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타디오 데펜소레스 델 차코
1. 개요
에스타디오 데펜소레스 델 차코는 파라과이 아순시온에 위치한 다목적 경기장이다. 1917년 사소니아 경기장으로 개장하여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 구장으로 사용되었으며, 1999년 코파 아메리카, 1960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 등 주요 국제 경기를 개최했다. 차코 전쟁 참전 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현재 이름으로 변경되었으며, 1953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자금으로 경기장이 개조되었다. 경기장에서는 축구 경기 외에도 다양한 콘서트가 열렸으며, 2009년에는 콘크리트 블록 붕괴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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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완공된 스포츠 시설 -
콩스탕 반덴 스토크 스타디온
콩스탕 반덴 스토크 스타디온은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축구 경기장으로, RSC 안데를레흐트의 홈 경기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재건축 후 클럽 회장의 이름을 따 명칭이 변경되었고, 현재는 로토 파크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주요 A매치가 개최되었다. -
1917년 완공된 스포츠 시설 -
스타디온 레트나
스타디온 레트나는 체코 프라하에 위치한 다목적 경기장으로, 1921년 개장 이후 세계 여자 경기 대회 개최, 화재 후 재건축, 수용 인원 확장 및 현대화 작업을 거쳐 현재 epet ARENA로 불리며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와 다양한 행사 장소로 사용된다. -
코파 아메리카 경기장 -
라 봄보네라
라 봄보네라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보카 주니어스의 홈구장으로, 1940년 개장하여 여러 차례 개보수를 거쳐 최대 57,395명을 수용하며, 열광적인 팬들의 응원과 클럽의 역사, 문화를 보여주는 보카 박물관, 벽화로 유명하다. -
코파 아메리카 경기장 -
에스타디오 올림피코 아타우알파
에스타디오 올림피코 아타우알파는 에콰도르 키토에 위치한 종합 경기장으로, 여러 축구 클럽의 홈 경기장으로 사용되며, 해발 2,782m에 위치하고 잉카 황제의 이름을 땄으나, 2020년 말 철거 후 재건축 계획은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다.
2. 역사
1917년 아순시온 인근 지명이었던 사호니아의 이름을 따서 에스타디오 데 푸에르토 사호니아라고 불렸다. 이후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사이에서 벌어진 차코 전쟁에서 볼리비아군으로부터 그란 차코를 지켜낸 파라과이군에 경의를 표하여 데펜소레스 델 차코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이 경기장은 국립경기장이기 때문에 국내 리그전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대표팀의 경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코파 수다메리카나 등 남미 클럽 대항전 경기에 사용된다. 1999년에는 파라과이에서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사용되었다.
2.1. 1910년대
1916년 2월, 경기장 건설이 시작되었다. 1917년 11월, 사소니아 경기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했으며, 올림피아 아순시온과 리베르타드의 경기에서 리베르타드가 1-0으로 승리했다. 1919년,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 경기장에서 첫 경기를 치렀고, 파우스티노 카사도가 경기장에서 파라과이의 첫 골을 기록했다.
2.2. 1920년대
우루과이가 1924년 올림픽 축구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파라과이 축구 협회는 이 남미 국가를 기리기 위해 경기장 이름을 "우루과이"로 변경했다. 이후, 이름은 에스타디오 푸에르토 사소니아로 다시 변경되었다. 1925년 8월, 파라과이 국가대표팀은 우루과이와의 코파 보시오 경기에서 이 경기장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2.3. 1930년대
차코 전쟁 동안, 경기장은 전략적 위치 때문에 탄약고 및 군대 집결 장소로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경기장은 변모 과정을 시작했다.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간의 차코 전쟁에 참전하여 승리한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현재 이름인 "데펜소레스 델 차코"(Defensores del Chaco, 차코 수호자)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2.5. 1960년대
1960년, 이 경기장은 올림피아 아순시온과 페냐롤 간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첫 결승전이 열린 장소였다. 1967년에는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의 친선 경기를 통해 조명 시스템을 처음으로 가동했다.
2.6. 1970년대
1971년, 이 경기장에서 파라과이는 현재의 남아메리카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로 대체된 토르네오 후벤투드 데 아메리카에서 우승하며 첫 번째 국가 청소년 팀 타이틀을 획득했다. 1972년에는 북쪽 구역이 확장되었고, 파라과이 축구 협회의 사무실이 경기장으로 이전되었다. 1973년에는 동쪽 스탠드 건설이 시작되었다. 1974년, 경기장 이름이 차코의 수호자로 변경되었다. 1979년, 파라과이는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고, 올림피아는 이 경기장에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우승했다.
2.7. 1980년대
1983년, 이 경기장에서는 세로 포르테뇨와 올림피아 아순시온의 수페르클라시코 경기에 49,095명의 관중이 참석한 시장 지원 경기가 열렸다.
2.8. 1990년대
1992년, 파라과이 23세 이하 올림픽 대표팀은 이 경기장에서 프리 올림픽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했다. 1999년, 이 경기장은 1999년 코파 아메리카의 주요 경기장 중 하나였다.
2.9. 2000년대 이후
이 경기장은 특정 팀이 소유한 것이 아닌 국가대표 경기장이며, 주로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 경기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코파 수다메리카나와 같은 국제 클럽 축구 토너먼트 경기를 개최하는 데 사용된다.
새천년 시대에 VIP석 건설, 박스석 확장, 관중석 증설, 그리고 대륙 최고의 스포츠 경기장 수준에 맞춘 LED 조명 설치와 같은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3. 주요 경기
1992년, 파라과이 23세 이하 올림픽 대표팀은 이 경기장에서 프리 올림픽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했다. 1999년, 이곳은 1999년 코파 아메리카의 주요 경기장 중 하나였다.
3.1. 코파 아메리카 1999
1992년, 파라과이 23세 이하 올림픽 대표팀은 이 경기장에서 프리 올림픽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했다. 1999년, 이 경기장은 1999년 코파 아메리카의 주요 경기장 중 하나였다.
4. 기타 행사
5. 사건 및 사고
2009년 2월 1일, 경기장 일부인 콘크리트 블록에 진압 경찰 두 명이 맞아 사망하고 다섯 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콘크리트 블록은 7m 높이에서 떨어졌다. 이 사고로 당시 진행 중이던 축구 경기가 40분 동안 지연되었다.
6. 경기장 이용
이 경기장은 특정 팀이 소유한 것이 아닌 국가대표 경기장이며, 주로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 경기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코파 수다메리카나와 같은 국제 클럽 축구 토너먼트 경기를 개최하는 데 사용된다.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 예선 및 국제 친선 경기를 이 경기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클루브 리베르타드, 클루브 과라니, 클루브 올림피아와 같은 지역 클럽들은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코파 수다메리카나 경기를 위해 종종 이 경기장에서 홈 경기를 치른다.
이 경기장은 국립경기장이기 때문에 국내 리그전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대표팀의 경기, 남미 클럽 대항전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코파 수다메리카나 등의 경기에 사용된다. 또한 1999년에는 파라과이에서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사용되었다.