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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길의 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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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길의 사가는 9세기에서 10세기 사이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하는 아이슬란드 사가로, 바이킹 시대의 삶과 문화를 보여준다. 이 사가는 크벨둘프 가문의 기원과 갈등, 주인공 에길 스칼라그림손의 성장과 모험, 에이리크 블로도액스와의 갈등, 그리고 에길의 노년과 죽음을 다루며, 에길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성격과 시를 통한 그의 삶의 표현을 보여준다. 에길은 뛰어난 시적 재능과 함께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면모를 지녔으며, 시는 그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가는 아이슬란드 사가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으며, "에길의 은" 전설을 낳기도 했다.

2. 크벨둘프 가문의 기원과 갈등

에길 사가(노르웨이)의 참고 지도


《에길의 사가》는 서기 850년경 노르웨이에서 시작된다. 이야기는 주인공 에길의 할아버지인 울프( Úlfr|울프non )와 그의 두 아들, 토롤프( Þórólfr|토롤프non )와 스칼라그림( Skalla-Grímr|스칼라그림non )의 삶을 다룬다. 울프는 '저녁늑대'라는 뜻의 크벨둘프( Kveldúlfr|크벨둘프non )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이는 그가 저녁이 되면 기질이 급변하는 함람므( hamrammr|함람므non )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56][8] 그는 뛰어난 신체 능력과 부를 지녔으나, 당시 노르웨이 통일을 추진하던 미발왕 하랄( Haraldr Hárfagri|하랄드 하르파그리non )에게 복종하기를 꺼렸다.[46]

결국 장남 토롤프가 하랄 왕을 섬기게 되었고, 그는 왕 밑에서 큰 공을 세우며 세력을 키웠다.[47] 그러나 토롤프의 성공은 주변의 시기를 샀고, 특히 그의 친구 바르드( Bard|바르드non )의 이복형제인 흐레레크( Hraerek|흐레레크non )와 하레크( Harek|하레크non )는 토롤프가 공물을 빼돌리고 왕을 해치려 한다고 모함했다.[57][48][49] 토롤프의 힘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던 하랄 왕은 이 참소를 믿고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 토롤프를 살해했다.[57]

형의 억울한 죽음에 분노한 스칼라그림은 아버지 크벨둘프와 함께 복수에 나섰다. 그들은 하랄 왕이 토롤프에게서 빼앗았던 배를 되찾고 왕의 부하들을 모두 죽인 뒤, 왕을 조롱하는 시를 남기고 아이슬란드로 망명길에 올랐다.[58] 하지만 항해 도중 크벨둘프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58] 스칼라그림만이 아이슬란드에 도착하여 오늘날의 보르그아뮈룸 지역에 정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농부이자 대장장이로 살아가며 두 아들, 죽은 형의 이름을 딴 토롤프와 사가의 주인공인 에길을 낳아 길렀다.[59] 이처럼 크벨둘프 가문과 노르웨이 왕가 사이의 뿌리 깊은 갈등은 다음 세대인 에길에게까지 이어지게 된다.

2. 1. 크벨둘프 뱌르파손

에길의 사가는 850년경 노르웨이에 살았던 에길의 할아버지 울프(Úlfr|울프non)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는 별명인 크벨둘프(Kveldúlfr|크벨둘프non)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크벨둘프는 "반 거인트롤 할비요른"을 조상(어머니 쪽의 백숙부)으로 둔 혈통으로 알려져 있으며[8], 뛰어난 체격과 힘으로 유명했다. 그는 바이킹 약탈로 많은 토지와 재산을 모았으며, 현명한 사람이었다.[56]

저녁이 되면 수줍은 은둔자처럼 변하는[56] 특이한 기질 때문에 "크벨둘프", 즉 '저녁늑대'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는 그가 함람므(hamrammr|함람므non, 형상 변환자 또는 광전사의 분노와 유사한 상태[9][10])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라고도 설명된다.[8] 이러한 극단적인 성격은 아들 스칼라그림과 손자 에길에게도 이어진다.

