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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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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마토는 일본의 지명으로, 어원에 대한 여러 설이 존재한다. 원래는 나라 분지 남동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야마토 왕권의 확장과 함께 킨키 지방과 일본 열도 전체를 아우르는 지칭으로 사용되었다. 표기는 시대에 따라 '왜(倭)', '대왜(大倭)', '대화(大和)' 등으로 변화했으며, 현대에는 '야마토(大和)'가 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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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지도 정보
기본 정보
명칭야마토
다른 이름
로마자 표기Yamato
의미큰 화(大和), 즉 일본이라는 뜻의 옛 이름
역사
사용 시기고대부터
특징일본을 지칭하는 옛 이름이자 칭호
용례야마토 시대
야마토 왕권
야마토 민족
언어
언어적 의미일본을 뜻하는 고유어
사용 언어일본어
관련 문화
관련 용어왜구
왜국(倭國)
야마토 민족(大和民族)
야마토 정권(大和政權)
기타일본 고유의 것을 지칭할 때 쓰이기도 함
일본의 문화, 정신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

2. 어원

"야마토"라는 말의 어원에는 여러 설이 있다.


  • 산기슭이라는 설 (왜(倭) 참조)
  • 산(山|야마일본어)에 둘러싸인 지역이기 때문이라는 설
  • 야마토 왕권이 원래 '야마토' 지역에서 발흥했기 때문이라는 설
  • "야마토"는 원래 산문(山門)이며 산에 신이 머문다는 자연신앙의 거점이었던 지명이 국명으로 바뀌었다는 설[15]
  • "야마토"가 원래 산적(山跡)이라는 설[16]
  • 미와산 동쪽 기슭, 즉 산동(山東|야마토일본어)을 중심으로 야마토 왕권이 발전했기 때문이라는 설
  • 야마타이국의 이름이 변형된 것이라는 설
  • "야마토"는 원래 "평화로운 곳"을 의미하는 "야와토"(やはと, やわと)이며, "시키시마노 야와토"가 와전되어 "야마토"가 되었고, 이후 "시키시마"는 "야마토"의 침사(枕詞)가 되었다는 설[17]
  • 아이누어에서 "야"는 접두어, "마토"는 찬칭(讃称)으로, 고귀함을 의미하는 "무치(ムチ)"나 상서로움을 의미하는 "마츠(ミツ)" 등과 어원이 같다는 설
  • 히브리어로 "야 우마토" = "신의 백성"이라는 설 (일유동조론)


3. 범위의 변천

야마토는 야마토 왕권의 세력 확장에 따라 그 범위가 변화했다. 처음에는 야마토 왕권의 근거지였던 나라 분지 남동 지역을 야마토라고 불렀다. 이후 야마토 왕권이 성장하여 킨키, 가와치 지방까지 지배하게 되면서 이 지역들 또한 야마토라고 불리게 되었다. 야마토 왕권은 야마토국을 설치하여 이 지역을 다스렸다.

나아가 야마토 왕권이 일본 열도 대부분(도호쿠 지방 남부에서 규슈 남부까지)을 지배하게 되면서, 일본 열도 전체를 통칭하여 야마토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에 따라 야마토는 일본 열도, 즉 일본국 전체를 가리키는 별칭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3. 1. 초기: 나라 분지 남동부

원래 야마토 왕권의 근거지였던 나라 분지의 남동 지역이 '''야마토(大和)'''라고 불렸다. 일본서기·고사기와 국조본기에는 신무 천황 시대에 토요타마히코노미코토의 후예인 시이네츠히코를 초대 왕으로 하여 왜국조가 설치되었다고 전해진다.

3. 2. 킨키, 기나이 지역

원래 야마토 왕권의 근거지였던 나라 분지의 남동 지역이 '''야마토(大和)'''라고 불렸다. 『일본서기·고사기』와 『국조본기』에는 신무 천황 시대에 토요타마히코노미코토의 후예인 시이네츠히코를 초대 왕으로 하여 '''왜국조'''가 설치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야마토 왕권이 나라 분지 일대와 가와치 지방까지 지배하게 되자 그 지역(후의 킨키・기나이)도 '''야마토'''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야마토 왕권의 근거지가 있던 나라 분지 주변을 범위로 하는 령제국을 야마토국으로 삼았다.

