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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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개 처형은 대중 앞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행위로, 고대부터 근대에 걸쳐 다양한 국가와 문명에서 이루어졌다. 고대 로마에서는 콜로세움에서 시민들의 오락으로 활용되었으며,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대부터 공개 처형이 흔하게 시행되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잔혹한 처형 방식이 사용되었고, 근대에 들어서면서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공개 처형이 이루어졌다. 현재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폐지되었으나, 일부 이슬람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타인에 의해 수치심을 느끼는 상황이나 연예계에서 외모 비교를 통해 돋보이지 않는 경우를 '공개 처형'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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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형 - 교수형
교수형은 목에 밧줄을 매달아 사망에 이르게 하는 형벌로, 뇌허혈이나 연수 손상을 유발하며, 고통이 적은 사형 방법으로 여겨지지만 질식, 목 절단 등의 사고와 비인도적인 논란이 있어 사형 제도와 함께 감소하는 추세이다. - 사형 - 십자가형
십자가형은 고대 로마에서 사용된 사형 방식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공개 처형하는 잔혹한 형벌로, 주로 노예나 반란자에게 적용되었으며 질식이나 심부전 등으로 사망에 이르게 했다. - 형벌 - 사형
사형은 국가가 범죄자에게 내리는 가장 오래된 최고 형벌로, 존폐 여부와 집행 방법을 둘러싸고 범죄 예방 효과, 사법 오류 가능성, 인권 침해 등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 형벌 - 과료
과료는 한국과 일본의 재산형으로 벌금보다 가벼운 형벌이며, 한국에서는 2천 원 이상 5만 원 미만, 일본에서는 1천 엔 이상 1만 엔 미만의 금액을 징수하고, 미납 시 노역장에 유치되어 경미한 범죄에 적용된다.
| 공개 처형 | |
|---|---|
| 공개 처형 개요 | |
| 정의 | 대중이 볼 수 있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사형 |
| 역사적 맥락 | |
| 목적 | 범죄에 대한 억제 효과 권력 과시 대중의 분노 표출 |
| 형태 | 교수형 참수형 화형 돌팔매질 십자가형 거열형 |
| 장소 | 광장 거리 언덕 극장 |
| 시대 | 고대부터 현대까지 |
| 지역별 공개 처형 | |
| 고대 로마 | 검투사 경기장에서 공개 처형 시행 |
| 중세 유럽 | 공개 처형을 통해 권력을 과시 종교적 이단자 및 정치적 반대자 처형 |
| 영국 | 타이번에서 공개 처형 시행 19세기까지 공개 처형 유지 |
| 미국 | 20세기 초까지 공개 처형 시행 인종차별적 처형 |
| 프랑스 | 대혁명 이후 공개 처형 급증 단두대 사용 |
| 이슬람 국가 | 현재도 공개 처형이 시행되는 곳 존재 |
| 공개 처형의 쇠퇴 | |
| 이유 | 인도주의적 관점 대중의 거부감 사형 자체에 대한 비판 증가 |
| 사형 제도 |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공개로 시행 |
| 공개 처형의 논란 | |
| 찬성 의견 | 범죄 억제 효과 및 정의 구현 |
| 반대 의견 | 잔혹하고 비인도적 대중의 폭력성 조장 사형 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 |
| 법적 측면 | |
| 미국 수정 헌법 제8조 | "잔혹하고 비정상적인 형벌" 금지 |
| 공개 처형의 위헌성 | 대중의 분노와 증오를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비판받음 |
| 현대적 관점 | |
| 공개 처형의 부활 시도 | 일부 국가에서 공개 처형 부활 시도 존재 |
| 국제 사회의 비판 | 공개 처형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판적 시각 |
| 사형 제도 논쟁 | 사형 제도 자체에 대한 논쟁 지속 |
2. 고대
고대 마케도니아, 페르시아, 예루살렘, 페니키아, 로마, 카르타고에서는 십자가에 못 박는 형벌이 시행되었다.[8] 고대 로마 시대에는 콜로세움에서 공개 처형이 시민들의 오락거리로 여겨지기도 했다. 중세부터 근세에 걸쳐 조르다노 브루노와 같이 캄포 데이 피오리 광장 등 여러 곳에서 공개 처형이 이루어졌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는 로마의 공개 처형을 묘사한 장면이 나온다.