미발왕 하랄이 노르웨이 통일을 추진할 당시, 크벨둘프는 왕에게 복종하기를 꺼렸는데, 왕과 엮이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이라 예감했기 때문이다.[46] 하지만 결국 아들 토롤프(Þórólfr|토롤프non)가 왕을 섬기도록 허락한다. 그러나 예감대로 아들 토롤프가 참언에 빠져 하랄 왕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하자[48][49], 크벨둘프는 다른 아들 스칼라그림과 함께 복수에 나선다. 부자는 하랄 왕이 빼앗아간 토롤프의 배를 탈환하고 배에 타고 있던 왕의 부하들을 모두 살해한 뒤, 왕을 조롱하는 시를 남기고 아이슬란드로 망명길에 오른다.[58] 크벨둘프는 아이슬란드로 향하던 도중 병을 얻어 사망한다.[58]

2. 2. 노르웨이 하랄 왕과의 대립

노르웨이의 하랄 1세 왕은 노르웨이 통일을 목표로 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크벨둘프( Kveldúlfrnon )는 피오르다네 지역의 소왕들이 하랄 왕에게 대항하려는 움직임에 가담하지 않았으나, 동시에 하랄 왕의 신하가 되라는 요구도 거절하여 왕의 불만을 샀다.[46]

크벨둘프의 친구 아들이자 하랄 왕의 궁정 시인이었던 올비르 흐누파( Ölvir hnúfanon )가 중재에 나서, 크벨둘프의 장남 토롤프( Þórólfrnon )가 왕을 섬기는 조건으로 타협이 이루어졌다. 토롤프는 왕 밑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고[47], 핀인들에게서 공물을 거두는 임무 등을 수행하며 세력을 키웠다.

그러나 토롤프의 성공과 세력이 커지는 것을 시기한 자들이 그가 핀인에게서 거둔 공물을 빼돌리고 왕에 대한 음모를 꾸몄다고 모함했다.[48][49] 이를 믿은 하랄 왕은 토롤프의 힘을 경계하게 되었고, 결국 직접 군대를 이끌고 산드네스( Sandnessnon )에 있는 토롤프의 저택을 공격하여 불을 지르고 그를 살해했다.[57]

토롤프의 동생인 스칼라그림( Skalla-Grímrnon )은 형의 죽음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하랄 왕을 찾아갔으나, 오히려 왕의 분노를 사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이에 스칼라그림과 아버지 크벨둘프는 하랄 왕이 토롤프에게서 빼앗았던 배를 습격하여 선원들을 모두 죽이고 배를 되찾았다. 이 과정에서 크벨둘프는 함람므( hamrammrnon ) 상태를 보였다고 전해진다.[12] 그들은 왕을 조롱하는 시를 남기고 아이슬란드로 망명길에 올랐다.

그러나 항해 도중 크벨둘프는 병으로 사망했고, 그의 관은 바다에 떠내려갔다.[58] 스칼라그림은 관이 떠내려간 해안 근처, 오늘날의 보르그아뮈룸에 정착하여 농부이자 대장장이로 살아가게 된다.[13][59]

2. 3. 토롤프 크벨둘프손의 죽음

노르웨이의 하랄 하르파그리 왕(Haraldr Hárfagri|하랄드 하르파그리non)은 노르웨이 전체를 통일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에길의 할아버지 크벨둘프는 하랄 왕의 신하가 되라는 제안을 거절했으나, 그의 매형이자 왕의 궁정 시인인 올비르 흐누파(Ölvir hnúfa)의 중재로 타협안이 마련되었다. 크벨둘프는 바이킹 원정에서 돌아오는 대로 장남 토롤프(Þórólfr|토롤프non)를 왕에게 보내 섬기게 했다.[46]

토롤프는 왕을 충실히 섬겼고, 특히 핀인들에게서 공물을 거두는 임무 등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이 지나치자 주변의 시기를 사게 되었고, 결국 참소하는 자들의 말로 인해 왕의 의심을 받게 되었다. 토롤프의 친구 바르드(Bard|바르드non)의 이복형제인 흐레레크(Hraerek|흐레레크non)와 하레크(Harek|하레크non)는 하랄 왕에게 토롤프가 거둔 공물을 전부 바치지 않았으며, 심지어 왕을 연회에 초대해 살해하려 했다는 거짓 참소를 했다.[57][48][49]

