관하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1949년 작품인 《세 남자가 걷는 모습(II)》의 거칠고 침식된, 여러 번 다듬어진 표면은 그의 기법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핵심으로 축소된 인물들은 잎을 떨어뜨린 겨울의 외로운 나무들을 연상시킨다.[20] 자코메티는 자신이 본 방식대로, 그리고 자신이 그들이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모델의 묘사를 만들려고 노력했으며, 한때 자신이 인물이 아니라 "드리워진 그림자"를 조각하고 있다고 말했다.[21]

자코메티는 1945년부터 1960년까지 제작한 키가 크고 마른 인물상의 청동 조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23] 그는 대도시에서 서두르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인상에 영향을 받았으며,[24] 움직이는 사람들을 "정지된 순간들의 연속"으로 보았다.[24] 이러한 수척한 인물들은 종종 인류의 실존적 공포, 무의미함, 고독의 표현으로 해석된다.[25] 1940년대와 냉전 시대의 공포 분위기가 이 인물상에 반영되어 있으며, 슬프고, 외롭고, 공감하기 어렵게 느껴진다.[26] 2011년부터 2012년까지 파리 피나코테크에서 열린 전시회는 자코메티가 에트루리아 미술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22]

3. 4. 회화와 판화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조각뿐만 아니라 회화와 판화 작품도 남겼다. 1932년 작품인 《오전 4시의 궁전》은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950년에 제작된 《나체 여인상》은 도야마현립근대미술관에서, 1952년 작품인 《여성상》은 도쿠시마현립근대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1956년에 만들어진 《베니스의 여인 I》은 오하라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장 주네를 그린 초상화는 1955년 작품으로 테이트 갤러리에 있으며, 1958년 작품 《비석 I》은 효고현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958년에 제작된 《팔 없는 가녀린 여인》은 하코네 조각의 숲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1960년 작품인 《걷는 남자》는 취리히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958년부터 1965년 사이에 제작된 판화들은 《끝없는 파리》라는 제목의 판화집으로 묶여 작가 사후인 1969년에 발행되었다.

4. 한국과의 관계

100스위스 프랑(Swiss Franc) 지폐에 그려진 자코메티의 초상


1998년 10월부터 발행된 스위스 제8차 지폐 100프랑 지폐에 그의 초상이 그려져 있었다. 지폐 뒷면에는 "걷는 남자"가 그려져 있었다.[49]

1950년대 중반 프랑스 유학 시절 철학자 야나이하라 이사쿠(矢内原伊作)와 깊은 친분을 맺었고, 야나이하라를 모델로 작품을 제작했다.[49] 어떤 해에는 야나이하라에게 모델을 부탁하기 위해 일본에서 파리로 그를 불러들이기도 했다.[49]

야나이하라는 자코메티의 아틀리에에서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겼고, 야나이하라와 우사미 에이지(宇佐見英治) 등이 창간한 문예지 『동시대(同時代)』에서 계속 발표했다.[49] 또한 동지에는 자코메티가 쓴 에세이도 동인들에 의해 번역되어 가장 먼저 게재되었다.[49]

4. 1. 야나이하라 이사쿠와의 교류



1950년대 중반 프랑스 유학 시절 철학자 야나이하라 이사쿠(矢内原伊作)와 깊은 친분을 맺었고, 야나이하라를 모델로 작품을 제작했다.[49] 어떤 해에는 야나이하라에게 모델을 부탁하기 위해 일본에서 파리로 그를 불러들이기도 했다.[49]

야나이하라는 자코메티의 아틀리에에서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겼고, 야나이하라와 우사미 에이지(宇佐見英治) 등이 창간한 문예지 『동시대(同時代)』에서 계속 발표했다.[49] 또한 동지에는 자코메티가 쓴 에세이도 동인들에 의해 번역되어 가장 먼저 게재되었다.[49]

야나이하라 이사쿠가 저술한 책으로는 『자코메티 GIACOMETTI』, 『자코메티와 함께』, 증보판 『자코메티』, 『예술가와의 대화 부록・자코메티와 나』, 『완본 자코메티 수첩(Ⅰ・Ⅱ)』, 야나이하라 이사쿠 촬영・해설, 『앨범 자코메티』, 『자코메티와 함께한 나날 사진집』 등이 있다. 우사미 에이지는 『보는 사람 자코메티와 야나이하라』를 저술했다.

4. 2. 한국 내 소장 작품

5. 유산과 영향

기록에 따르면, 자코메티는 역사상 가장 비싼 조각상 두 점을 판매했다.

