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델하미드 아바우드
1. 개요
압델하미드 아바우드는 198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난 모로코계 벨기에인으로, 2015년 11월 파리 테러의 주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벨기에에서 성장하여 소년 시절 문제 행동을 보였으며, 2013년 ISIL에 가담하여 시리아 내전에 참전했다. 유럽 내 테러를 계획하고 실행한 혐의로 여러 차례 연루되었으며,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이후 생드니에서 프랑스 경찰의 급습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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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압델하미드 아바우드 |
|---|---|
| 다른 이름 | 압델-하미드 아부 우드 |
| 출생일 | 1987년 4월 8일 |
| 출생지 | 벨기에, 앤더레흐트 |
| 사망일 | 2015년 11월 18일 |
| 사망지 | 프랑스, 센-생-드니, 생-드니 |
| 사망 원인 | 총상 |
| 국적 | 벨기에 모로코 |
| 알려진 이유 | 브뤼셀 이슬람 국가 테러 조직 2015년 파리 테러 |
| 소속 | 이슬람 국가 |
|---|---|
| 참전 전투 | 시리아 내전 (2014년–2015년) |
| 별칭 | 아부 우마르 앗수시 (Abu Umar as-Susi) 벨기에의 아부 우마르 (Abu Umar al-Baljiki) |
| 직업 | 테러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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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살인자 -
이본 드 리뉴
이본 드 리뉴는 1928년부터 1936년까지 활동한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올림픽에서는 6위와 18위를 기록했고, 세계 선수권 대회와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도 상위권에 진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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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먼윙스 9525편 추락 사고
저먼윙스 9525편 추락 사고는 2015년 3월 24일, 바르셀로나에서 뒤셀도르프로 향하던 저먼윙스 소속 에어버스 A320-211 항공기가 프랑스 알프스 산맥에 추락하여 탑승자 150명 전원이 사망했으며, 조사 결과 부기장의 고의적인 행위에 의한 추락으로 밝혀진 사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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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파리 테러
2015년 11월 파리 테러는 이슬람 국가(IS)가 배후를 자처한, 스타드 드 프랑스 인근 자살 폭탄 테러, 파리 시내 총격 및 인질극으로 최소 130명이 사망하고 352명 이상이 부상당한 일련의 테러 공격으로, 프랑스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제적인 테러 대응 강화를 촉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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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브뤼셀 폭탄 테러
2016년 3월 22일 벨기에 브뤼셀 공항과 말베이크 지하철역에서 발생한 연쇄 폭탄 테러로 최소 35명이 사망하고 300명 이상이 부상당했으며, 이슬람 국가(IS)는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며 벨기에의 이슬람 국가 격퇴전 참여에 대한 보복이라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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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 압데슬람
살라 압데슬람은 1989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2015년 파리 테러에 연루되어 테러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과거 강도 미수 혐의와 마약 거래에 연루되었고, 파리 테러 당시 자살 조끼를 착용했으나 실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 내력
압델하미드 아바우드는 모로코계 벨기에인으로, 신트얀스몰렌베이크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6남매 중 한 명이었으며, 그의 아버지 오마르는 아가디르 출신으로 1975년 모로코에서 벨기에로 이주하였다.
2.1. 성장 배경
아바우드는 1987년 4월 8일 벨기에 브뤼셀 안데를레흐트에서 태어났다. 1975년 모로코에서 벨기에로 이민 온 아버지 오마르 아바우드는 광산업과 가게 점원으로 일했다.
아바우드는 브뤼셀 몰렌베크 생장에서 성장했는데, 이 지역은 "급진적인 살라피 이데올로기가 일부 젊은 무슬림들 사이에서 번성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위클에 있는 명문 사립학교인 Collège Saint-Pierre (Uccle)프랑스어에 다녔으나, 학교 폭력, 절도, 교사에 대한 반항 등 문제 행동으로 1년 만에 퇴학당했다. 2015년 기사에 따르면, 어린 시절 친구들은 아바우드가 십 대 시절에 "많은 대마초"를 피웠다고 주장했다.