토롤프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던 하랄 왕은 이들의 말을 쉽게 믿었고[46], 직접 군대를 이끌고 산드네스(Sandness|산드네스non)에 있는 토롤프의 저택을 공격했다. 토롤프가 항복을 거부하자 하랄 왕은 저택에 불을 질렀고, 불길 속에서 뛰쳐나온 토롤프를 직접 살해했다.[57]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토롤프는 결국 왕의 의심과 참소로 인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이 사건은 에길의 아버지 스칼라그림과 할아버지 크벨둘프가 하랄 왕에게 복수한 뒤 노르웨이를 떠나 아이슬란드로 이주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12]

2. 4. 스칼라그림의 복수와 아이슬란드 정착

하랄 왕을 섬기던 토롤프는 왕의 신임을 얻었으나, 그의 성공을 시기한 자들의 참소로 인해 왕의 의심을 사게 되었다.[57] 하랄 왕은 토롤프가 자신에게 반역을 꾀한다는 거짓 모함을 믿고, 그의 힘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여 산드네스(Sandnessnon)에 있는 토롤프의 저택을 공격했다. 토롤프가 항복을 거부하자 왕은 저택에 불을 질렀고, 밖으로 나온 토롤프를 직접 살해했다.[57][48][49]

형의 억울한 죽음에 스칼라그림은 하랄 왕의 궁정을 찾아가 정당한 배상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하고 오히려 왕의 분노만 사게 되었다.[58][12] 이에 스칼라그림과 아버지 크벨둘프는 하랄 왕이 토롤프로부터 빼앗았던 배를 공격하여 그 안에 있던 왕의 부하들을 모두 죽이고 배를 되찾았다. 부자는 왕을 조롱하는 시를 남기고 그 배를 타고 노르웨이를 떠났다.[58][12]

아이슬란드로 향하는 항해 도중, 복수 과정에서 기력이 쇠했던[12] 크벨둘프는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58] 그의 관은 바다에 떠내려가 아이슬란드 해안에 닿았고, 스칼라그림은 관이 발견된 곳 근처에 정착지를 세우고 보르그(Borg)라 이름 지었다.[13] 스칼라그림은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대장장이 일을 하며 평화롭게 정착했으며, 그의 두 아들 토롤프(Þórólfrnon, 죽은 형의 이름을 땀)와 에길(Egillnon)이 이곳에서 성장했다.[59][13]

3. 에길 스칼라그림손의 성장과 모험

에길 스칼라그림손은 아버지 스칼라그림(Skalla-Grímrnon)과 함께 아이슬란드의 보르그아뮈룸에 정착하여 성장했다.[59] 그는 아버지의 외모와 기질을 물려받아 용모는 투박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힘과 뛰어난 시적 재능을 보였다.[44][45] 하지만 동시에 제멋대로이고 반항적인 성격과 폭력성 또한 일찍부터 드러났다.[63][17]

에길의 이러한 면모는 여러 사건을 통해 나타났다. 세 살 때 이미 어른스러운 시를 지어 주변을 놀라게 했고,[63][17] 일곱 살 때는 공놀이(크나틀레이크르)에서 자신을 이긴 소년을 도끼로 살해하는 첫 살인을 저질렀다.[63][17] 열두 살 무렵에는 아버지 스칼라그림과의 공놀이 시합 중 아버지가 친구를 죽이고 자신마저 해치려 하자, 이에 격분하여 아버지가 아끼는 노예를 죽여 보복하는 등 심각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17][52] 이러한 성장 과정을 거친 에길은 이후 스칸디나비아잉글랜드 등지를 배경으로 파란만장한 모험과 갈등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3. 1. 에길의 어린 시절과 첫 시