2000년 11월, 자코메티의 청동 조각상 ''그랑드 팜 드부 I(Grande Femme Debout I)''는 1,430만 달러에 팔렸다.[37] ''그랑드 팜 드부 II(Grande Femme Debout II)''는 2008년 5월 6일 뉴욕시 크리스티 경매에서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가 2,740만 달러에 구매했다.[38]

실물 크기의 남성 청동 조각상인 ''걷는 사람 I(L'Homme qui marche I)''는 가장 비싼 예술 작품 중 하나가 되었고, 당시 경매에서 팔린 가장 비싼 조각상이었다. 2010년 2월, 런던 소더비(Sotheby's)에서 6,500만 파운드(1억 430만 달러)에 팔렸다.[39][40] 큰 청동 흉상인 ''가느다란 큰 머리(Grande tête mince)''는 그로부터 석 달 후 5,330만 달러에 팔렸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람(L'Homme au doigt)'', 즉 ''포인팅 맨(Pointing Man)''은 2015년 5월 뉴욕시 크리스티의 "과거를 향한 미래" 경매에서 수수료 포함 1억 4,130만 달러(8,131만 4,455.32 파운드)에 팔렸다. 이 작품은 45년 동안 같은 개인 소장품에 있었다.[41] 현재까지 경매에서 팔린 가장 비싼 조각상이다.

BBC 프로그램 ''가짜인가 진짜인가(Fake or Fortune)''에 소개된 후, "바라보는 머리(Gazing Head)"라는 제목의 석고 조각상이 2019년 50만 파운드에 팔렸다.[42]

2021년 4월, 자코메티의 소형 청동 조각상인 누 드부 II(Nu debout II, 1953)가 일본 개인 소장품에서 80만 파운드(110만 달러)의 추정가에 비해 150만 파운드(200만 달러)에 팔렸다.[43]

자코메티는 페르 라셰즈 묘지(Père Lachaise Cemetery)에 있는 거르다 타로(Gerda Taro)의 묘비를 위한 조각상을 제작했습니다.[44]

2010년 7월 8일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열린 마이클 페피아트(Michael Peppiatt)의 강연에 따르면, 작가이자 극작가인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와 친분이 있던 자코메티는 1961년 파리에서 공연된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의 무대를 위해 나무 조형물을 제작했습니다.

자코메티와 그의 조각 작품 ''걷는 사람 I(L'Homme qui marche I)''는 이전 스위스 100프랑 지폐에 등장했습니다.[45]

2001년 그는 런던의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서 열린 ''세기를 그리다: 1900~2000년 101점의 초상화 걸작전(Painting the Century: 101 Portrait Masterpieces 1900–2000)'' 전시회에 참여했습니다.

자코메티의 조각 스타일은 1987년 제리 앤더슨(Gerry Anderson)이 감독한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oyal Bank of Scotland)의 ''구두(Shoes)'' 광고를 시작으로 다양한 금융 기관의 광고에 등장했습니다.[46][47]

2017년 영화 ''최후의 초상(Final Portrait)''은 전기 작가 제임스 로드와의 우정 이야기를 재구성한 작품이며, 자코메티 역은 제프리 러시(Geoffrey Rush)가 맡았습니다.

1998년 10월부터 발행된 스위스 제8차 지폐 100프랑 지폐에 그의 초상이 그려져 있었다. 지폐 뒷면에는 "걷는 남자"가 그려져 있었다.[49]

1950년대 중반 프랑스 유학 시절 철학자 야나이하라 이사쿠(矢内原伊作)와 깊은 친분을 맺었고, 야나이하라를 모델로 작품을 제작했다. 어떤 해에는 야나이하라에게 모델을 부탁하기 위해 일본에서 파리로 그를 불러들이기도 했다.

야나이하라는 자코메티의 아틀리에에서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겼고, 야나이하라와 우사미 에이지(宇佐見英治) 등이 창간한 문예지 『동시대(同時代)』에서 계속 발표했다. 또한 동지에는 자코메티가 쓴 에세이도 동인들에 의해 번역되어 가장 먼저 게재되었다.(그 기록들은 아래에 있다)

1965년에 다큐멘터리 영화 『알베르토 자코메티-본질을 응시하는 예술가(アルベルト・ジャコメッティ―本質を見つめる芸術家)』가 제작되었다(90분, DVD・나우온 미디어, 2007년)
2017년, 제프리 러시(ジェフリー・ラッシュ) 주연으로 영화 『자코메티 최후의 초상(ジャコメッティ 最後の肖像)』이 영국에서 제작되었다. 일본에서는 2018년에 공개되었다(스탠리 투치(スタンリー・トゥッチ) 감독, 90분, DVD・포니캐니언)