2.2. 범죄 경력
아바우드는 모로코계 벨기에인으로 여러 범죄 경력을 가지고 있다. 1999년 이클의 명문 중학교인 콜레주 생 피에르 (:fr:Collège Saint-Pierre (Uccle))에 진학했으나, 학교 폭력, 절도, 교사에 대한 반항 등 문제 행동으로 1년 만에 퇴학당했다. 이 시기에 불량 그룹에 들어가거나, 후에 파리 연쇄 테러 사건의 공범 중 한 명이 되는, 근처에 살던 프랑스인 남성과 알게 되었다. 2010년에는 몇몇 동료와 함께 경범죄를 저질러 생질의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2.3. ISIL 가담
2013년, 아바우드는 바샤르 알 아사드에 대항하는 전투에서 ISIL 내 알바타르 여단(알-바타르 부대)에 가입했다. 그해 말, 13세였던 동생 유네스를 시리아로 데려가 ISIL에 합류시켰으며, 이로 인해 미성년자 납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14년, 독립 언론인이 시리아-터키 국경에서 입수한 영상에는 아바우드가 피 묻은 시체를 트럭으로 옮기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는 "전에는 제트 스키, 오토바이, 쿼드 바이크, 모로코 휴가를 위한 선물로 가득 찬 큰 트레일러를 끌었습니다. 이제, 신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라, 우리는 우리와 싸우는 배교자와 불신자들을 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흐레이탄에서 활동하며 "불신자들의 피를 보는 것은 좋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2014년 1월, 아바우드는 벨기에 유대인 박물관 총격 사건의 범인인 메디 네무셰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15년 7월, 베르비에 급습 이후 테러 조직 혐의로 벨기에 법원에서 궐석 재판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ISIL의 잡지 다비크와의 인터뷰에서 아바우드는 서방 세계를 '십자군'으로 지칭하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3. 테러 활동
아바우드는 유럽에서 테러 활동을 권유한 혐의로 국제 수배를 받는 등 사건 이전부터 알려진 인물이었다. 2015년 11월 13일, 아바우드와 다른 테러리스트들은 2015년 11월 파리 테러를 일으켰다. 아바우드의 지시에 따라 테러범들은 AK-47 소총과 자폭용 조끼를 사용하여 파리의 여러 곳을 습격하여 129명이 사망하고 3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사건 후 아바우드는 생드니의 아파트를 은신처로 사용했으나, 2015년 11월 18일 프랑스 경찰 특수 부대의 급습과 총격전 끝에 사망했다.
3.1. 유럽 내 테러 연루
아바우드는 유럽에서 테러 활동을 권유한 혐의로 국제 수배를 받는 등 사건 이전부터 알려진 인물이었다. 2015년 1월, 벨기에 베르비에에서 테러 조직을 조직하고 자금을 지원한 혐의로 2015년 7월 벨기에 법원에서 결석 재판으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2015년 봄 이후 프랑스에서 발생한 6건의 테러 시도 중 4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에 발생한 브뤼셀 유대인 박물관 습격 사건의 범인과도 연락을 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3.2.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아바우드는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이전부터 유럽에서 테러 활동을 권유하여 국제 수배를 받는 등 알려진 인물이었다. 2015년 11월 13일, 아바우드는 다른 테러리스트들과 함께 파리 동시다발 테러를 일으켰다. 아바우드의 지시에 따라 테러범들은 AK-47 소총과 자폭용 조끼를 사용하여 파리의 여러 곳을 습격하여 129명이 사망하고 300명 이상이 부상했다.
사건 후 아바우드는 생드니의 아파트를 은신처로 사용했다. 그러나 2015년 11월 18일 프랑스 경찰 특수 부대가 아파트를 급습하여 총격전 끝에 아바우드는 사망했다.
프랑스 내무부 장관 베르나르 카즈뇌브에 따르면, 아바우드는 파리 테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2015년 봄 이후 좌절된 6건의 테러 공격 중 4건에 관여했다. 또한 프랑스 검찰은 2015년 11월 24일 아바우드가 파리 수도권의 주요 상업 지구인 라데팡스에서 또 다른 공격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3.3. 사망
아바우드는 2015년 11월 13일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이후 생드니의 아파트를 은신처로 사용했다. 그러나 2015년 11월 18일 프랑스 경찰 특수 부대가 아파트를 포위하였고, 총격전 끝에 사망했다.
경찰은 전화 감청 중 아바우드의 측근인 아스나 아이트 불라센을 추적하여 생드니의 아파트로 갔고, 11월 18일 오전 4시 20분에 급습 작전이 시작되었다.
검찰은 아바우드의 시신이 급습 대상이 된 아파트에서 발견되었으며, 지문 샘플을 사용하여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시신은 수류탄 폭발로 인한 파편과 총알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아바우드의 지문은 테러에 사용 후 버려진 차에서 발견된 AK-47 소총에서도 발견되었다.
아바우드의 아버지는 변호사를 통해 CNN의 취재에 응해, 아바우드를 사이코패스나 악마라고 생각했으며, "죽어서 안심했다"라고 언급했다.
4. 인물 및 평가
주변 사람들은 아바우드를 "어디에나 있을 법한 청년"이자 "항상 웃는 얼굴에 분위기 메이커" 같은 성격으로 묘사했다. 어린 시절에는 축구를 좋아했다. 콜레주 생 피에르 중학교 동창에 따르면, 아바우드는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거나 동급생의 지갑에서 돈을 훔치는 등 문제 행동을 일삼는 밉살스러운 학생이었다.
이슬람 국가(IS) 가담 이후, 아바우드는 잔혹한 테러리스트로 변모하여 서방 세계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아바우드의 아버지는 아들을 사이코패스이자 악마라고 칭하며, 그의 죽음에 안도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