아이슬란드의 보르그아뮈룸에서 성장한 에길 스칼라그림손은 아버지 스칼라그림의 외모와 기질을 물려받아 용모는 투박했지만, 뛰어난 시적 재능을 지녔다.[44][45] 그의 어린 시절은 이미 남다른 힘과 반항적인 성격, 그리고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에길은 세 살 때 이미 여섯일곱 살 아이와 비슷한 힘과 체격을 가졌으며 나이에 걸맞지 않은 힘을 보였다.[63][17] 그는 아버지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일례로 외할아버지 윙바르(Yngvarnon)가 연회를 열었을 때 집에 있으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고 몰래 연회장으로 말을 타고 따라갔다.[63][17] 이 자리에서 에길은 자신의 첫 스칼드 시를 지어 윙바르에게 바쳤고, 그 대가로 바닷고둥껍질 세 개와 오리알 한 개를 상으로 받았다.[63]

일곱 살이 되던 해, 에길은 크나틀레이크르(knattleikr, 고대 노르드식 공놀이) 경기 도중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그림(Grímrnon)이라는 소년에게 패배했다.[63][17] 지고 나서 웃음거리가 된 것에 분노한 에길은 친구 토르드(Þórðr Granasonnon)와 상의한 후[17], 빌린 도끼로 그림의 머리를 내리쳐 살해하는 첫 살인을 저질렀다.[63][17]

열두 살 무렵에는 크나틀레이크르 경기에서 에길을 상대할 수 있는 성인 남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힘이 세졌다.[17] 어느 날 저녁, 에길과 그의 친구 토르드(Þórðr Granasonnon)는 아버지 스칼라그림에게 크나틀레이크르 경기를 도전했다. 경기가 격해지자 스칼라그림은 괴력을 발휘하여 토르드를 땅에 내리쳐 죽이고 말았다.[17][52] 스칼라그림이 에길마저 해치려 하자, 에길을 어릴 때부터 돌봐준 유모(포스트라, fostranon)가 그를 막아서다가 대신 스칼라그림에게 살해당했다.[17] 이 일에 격분한 에길은 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노예를 죽여 복수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부자 관계는 틀어져 다음 해 겨울까지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17][52]

3. 2. 첫 살인과 아버지와의 갈등

에길은 세 살 때 이미 예닐곱 살 아이와 맞먹는 힘과 체격을 가졌고, 시를 짓는 재능을 보였으나 아버지 스칼라그림(Skalla-Grímrnon)의 말을 따르지 않는 제멋대로인 면모도 드러냈다. 아버지가 연회 참석을 만류했음에도 몰래 따라가 외할아버지 Yngvar|윙그바르non 앞에서 자신의 첫 스칼드 시를 읊었다.[63][17]

일곱 살 때는 크나틀레이크르(공놀이)를 하다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Grímr|그림non에게 지자 격분하여 경기용 방망이로 그를 때렸다. 그림이 에길을 땅에 내동댕이치자 모욕감을 느낀 에길은 친구 Þórðr Granason|토르드non에게서[17] 빌린 도끼(혹은 미늘창의 도끼 부분[63])로 그림의 머리를 내리쳐 살해했다. 이는 에길의 첫 살인이었다.[17][63]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에길은 친구 토르드와 함께 아버지 스칼라그림에게 공놀이 시합을 도전했다. 저녁 무렵 함람므 상태가 된 스칼라그림은 광포한 힘을 발휘하여 토르드를 땅에 메다꽂아 죽였다. 스칼라그림이 에길마저 해치려 하자, 에길을 어릴 적 돌봐준 유모(포스트라)가 이를 막아서다가 대신 살해당했다. 이 사건에 격분한 에길은 아버지가 아끼던 노예를 죽여 보복했고, 이 일로 인해 부자 관계는 악화되어 다음 겨울 내내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17][52]

3. 3. 토롤프 스칼라그림손과의 관계

에길의 형 토롤프 스칼라그림손 Þórólfr Skallagrímssonnon은 성인이 된 후 노르웨이로 건너가 아버지 스칼라그림의 오랜 친구이자 헤르시르 토리르 Þórir Hróaldssonnon를 방문했다.[14] 그곳에서 토롤프는 하랄 1세의 아들이자 토리르의 보살핌을 받던 어린 에이리크 1세 Eiríkr blóðøxnon 왕자를 만났다.[60] 토롤프는 친구 뵤른 Björn Brynjólfssonnon의 조언에 따라[15] 에이리크 왕자와 우정을 쌓았고, 왕자가 자신의 배를 탐내는 것을 알자 그 배를 선물로 주었다.[60][15]