5. 1. 전시

자코메티의 작품은 애틀랜타 고 미술관(1970), 파리 퐁피두센터(2007~2008),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업실: 알베르토와 아네트 자코메티 재단 소장품"(2008), 로테르담 쿤스탈(2008), 바젤 베이엘러 재단(2009), 부에노스아이레스(2012), 함부르크 쿤스트할레(2013), 이스탄불 페라 미술관(2015), 런던 테이트 모던(2017),[27] 밴쿠버 미술관 "알베르토 자코메티: 시간을 가로지르는 선"(2019), 더블린 아일랜드 국립미술관(2022)[28][29][30] 등 여러 개인전에서 전시되었다.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은 2015년 10월 13일부터 2016년 1월 10일까지 작가 사후 50주년을 기념하여 자코메티 작품 첫 개인전인 "순수한 존재(Pure Presence)"를 개최하여 5성급의 찬사를 받았다.[31][32] 2019년 4월부터는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Prado Museum)에서 자코메티를 조명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1998년 10월부터 발행된 스위스 제8차 지폐 100프랑 지폐에는 그의 초상이, 지폐 뒷면에는 "걷는 남자"가 그려져 있었다.[49]

1950년대 중반 프랑스 유학 시절 철학자 야나이하라 이사쿠(矢内原伊作)와 깊은 친분을 맺었고, 야나이하라를 모델로 작품을 제작했다. 야나이하라는 자코메티의 아틀리에에서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겼고, 야나이하라와 우사미 에이지(宇佐見英治) 등이 창간한 문예지 『동시대(同時代)』에서 계속 발표했다. 또한 동지에는 자코메티가 쓴 에세이도 동인들에 의해 번역되어 가장 먼저 게재되었다.

1965년에 다큐멘터리 영화 『알베르토 자코메티-본질을 응시하는 예술가(アルベルト・ジャコメッティ―本質を見つめる芸術家)』가 제작되었고(90분, DVD・나우온 미디어, 2007년), 2017년에는 제프리 러시(ジェフリー・ラッシュ) 주연으로 영화 『자코메티 최후의 초상(ジャコメッティ 最後の肖像)』이 영국에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2018년에 일본에서 공개되었다(스탠리 투치(スタンリー・トゥッチ) 감독, 90분, DVD・포니캐니언).

5. 2. 공공 컬렉션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은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앨브라이트녹스 미술관(버펄로), 시카고 미술관, 볼티모어 미술관, 베히틀러 현대미술관(샬럿), 베르그루엔 미술관, 보테로 미술관(보고타), 분트너 미술관, 카네기 미술관(피츠버그), 디트로이트 미술관, 베이엘러 재단, 허시혼 미술관 및 조각 정원, J. 폴 게티 센터, 존슨 미술관, 취리히 미술관, 바젤 미술관, 리움, 삼성미술관(대한민국)[33],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미니애폴리스 예술 연구소, 뉴욕 현대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국립 미술관, 캐나다 국립 미술관, 노스캐롤라이나 미술관(롤리)[34], 세인즈베리 시각예술 센터, 스코츠데일 현대미술관,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테이트, 테헤란 현대미술관, 미시간 대학교 미술관, 와즈워스 애서니엄, 워커 아트 센터, 밴쿠버 미술관[35], 예일대학교 미술관(뉴헤이븐) 등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1998년 10월부터 발행된 스위스 제8차 지폐 100프랑 지폐에는 그의 초상이, 뒷면에는 "걷는 남자"가 그려져 있었다.[49]

5. 3. 예술 재단

알베르토와 아네트 자코메티 재단(Fondation Alberto et Annette Giacometti)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미망인 아네트로부터 유증을 받아 약 5,000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전시회와 장기 대여를 통해 전 세계에 자주 전시하고 있다. 공익 재단인 이 재단은 2003년에 설립되었으며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을 홍보, 보급, 보존 및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965년 취리히에 설립된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Alberto-Giacometti-Stiftung)[36]은 피츠버그의 실업가 G. 데이비드 톰슨 소장품에서 인수한 소규모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1998년 10월부터 발행된 스위스 제8차 지폐 100프랑 지폐에 그의 초상이 그려져 있었다. 지폐 뒷면에는 "걷는 남자"가 그려져 있었다.[49]