2. 1. 중국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대부터 공개 처형이 흔하게 시행되었다.[9]중국은 2000년대까지 공개 처형을 실시했다. 세계 최대 인구를 가진 중국은 전 세계 사형 집행의 90% 이상을 차지했기 때문에, 여러 명의 피고인에 대한 공개 재판을 함께 진행하고 공개 처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이미지는 각종 보도 및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었다. 예를 들어 2005년 3월 15일자 「데일리차이나」지에 따르면, 1995년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 중국 선전시에서 13명의 범죄자가 2만 명의 시민들 앞에서 공개 처형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1996년 1월 20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14명이, 2월 13일에는 16명이 공개 처형되었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베이징에서도 8명의 범죄자가 공개 처형되었다. 데일리차이나 웹사이트에서는 총살에 의한 10명의 여성 동시 공개 처형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다른 공개 처형 사진에서는 경기장 같은 곳(관객석과 전광판이 있는)에서 처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많은 인권단체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베이징 올림픽 개최 직전에 공개 처형을 중단한 이후로는 공개 처형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49] 일부 자치단체(주로 베이징 등 대도시)에서는 총살에서 약물 주사에 의한 사형으로 변경되었다.[50] 2012년 중국은 "사형 집행 사실은 공개되어야 하지만, 사형 집행 자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51]는 공개 처형 금지를 형사소송법에 명시하여 공식적으로 공개 처형을 금지했다.
3. 중세
기록된 공개 처형은 적어도 중세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16세기 후반에 정점을 찍었다.[4] 이는 부분적으로 근세 초기 마녀 재판 때문이었다. 중세 후기에 처형 집행자들은 피해자에게 살아 있는 동안 고통을 가하고 다른 사람들의 범죄를 막기 위해 구경거리를 만들도록 고안된 점점 더 잔혹한 방법을 사용했다. 처형 방식의 잔혹성(실제 처형 전 피해자가 고문받은 정도 포함)은 범죄 자체에 따라 다소 심했다.[11] 처벌은 종종 땅(매장), 물(익사), 불(화형)의 "정화" 능력을 불러일으켰다. 피해자들은 또한 참수, 사지 분리, 교수형, 구타를 당했다.[12] 시체나 신체 부위는 종종 공공장소에 전시되었고 당국은 유해가 가능한 한 오랫동안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13][4]
그러나 사형은 유럽 전역에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블라디미르 대공은 988년 기독교로 개종한 후 키예프 루스에서 사형을 폐지했다.
3. 1. 이슬람
초기 이슬람 시대에는 공개 처형에 대한 기록이 존재한다.[10]3. 2. 유럽
기록된 공개 처형은 적어도 중세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16세기 후반에 정점을 찍었다.[4] 이는 부분적으로 근세 초기 마녀 재판 때문이었다. 중세 후기에 처형 집행자들은 피해자에게 살아 있는 동안 고통을 가하고 다른 사람들의 범죄를 막기 위해 구경거리를 만들도록 고안된 점점 더 잔혹한 방법을 사용했다. 처형 방식의 잔혹성(실제 처형 전 피해자가 고문받은 정도 포함)은 범죄 자체에 따라 다소 심했다.[11] 처벌은 종종 땅(매장), 물(익사), 불(화형)의 "정화" 능력을 불러일으켰다. 피해자들은 또한 참수, 사지 분리, 교수형, 구타를 당했다.[12] 시체나 신체 부위는 종종 공공장소에 전시되었고 당국은 유해가 가능한 한 오랫동안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13][4]그러나 사형은 유럽 전역에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블라디미르 대공은 988년 기독교로 개종한 후 키예프 루스에서 사형을 폐지했다.