이후 에이리크가 왕위에 오르자, 토롤프가 아이슬란드로 돌아갈 때 아버지 스칼라그림에게 선물로 금으로 상감된 도끼를 보냈다.[16] 그러나 스칼라그림은 에이리크 왕이 보낸 도끼를 시험 삼아 소 두 마리의 목을 베려다 실패하여 도끼를 망가뜨렸다. 그는 왕을 모욕하는 시를 짓고 망가진 도끼와 함께 토롤프 편으로 왕에게 돌려보내려 했다.[61][16] 토롤프는 아버지의 무례함을 감추기 위해 노르웨이로 가는 길에 도끼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62] 그리고 에이리크 왕에게는 아버지가 도끼 선물에 매우 감사하며 그 답례로 자신이 가져온 롱쉽 을 보낸 것이라고 거짓말하며 돛을 바쳤다.[62][17] 토롤프의 이러한 기지와 노력 덕분에 아버지 스칼라그림과 에이리크 왕 사이의 평화가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었다.[17]

4. 에이리크 블로됙스와의 갈등

에이리크 블로됙스가 왕위에 오른 뒤, 그는 에길의 아버지 스칼라그림에게 도끼를 선물로 보냈다. 스칼라그림은 도끼를 시험하다 망가뜨리고는 무례한 시를 지어 돌려보내려 했으나, 에길의 형 토롤프가 이를 막고 대신 자신의 배를 에이리크에게 선물하며 상황을 무마했다.[61][62]

그러나 에길과 에이리크의 관계는 이후 급격히 악화된다. 에길은 한 연회에서 에이리크 왕의 집사 바르드(Bárðrnon)에게 모욕을 당하자 그를 살해했다.[21] 이 사건으로 에길은 에이리크 왕의 분노를 샀고, 왕은 에길을 불법자로 선포하고 사형을 명했다. 에길은 이에 대한 복수로, 자신을 잡으려던 베르그-오눈드(Berg-Önundrnon)와 에이리크 왕의 아들 로그발드(Rögnvaldrnon)를 살해했다. 더 나아가 에길은 말 머리를 꽂은 니딩 폴( níðstöngnon )을 세워, 에이리크 왕과 군힐드 왕비노르웨이에서 쫓겨나도록 저주를 퍼부었다.[31] 실제로 이후 에이리크는 동생 하콘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잉글랜드로 망명하게 된다.

잉글랜드 노섬브리아의 왕이 된 에이리크와 에길은 우연히 다시 마주치게 된다. 에이리크는 에길을 죽이려 했으나, 에길의 친구이자 에이리크의 신하인 아린비요른(Arinbjörn Þórissonnon)의 중재로 에길은 하룻밤 안에 에이리크를 찬양하는 시를 지어야 했다. 에길이 지은 ''Höfuðlausn''("머리 몸값")이라는 시에 감탄한 에이리크는 다시는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에길을 살려주었다.[33]

에이리크 블로됙스가 사망한 후, 에길은 아내 아스게르드(Asgerdnon)의 유산을 되찾기 위해 하콘 왕이 다스리는 노르웨이로 갔다. 그러나 하콘 왕은 과거 에길과 에이리크 사이의 악연을 이유로 에길의 요구를 거절했다. 아린비요른이 대신 에길에게 은화 40 마르크를 보상해주었다.[64] 이처럼 에길과 에이리크 블로됙스의 갈등은 에길의 삶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다.

4. 1. 바르드 살해 사건

에길은 형 토롤프가 아이슬란드에서 자란 약혼녀 아스게르드(Ásgerðr Bjarnardóttirnon)와의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노르웨이로 갈 때, 토롤프가 꺼렸음에도 억지로 따라나섰다.[17][18] 노르웨이에서 토롤프는 아스게르드의 아버지 비요른(Björn höldrnon)과 삼촌 토리르(Þórir hersirnon)에게 결혼 허락을 구했다.[18] 에길은 토리르의 집에 머물면서 그의 아들이자 나중에 중요한 친구가 되는 아린비요른(Arinbjörn Þórissonnon)과 친해졌다.