3. 3. 일본 열도 전체

원래 야마토 왕권의 근거지였던 나라 분지의 남동 지역이 '''야마토(大和)'''라고 불렸다. 『일본서기·고사기』와 『국조본기』에는 신무 천황 시대에 토요타마히코노미코토의 후예인 시이네츠히코를 초대 왕으로 하여 '''왜국조'''가 설치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야마토 왕권이 나라 분지 일대와 가와치 지방까지 지배하게 되자 그 지역(후의 킨키・기나이)도 '''야마토'''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야마토 왕권의 근거지가 있던 나라 분지 주변을 범위로 하는 령제국을 야마토국으로 삼았다. 나아가 야마토 왕권의 지배·압제가 일본 열도의 대부분(도호쿠 지방 남부에서 규슈 남부까지)에 이르게 되면서, 그것들을 통칭하여 '''야마토'''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일본 열도, 즉 일본국의 별칭으로 야마토가 사용되게 되었다.

4. 표기의 변천

고분시대에 한자 문화가 유입되면서 “야마토”라는 말에 “''''''”라는 글자가 쓰였다.[8] 아스카 시대에는 “대왜(大倭)”라는 표기가 주류가 되었는데, 이는 일본 열도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의 명칭이자 나라 지방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7세기 후반부터 701년까지 국호가 “일본”으로 정해졌고[9], 이때부터 일본을 “야마토”라고 읽었다는 견해가 있다.[10]

701년, 령제국의 명칭을 좋은 글자를 사용하여 두 글자로 통일하면서 “왜국(倭國)”을 “대왜국(大倭國)”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나라 시대 중기인 737년에는 다치바나 모로에 정권 하에서 “대왜국(大倭國)”을 “대양덕국(大養徳國)”으로 개칭했지만, 747년에 다시 “대왜국(大倭國)”으로 돌아갔다. 757년 다치바나 나라마로의 난 직후 “대왜국(大倭國)”은 “大和国(야마토국)”으로 변경되었고, 이때 처음으로 “大和(야마토)”라는 표기가 나타났다. 이후 “대왜(大倭)”와 “大和(야마토)”가 함께 쓰이다가 점차 “大和(야마토)”가 주로 사용되었다.

4. 1. 왜(倭)

고분시대 무렵 한자 문화가 유입되면서 "야마토"라는 말에 "''''''"라는 글자가 쓰이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일본 열도의 사람들과 정치 세력을 통틀어 "왜"라고 불렀지만[8], 고분 시대에 왜를 "야마토"라고 칭한 것은 "야마토" 세력이 일본 열도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어서 아스카 시대가 되면 "대왜(大倭)"라는 표기가 주류가 된다. 대왜는 일본 열도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의 명칭인 동시에, 나라 지방을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했다. 7세기 후반부터 701년(다이호 원년)까지의 기간에 국호가 "일본"으로 정해졌다고 전해지지만[9], 이때부터 일본을 "야마토"라고 음독했다는 견해가 있다.[10]

나라 분지를 가리키는 령제국의 명칭이, 미노(三野)가 미노, 오와리(尾治)가 오와리, 기(木)가 키이, 가모노(上毛野)가 코즈케, 타마루가와(珠流河)가 스루가, 도토미(遠淡海)가 토토미, 아와(粟)가 아와 등과 같이 좋은 글자를 사용하여 두 글자의 국명으로 통일된 것과 마찬가지로, 701년에는 "왜국(倭國)"을 "대왜국(大倭國)"으로 쓰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나라 시대 중기 737년(덴표 9년), 령제국의 "야마토"는 다치바나 모로에 정권 하에서 "대왜국(大倭國)"에서 "대양덕국(大養徳國)"으로 개칭되었지만, 모로에의 세력이 약해진 747년(덴표 19년)에는 다시 "대왜국(大倭國)"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757년(덴표호지 원년(8월 18일 개원)), 다치바나 나라마로의 난 직후에 "대왜국(大倭國)"에서 "大和国(야마토국)"으로 변경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처음으로 "大和(야마토)"라는 표기가 나타났다. 그 후, "대왜(大倭)"와 "大和(야마토)"가 병용되지만, 점차 "大和(야마토)"가 주류가 되었다.

4. 2. 대왜(大倭)

고분시대 무렵 한자 문화가 유입되면서 “야마토”라는 말에 “''''''”라는 글자가 쓰이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일본 열도의 사람들과 정치 세력을 통틀어 “왜”라고 불렀지만[8], 고분 시대에 왜를 “야마토”라고 칭한 것은 “야마토” 세력이 일본 열도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어서 아스카 시대가 되면 “대왜(大倭)”라는 표기가 주류가 된다. 대왜는 일본 열도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의 명칭인 동시에, 나라 지방을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했다. 7세기 후반부터 701년(다이호 원년)까지의 기간에 국호가 “일본”으로 정해졌다고 전해지지만[9], 이때부터 일본을 “야마토”라고 음독했다는 견해가 있다.[10]

