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 (명나라)
1. 개요
양원은 명나라의 장수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 조선에 파병되어 활약했다. 임진왜란 당시 부총병으로 평양성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벽제관 전투에서 이여송을 구원하는 등 활약했다. 정유재란 때는 요동 기병 3,000명을 이끌고 조선에 다시 참전하여 남원성 방비를 맡았으나, 남원성 전투에서 패배한 책임을 물어 처형되었다. 이후 평양 탈환의 공로로 조선에서 무렬묘에 영정이 봉안되었다. 남원성 전투 당시 일본군과 밀담을 나누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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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부총병 -
임경업
이괄의 난 진압과 병자호란 때 백마산성에서 청나라 군에 저항한 임경업은 명나라와 내통 의혹으로 김자점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후 영웅적인 면모로 전설과 설화의 주인공이 되었고 숙종 때 복권된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
명나라의 부총병 -
유정 (15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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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장군 -
오삼계
오삼계는 명나라 말 청나라 초의 무장으로, 명나라 멸망 후 청과 손잡고 이자성을 격파, 평서왕에 봉해졌으나 삼번의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인물로, 배신과 야망의 상징이자 진원원과의 러브스토리로도 알려져 있다. -
명나라의 장군 -
공유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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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사망 -
성혼
성혼은 조광조의 제자이자 이이와 도의를 맺고 이황을 사사한 조선 중기 문신으로, 사림파 서인에 속하여 정여립의 난과 임진왜란 시기에 활동했으며, 이황의 이기이원론을 지지하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
1598년 사망 -
이여송
이여송은 조선 출신 이주민 후손으로 명나라 장군이 되어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을 이끌고 평양성을 탈환하는 공을 세웠으나 소극적인 태도와 횡포에 대한 비판도 있어 역사적 평가가 엇갈린다.
2. 생애
양원(楊元)은 명나라의 장수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에 파병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여송의 부하로 평양성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벽제관 전투에서 이여송을 구출하기도 했다. 정유재란 때에는 마귀 휘하에서 남원성 방어를 맡았으나, 남원 전투에서 패배하고 처형되었다.
2.1. 임진왜란 시기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의 부총병이었다. 총병 이여송의 부하로서 2,000명의 지원군을 이끌고 좌협대장으로 약 11,000명을 지휘하여 평양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1593년 벽제관 전투에서는 이여송을 구출하는 등 활약하였다.
2.2. 정유재란 시기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요동 기병 3,000명을 이끌고 조선에 다시 파병되었다. 총병 마귀 휘하에 배속되어 1597년 음력 6월 18일 전라도 남원성에 부임하여 성 방어 강화를 담당했다. 1597년 음력 8월 13일 남원 전투가 발발, 일본군 좌군의 공격에 맞서 농성전을 벌였으나 고립무원 상태에 빠졌다. 1597년 음력 8월 15일 남원성이 함락되었다. 양원은 남원성을 탈출하였으나, 패전 책임을 물어 명군에 의해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