에길은 병을 핑계로 토롤프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고, 대신 토리르의 부하들이 심부름을 가는 아틀로이로 향했다. 그곳에서 에길 일행은 에이리크 피도끼왕의 집사인 바르드(Bárðrnon)를 만났는데, 바르드는 에일이 다 떨어졌다며 스퀴르( skyrnon )만 내놓으며 그들을 무시했다. 하지만 그날 밤 에이리크 왕과 군힐드(Gunnhildr konungamóðirnon) 왕비가 디시르( dísirnon ) 축제를 위해 도착하자 에일이 풍족하게 제공되었다.

바르드의 속임수에 분노한 에길은 그를 조롱하는 시를 계속 읊었고, 엄청난 양의 술을 마셔 주인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에 바르드와 왕비는 에길에게 독이 든 술을 보냈으나, 에길은 술잔으로 쓰던 뿔에 룬 문자를 새기고 자신의 피를 묻혀 독을 감지했고, 뿔잔은 산산조각 났다. 독살 시도가 실패하자 에길은 바르드에게 다가가 칼로 찔러 살해했다. 에길이 도망치자 에이리크 왕은 분노하여 수색대를 보냈지만 잡는 데 실패하고 부하 몇 명만 잃었다. 결국 에이리크 왕은 자신의 양아버지이기도 한 토리르의 중재를 받아들여 배상금을 받고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21] 이 사건으로 인해 에길과 에이리크 왕의 관계는 크게 악화되었다.

4. 2. 잉글랜드에서의 용병 생활과 브루난부르 전투

에길과 토롤프 형제는 프리시아 근처에서 약탈을 하던 중 잉글랜드의 에텔스탄 왕이 전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형제와 부하들은 잉글랜드로 건너가 에텔스탄 왕의 군대에 합류했고, 스칸디나비아 출신 병사들로 구성된 부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이 사가는 잉글랜드의 역사적 전통과 관련이 깊으며, 에텔스탄의 혈통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잉글랜드 외 자료 중에서는 드물게 알프레드 대왕을 '대왕'으로 칭하는 두 가지 사례 중 하나를 제공한다.[22]

형제가 잉글랜드에 도착한 후 참전한 전투는 사가에서 '비네이르'(Vínheiðrnon)라고 불리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937년에 에텔스탄 왕이 승리한 브루난부르 전투와 동일한 전투로 여겨진다.[23][24] 사가에서는 이 전투의 주요 상대를 '스코틀랜드의 올라프 적왕'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당시 에텔스탄의 실제 적이었던 스코틀랜드의 콘스탄틴 2세와 히베르노-노르스계 Uí Ímair 왕조의 군주 올라프 구드프리드손의 모습이 합쳐진 것으로 추정된다.[25][26][27] 에길과 토롤프 형제는 이 전투에서 에텔스탄 왕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으나, 형 토롤프는 전투 둘째 날 전사하고 만다.

전투 후 에텔스탄 왕은 토롤프의 죽음을 보상하기 위해 에길에게 은화 두 상자를 주면서 아버지 스칼라그림에게 전달하라고 했지만, 에길은 왕이 승리 축하 연회에서 칼끝으로 건네준 팔찌와 함께 이 은화를 자신이 가졌다.[28] 에길은 그해 겨울 동안 에텔스탄 왕의 궁정에 머물면서 왕을 찬양하는 드라파를 지었다. 에텔스탄 왕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에길에게 금팔찌 두 개와 자신이 입었던 값비싼 망토를 선물로 주었다. 에길이 잉글랜드를 떠날 때 에텔스탄 왕은 그가 계속 자신의 군대에 남아주기를 바랐지만, 에길은 이를 거절했다.