참조

[1] 사전 Giacometti, Alberto http://www.lexico.co[...] Oxford University Press
[2] 사전 Giacometti 2019-07-28
[3] 웹사이트 Giacometti https://www.collinsd[...] HarperCollins 2019-07-28
[4] 사전 Giacometti 2019-07-28
[5] 웹사이트 Alberto Giacometti https://cosmopolis.c[...] 2001-09-08
[6] 서적 Fondation Beyeler. The Collection. https://www.worldcat[...] Fondation Beyeler, Riehen / Basel
[7] 서적 Wie aus weiter Ferne. Konstanten im Werk Giacomettis
[8] 서적 Exhibition of Sculptures, Paintings, Drawings Pierre Matisse Gallery 1948
[9] 서적 Lebenschronik
[10] 서적 Die Malerei
[11] 웹사이트 Alberto Giacometti | Swiss sculptor and painter | Britannica https://www.britanni[...]
[12] 서적 Von Stampa nach Zürich. Der Staatsrechtler Zaccaria Giacometti, sein Leben und Werk und seine Bergeller Künstlerfamilie 2014
[13] 서적 Out of the Cage: The Art of Isabel Rawsthorne https://www.francis-[...] The Estate of Francis Bacon Publishing 2021-02
[14] 뉴스 Real Women Have Curves – The New York Times https://www.nytimes.[...] 2005-11-20
[15] 웹사이트 Fondation Giacometti – TRIBUTE TO ANNETTE GIACOMETTI http://www.fondation[...]
[16] 웹사이트 Designer Ingrid Donat Opens Her Art-Filled Home in Paris https://galeriemagaz[...] 2023-05-23
[17] 웹사이트 'Seated Man', Alberto Giacometti, 1949 https://www.tate.org[...]
[18] 서적 Giacometti: A Biography Farrar, Straus and Giroux 1986
[19] 웹사이트 Conviction Upheld Against former French FM in Giacometti Fraud http://www.artinfo.c[...] 2007-05-10
[20] 웹사이트 Metropolitan Museum of Art http://www.metmuseum[...]
[21] 보도자료 Alberto Giacometti http://www.moma.org/[...] The Museum of Modern Art, in collaboration with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22] 웹사이트 GIACOMETTI ET LES ÉTRUSQUES - Pinacothèque de Paris https://www.pinacoth[...]
[23] 웹사이트 On the edge of madness: the terrors and genius of Alberto Giacometti https://www.theguard[...] 2017-04-21
[24] 웹사이트 ALBERTO GIACOMETTI FONDS HÉLÈNE & EDOUARD LECLERC https://www.fondatio[...]
[25] 웹사이트 Walking Man https://www.aaronart[...]
[26] 웹사이트 Walking man II https://arthive.com/[...]
[27] 웹사이트 "Alberto Giacometti – press release https://www.tate.org[...]
[28] 웹사이트 Alberto Giacometti: A line through time: June 16, 2019 – September 29, 2019 http://vanartgallery[...]
[29] 뉴스 Giacometti at the National Gallery is a must-see https://www.irishexa[...] 2022-04-16
[30] 뉴스 All You Need To Know About The New Giacometti Exhibition https://thegloss.ie/[...] 2022-04-08
[31] 뉴스 Giacometti: Pure Presence review – the most profound, universal art of the past 75 years https://www.theguard[...] 2015-10-13
[32] 뉴스 Giacometti: Pure Presence, exhibition review: Profound portrait of the artist's progress https://www.standard[...] 2015-10-13
[33] 웹사이트 Exhibition http://leeum.samsung[...] leeum.samsungfoundation.org
[34] 웹사이트 Artist: Alberto Giacometti – North Carolina Museum of Art https://ncartmuseum.[...]
[35] 웹사이트 ALBERTO GIACOMETTI: A LINE THROUGH TIME https://www.vanartga[...] 2019
[36] 웹사이트 Alberto Giacometti Stiftung: root https://www.giacomet[...] 2019-09-16
[37] 뉴스 Art record Picasso painting goes for £39m at auction https://www.theguard[...] 2000-11-10
[38] 웹사이트 Afp.google.com, Monet fetches record price at New York auction http://afp.google.co[...] 2019-09-16
[39] 뉴스 Sculpture fetches £65m at auction http://news.bbc.co.u[...] 2010-02-05
[40] 웹사이트 Alberto Giacometti's Walking Man I Sells for a Record-Breaking $104,327,006 at Sotheby's http://artdaily.com/[...] 2019-09-16
[41] 뉴스 Two Artworks Top $100 Million Each at Christie's Sale (Artsbeat blog) http://artsbeat.blog[...] 2015-05-11
[42] 뉴스 'Worthless' sculpture from BBC's Fake or Fortune proves to be authentic Giacometti worth more than £500,000 https://www.telegrap[...] 2019-08-23
[43] 웹사이트 $34.2 M. Phillips London Sale Brings Tunji Adeniyi-Jones Record and Air of Optimism https://www.artnews.[...] 2021-04-15
[44] 서적 Robert Capa, the definitive collection Phaidon press 2001
[45] 웹사이트 Schweizer Nationalbank http://www.snb.ch/de[...] 2019-09-16
[46] 웹사이트 BBC – h2g2 – 'Shoes' – the Royal Bank of Scotland Advert https://www.bbc.co.u[...] 2023-12-16
[47] 간행물 Readings in Popular Culture: trivial pursuits? Macmillan 1990
[48] 서적 パリの美術館で美を学ぶ ルーブルから南仏まで 光文社
[49] 웹사이트 紙幣にも登用!ジャコメッティの大回顧展 http://otona-stylema[...] 講談社 2017-06-14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