4. 근대
근대에는 사형 전 고문이 줄고, 시신을 훼손하여 전시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4] 18세기 초 서구 유럽에서는 인권을 고려하고 억제 방법을 중심으로 하는 방향으로 법 체계가 변화하면서 사형 집행 건수가 이전 세기에 비해 약 85% 감소했다.[4][21] 그러나 사회 불안이 심했던 18세기와 19세기에는 공개 처형이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4]
제러미 벤담과 체사레 베카리아 같은 계몽 사상가들은 사형 집행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22] 하지만 모든 계몽 사상가들이 공개 사형에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해부학자들은 연구와 실험을 위해 건강한 신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형 집행을 유용하게 여기기도 했다.[23] 또한, 당시 사람들은 사후 고문이 사자에 대한 불경이며, 희생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방해한다고 믿었다.[24][4]
1786년 토스카나에서 최초의 근대적 사형 폐지가 이루어졌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공개 사형에서 벗어나 사형 집행을 비공개화하고 투옥, 보호관찰, 사회봉사 등 자유 박탈형으로 전환하는 변화가 일어났다.[25] 이는 모든 죽음을 대중의 시야에서 차단하려는 경향과 맞물린 결과였다.[26]
4. 1. 아프리카
아프리카에서는 범죄를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개 처형이 시행되기도 했다. 라이베리아에서는 1970년대 윌리엄 톨버트(William Tolbert) 대통령이 공개 교수형을 시행한 사례가 있다.4. 1. 1. 라이베리아

1970년대, 라이베리아 대통령 윌리엄 톨버트(William Tolbert)는 범죄 억제 수단으로 공개 교수형을 이용했으며, 1971년부터 1979년 사이에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16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14] 특히 1979년에 일어난 일련의 주술과 관련된 의식적 살인 사건으로 인해 처형된 하퍼 세븐(Harper Seven)의 공개 처형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14]
4. 2. 아시아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2012년 이란,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소말리아에서 공개 처형이 시행되었다.[15]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예멘에서는 공식적인 공개 처형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ISIL과 같은 비국가 행위자들에 의한 공개 처형 보고는 있었다.[16][17][18]4. 2. 1. 이란

이란에서는 살인죄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공개 교수형이 시행되었다.[1]
4. 2. 2. 쿠웨이트
쿠웨이트는 때때로 공개 처형을 시행해 왔다. 사형수는 교수대로 끌려가 교수형에 처해지며, 이 과정에서 고위 경찰관이 서명한 사형 집행 영장이 제시된다.[19]국제앰네스티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임시 부국장인 라위아 라게(Rawya Rageh)는 2023년 7월 27일 쿠웨이트에서 마약 관련 범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1명을 포함한 5명에 대해 사형을 집행한 것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한 사형 집행 유예를 촉구했다. 이는 2017년부터 5년간 중단된 사형 집행을 재개한 것이다.[20]
4. 2. 3. 북한
북한은 공개 처형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부터 공개 처형 건수가 증가했으며, 1998년 김정일의 명령에 따라 머리를 쏘는 총살형이 많이 시행되었다는 증언이 있다. 일본에서는 북한의 공개 처형 장면이 몰래 촬영되어 보도되기도 했다.[52]처형 방법으로는 총살형 외에도 교수형이나 화형이 시행되었다는 증언이 있으며, 처형 후 참관인 전원에게 시신에 돌을 던지도록 강요했다는 탈북자의 증언도 있다.[52]
2002년 이후에는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인해 중국으로 무단 탈출하거나 한국으로 망명을 시도하다 실패한 사람들을 본보기로 삼아 시내 광장에서 2~3개월에 한 번씩 공개 처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강제수용소 수용 인원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52]
