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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로스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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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앙겔로스 왕조는 12세기 비잔티움 제국의 귀족 가문으로, 알렉시오스 1세 황제의 딸 테오도라 콤니나와 결혼한 콘스탄티노스 앙겔로스의 후손들을 통해 성립되었다. 1185년 이사키오스 2세가 쿠데타로 황위에 오르면서 앙겔로스 왕조가 시작되었으며, 이사키오스 2세, 알렉시오스 3세, 알렉시오스 4세, 알렉시오스 5세가 황제로 통치했다. 1204년 제4차 십자군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고 라틴 제국이 세워지면서 멸망했다. 앙겔로스 왕조의 후손들은 에페이로스, 테살로니키, 테살리아 등지에서 독립 세력을 유지하며 비잔티움 제국의 계승을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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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로스 왕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유형황조
국가동로마 제국
에피로스 전제공국
테살로니카 제국
다른 이름앙겔리드 왕조
창시자콘스탄티누스 앙겔로스
첫 번째 황제이사키오스 2세 앙겔로스
마지막 통치자 (동로마 제국)알렉시오스 4세 앙겔로스
마지막 통치자 (에피로스 전제공국)토마스 1세 콤네노스 두카스
마지막 통치자 (테살리아)요안니스 2세 앙겔로스 두카스
설립 연도11세기
황조 시작1185년
폐지 연도 (동로마 제국)1204년
폐지 연도 (에피로스 전제공국)1318년
이름
그리스어Ἄγγελος
그리스어 (고대)Ἄγγελοι
그리스어 (여성형)Ἀγγελίνα
그리스어 (콤네노스 두카스)Κομνηνοδούκας
통치 기간
동로마 제국1185년 - 1204년
에피로스 전제공국약 1224년 - 1318년

2. 앙겔로스 왕조의 성립 배경

앙겔로스 가문은 비잔티움 제국의 귀족 가문이었으나, 12세기 이전에는 그 혈통이 특별히 높게 평가받지 못했다. 가문의 시조는 소아시아 필라델피아(오늘날의 알라셰히르) 출신의 콘스탄티노스 앙겔로스이다. 이 가문의 성씨는 '천사' 또는 '사자'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메소포타미아 상부의 안겔 지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12세기 역사가 요한네스 조나라스에 따르면, 콘스탄티노스는 용감하고 능숙하며 매우 잘생겼지만, 출신은 미천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스는 알렉시오스 1세 콤니노스 황제의 딸 테오도라 콤니나와 결혼하여 황실의 인척이 되었고, 세바스토히페르타토스 칭호를 받았다. 콘스탄티노스와 테오도라 사이에는 일곱 자녀가 있었으며, 그의 아들들을 통해 앙겔로스 왕조가 시작되었다.

3. 앙겔로스 왕조의 황제들

앙겔로스 왕조의 황제들은 다음과 같다.


  • 이사키오스 2세 (1156년 ~ 1204년, 재위: 1185년 ~ 1195년, 1203년 ~ 1204년): 알렉시오스 1세의 증손자. 형 알렉시오스 3세에게 폐위되어 실명당했다가, 나중에 복위되었다.
  • 알렉시오스 3세 (1153년 ~ 1211년, 재위: 1195년 ~ 1203년): 이사키오스 2세의 형. 제4차 십자군에 의해 폐위되었다.
  • 알렉시오스 4세 (1182년 ~ 1204년, 재위: 1203년 ~ 1204년): 이사키오스 2세의 아들. 아버지와 공동 황제였으나, 알렉시오스 5세 무르주플루스에게 폐위되어 살해당했다.
  • 알렉시오스 5세 무르주플루스 (1140년 ~ 1204년, 재위: 1204년): 알렉시오스 3세의 사위로 제위를 찬탈했다.


앙겔로스 왕조는 19년(총 5대)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존속했는데, 이는 코므네노스 왕조의 부정적인 유산(재정 및 정치적 붕괴)을 물려받았고, 역대 황제들이 모두 무능하여 제국의 위기를 극복할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왕족 내부의 내분은 황제 권위를 추락시키고 멸망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었다. 이사키오스 2세는 제국 재정 재건을 위해 관직을 매매하여 횡령과 부정이 만연했고, 알렉시오스 3세는 어리석은 폭군이었다. 알렉시오스 4세는 어느 정도 능력이 있었지만 너무 어렸고, 제국은 이미 붕괴 직전이었다.

3. 1. 이사키오스 2세 (1185년 ~ 1195년, 1203년 ~ 1204년)

콤네누스 왕조의 안드로니코스 1세 콤네누스는 강압적인 정치로 귀족과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 1185년, 안드로니코스 1세의 정치에 반발한 귀족들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들은 이사키오스 2세 앙겔로스를 황제로 추대하고 반란을 일으켜 안드로니코스 1세를 처형했다.[1] 이사키오스 2세는 정치 완화를 추구했으나, 이는 오히려 정치적 이완과 제국 재정의 파탄을 초래했다. 대외적으로는 불가리아 제국의 독립과 키프로스 섬 상실 등 실정을 거듭했다. 1190년 세르비아스테판 네마냐를 상대로 승리하기도 하였으나, 전반적으로 제국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1195년, 이사키오스 2세는 동생 알렉시오스 3세 앙겔로스에게 폐위되어 유폐되었다.[1] 1203년, 이사키오스 2세의 아들 알렉시오스 4세 앙겔로스제4차 십자군을 끌어들여 아버지를 복위시키는 데 성공했다.[1] 1203년 8월 1일, 8년간의 감금 끝에 실명한 이사키오스 2세가 아들 알렉시오스 4세와 함께 공동 황제로 즉위했고, 알렉시오스 4세가 실질적인 권력을 쥐었다.[2] 그러나 1204년 1월, 이들 부자는 알렉시오스 5세 두카스에게 폐위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살해되었다.