4. 3. 에이리크와의 대립과 "머리 몸값"

에이리크 블로도액스는 동생 호콘에게 노르웨이 왕위를 빼앗긴 후 잉글랜드로 망명했고, 애설스탠 왕에 의해 노섬브리아의 왕으로 임명되었다. 2년 뒤, 에길은 애설스탠 왕을 만나기 위해 잉글랜드로 항해하던 중 우연히 에이리크 블로도액스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에이리크는 과거의 일로 분노했지만, 에길의 친구이자 에이리크의 신하인 아린비에른 토리손(Arinbjörn Þórissonnon)이 에길이 에이리크를 찬양하는 시를 하룻밤 안에 지으면 목숨을 살려주자고 설득했다. 에길은 밤새 시를 지어 다음 날 아침 에이리크 앞에서 ''Höfuðlausn''("머리 몸값")이라는 제목의 드라파를 암송했다. 에길의 뛰어난 시 재능에 감탄한 에이리크는 다시는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에길을 풀어주었다.[33] 풀려난 에길은 아린비에른의 친척인 토르스테인(Þorsteinnnon)을 보살피고 있던 애설스탠 왕을 만나러 갔다.

5. 에길의 노년과 죽음

에길은 장수하였으며, 노년기에 여러 일을 겪었다. 그의 아들 Thorstein|토르스테인non은 농토와 목초지를 두고 오눈드 숀디(Onuud Sjondinon)의 아들 스테이나르(Steinarnon)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66]

5. 1. 아들 보드바르의 죽음과 만가

에길의 아들 Bodvar|보드바non가 배가 침몰하여 세상을 떠나자, 에길은 깊은 슬픔 속에서 아들을 추모하는 시를 지었다.[65]

5. 2. 알팅그와 "에길의 은" 전설

어느 여름날 에길은 알팅그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애설스탠 왕에게 받은 은이 가득한 상자를 가져가 은을 흩뿌려 사람들이 은을 가지려고 싸우는 광경을 보려고 계획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와 동행하려 하지 않아 에길은 혼자 떠돌게 되었고, 결국 자신의 은을 모스펠스베르 근처 어딘가에 숨겼다고 전해진다.[67]

6. 《에길의 사가》의 문학적, 역사적 의의



《에길의 사가》는 서기 850년경 노르웨이에서 시작하여 주인공 에길 스칼라그림손의 할아버지인 울프(Úlfr, 별명 크베들울프)와 그의 아들들인 토롤프(Þórólfr), 스칼라그림(Skalla-Grímr)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왕가와의 갈등을 겪은 이 가족은 노르웨이를 떠나 아이슬란드에 정착하게 된다. 이후 스칼라그림의 아들인 에길과 그의 형 토롤프가 태어나며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가는 에길의 파란만장한 삶을 따라가는데, 그는 노르웨이에서 불안정한 위치에 놓이다 결국 불법자로 선언되어 스칸디나비아를 떠돌며 잉글랜드 왕을 섬기기도 한다. 아내의 상속 재산을 둘러싼 분쟁은 노르웨이 왕과의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의 삶은 수많은 전투와 방랑으로 점철되었으나, 동시에 그는 뛰어난 시인이기도 하여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시로써 표현했다. 사가에는 그의 싸움과 우정, 가족 관계(특히 형 토롤프에 대한 질투와 애정), 노년의 모습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7] 또한 그의 아들 토르스테인(Þorsteinn)이 로마 가톨릭을 받아들이는 등 후대의 이야기까지 다루며, 사가는 서기 1000년경까지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진다. 에길이 죽기 전 모스페틀스바이어르 근처에 재보를 숨겼다는 전설도 유명하다.

이 사가는 9세기에서 10세기에 걸친 바이킹 시대의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의 사회상, 정치적 갈등, 바이킹 문화 등을 반영하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동시에 복잡한 인물인 에길의 영웅적이면서도 폭력적인 면모, 그의 시적 재능 등을 통해 인간 본성과 운명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탐구하는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에길의 사가》는 다른 주요 작품들과 함께 아이슬란드 사가 문학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6. 1. 아이슬란드 사가 문학의 정수

『냐르의 사가』, 『락사르 계곡의 사람들 사가』와 함께 아이슬란드 사가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문학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진다.