북한에서 사형이 적용되는 죄목은 '반국가범죄', '국가전복음모죄', '테러죄', '조국반역죄' 등이다. 그러나 독재 체제 특성상 그 적용 범위가 모호하여, 탈북이나 절도 행위로도 사형이 집행될 수 있다.[52]
2007년 10월 22일, AFP와 시사통신은 한국의 대북 지원 단체인 "좋은 친구들"의 뉴스레터를 인용하여, 평양 북쪽 교외 순천시의 한 야외 경기장에서 공개 처형을 구경하던 군중이 몰려 6명이 사망하고 34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처형된 사람은 과거 반공산주의 활동을 한 아버지의 전력을 숨기고 불법 투자 등을 한 혐의를 받은 75세 공장 경영자였다. 당시 경기장에는 약 15만 명이 운집했으며, 사고는 처형이 끝난 후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발생했다. 한국의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이 사고에 대해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52]
2016년, 연합뉴스는 김정은 집권 이후 연평균 처형 인원이 약 30명이었으나, 2016년에는 그 두 배인 약 60명이 처형되었다고 보도했다.[53] 대표적인 공개 처형 사례로는 2013년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북한의 2인자였던 장성택과 2015년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고사포로 처형된 사건이 있다.[53]
2020년대 초,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공개 처형이 잠시 주춤했으나, 2022년 이동 제한이 해제되면서 다시 재개되었다.[54]
4. 3. 유럽
17세기에는 사형 전 고문 사용이 감소했고, 대신 시체가 사후에 훼손되어 전시용으로 사용되었다.[4] 18세기 초 서구 유럽에서는 사형 집행 건수가 전 세기에 비해 약 85% 감소했는데, 이는 법 체계가 인권을 고려하고, 억제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중심으로 하는 보다 합리적인 형사 사법 접근 방식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4][21] 그러나 18세기와 19세기 내내, 특히 사회 불안이 심했던 시기에는 공개 처형이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4]18세기 계몽 사상가인 제러미 벤담과 체사레 베카리아는 사형 집행을 비난했다.[22] 하지만 계몽 사상가들이 공개 사형에 전적으로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해부학자들은 연구와 실험을 위한 건강한 신체 부위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사형 집행을 유용하게 여겼다.[23] 또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공개 사형의 일부였던) 사후 고문이 사자에 대한 불경이라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희생자가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믿었다.[24][4]

최초의 근대적 사형 폐지는 1786년 토스카나에서 이루어졌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공개 사형에서 벗어나 사형 집행을 비공개화하고 투옥, 보호관찰, 사회봉사 등 자유 박탈형으로 전환하는 변화가 나타났다.[25] 이는 일반적으로 모든 죽음을 대중의 시야에서 차단하려는 경향과 일치했다.[26]
4. 3. 1. 프랑스
프랑스에서는 1939년까지 공개 처형이 계속되었다.[25] 연쇄 살인범 외젠 바이드만(Eugen Weidmann)의 단두대 처형 장면을 담은 비밀 영상이 유출되어 사회적 물의를 빚은 후 처형은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관람객들이 기념품으로 바이드만의 피를 헝겊에 적셔 가져갔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나오자, 알베르 르브룅(Albert Lebrun) 대통령은 "인간 본성의 저급한 본능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의 공개 처형을 금지했다.[27]프랑스에서는 잔 다르크의 화형이나 마녀 사냥에 의한 마녀의 화형 등, 중세의 사형은 공개되는 오락으로 취급되었다. 프랑스 혁명 시, 특히 테러 시대에는 국왕, 귀족을 비롯하여 정쟁에 패배한 자들에 대한 공개 처형이, 참수인에 의한 공개 참수형에서 변경된 기요틴에 의해 다수 행해졌다.
프랑스에서는 기요틴에 의한 처형이 1939년까지 공개로, 1977년까지 비공개로 행해졌다. 1939년 6월 17일에 외젠 바이트만에 대해 행해진 것이 마지막 공개 처형이고, 1977년 9월 10일에 하미다 잔두비라는 튀니지인 노동자에 대해 집행된 것이 마지막 기요틴 처형이다. 공개 처형은 항상 축제 분위기였고, 마지막 처형에서는 주변 건물까지 관람을 위해 대여될 정도였으며, 이러한 만행은 국민 도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결국 공개가 중지되었다.