3. 2. 알렉시오스 3세 (1195년 ~ 1203년)

알렉시오스 3세 앙겔로스이사키오스 2세 앙겔로스의 형으로, 1195년 이사키오스 2세를 폐위시키고 황제가 되었다.[1] 알렉시오스 3세는 형보다 더 어리석은 황제로, 제국 재정 재건을 위해 역대 황제의 묘를 훼손하여 금품을 강탈하고, 베네치아 공화국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등 폭정을 일삼았다.[2]

1203년, 이사키오스 2세의 아들인 알렉시오스 4세 앙겔로스십자군과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해 오자, 알렉시오스 3세는 소아시아로 망명하였다.[2]

3. 3. 알렉시오스 4세 (1203년 ~ 1204년)

알렉시오스 4세이사키오스 2세의 아들로, 제4차 십자군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와 함께 공동 황제로 복위하였다. 그러나 십자군에게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면서 큰 반발을 샀다.[1] 1204년, 알렉시오스 5세에게 폐위되어 살해당했다.[2]

3. 4. 알렉시오스 5세 (1204년)

알렉시오스 5세는 이사키오스 2세와 알렉시오스 4세를 살해하고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제4차 십자군은 알렉시오스 5세에게 자금을 지불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다시 공격하여 점령하고 약탈했으며, 알렉시오스 5세를 탑에서 떨어뜨려 처형했다.[2]

4. 앙겔로스 왕조의 멸망과 그 이후

알렉시오스 5세가 제4차 십자군에 의해 살해된 후,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가 황제로 즉위하여 저항했으나, 결국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으로 라틴 제국이 세워지면서 앙겔로스 왕조는 멸망했다. 앙겔로스 왕조의 일부 후손들은 에페이로스 데스포타국, 테살로니키 제국 등지에서 독립 세력을 유지하며 동로마 제국의 계승을 주장했다.

앙겔로스 왕조가 19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존속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전 왕조인 콤니노스 왕조의 부정적인 유산(제국의 재정 및 정치적 붕괴)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둘째, 역대 황제들이 모두 무능하여 제국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이사키오스 2세는 재정 재건을 위해 관직을 매매했고, 이는 횡령과 부정부패, 관료 조직 해체로 이어졌다. 알렉시오스 3세는 어리석은 폭군이었다. 알렉시오스 4세는 어느 정도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도 있지만, 너무 어렸고 제국이 붕괴 직전이었기에 멸망은 불가피했다. 무엇보다 앙겔로스 왕조의 멸망을 초래한 것은 왕족 내부의 내분이었으며, 이는 황제 권위 추락과 멸망으로 이어졌다.

4. 1. 에페이로스 데스포타국 (1205년 ~ 1318년)

미하일 1세 콤니노스 두카스가 에페이로스 데스포타국을 건국했고, 콤니노스 두카스 가문이 통치했다. 수도는 아르타였다. 테오도로스 콤니노스 두카스는 테살로니키를 점령하고 테살로니키 제국을 세웠으나, 클로코트니차 전투에서 패배한 후 쇠퇴했다. 1318년 니콜라스 오르시니가 토마스 1세 콤니노스 두카스를 살해하면서 멸망했다.

4. 2. 테살리아의 앙겔로스 가문 (13세기 ~ 14세기)

요안니스 1세 두카스는 테살리아를 통치했다.[1] 1318년 이후 카탈루냐 대대와 자치 영주들에게 영토를 빼앗겼다.[1] 1394년 오스만 제국이 테살리아를 정복한 후, 앙겔로이 필란드로페노이 가문은 세르비아로 피신했다.[1]

5. 앙겔로스 왕조 가계도



이사키오스 2세 안게로스(오른쪽)와 성 미카엘 대천사에 의해 관을 쓴 성모 마리아(왼쪽)를 묘사한 아스프론 트라키(''Aspron trachy'')


앙겔로스 가문의 가계도는 위와 같다. 이 가계도는 앙겔로스 왕조의 시조인 콘스탄티노스 앙겔로스와 테오도라 콤네나의 결혼에서 시작하여, 이사키오스 2세, 알렉시오스 3세, 알렉시오스 4세 등 앙겔로스 왕조의 주요 황제들과 그들의 혼인 관계를 보여준다.

참조

[1] 웹사이트 Isaac II Angelus Britannica https://www.britanni[...] 2023-10-18
[2] 웹사이트 Alexius III Angelus Britannica https://www.britanni[...] 2023-10-18
[3] 웹사이트 Despotate of Epirus Britannica https://www.britanni[...]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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