나라 분지를 가리키는 령제국의 명칭이, 미노(三野)가 미노, 오와리(尾治)가 오와리, 기(木)가 키이, 가모노(上毛野)가 코즈케, 타마루가와(珠流河)가 스루가, 도토미(遠淡海)가 토토미, 아와(粟)가 아와 등과 같이 좋은 글자를 사용하여 두 글자의 국명으로 통일된 것과 마찬가지로, 701년에는 “왜국(倭國)”을 “대왜국(大倭國)”으로 쓰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나라 시대 중기 737년(덴표 9년), 령제국의 “야마토”는 다치바나 모로에 정권 하에서 “대왜국(大倭國)”에서 “대양덕국(大養徳國)”으로 개칭되었지만, 모로에의 세력이 약해진 747년(덴표 19년)에는 다시 “대왜국(大倭國)”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757년(덴표호지 원년(8월 18일 개원)), 다치바나 나라마로의 난 직후에 “대왜국(大倭國)”에서 “大和国(야마토국)”으로 변경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처음으로 “大和(야마토)”라는 표기가 나타났다. 그 후, “대왜(大倭)”와 “大和(야마토)”가 병용되지만, 점차 “大和(야마토)”가 주류가 되었다.

4. 3. 일본(日本)

고분시대 무렵 한자 문화가 유입되면서 “야마토”라는 말에 “''''''”라는 글자가 쓰이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일본 열도의 사람들과 정치 세력을 통틀어 “왜”라고 불렀지만[8], 고분 시대에 왜를 “야마토”라고 칭한 것은 “야마토” 세력이 일본 열도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어서 아스카 시대가 되면 “대왜(大倭)”라는 표기가 주류가 된다. 대왜는 일본 열도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의 명칭인 동시에, 나라 지방을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했다. 7세기 후반부터 701년(다이호 원년)까지의 기간에 국호가 “일본”으로 정해졌다고 전해지지만[9], 이때부터 일본을 “야마토”라고 음독했다는 견해가 있다.[10]

나라 시대 중기 737년(덴표 9년), 령제국의 “야마토”는 다치바나 모로에 정권 하에서 “대왜국(大倭國)”에서 “대양덕국(大養徳國)”으로 개칭되었지만, 모로에의 세력이 약해진 747년(덴표 19년)에는 다시 “대왜국(大倭國)”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757년(덴표호지 원년(8월 18일 개원)), 다치바나 나라마로의 난 직후에 “대왜국(大倭國)”에서 “大和国(야마토국)”으로 변경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처음으로 “大和(야마토)”라는 표기가 나타났다. 그 후, “대왜(大倭)”와 “大和(야마토)”가 병용되지만, 점차 “大和(야마토)”가 주류가 되었다.

4. 4. 대왜국(大倭國) → 대양덕국(大養徳國) → 대왜국(大倭國) → 대화국(大和国)

고분시대 무렵 한자 문화가 유입되면서 “야마토”라는 말에 “''''''”라는 글자가 쓰이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일본 열도의 사람들과 정치 세력을 통틀어 “왜”라고 불렀지만[8], 고분 시대에 왜를 “야마토”라고 칭한 것은 “야마토” 세력이 일본 열도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어서 아스카 시대가 되면 “대왜(大倭)”라는 표기가 주류가 된다. 대왜는 일본 열도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의 명칭인 동시에, 나라 지방을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했다. 7세기 후반부터 701년까지의 기간에 국호가 “일본”으로 정해졌다고 전해지지만[9], 이때부터 일본을 “야마토”라고 음독했다는 견해가 있다.[10]

나라 분지를 가리키는 령제국의 명칭이 미노(三野)가 미노, 오와리(尾治)가 오와리, 기(木)가 키이, 가모노(上毛野)가 코즈케, 타마루가와(珠流河)가 스루가, 도토미(遠淡海)가 토토미, 아와(粟)가 아와 등과 같이 좋은 글자를 사용하여 두 글자의 국명으로 통일된 것과 마찬가지로, 701년에는 “왜국(倭國)”을 “대왜국(大倭國)”으로 쓰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나라 시대 중기 737년 령제국의 “야마토”는 다치바나 모로에 정권 하에서 “대왜국(大倭國)”에서 “대양덕국(大養徳國)”으로 개칭되었지만, 모로에의 세력이 약해진 747년에는 다시 “대왜국(大倭國)”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757년 다치바나 나라마로의 난 직후에 “대왜국(大倭國)”에서 “大和国(야마토국)”으로 변경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처음으로 “大和(야마토)”라는 표기가 나타났다. 그 후, “대왜(大倭)”와 “大和(야마토)”가 병용되지만, 점차 “大和(야마토)”가 주류가 되었다.