4. 3. 2. 독일
나치 독일은 공개 교수형, 총살, 참수 등의 공개 처형을 사용했다.[28]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나치오날소치알리스티셰 도이체 아르바이터파르타이de)가 점령지의 레지스탕스(적군파르티잔) 등을 사로잡아 교수형에 처하고 나무에 매달아 보복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다수 남아 있다. 베를린 함락 당시에는 자국 탈영병(적전도주)이 속출했는데, 이들을 체포하여 현장 재판(군사재판)으로 사형을 선고하고 "아내와 자식, 조국에 대한 의무를 저버렸기에 나는 여기에 매달려 있다"는 플래카드를 목에 걸고 가로등에 매달아 놓은 광경이 도처에서 목격되었다.나치 패망 후 유럽 전역에서 나치와 그 협력자들에 대한 격렬한 숙청이 자행되었다. 특히 증오의 대상이 된 것은 자국민 중에서 나온 친독 협력자들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군중 앞에서 린치(사형)를 당하거나 교수형 또는 총살로 처형되었다. 현재 이러한 상황을 담은 영상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4. 3. 3. 영국
영국에서는 1801년에 타이번 언덕에서 마지막 공개 처형이 이루어진 후, 요크의 모든 처형은 요크 성 성벽 안에서(하지만 여전히 공개적으로) 진행되었다.[29] 런던에서는 올드 베일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자들은 뉴게이트 감옥에 남아 거리에서 집행될 형을 기다렸다. 영국에서 마지막 공개 처형은 1868년에 이루어졌고,[25] 그 후 사형은 감옥 안에서 비밀리에 집행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 마지막 공개 처형(교수형)은 1866년 몽트로즈에서 앤드류 브라운의 처형이었다.[30] [31]영국의 공개 처형은 일반 서민에서부터 국왕에 이르기까지 시행되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서민의 오락이 되었던 점은 프랑스와 같았다. 런던의 타이번은 12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교수형의 형장으로 사용되었는데, 1724년에 행해진 잭 셰퍼드의 공개 처형에는 당시 런던 시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만 명 이상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타이번 형장은 1783년에 폐쇄되었지만, 뉴게이트 감옥으로 장소를 옮겨 공개 처형은 계속되었고, 1807년에는 몰려든 관람객 100명 이상이 압사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영국에서 공개 처형이 완전히 폐지된 것은 1868년이었다.
4. 4. 북아메리카
미국에서 마지막 공개 처형은 1936년에 이루어졌다.[25] 처형은 비밀스러운 방에서 진행되었으며, 처형되는 사람의 친척, 피해자 가족, 그리고 때로는 기자들이 참관할 수 있었다.프랜시스 라슨은 2014년 저서 《Severed: A History of Heads Lost and Heads Found》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공개 처형이 있는 한, 그것을 보려는 군중이 있었다. 19세기 초 런던에서는 일반적인 교수형을 보기 위해 5,000명이 모였을 수도 있지만, 유명한 범죄자의 처형을 보기 위해 최대 10만 명의 군중이 모이기도 했다. 수년에 걸쳐 그 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1936년 미국에서 마지막 공개 처형이 된 레이니 베시아의 교수형을 약 2만 명이 지켜보았다."[32]
4. 4. 1. 미국
미국에서 마지막 공개 처형은 1936년에 이루어졌다.[25] 유럽과 마찬가지로, 처형은 비밀스러운 방에서 이루어졌다. 처형되는 사람의 친척, 피해자 가족, 그리고 때로는 기자들이 참관할 수 있다.프랜시스 라슨(Frances Larson)은 2014년 저서 "Severed: A History of Heads Lost and Heads Found"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공개 처형이 있는 한, 그것을 보려는 군중이 있었다. 19세기 초 런던에서는 일반적인 교수형을 보기 위해 5,000명이 모였을 수도 있지만, 유명한 범죄자의 처형을 보기 위해 최대 10만 명의 군중이 모이기도 했다. 수년에 걸쳐 그 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1936년 미국에서 마지막 공개 처형이 된 레이니 베시아의 교수형을 약 2만 명이 지켜보았다."[32]
4. 5. 오세아니아
오세아니아 지역에서는 호주,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등에서 공개 처형이 시행되었다.4. 5. 1. 호주

호주 식민지 시대 동안 공개 처형은 19세기 후반까지 계속되었는데, 이는 대체로 유형수 시대의 종식과 일치한다.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현재 퀸즐랜드주 포함), 반 디먼스 랜드(현재 타스마니아주) 및 빅토리아 식민지(현재 빅토리아주)에서는 1855년에, 남호주에서는 1858년에, 서호주에서는 1871년에 폐지되었다.[34] 원주민 범죄자에 대한 공개 처형은 일부 관할 구역에서 법률을 위반하여 계속되었다.[35]
