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민영
1. 개요
엄민영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리, 대한민국 제3공화국 내무부 장관, 주 일본 대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경상북도 경산 또는 선산 출신으로, 규슈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관료가 되었다. 해방 후 전라북도 농상부장, 전라남도 농림국장을 거쳐 대구대학교, 서울대학교, 경희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4·19 혁명 이후 민주당 소속으로 참의원에 당선되었으나, 5·16 군사정변 이후 자유민주당을 거쳐 민주공화당에 합류하여 박정희 정권에서 중용되었다.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관료 분야로 선정되었으며, 1969년 사망했다.
| 이름 | 엄민영 |
|---|---|
| 한자 표기 | 嚴敏永 |
| 로마자 표기 | Eom Min-yeong |
| 출생일 | 1898년 2월 18일 |
|---|---|
| 사망일 | 1969년 12월 9일 (향년 71세) |
| 최종 학력 | 일본 주오 대학 법학부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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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 | 대한민국의 외교관, 정치인 |
|---|---|
| 주요 경력 | 제헌 국회의원 주일본 대사 |
| 소속 정당 | 대한민국 자유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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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관계 | 영월 엄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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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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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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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이원수 (작가)
이원수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으로 등단하여 동요, 동시, 동화, 소년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친일 작품으로 논란이 있다. -
대한민국의 내무부 장관 -
정석모
경찰 출신 행정가이자 정치인인 정석모는 치안국장, 도지사, 차관, 6선 국회의원,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충청권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정계 은퇴 후에는 건양대학교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
대한민국의 내무부 장관 -
이호 (법조인)
이호는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 후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주일본 대사 등을 역임하고 12·12 군사 반란 이후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을 지냈다.
2. 생애
엄민영은 경상북도 경산 또는 선산군에서 출생하여,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후일의 경북고등학교한국어)를 졸업하고 1936년 호세이 대학 예과를 수료했다. 1939년 규슈 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 관리가 되었다. 조선총독부 전매국 청주시 출장소에서 근무했고, 일제 강점기 말기에 전라북도 임실군과 무주군의 군수를 지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 전라북도 농상부장과 전라남도 농림국장을 거쳤다. 이후 대구대학교 교수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를 지냈고, 1957년에는 경희대학교 법대 학장이 되었다.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붕괴된 뒤 민주당 소속으로 참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듬해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김도연이 주도한 자유민주당에 합류했다.
그러나 자유민주당에서 민주계 중심의 내분이 일어나면서 소선규와 충돌한 끝에, 자신의 계파를 이끌고 민주공화당으로 이동하였다. 박정희는 엄민영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고문으로 발탁한 뒤 중용하였다. 제3공화국에서 두 차례 내무부 장관을 지냈고, 1967년 주 일본 대사에 임명되어 재직 중 1969년 12월 10일에 54세로 사망했다.
2.1. 일제 강점기 활동
엄민영은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나 1939년에 일본 규슈 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 관리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전라북도 임실군과 무주군의 군수를 지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공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분야에 선정되었다.
2.2. 해방 이후 활동
태평양 전쟁 종전 후, 전라북도 농상부장과 전라남도 농림국장을 역임했다. 그 후 교육직으로 전향하여 대구대학교 교수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1957년에 경희대학교 법학부 학부장에 취임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이 붕괴된 후, 민주당 소속으로 참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1961년 5·16 군사 정변이 발생하자, 김도연이 주도한 자유민주당에 합류했다. 그러나 자유민주당의 구 민주당 계열에서 내분이 발생하여, 소선규와 충돌했다. 엄민영은 자신의 파를 이끌고 민주공화당으로 이동했다. 박정희는 엄민영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고문으로 기용했다. 제3공화국에서 내무부 장관을 두 번 역임했고, 1967년부터 주일 대사에 취임했다. 재임 중인 1969년 12월 10일에 54세로 사망했다.
2.3. 정치 활동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난 엄민영은 1939년 일본 규슈 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 관리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전라북도 임실군과 무주군 군수를 지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는 전라북도 농상부장, 전라남도 농림국장을 거쳤다. 이후 대구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경희대학교 법대 학장을 역임하며 학계에서 활동했다.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붕괴된 후 민주당 소속으로 참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듬해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김도연이 주도한 자유민주당에 합류했다.
그러나 자유민주당 내분으로 소선규와 충돌한 후, 자신의 계파를 이끌고 민주공화당으로 이동하였다. 박정희는 엄민영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고문으로 발탁하여 중용하였다. 제3공화국에서 두 차례 내무부장관을 지냈고, 1967년 주 일본 대사에 임명되어 재직 중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