4. 5. 大和(야마토)

고분시대 무렵 한자 문화가 유입되면서 "야마토"라는 말에 "''''''"라는 글자가 쓰이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일본 열도의 사람들과 정치 세력을 통틀어 "왜"라고 불렀지만[8], 고분 시대에 왜를 "야마토"라고 칭한 것은 "야마토" 세력이 일본 열도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어서 아스카 시대가 되면 "대왜(大倭)"라는 표기가 주류가 된다. 대왜는 일본 열도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의 명칭인 동시에, 나라 지방을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했다. 7세기 후반부터 701년(다이호 원년)까지의 기간에 국호가 "일본"으로 정해졌다고 전해지지만[9], 이때부터 일본을 "야마토"라고 음독했다는 견해가 있다.[10]

나라 분지를 가리키는 령제국의 명칭이, 미노(三野)가 미노, 오와리(尾治)가 오와리, 기(木)가 키이, 가모노(上毛野)가 코즈케, 타마루가와(珠流河)가 스루가, 도토미(遠淡海)가 토토미, 아와(粟)가 아와 등과 같이 좋은 글자를 사용하여 두 글자의 국명으로 통일된 것과 마찬가지로, 701년에는 "왜국(倭國)"을 "대왜국(大倭國)"으로 쓰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나라 시대 중기 737년(덴표 9년), 령제국의 "야마토"는 다치바나 모로에 정권 하에서 "대왜국(大倭國)"에서 "대양덕국(大養徳國)"으로 개칭되었지만, 모로에의 세력이 약해진 747년(덴표 19년)에는 다시 "대왜국(大倭國)"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757년(덴표호지 원년(8월 18일 개원)), 다치바나 나라마로의 난 직후에 "대왜국(大倭國)"에서 "大和国(야마토국)"으로 변경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처음으로 "大和(야마토)"라는 표기가 나타났다. 그 후, "대왜(大倭)"와 "大和(야마토)"가 병용되지만, 점차 "大和(야마토)"가 주류가 되었다.

5. 기타 표기

만엽가나에서의 음독은 '''밤나무(夜麻登)'''로도 표기되며, 고사기에서는 야마토토토히모모소히메(ヤマトトトヒモモソヒメ)의 한자 표기도 이 밤나무(夜麻登)이다.( 일본서기에서는 倭 한자로 야마토(ヤマト)로 읽고 있다).[1] 이 외에도 고사기에서는 '''산자리(山跡)'''로도 표기된다.[1] 일본서기에서는 '''들밤나무(野麻登)''', '''야마토(椰麼等)''', '''밤이끼(夜麻苔)''' 등으로도 표기되며, 만엽집에서는 '''산토(山常)''', '''야마토(也麻等)''', '''밤끝(夜末等)''', '''밤만등(夜万登)''', '''여덟 칸 자리(八間跡)''' 등의 표기가 보인다.[1]

일본서기 기록에 따르면, 신무동정 이전에 이 나라들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하여 “안쪽 나라(内つ国)”로 표기되었고, 야마토(大和) 성립 이전에는 “안쪽 나라(内つ国)”라고 불렸다.[2]

현대에 일본어 통화표에서 “야(や)”를 보낼 때 “'''야마토(大和)의 야(ヤ)'''”라고 한다.[3]

6. 현대

현대에 일본어 통화표에서 "야(や)"를 보낼 때 "'''야마토(大和)의 야(ヤ)'''"라고 한다.

참조

[1] 웹사이트 大和/倭(やまと)の意味 - goo国語辞書 https://dictionary.g[...] goo国語辞書 2019-11-15
[2] 서적 広辞苑 岩波書店 1983
[3] 웹사이트 国語辞書-大辞泉「やまと【大和/倭】」 http://dictionary.go[...]
[4] 웹사이트 国語辞書-大辞泉「おお‐やまと〔おほ‐〕【大倭/大日本】」 http://dictionary.go[...]
[5] 문서 賀茂真淵、本居宣長等が主張
[6] 문서 『釈日本紀』、『神皇正統記』より
[7] 서적 日本国号論
[8] 문서 『後漢書』倭伝、『魏志』倭人伝
[9] 문서 それまでの国号は倭もしくは大倭であった。
[10] 문서 『日本書紀』の神代巻第四段本文に「大日本」の語の訓読みは「日本、此を'''耶麻謄'''(やまと)と云ふ」とある。
[11] 웹인용 大和/倭(やまと)の意味 - goo国語辞書 https://dictionary.g[...] goo国語辞書 2019-11-15
[12] 서적 広辞苑 岩波書店 1983
[13] 웹사이트 国語辞書-大辞泉「やまと【大和/倭】」 http://dictionary.go[...]
[14] 웹사이트 国語辞書-大辞泉「おお‐やまと〔おほ‐〕【大倭/大日本】」 http://dictionary.go[...]
[15] 문서 賀茂真淵、本居宣長等が主張
[16] 문서 『釈日本紀』、『神皇正統記』より
[17] 서적 日本国号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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