남호주와 서호주에서는 백인 정착민에 대한 국경 폭력에 대한 억제책으로 필요하다는 이유로 1861년과 1875년에 각각 호주 원주민 범죄자에 대해 공개 처형이 재도입되었다. 원주민 범죄자에 대한 공개 처형은 형법 조항이 오랫동안 유명무실한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남호주에서는 1971년, 서호주에서는 1952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서호주에서 마지막 공개 처형은 1892년 2월에 이루어졌는데,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세 명의 원주민 남성이 약 70명의 목격자 앞에서 서호주주 홀스 크릭 근처 범죄 현장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4. 5. 2. 뉴질랜드
뉴질랜드에서는 1858년 《범죄자 사형 집행법》(Executions of Criminals Act 1858)에 따라 공개 처형이 폐지되었다. 이 법은 사형 집행을 "감옥의 담장 안이나 둘러싸인 마당 안, 또는 다른 둘러싸인 공간 안"에서 실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36] 이 법은 오클랜드 중심부에서 마지막 공개 교수형이 집행된 지 3개월 후인 1858년 6월 3일에 발효되었다.[37]4. 5. 3. 파푸아뉴기니
호주가 관리하던 뉴기니 준주는 1920년 이후 국제연맹 위임통치령이었는데, 공개 처형이 "정부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38] 1933년 한 지구 행정관은 뉴브리튼에서 수백 명의 군중 앞에서 두 차례의 처형이 집행되었고, "현장에서 살인자들을 처형한 것이 원주민들이 정부의 뜻에 따르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보고했다.[38]5. 현대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국가는 공개 처형을 폐지했다. 그러나 일부 이슬람교 국가 및 북한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여전히 공개 처형이 시행되고 있다. 주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20세기 초에 공개 처형이 사라졌으며, 유럽 여러 국가를 비롯하여 사형 제도 자체를 폐지하거나 집행을 중단한 국가도 많다.
민주주의 국가 중 예외적으로 미국에서는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의 경우, 유족에 한해 사형 집행을 공개하기도 한다.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정부청사 폭파 사건의 범인 티모시 맥베이의 사형 집행이 그 예이다. 또한, 악랄한 연쇄 살인범의 경우 사후 시체 사진을 공개하기도 하는데, 테드 번디가 해당된다.
5. 1. 일본
일본의 에도 시대 이전에는 신분이 높은 사람의 할복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공개 처형이 이루어졌다. 특히 전국 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걸쳐 성행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조카 도요토미 히데쓰구 처자의 참수형이나 이시카와 고에몬의 가마솥 처형(釜茹で) 등은 유명하다.[40]에도 시대의 형벌은 이전의 사형을 계승하여, 능지처참(磔), 화형(火刑, 火あぶり) 등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졌고, 톱으로 켜는 형벌(鋸挽き)은 원래 처형에 일반 시민을 참여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켜는 일은 없었고, 시중끌고다니기(市中引き回し)와 마찬가지로, 엄중히 경고하는 효과를 목적으로 했다. 또한, 옥문(獄門)은 참수형 후의 머리를 공개하는 형벌이었다.[40]
장소와 기간은 한정되지만, 에도(1862년(분큐 2년)~1865년(게이오 원년))와 오사카(오사카마치부교(1781년(덴메이 2년)~1785년(덴메이 6년))에서 능지처참과 화형에 처해진 것은 전체 사형 집행자(15세 이상의 남성 서민〈무사, 공가, 승려, 신직, 부라쿠민을 제외〉)의 5% 미만(에도: 약 4%, 오사카: 약 3%)이었고, 사형 집행이 공개되는 것은 적어도 공사방어정서가 정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에도 시대 후기・막말의 덴료에서는 드문 경우였다. 다만, 사형 집행 전에 시중끌고다니기를 하거나, 참수형 후의 머리를 공개하는 것을 포함한 경우에는 4할 전후(에도: 약 45%, 오사카: 약 37%)가 된다.[40] 덴구당의 난에 의한 참수형 집행 시, 공개 상태로 행해지는 예가 있으며, 반드시 다른 장소에서의 참수형이 비공개라고는 한정할 수 없었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는, 1868년(메이지 원년) 10월 30일에 발표된 행정관포에 의해, 능지처참은 군부모를 죽인 대역죄(大逆)에 한정하고, 화형은 폐지되었다.[41] 1870년(메이지 3년) 12월 20일에 제정 반포한 신률강령에 의해, 사형 집행 방법이 교수형・참수형・효시(옥문에 상당)의 3종류로 한정되는 형태로, 사형 집행의 공개가 폐지되었다.[42] 그 사이에도, 참수형의 공개가 행해지는 예가 있었다. (1876년(메이지 9년) 5월 22일에 요코하마에서 견습공(丁稚) 살해죄로 참수형이 집행되었을 때, 많은 구경꾼이 형장에 모여 있었다.[43]).
