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무 (전한)
1. 개요
양무는 전한 초기의 인물로, 낭중기장으로 유방을 따라 하규에서 봉기했다. 도위로서 양가를 공격하고 해하 전투에서 항우를 추격하여 그의 시신 일부를 얻었다. 항우의 시신을 수습한 공로로 다른 네 명과 함께 제후에 봉해졌으며, 오방후에 책봉되었다. 문제 12년에 사망하여 '장'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그의 아들 양거질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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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68년 사망 -
가의 (전한)
가의는 전한 초기의 정치가이자 문학가로, 문제의 중용을 받았으나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좌천되었으며, 유가 사상을 바탕으로 내외 정책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펼친 인물이다. -
기원전 168년 사망 -
증하
증하는 고제를 도와 항우를 격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기후에 봉해진 인물로, 팽성 전투에서 항우를 베고 고제를 서초 군의 추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다. -
전한의 귀족 -
장량
장량은 전국시대 말기부터 초한쟁패기를 거쳐 전한 초기에 활약한 한나라 귀족 출신 인물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우고 유후에 봉해진 뛰어난 지략가이자 책사이다. -
전한의 귀족 -
소하
소하는 전한 초기의 정치가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공을 세웠으며, 군수 보급, 내정 담당, 한신 천거, 승상으로서 국가 기틀을 다지는 데 헌신한 인물이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양무는 기원전 206년, 하규에서 낭중기장(郞中騎將)으로 고제를 따랐으며, 이후 도위로서 양하를 쳤다. 기원전 202년 해하 전투에 낭중으로 참전하여 항우를 추격, 오강에서 항우가 자결한 후 여마동, 양희, 여승 등과 함께 시신 일부를 얻어 공을 인정받았다. 기원전 199년 3월 신묘일에 오방후(吳房侯) 700호에 봉해졌으며, 기원전 168년(문제 12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장(莊)이라 하였고, 아들 양거질(楊去疾)이 작위를 계승했다.
2.2. 해하 전투와 항우의 죽음
기원전 202년, 낭중으로서 해하 전투에 참전하여 진나라 서초패왕 항우를 추격하였다. 오강에서 항우가 자결한 후, 여마동, 양희, 여승 등과 함께 항우의 시신 일부를 얻었다. 항우의 시체를 맞추어본 결과, 다섯 명이 모두 공을 인정받아 제후에 봉해졌다. 기원전 199년 3월 신묘일에 오방후(吳房侯) 700호에 봉해졌다.
2.3. 오방후 시절
기원전 199년 3월 신묘일에 오방후(吳房侯) 700호에 봉해졌다. 기원전 168년(문제 12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장(莊)이라 하였고, 아들 양거질(楊去疾)이 작위를 계승했다. 이 시호는 해하 전투에서 항우의 시체를 얻은 다섯 명이 공통으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