6. 2. 역사적 배경과 바이킹 문화

사가는 9세기 중반(약 850년경)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에길의 할아버지 울프(Úlfrnon)는 '크벨둘프'(Kveldúlfrnon, '저녁 늑대'라는 뜻)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거대한 체구와 강력한 힘을 지녔으며, 바이킹 노략질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했다. 현명한 인물이기도 했으나, 전투 시에는 함람므(hamrammr)였고 평소 저녁에는 조용히 은둔하는 성격이었다고 전해진다.[56] 사람들은 저녁에 기질이 급변하는 그에게 변신능력자라는 꼬리표를 붙였는데,[42] 이는 반드시 문자 그대로의 변신이라기보다는 광전사적인 격앙 상태(berserksgangr)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43] 일부 기록에서는 그가 반 거인의 혈통이라고도 언급된다. 크벨둘프에게는 토롤프(Þórólfrnon)와 스칼라그림( Skalla-Grímrnon )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으며, 스칼라그림이 에길의 아버지가 된다. 스칼라그림은 아버지 크벨둘프의 기질과 검은 피부 등 외모를 물려받았다.[44][45]

당시 노르웨이는 하랄 아름다운 머리 왕(하랄 1세)이 통일 전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크벨둘프는 하랄 왕을 섬기는 것을 꺼렸는데, 왕과 관련되면 좋지 않은 결말이 있을 것이라 예견했기 때문이다.[46] 그의 장남 토롤프는 왕을 섬기며 핀인들에게서 공물을 징수하는 등 활약했고, 왕이 노르웨이 전토를 제패한 하프르스피오르드 전투에서도 공을 세웠다.[47] 그러나 토롤프의 친구이자 먼 친척인 바르드(Bardnon)의 이복형제들인 흐레레크(Hraereknon)와 하레크(Hareknon)는 왕에게 토롤프가 공물을 빼돌리고 왕에 대한 음모를 꾸몄다고 모함했다.[48][49] 토롤프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던 하랄 왕은 이들의 참언을 믿고 산드네스(Sandnessnon)에 있는 토롤프의 저택을 공격하여 그를 살해했다.[57]

아들의 죽음에 스칼라그림은 하랄 왕에게 배상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크벨둘프와 스칼라그림 부자는 왕에게 빼앗겼던 토롤프의 배를 되찾으면서 선원들을 살해하는 복수를 감행했다. 그들은 왕을 조롱하는 시를 남기고 노르웨이를 떠나 아이슬란드로 향했다. 이주 과정에서 크벨둘프는 병으로 사망했다.[58] 스칼라그림은 아이슬란드의 보르그아뮈룸에 정착하여 농부이자 대장장이로서 살아가며, 이곳에서 그의 아들들인 에길과 토롤프(사망한 삼촌의 이름을 따름)가 태어나고 자랐다.[59] 이러한 이주 과정은 당시 노르웨이의 정치적 통합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이를 피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아이슬란드로 이주했던 바이킹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잘 보여준다.

사가 초반부는 이처럼 9세기 후반 노르웨이의 정치적 상황과 바이킹 사회의 특징적인 면모들을 드러낸다. 왕과의 관계, 명예와 복수, 스칼드 시(詩) 문화, 함람므와 같은 전사의 특성, 그리고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이주 등이 주요 요소로 나타나며, 이는 에길 스칼라그림손이라는 인물의 삶과 그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6. 3. 복잡한 인간성과 운명의 주제

에길의 생애는 대부분 전투 속에서 보낸 것으로 묘사되지만, 동시에 그는 자신의 삶의 여정을 시로써 자주 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에길이라는 인물이 가진 복잡한 면모를 드러낸다. 또한 에길은 죽기 전에 모스페틀스바이어르 근교에 재보를 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이는 "에길의 은"이라는 전설로 이어졌다.

『에길의 사가』는 『냐르의 사가』, 『락사르 계곡의 사람들 사가』와 함께 아이슬란드 사가 중에서도 뛰어난 문학성을 인정받는 작품으로 꼽힌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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