1879년(메이지 12년)에는 효시도 폐지되었다.[41] 그러나, 구형법(旧刑法) 시행 후의 1886년(메이지 19년) 12월에 「아오모리의 남편 살해」사건의 가해자인 코야마우치 스미와 오노 나가노스케(小山内スミと小野長之助)의 공개 참수형이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의 아오모리 교도소(青森監獄) 앞에서 행해졌다. 이때 2명의 참수형에 가네히라 순사(巡査)가 참수형 집행인으로서, 사형 집행자 보조 역에 모리 교(森矯)(도오우 기주쿠 고등학교 교사)가 각각의 임무를 완수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사형 집행은 사실상의 참수형의 마지막인 동시에, 관헌에 의한 일본 국내에서의 일반 형법범에 대한 마지막 불법(당시의 구형법에서는, 비공개 교수형만.)의 사형 집행이자 제3자의 관중들의 눈앞에서 행해진 공개 참수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44]
한편, 메이지 시대에는, 검사의 허가하에 사형 집행을 제3자에게 관람시킨 예도 있다. (1896년(메이지 29년) 9월 15일에 홋카이도 네무로의 형장에서, 사이토 진키치(斎藤甚吉)의 사형 집행을 지켜보려고 30명이 참관하고 있다.[45] 1885년(메이지 18년) 7월 27일에는, 아카이 케이쇼(赤井景韶)[죄명: 오류 사건인 다카다 사건에 의해 수감. 후에 탈옥하고, 도주 중인 것을 목격한 인력거꾼을 살해]의 집행을 구자유당 당원인 오이 켄타로를 시작으로 100명 이상이 이치가야 감옥에서 참관하고 있다.[46]).
형사소송법 477조 2항에, 「검찰관 또는 형사 시설의 장의 허가를 받은 자가 아니면, 형장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허가가 있으면 형장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지만, 정부(법무성)의 국회 답변 등에 의하면, 이것은 피집행자의 희망하는 교도관이나 종교가 등의 참관을 상정한 규정이며, 불특정 다수의 제3자에게 출입을 인정하는 취지가 아니다. 실제로 피해자의 친족(유족(遺族))이 참관할 수 있도록 요청했으나 거부당하고 있다. 2010년 7월 28일에는, 지바 케이코 법무대신(당시)이 우쓰노미야 보석점 방화 살인 사건의 범인 2명의 처형에 참관하고 있다.[47][48] 2018년(헤이세이 30년) 7월 6일에 행해진 옴진리교 사건의 사형 집행에서는, 텔레비전에서 특별 방송이 방송되었다. 또, 사형의 참관과는 다르지만, 옛날 일본에서는 사형 집행을 전날에 수형자에게 통지하고, 가족과의 마지막 면회나 작별회 등을 행했지만, 통지를 받은 사형수가 집행 전에 자살한 사건이 있어, 그 이후 당일 아침에 집행 통지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5. 2. 중국
중국은 2000년대까지 공개 처형을 실시했다. 세계 최대 인구를 가진 중국은 전 세계 사형 집행의 9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여러 명의 피고인에 대한 공개 재판을 함께 진행하고 공개 처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이미지는 각종 보도 및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었다. 예를 들어 2005년 3월 15일자 「데일리차이나」지에 따르면, 1995년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 중국 선전시에서 13명의 범죄자가 2만 명의 시민들 앞에서 공개 처형되었다.[49] 그로부터 한 달 후인 1996년 1월 20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14명이, 2월 13일에는 16명이 공개 처형되었고, 같은 시기에 베이징에서도 8명의 범죄자가 공개 처형되었다.[49] 데일리차이나 웹사이트에서는 총살에 의한 10명의 여성 동시 공개 처형 사진을 게재하고 있으며, 다른 공개 처형 사진에서는 경기장 같은 곳(관객석과 전광판이 있는)에서 처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많은 인권단체로부터 비판을 받았다.[49] 베이징 올림픽 개최 직전에 공개 처형을 중단한 이후로는 공개 처형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49] 또한 일부 자치단체(주로 베이징 등 대도시)에서는 총살에서 약물 주사에 의한 사형으로 변경되었다.[50] 2012년 중국은 "사형 집행 사실은 공개되어야 하지만, 사형 집행 자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51]는 공개 처형 금지를 형사소송법에 명시하여 공식적으로 공개 처형을 금지했다.5. 3.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 정권 시대에 공개 처형이 성행했다.[55] 예를 들어 2001년 8월 8일, 전년에 폭탄을 터뜨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남성 4명이 카불 대통령 관저 근처에서 크레인으로 매달려 처형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카불의 축구장은 공개 처형장으로 변했고, 절도나 간통죄로 체포된 사람들이 처형되는 곳이 되었다.[56]
탈레반이 철수한 후에는 공개 처형이 사라졌지만, 2021년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다시 부활했다. 같은 해 9월 26일에는 사살한 납치범의 시체를 크레인으로 매달아 본보기로 거리에 내걸었다는 보도가 있었다.[57] 그러나 다음 달 10월 14일 21시 29분 트위터를 통해 탈레반 정부는 최고재판소의 명령이 없는 한 공개 처형과 처형 후 시체를 교수형에 처하는 행위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발표했다.[58][59] 그 후, 2022년 12월 7일에 재집권 후 처음으로 파라에서 공개 처형이 이루어졌다.[60]
5. 4. 이슬람 국가
일부 이슬람교 국가에서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공개 처형이 시행되고 있다. 참수형 외에도, 돌로 치는 형벌처럼 관람객이 직접 집행에 참여하는 형태의 처형도 있다.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오늘날에도 사형 집행을 공개 처형으로 실시하고 있다. 1980년 1월 9일에 발생한 알하람 모스크 점거 사건의 주범 주하이만 알우타이비 등의 참수형은 사우디 전역에 텔레비전 중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개 처형 영상이 해외에 유출되어 문제가 된 것을 계기로 현재는 공개 처형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또한 처형 장소는 모스크 부지이기 때문에 이교도(외국인)가 출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소형 촬영 장비가 발달한 현재는 관객에 의한 몰래 촬영이 성행하고 있으며, 빈번하게 인터넷상에 영상이 유출되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예외적인 조치로, 1998년에 여성과 아이 2명을 살해한 남성 3명의 사형 집행을 국영 텔레비전이 중계했다. 2022년 이집트 법원은 잇따르는 페미사이드를 억제하기 위해 사형수의 사형 집행을 생중계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61]
이슬람 법에는 "신자들을 처형에 참여하게 하라"는 기록이 있으며, 이것이 공개 처형을 하는 법적 근거가 되고 있다. 또한 처형에 참여하는 것은 피해자 유족의 권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불법 행위라고 간주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보복의 의미보다는 "이슬람교도의 처형에 참여할 권리"를 중시한 결과이다.
6. 비유적 표현
대중 앞이나 텔레비전 방송 등에서 제삼자의 고의적인 행위로 인해 수치심을 느끼게 된 상황을 설명할 때 "공개 처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6. 1. 속어
연예계에서 다른 연예인과 나란히 섰을 때 외모가 비교되어 돋보이지 않는 경우를 "공개 처형"이라고 칭하기도 한다.[62][63][64][65][66]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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